이책한번잡솨봐

6호: 이 책 한번 잡솨봐 - 동물과 사람 사이의 틈에서

2024.09.15 | 조회 1.35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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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안녕하세요, 박현철이고요,

책 이야기 들려드리려 왔는데, 할 말이 많아서 그냥 바로 시작할게요. 

오늘 책이 좀 많아서요…
오늘 책이 좀 많아서요…

 

이 책 한번 잡솨봐 QNA - 동물과 사람 사이의 틈에서

책이 필요한 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을지 고르기 힘드시죠? 청어람이 여러분의 북큐레이터가 되어 믿고 선택할만한 책을 권해드립니다. ‘이런 상황(혹은 이런 주제)에 대해 읽을만한 책은 무엇일까?’ 궁금하시면 언제든 질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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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네 이 질문은 (광고성) 질문과 답변입니다. 틈에서 애초에 책 소개를 할 때 ‘이럴 때 이런 책' 같은 질문과 함께 ‘주제별 책 큐레이션’도 함께 해야겠다 생각했었는데요, 딱히 이런 주제 책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 없어서… 셀프 질문과 자체 답변 및 청어람 모임 광고로 한번 해보려 합니다. 그래도 청어람에서 비거니즘 북클럽, 기후위기 북클럽 등을 하면서 적지 않은 책을 읽었습니다. 저희가 동물에 관해 읽고 고민한 내용을 정리하며, 읽을만한 책을 소개해보겠습니다. 

우선 '동물권'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할 필요가 있겠지요. 동물권은 인간이 아닌 동물들 역시 인권에 비견되는 권리를 가졌다는 개념입니다. 생명과 존엄이 보호되어야 할 권리, 고통을 피할 권리, 학대당하지 않을 권리 등이 포함되지요. 이런 생각은 이른바 ‘동물 보호’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상식이 된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현재 ‘동물권’ 논의는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서 ‘동물 해방’의 관점에서 철학, 사회학, 과학, 심지어 법학에 이르기까지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물론 신학에서도요.

동물권 논의의 출발

동물권 논의의 출발은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975년 출간된 이 책은 지금도 대중적으로 널리 읽히며 동물권 필독서가 되었습니다. 싱어가 주장하는 핵심은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므로, 공리주의를 확대해 동물의 이익과 관심도 인간과 차별 없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반종차별주의)과, 우리에게는 동물의 고통을 최소화할 윤리적 의무가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에 톰 레건은 1983년 <동물권 옹호>를 통해서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적 입장을 비판하며 의무론적 입장에서 동물의 본래적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합니다. 이 두 입장이 상호 논쟁하며 동물권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양대 축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스타 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펴낸 <동물을 위한 정의>도 살펴볼만한데요, 이 책에서 누스바움은 기존 동물권 논의를 정리할 뿐 아니라 ‘역량 접근법'을 통해 동물에 대한 권리를 법적으로도 보장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철학, 법, 과학 논의가 촘촘히 엮여서 쉬운 내용은 아니지만, 자신의 경험을 충분히 소개하면서 ‘경이, 연민, 격분'을 통해 동물들에 대한 우리의 윤리적 책임을 인식하자는 제안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책들은 기본논의지만 철학적이고 딱딱하여 다 읽고 소화하는 게 솔직히 힘듭니다. 그래서 대중적으로 요약 정리된 동물권 입문서를 먼저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안녕하세요, 비인간 동물님들>이 딱 좋은 요약정리 입문서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사’에서부터 오늘날 동물들이 처한 위기에 대한 폭로, 동물권 논의의 철학적 과학적 흐름과 쟁점, 동물과 인간의 공존을 위한 제안까지 한 권에 깔끔하게 담았습니다. 동물권에 관해 소개하는 책은 어린이·청소년용 도서가 훨씬 많이 나와있는데요, 이 책도 청소년용으로 분류되더군요. 일부러 청소년을 위한 책으로 쓴 것 같지는 않고 기자 출신 작가가 써서 풍부한 자료와 쉽게 읽히는 글을 써서 청소년 용으로 분류된 것 같습니다. 그만큼 어른들도 읽고 이해하기 쉽다는 뜻이겠지요.

<정상동물>도 비슷한 구조를 가진 책인데, 이 책은 내용상 본격적인 성인물(?)입니다. 변호사이자 동물권 활동을 하는 운동가인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와 논점을 짚어가며 동물권 논의의 최근 중요한 논쟁점들, 이를테면 동물의 법적 지위와 권리 문제, 동물 노동과 착취 문제, 동물 시설과 야생성, 비거니즘과 육식주의 문제, 동물권의 다른 의제들과의 교차성(기후정의, 노동, 젠더, 빈곤, 난민, 평화)까지 아주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이 책의 각 장 주제를 다룬 단행본들이 다 따로 있을만한 주제들인데 한 권에 잘 모아두었고 그렇다고 내용도 전혀 부실하지 않은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동물 신학 읽기 

그렇다면 신학적 차원에서는 어떨까요? 당연히(!) 기독교에도 동물신학 연구가 있습니다. 윤리학적으로 다뤄지기도 하고, 조직신학적으로도, 성서학적으로도 다뤄집니다. 축적된 연구와 결과물은 적지 않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동물신학 논의가 거의 번역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앤드류 린지의 <동물신학의 탐구>가 이 문제를 다루는 거의 유일한 번역서인데, 번역된 지 10년이 되었지만 아직 이 책을 이을만한 책이 없어서 매우 아쉽습니다. 린지는 이 책에서 동물이 ‘하나님이 지으신 동료피조물'이며, 동물(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게는) 신적 권리(theos-right)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단지 동물뿐 아니라 창조세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신학적 관점으로 유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책은 동물에 대한 신학적 접근법뿐 아니라 동물과 예수, 채식주의, 예배, 교회 등 실제적인 문제까지 다룬다는 장점도 있지만, 린지의 동물신학에 대한 대표작은 아니라서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부분도 있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우리에게는 동물신학을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개관하는 책이 아니라, 동물신학의 필요성과, 동물의 신학적 접근 가능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는 책이 더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발견한 책이 <강아지가 알려준 은혜>입니다. 이 책은 앤드류 루트가 반려견 커비와의 사별 경험을 바탕으로 강아지와의 영적 교감에 대해 돌아보고, 신학적, 동물생태학적으로 탐구한 책입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과학자가 개와 사람 사이의 영적 관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나 같은 신학자도 당연히 그럴 수 있어야만 했다”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탐구는 감동적이면서 설득력 있습니다. 

비슷하게 신앙적 관점에서 동물을 생각하는 책으로 <돼지다운 돼지>도 있습니다. 이 책은 본격적인 동물권 이야기를 하지는 않지만, ‘야생초의 힘을 믿고 농장동물의 본성을 존중하는 자칭 미치광이 농부'가 운영하는 독특한 농장 이야기를 통해서 동물의 동물됨, 인간의 인간됨을 유쾌하게 이야기합니다. 유쾌하고 재밌어서 꼭 챙겨 읽어볼 만합니다. 동물들의 성인이라 불리는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이어받은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펴낸 <우리의 형제자매, 피조물>도 읽어볼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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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이 읽어나가려면

소개가 길어지지만, 철학과 신학에서 다루는 기본적인 동물권 논의를 살폈다면 그다음은 세부적인 주제를 깊이 탐구하며 읽어가야겠죠? 대략 세 가지 정도로 흐름을 잡고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추천합니다. 

첫째, 교차성과 해방의 관점에서 동물 이야기를 살피는 것입니다. 동물 문제는 단순히 동물 문제로만 다루어지지 않고,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차별에 대한 반대, 피억압자이자 소수자의 해방적 관점에서 연결되어 논의될 수 있고, 논의되어야 합니다. 관련된 책을 몇 권 꼽아보겠습니다. <짐을 끄는 짐승들>은 동물 노동과 장애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고, <육식의 성정치>는 동물권,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이 사회의 주류가 비주류를 어떻게 억압하고 있는지 잘 드러냅니다. 홍은전의 <나는 동물>도 장애와 동물을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좋은 에세이입니다. 굳이 기독교 책을 추천한다면 레오나르도 보프의 <생태 신학>이 해방의 관점에서 생태문제를 바라보고, 모든 피조세계와의 신비주의적 일치의 비전까지 이야기하는 좋은 책입니다. 

둘째, 실천적 차원에서 비거니즘에 대해 깊이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비거니즘은 단순히 동물을 먹는 것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생존과 동물과의 관계를 함께 생각하는 식습관이자 철학입니다. 요즘 나름의 트렌드가 되어 책도 정말 많은데요, <나의 비거니즘 만화>, <아무튼 비건> 두 권은 비거니즘의 문제의식과 범위를 선명하게 알게 해 주는 좋은 입문서입니다. ‘비거니즘’에 관한 질문과 공격을 역으로 바꾸어 ‘육식주의’에 찌들고 왜곡당한 세상과 우리의 인식을 꼬집는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도 유익하고, 철학자와 셰프가 함께 쓴 <고기가 아니라 생명입니다>라는 책도 좋습니다. 만약 구체적으로 비건 실천을 해보고자 준비하는 분들께는 <지속 가능한 삶, 비건 지향>을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 동물과 인간의 관계, 특히 서로 교감하고 연결된 존재임을 더 깊이 탐구하는 길이 있습니다. 생태신학의 세 가지 큰 모델이 신 중심, 인간 중심, 생태 중심 모델인데요, 이제까지 인간 중심에 가까웠던 논의를 온건하게는 신 중심, 급진적으로는 생태 중심으로 확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동식물의 생태를 더 알게 되고, 작지만 그들과 교감했던 경험을 통해서 생태 중심 모델이 오늘날 가장 적실한 모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 몇 구절 들면서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쉽게 말하는 분들이, 혹은 그런 분들에게 대답해주고 싶은 분들이 이런 책들을 보면서 동물에 대한 이해를 조금 넓히고 동료피조물인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유명한 책은 영장류 학자로 침팬치와 오랫동안 함께 살며 교감한 제인 구달의 <희망의 이유> 일 것입니다. 이 책을 읽고도 동물이 영혼도 무엇도 없이 그저 움직이는 생명체일 뿐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비슷한 책으로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은 역시 동물학자의 자전적 에세이인데요, 동물을 연구하며 인간이 아닌 다른 종과 교감하며 느낀 충만함과 배운 지혜, 영혼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 동물의 생태도 알 수 있고, 교훈도 있는 책입니다. 동물에 대한 연구가 단지 과학이나 생물학의 일부일 뿐 아니라 ‘좋은 생명체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는 저자의 말은 감동적이면서도 신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에는 동물의 감정과 생각에 대한 책들도 여럿 나왔습니다. <동물은 어떻게 슬퍼하는가>,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는 동물들이 감정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의례까지 갖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새로운 지식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매우 재밌고 유익한 책들입니다.

 

최근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동물신학을 비판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들의 관심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우월함, 그리고 천국의 완전함을 지키려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나-천국 만 생각하는 좁은 시야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신앙과 신학이 탐구해야 하는 대상은 ‘하나님’,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그리고 그 세계 속의 ‘나’라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우리는 시야를 넓게 갖고 새로운 경험에 열린 마음을 가져야겠지요. 우리의 동료이자 이웃, 하지만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존재들과 더 깊이 교감하고 공존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언급된 책들 중 알짜만 뽑아 네권을 함께 읽는 온라인 북클럽이 있어요!

  • 일정 : 2024년 9월 25일, 10월 2일 이후 격주 수요일 저녁 8:00-9:30 (총 6회)
  • 진행 방식: 온라인(zoom이용)
  • 진행: 박현철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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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급된,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목록>

동물권

신학/신앙

동물생태/감정

  • 짐을 끄는 짐승들, 수나우라 테일러 지음, 이마즈 유리/장한길 옮김, 오월의봄 펴냄, 22,000원(전자책 있음)
  • 육식의 성정치, 캐럴 J. 아담스 지음, 류현 옮김, 이매진 펴냄, 25,000원
  • 나는 동물, 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펴냄, 13,000원
  • 생태신학, 레오나르도 보프 지음, 김향섭 옮김, 가톨릭출판사 펴냄, 9,000원

비거니즘

동물생태/감정

🖊️ 사이북클럽 큐레이터 박현철 | 원래 신간 모니터링 요원인데, 어쩌다보니 이번달은 ‘이중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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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월 신간 한번 잡솨봐

8월과 9월에 나온 신간들을 직접 살펴보고 엄선한 책들을 소개합니다. 절대 공정하고 권위있는 선정이 아니고, 개인적인 취향과 청어람의 색깔을 반영한 큐레이션입니다. 정성스레 책을 만들어 저희 눈과 머리, 가슴까지 운동시켜주시는(?) 출판사의 수고에 모두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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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 중입니다

누구나 글 그림, 바오로딸 펴냄, 14,000원

어느 도서전의 독립출판물 코너에서 이 책을 보았다. ‘가나안 성도’라는 말에 늘 빠져있던 나로서는 가톨릭에서 가나안 성도를 가리키는 표현인 ‘냉담자’라는 말에 눈이 번쩍 띄어 집어 들었다. 간단하게 살펴본 바로는 단문으로 가볍게 쓰인 재치 있는 독립출판물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이번에 같은 제목으로 가톨릭 출판사 중 한 곳에서 ‘교회인가’ 과정을 거쳐서 나왔다니 어쩐지 신선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집어 들었다. 독립출판물 때와는 다르게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자전적 만화로 그려졌다. 솔직하고 잔잔한 서사가 편안히 잘 읽혔고 군데군데 멈춰 생각할 질문들도 많았다. 개신교와는 다른 가톨릭의 문화나 신앙 경험을 엿볼 수 있는 점, 무엇보다 그걸 평범한 신자 입장에서 담백하게 쓴 점이 유익하고 재미있었다. ‘냉담’, 내 관심 영역에서는 ‘탈교회'라고 부르는 현상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풀어놓은 이야기에 현상 자체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멈춰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느껴졌다. (스포)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래도 될까?”이다. 나는 저자의 여정은 이미 떠남과 돌아감의 지평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을 위한 작은 기도

워런, 허트슨, 오크스 글, 포시스 그림, 김효경 옮김, IVP펴냄, 10,000원

기도에 대한 책은 정말 많이 나온다(진짜 생각보다 많다!). 최근에도 기도, 기도문, 기도 노트 등의 책이 꽤 많이 나온 것을 보고 이게 다 무슨 내용이고 이걸 다 누가 사는 걸까 궁금했는데(내가 왜?), 그 모든 책을 대표해 이 책을 소개한다. 이 책을 감히 ‘대표’로 꼽는 이유는 간단하다. 첫째, 기도문이 상투적인 기독교 용어에 오염되지 않고, 간결하고 정돈된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둘째, 어떤 기도제목을 놓고 간구하는 형태의 기도가 아니라 일상의 순간에 스며드는 기도가 모여있다. 이렇게 오염되지 않은 언어로, 일상에 스며서 기도하기 위해서는 ‘배움’보다는 오랜 ‘연습’이 필요한데, 이 책이 좋은 교본이자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 확신한다. 책의 만듦새와 그림이 예뻐서 선물용이나 어린이 용으로 여겨지기 쉬운데, 선물과 어린이책으로 물론 좋은 책이지만, 기도와 일상을 연결시키고 싶은 모든 분들을 위한 책이다. 나는 오히려 ‘나의 기도’를 위해서 이 책을 많이 보셨으면 좋겠고, 그런 점에서 항상 휴대할 수 있도록 출판사에서는 그림을 빼고 소책자나 실용적인 수첩 에디션으로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지…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

피터 엔스 지음, 노동래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25,000원

피터 엔스는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성서비평과 고대근동학의 성과들을 (온건하게) 받아들이는 구약학자다. 하지만 그가 가르치던 학교는 (모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성서론을 문제 삼아 그를 쫓아냈다. 다행히도 피터 엔스는 그 시간을 통해 성찰과 전환의 기회로 삼아 현재까지 성경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신앙이라는 행위 자체를 깊이 성찰하며 전통적인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신앙의 해체적 재구성(deconstruction)을 하려는 이들의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성서해석과 성서론이 구체적으로 궁금한 사람들은 <성육신적 관점에서 본 성서 영감설>이나 <아담의 진화>를 읽으면 되고, 신앙에 대한 성찰에 관해서는 <확신의 죄>라는 매우 훌륭한 책을 읽으면 된다. 그리고 <성경 너머로 성경 읽기>는 이 주제를 한 권에 종합해 놓은 책이다. 출간 이후 미국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고, 레이첼 헬드 에반스도 여러 번 이 책을 인용한다(사실 레이첼은 피터 엔즈의 다른 책도 엄청 인용했다). 이 책은 성경의 난해한 부분들을 해설하면서 고대의 성경을 오늘날에 의미 있게 해석하는 방법에 관해 설명하는 짧은 글 모음이다. 긴 설명보다는 제목을 직역하는 게 이 책에 대한 가장 좋은 소개가 될 것이다. “성경에 써있네 : 성경을 지키려는 시도는 왜 우리가 성경을 읽을 수 없게 만드는가?(THE BIBLE TELLS ME SO : Why defending scripture has made us unable to read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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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어떻게 충만케 할 것인가?

김승환 지음, 새물결플러스 펴냄, 15,000원

인터넷에서 ‘동물신학’을 소개하는 글에 ‘별별 신학이 다 있네. 그럼 식물 신학도 할 건가?’라는 댓글을 본 적이 있다. 물론이다. 신학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한 탐구일 뿐 아니라 정확히 말하자면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탐구이며, 그러므로 별별 신학이 다 있어야 하고, 이미 신학자들은 별별 작업을 하고 있다. <도시를 어떻게 충만케 할 것인가?>는 별별 신학 중 ‘도시신학’에 대한 책이다. 저자는 이미 <도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통해 이 분야에 관한 문제의식과 흐름을 소개하는 책을 출간했고, 이번 책을 통해서는 도시의 일상과 공간의 문제를 조금 더 파고들어 소개한다. ‘바쁘다바빠현대사회’의 총합인 도시에서의 일상 리듬을 어떻게 거룩하게 할 것이며, 크고 높고 화려하고 효율적인 것을 추구하는 도시의 공간을 어떻게 거룩하게 만들 것인지에 관해 잘 서술하고 있다. 얇지만 내용이 아주 충실하고, 다양한 학자들의 논의를 소개하는 등 정보도 많다. 논문으로 발표될만한 학술적 글이지만 읽기 어렵지 않다. 교회 청년부나 3040 그리스도인 모임 독서토론용으로 읽어도 좋을 것이라 추천한다. 

 

건축자 바울: 공간, 시간, 의례

정동현 지음, 학영 펴냄, 18,000원(전자책 있음)

아주 개인적 편견이지만, 바울에 관한 책들은 이제 지루한 감이 있어서 엄격하게 거르는 편이다. 이 책은 ‘건축자 바울’보다는 ‘공간, 시간, 의례’라는 단어가 더 눈에 들어와 살펴보았는데, 몇 페이지 읽다가 서문의 “고린도전서를 읽고 바울을 이해하려 하면서, 저는 흐릿한 거울에 비친 것과 같은 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일지도 모릅니다”라는 말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책은 기본적으로 고린도전서에 대한 해설서이고 그중에서도 ‘교회'를 중심 키워드로 삼는다. 저자가 주장하고 싶은 바를 다양한 근거와 반론을 들어가며 꼼꼼하게 논증한다. 그렇다고 해서 ‘성경적 교회는 이래야 한다!’라는 당위적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 본문을 잘 관찰해서 그 의미가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연결하고 결합’시켜 독자들 앞에 내놓을 뿐이다. 이렇게 내놓은 텍스트를 통해 나는 저자가 고린도전서를 공간, 시간, 의례의 렌즈로 읽으며 고린도 교회를 흐릿한 거울에 비쳐보고, 또 바울을 비춰보고, 한국교회와 저자 자신을 비춰보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점이 무척 좋았다. 소개를 위해 대략 훑어보고 인상만 쓴 내가 오히려 부끄럽다. 조만간 이 책을 촘촘한 각주까지, 정독&완독 할 것이다.

 

바울과 철학의 거장들

조셉 닷슨, 데이비드 브리오네스 엮음, 정제기 옮김, 감은사 펴냄, 22,000원(전자책 있음)

바울에 대한 책이 지루한 감이 있다고 했는데 이번 달은 바울 책 두 권을 소개한다(충돌하는 자아…). 편견대로만 살 수도 없고,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화해한 자아…). 이 책은 여러 ‘신학자들’이 바울의 생각을 당대의 철학자들과 비교한다. 목차를 보면 책의 기획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고통에 대한 바울과 에픽테토스의 입장', ‘믿음에 대한 바울과 플루타르코스의 관점', ‘편지 작성자로서의 바울, 키케로, 세네카' 같은 식이다. 목차를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매력을 느낄 것 같다. 한 가지 걱정되는 점은 ‘철학과 신학이 동시에 들어있으니 어렵지 않을까?’라는 선제적 염려다. 책을 출간한 감은사가 전문적인 성서학 책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수 있다. 일단 출판사의 주장(?)으로는 대중서라고 하고, 내가 봤을 때도 크게 어렵지는 않다. 오히려 내가 가졌던 우려는 바울 한 명과 철학의 거장 여럿을 비교하는 게 과연 공정한가 하는 점과, 저자가 전부 신학자(성서학자)들인데 균형있는 비교가 되겠는가 하는 부분이었는데,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기독교인들이 읽을만한 대중교양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철학책이 아니다). 나 역시 고대철학자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데 고대철학자들은 여전히 잘 모르겠고, 적어도 바울의 생각을 당대의 맥락과 보편적인 차원에서 이해하기에 좋았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책 소개 어떻게 보셨나요? 다음 10/1 메일에는 평범하고도 새로운 이웃의 이야기로 찾아갈게요. 추천과 공유 환영합니다!

지난 메일링에 남겨주신 소감도 한번 소개해드릴게요.

  • "성민 님의 딥페이크 관련 솔직한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조심스러운 이야기지만 요즘 페이스북에서 유행하는 어른들의 AI 미니미를 보면 딥페이크와 연관이 되어 불편하기도 했거든요. 사진을 넣으면 AI가 귀여운 미니미 이미지를 만들어주는 것과 딥페이크 음란물은... 정도의 차이가 크게 있지만 별 생각 없이 (무비판적으로) 즐긴다는 측면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요. 페북 세상의 유행을 우려하는 마음 보다도, 가해 남성들의 문화 자체에도 더 깊이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들이 왜 그토록 딥페이크 영상물 등 음란물을 쉽게 접근하는지, 규범적인 시스템 만들기도 중요하지요. 그러나 편 가르기 이전에 보다 먼저 안전한 대화를 기대합니다!" 
  • "성민 님의 일상을 엿보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해요^^"
  • "역시나 재밌고 뜻깊은 인터뷰였어요. 한국 사회와 교회가 "청소년/청년, 혹은 모든 이들의 성"을 더 많이 다룰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딥페이크 영상 양산하고 전세계 일등으로 피해자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 가해자인 청소년들보다, 이 지점까지 이르게 한 어른들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 "쉽지 않은 성교육 현장에서 활약하시는 멋진 남자어른 성민 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성민님과 같은 분이 계시다는 게 다행스러워요. 진솔하게 경험과 생각을 나눠주셔서 저 역시 자신을 돌아보게 되네요. 성착취 근절을 위해 저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게요!"
  • "성민 님은 감각이 남다른 분인 건 맞는 거 같아요. 다만 그 감각을 친절하고 따스하게 나누고 제시하는 재주가 있는 거 같아요. 제게는 없는 능력이라 부러우면서도 친절한 동네 형이 옆에서 조건거리는 것처럼 들렸네요. 오늘도 잘 읽었습니다."

메일 매거진 ‘틈’은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요. 읽으시고 든 생각, 의견, 이런 사람 혹은 이런 책 이야기를 들려달라는 질문 모두 환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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