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님과 함께하는 모임에서 ‘거기는 몇 시지?’ 하고 몇 번씩 시계를 보며 계산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보통은 너무 이른 아침이었어요.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가면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나고 온다는 동요를 부르면서도 ‘세상에나,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면 얼마나 피곤할까’를 생각하는 저로서는, 지구 반대편에서 모임을 참석하는 것이 쉬이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건 얼마나 피곤한 일인가요. 소영님은 그 피곤한 일을 마다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힘 닿는 대로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다채로움과 희망 그리고 실패와 절망의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선생님이에요. 이렇게나 멋진 서소영님을 여러분들에게 뽐내고 싶습니다.
유미(유): 안녕하세요, 소영님!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소영(소): 안녕하세요. 미국 뉴햄프셔주, 다트머스 대학에서 한국 및 동아시아의 몸, 질병, 의료의 역사 가르치고 연구하는 서소영 입니다. 배우자, 십 대인 두 자녀, 그리고 만 네 살 된 강아지 코코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이성애자 앨라이이고 교회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다녔습니다. 소그룹이나 강의실에서 다른 사람들 이야기 듣고 제 얘기 하고, 그러다가 그 사람들이 제 마음속에 훅 들어 오는 경험을 할 때, 가장 기쁩니다.
유: 미국 지리에 밝지 않아서 ‘뉴햄프셔주는 어디 쯤에 있나’, 하고 지도를 펼쳐보았어요. 캐나다와 국경이 닿아있는 북부에 위치해 있더라구요. 북쪽에 있는 나라답게 스키의 고장이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설산에서 스키를 타는 뉴햄프셔주 청년들의 모습을 보니 무더운 한국의 날씨와 대비가 되면서 그곳이 더욱 멀게 느껴졌어요. 지구 반대편이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이 나더라고요.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신 후에 미국행을 결정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셨을 것 같은데요.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소: 처음부터 미국에 공부하러 갈 생각은 없었어요. 한국에서 대학원 다니고 이런 저런 활동하고, 여러 관계를 맺는 것이 도전도 되었고, 충만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공부하면 할 수록, ‘내가 “지식 수입상”을 벗어 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어요. 특히, 그 당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저널을 만드는 모임에 2년 정도 참여 했었는데, 주로 영미권 학자들의 글을 읽다 보니, ‘나도 내가 좋아하는 외국의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내 생각을 무리 없이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석사 논문을 쓴 이후에 “동아시아”로 연구의 초점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학부에서 역사 전공을 한 것도 아니고, 중국어/일본어도 많이 부족하고, 박사과정 수료까지 했는데도 학위 논문을 쓸 자신이 없더라구요. 그래서 돌파구를 찾는 심정으로, 눈 여겨 보았던 미국 대학원 프로그램, 세 곳에 지원서를 넣었습니다.
한국의 지식 생태계에서 영미권 학위가 갖는 의미에 대해서는 비판적 연구가 이미 나와 있죠. 김종영의 “지배 받는 지배자: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 (돌베개 2015)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미국으로 떠나는 바람에 놓쳐 버린, 국내에서 절차탁마 할 수 있었던 기회들이 아쉬울 때도 종종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길에서 만난 좋은 선생님들, 동료들, 뜻하지 않았던 변화와 결단의 시간들, 그리고 현재, 한국 밖에서 한국 또는 동아시아에 대해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 소중한 경험이라 생각하고 감사합니다.
유: 방학이 되면, 매 여름마다 한국에 오시는 편이라고 들었어요. 한국에 오시면 보통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누군가를 꼭 만난다거나, 어떤 식당에 들러서 무슨 음식을 꼭 먹는다거나 하는 소영님만의 한국방문 루틴이 있는지 궁금해요.
소: 미국에서 제일 아쉬운 것이, 한국어로 하는 연극 공연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에요. 한국에 오면, 소극장 중심의 실험극, 혹은 대중적인 공연도 가리지 않고 찾아 봅니다. 최근 이풍관 간사님께서 목정원 공연예술 이론가의 책을 인용하며, 요즘에 남겨주셨던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했어요. “두 번 다시 같은 방식으로 재현될 수 없”는,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든 참여하는…. 우리 모두는 어떤 식으로든 “퍼포먼스”를 하며 살아 간다고 생각합니다. 재생 불가능한 순간의 표정, 공기, 차오르는 감정들, 어두운 관객석에 앉아 바라보는 것, 좋아합니다. 특히, 한국어의 맛을 살린 대사, 움직임 등, 기회 되는대로 더 많이 챙겨 보고 싶어요.
작년과 올해에는 대면으로 참석하고 싶었던 학회가 있었어요. 저의 전공인, 역사 연구는 아카이브가 중요해요. 제가 보는 사료들의 대부분은 디지털화가 되어 있지만, 아직도 한국에 와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좀 있어요. 그 자료를 찾기 위해 관련 도서관들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나머지 시간은 주로 가족들과 보내요. 함께 여행하거나 식사하고 밀렸던 이야기들 나누는 것이 늘 큰 힘이 됩니다. 한국에 오면 꼭 만나는 친구들도 있고요. 작년부터는 이런 저런, 작은 교회들 방문했고 앞으로 더 많이 찾아 다녀 보자, 싶습니다.
유: 연극과 학회,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들, 시간 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알차게 보내시는군요. 이번 일정에서도 한국어의 말맛을 충분히 맛보셨는지 궁금하네요. 다시 볼 수 없는 순간이니 온전히 나누기는 어렵겠지만, 이번 일정에서 소영님을 가장 즐겁게 한 순간이 무엇이었는지 무엇인지 궁금해요.
소: 제 동생이 출연한 공연을 관람하고 함께 곱창집에 간 최근의 주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제 동생은 창작뮤지컬 “이상한 나라의 춘자씨”에서 치매에 걸린 노인 “고춘자”역을 맡았어요. 올 초에 서울에서 공연을 할 때 친구와 가족들은 모두 관람 했거든요. 당시에 저만 보지 못해서 내심 아쉬웠는데, 지난 주말 부산에서 공연이 있었어요. 제 둘째 아이와 함께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마지막 공연을 봤답니다. 제 동생은 교회 중고등부때 부터, 사람들 모아서 연극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일들을 기획했던 재주 많은 학생이었어요. 그 시절 재주 많았던 학생이었던 제 동생이 어느새 자라서 무대에 오르고, 저는 제 아이와 함께 “이모”의 공연을 보니 참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유: 한국어의 말맛을 동생을 통해 맛보신 셈이네요. 즐겁고 자랑스러운 시간이셨을 것 같아요.
미국에 계셔서, 청어람과 몸이 멀리 떨어진 소영님이지만, 소영님과 청어람은 누구보다도 가까이 연결된 기분이었어요. 청어람 모임에 참여해주셨을 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함께 해주셨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청어람 뿐만 아니라 한국 교계에 관심을 많이 두시고, 여러 단체에서 진행하는 행사들에도 힘을 많이 보태주시는 것처럼 느껴져요. 청어람에서 일하는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지만, 제가 소영님이라면 쉽게 하지 못할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아무래도 생업도 있으시고, 시차도 있는 와중에 모임에 참여해주시는 것이니까요. 소영님 생각에, 몸이 떨어져 있어도 한국 교회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소: 글쎄요, 제가 특별히 열심을 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웃음). 오히려, 청어람이 제가 갈증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에 대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셔서, “연결”의 느낌이 가능했던 것 아닐까요? 지난 1년 동안 청어람에서 진행한 독서 모임에 네 번 참여했습니다. 세 번이 “여성주의 성서해석” 혹은 “퀴어/동성애” 관련 책 읽기 였고 한 번이 “동물 신학”에 관한 모임이었어요.
우선, 독서 모임 속 책 큐레이션이 좋았어요. 모임을 진행했던 튜터님들, 오수경, 박현철, 정미현, 오수연, 배한나, 님들 다 친절하면서 전문성이 있는 분들이셔서 관련 주제나 책들에 대한 경험과 지식, 진정성을 근거로 읽기 모임을 잘 이끌어 주셨어요. 줌으로 얼굴 보고 토론한 것도 좋았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글을 써 보라고 격려 받았던 것도 좋았습니다. 튜터님들이 계속 바뀌니까 모임 할 때마다 ‘이번에는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했구요. 아울러 같이 참여한 분들이 다양했던 것도 모임의 매력이었던 것 같아요. 20대에서 60대까지, 성적 지향과 성별도 달랐고, 신앙의 배경들도 다양했습니다. 저처럼, 미국 대학촌의 작은 한인교회에 머무는 사람은 좀처럼 만날 수 없는 분들이죠.
참여했던 모임 중에서 특히 “여성주의 성서해석” 모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참석하신 (주로) 자매님들이 성경 본문과 저자의 신학적 해석에 각자의 경험을 보태며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눠 주셨습니다. 사실, 가족, 결혼, 성차별, 성폭력, 성매매 등과 관련된 주제들은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평소 교회 생활에서 제대로 얘기하기 어렵잖아요? 그런 핵심 사안들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나눌 수 있었던 경험, 참 귀했어요. 개인적으로 치유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모임이 그 자체로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청어람의 모임에 참여한 것이지만 제 필요에 의해 여기저기 기웃거린 것도 사실이에요. 저는 다트머스 대학에서, 2013년부터 2019년 까지 “Christianity in Korea” 라는 과목을 학부학생들에게 가르쳤어요. 2026년 1월에 다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조선후기 천주교 전래부터 시작해서, 19세기말 20세기 초, 조선/대한제국의 변화, 일제강점기와 분단, 한국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1997년의 IMF, 그리고 신자유주의 하에서의 개신교회들의 변화와, 미주한인교회의 역사 까지, 10주 동안 적지 않은 주제들을 다루죠. 한인 학생들 뿐 아니라, 중국계, 아프리카계 등 비서구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도 꽤 옵니다.
수업 말미에 각자 연구 주제 정해서 리포트 쓰라고 과제를 내면, 학생들이 먼저 질문해요. “자본주의/신자유주의를 절대로 비판하지 않는 ‘대형’교회들, 성소수자들을 쳐 내는 한국의 ‘주류’ 기독교인들, 추문으로 얼룩진 교역자들과 그들에게 맹종하는 평신도들, 그 역사적 기원과 변화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제가 학생들에게 정답을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비관과 실망으로 수업을 마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미국이든 한국이든,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역동하는 삶의 자리들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반성폭력, 노동, 기후, 환경, 동물권 등 다양한 현장에서 “다른” 혹은 “더 나은” 습속과 공동체를 꿈꾸는 분들, 그들의 다채로움과 희망 그리고 실패와 절망의 순간들에 대해, 제 힘 닿는 대로 공부해서, 학생들에게 알려 주고 싶었어요. 그런 “대안”의 궁싯거림들 한 번이라도 들여다 봐야, 학생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또 다른 상상력 끌어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유: 수업을 비관과 실망으로 마치고 싶지 않아서 청어람의 모임을 찾아와주신다니 기쁜 이야기예요. 부디 도움이 되셨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하고 계신 캠퍼스에서 기독 대학생들의 주일 예배 모임 속 공동 목양자로 섬기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주일 예배 모임의 풍경이 어떨지, 그 풍경 속에서 소영님이 가장 자랑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지가 궁금해요.
소: 저는 사실, 제 앞의 사람들이 애써 이룩한 공동체에 무임승차한 기분이에요. 제가 함께하는 “로고스”라는 모임은, 대학에서 공인 받은 학생 중심 “교회”이고 학기 중에만 주일 오후 12:30에 모여 예배 드리고 교제해요. 대학원생들도 참여하는데, 주로 학부 학생들이 예배를 준비하고, 근처의 한인교회에서 재정지원을 해서, 영어권 설교자를 모셔오죠.
처음 이 모임을 맡으셨던 여자 권사님은 학교와 무관하신 분이었는데, 학생들을 섬기는 마음으로 거의 15년 정도, 매 주 학생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셨어요. 한국 음식을 준비하기도 하셨고, 설교자들을 찾아 무작정 길을 나서기도 하셨죠. 그 분이 은퇴하시면서, 제 배우자가 8년 정도 학생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 때, 교내의 아시아계 기독학생 모임 두 개를 같이 섬겼는데, 본인의 일을 하면서, 한 가정의 아빠 역할도 하면서, 정말 열심히 학생들과 삶을 나눴던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때 공동-지도교수 이면서도 주로 육아에 힘쓰고 저의 직업 관련 일을 하느라, 남편이 학생들과 소모임하고 예배 드릴 때, 옆에서 지켜 보기만 했었어요. 그러다가 남편과 제가 역할을 바꾸고 이제는 제가 주로 학생들 모임에 나가게 된 것이 겨우 3년 째랍니다.
제가 자랑하고 싶은 건, 저희 로고스 모임이 지극히 평범하며, 화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에요. 그냥 강의실에서 모이고, 멋진 사운드 시스템과 조명도 없고, 악기는 기타 혹은 신디사이저 정도? 그나마도 어떨 때는 준비가 잘 안 되어서 삐걱 거릴 때가 있어요. 성찬식도 매우 간소 하구요. 그런데도 이 모임은 수 십 년간 지속되어 왔고, 이 모임을 통해 세례 받는 학생들, 다시 신앙을 회복하는 사람들이 생겨요. 또한, 학생들이 서로 챙겨 주고, 그 중 일부 학생들은 주중에도 기도 모임, 성경 읽기 모임, 독서 및 식사 교제 등으로 4년간 우정을 쌓아가요. 사실, 저는 학생들이 주도하도록 격려하고, 그냥 옆에 있는 것 외에 별로 하는 일이 없답니다.
유: 지극히 평범해서 자랑이 되는 모임이라는 소개가 참 멋진 것 같아요. 소영님은 학교를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계시잖아요. 학교에서 새로운 얼굴들, 새로운 생각들, 새로운 목소리를 만나며 소영님이 하신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SNS에 남겨주신 졸업 예배 the Baccalaureate Service의 장면을 읽으며 더욱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신나고 생기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학생들을 보시며 했던 소영님의 생각을 다시 한번 나눠주세요.
소: 정말 좋은 질문입니다.(와! 감사합니다) 공식적으로는 제가 로고스 모임의 지도 교수이지만, 앞 질문에서 나눴듯이, 학생들이 주도하는 공동체 및 예배 모임에서 제가 많이 배워요. 그런데, 일반 수업을 할 때도 그래요. 학생들의 질문과 관심, 그들의 아픔과 열정이 제 자신을 끊임 없이 변화 시킨다고나 할까요?
사실 다트머스에 처음 왔을 땐, 제가 대학원에서 배웠던 최신 이론 및 연구서들에 기반해서, “동아시아 과학기술의 역사” 같은 수업을 제안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학생들은 오히려 북한에 대해, 한국 및 동아시아의 기독교(종교) 역사에 대해, 인권과 문화에 대해 알고 싶어 하더라구요. "조선의 노예와 반역자들, 1392–1910" 같은 수업에 학생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표하는 것도 의외였고, 최근엔, 퀴어 정체성을 가진 학생들이 자신의 관점을 확보하려고 비교사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인상 깊었어요. 졸업하면 바로 모건 스탠리 같은, 잘 나가는 은행/금융/컨설턴트 회사에 취직해서 높은 연봉을 받는, 미국 자본주의의 첨병이 되는 학생들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그래도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저와 제 동료, 스태프 들이 끊임 없이 노력해요. 원래 역사는 백인 남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과목이거든요. 앞으로는, 비서구, 다인종, 여성 및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역사학과가 되려고 애 쓰고 있답니다. 마이너리티/소수자 일수록 큰 그림, 장기적 관점을 가지고 “나”를 규정해 온 “힘”들을 설명하고 분석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학생들의 삶, 반론, 질문과 호기심이 저로 하여금 끊임없이 긴장하며 변화를 모색하게 합니다.
유: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성장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선생님이라는 직업은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득 소영님이 꿈꾸는 좋은 세상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좋은 세상을 꿈꾸는 학생들과 함께 성장하는 선생님은 어떤 세상을 꿈꾸세요?
소: 평범해요. 모든 사람들이 인종, 계급, 성별, 성적 지향, 나이, 종교, 장애, 출신지역, 언어 등으로 차별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제도적, 문화적으로 보장받는 사회를 꿈꿉니다. 물론 숨탄것들, 자연, 사물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아울러, 모든 사람들이 “역사가”가 되는 세상, 살짝 상상해 본 적 있어요. 일기든 가족사든, 공동체의 기록이든,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돌아보며 나름의 이야기를 만들고 해석을 하고, 좀 긴 글이나 시를 쓰면서, 서로 읽어 주는 세상을 꿈꿉니다. 너무 선생님 같나요? (웃음)
유: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는 서소영의 신앙 소스리스트*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소영님의 신앙여정에 영향을 준 세가지의 소스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는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소영님이 만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소: 제 신앙 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 소스 리스트 중 첫번 째는, 대학교 때 참여 했던 기독노래운동 뜨인돌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설펐고 엘리트주의 요소들도 많았어요. 그 때 만났던 신앙의 선후배, 친구들 중에 지금은 기독교 신앙을 완전히 버렸거나, 소위 교계에서 사라진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도 정말 감사한 건, 그 때의 “우리”가,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모임을 구성했고 또 해체 했다는 거에요. 지도 목사, 간사님은 없었어요. 자연스럽게 리더십 그룹이 형성 되었지만, 그것 마저도 “대표님”은 아니었죠. 그리고 2년마다 한 번씩 전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활동을 계속 이어 갈지 말지, 투표 하자고 했어요. 결국, 4년을 끝으로 흩어졌습니다.
개교회와 교단을 초월해서, 같은 캠퍼스에서 크리스찬으로 만나 서로 연합하고 교제 했는데, 그 중심에 “노래”가 있었어요. “뻔한” 가사, 추상적인 표현들, 미국 CCM 번역의 부자연스러움, 이런 것들을 넘어 서서, 새로운 언어와 곡조를 염원했어요. 그 때 맛 본 것 같아요. 평등하고, 뜨겁고, 재밌었던 공동체. 함께 노래하고 공연하고 토론하고 기도하고 반성하고 도전하고 비판 받고, 말도 안되게 심각했지만, 또 배꼽 빠지게 웃기도 했던, 그런 기독교 공동체의 “맛”이 기억에 남습니다.
둘째는, 제가 캘리포니아의 어느 감리교회에서 만난 여자 권사님이예요. 제가 첫 아이 임신 7개월일 때, 그 분은 20대 초반이었던 첫째 아들을 사고로 잃으셨어요. 그 사고 6주 후가 추수감사절이었는데, 잔인하게도 그 권사님이 대표 기도를 해야 했죠. 울먹이시며, 우리가 모든 상황에서 감사할 순 없지만, 그래도 계속 감사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셨던 것, 기억에 남아요. 그 후에도 그분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제게 보여 주셨어요. 겸손하게, 꾸준히, 인내하며 걸어가는 사람의 아름다운 미소를.
그 권사님과 4년 정도 교회 생활 하면서, 책 모임, 성경공부, 기도 모임, 따로 한 적 없습니다. 그 분은 한국 드라마도, 영화도, 베스트셀러도 좋아하지 않으셔서, 함께 수다를 떨지도 않았어요. 그냥 매주 만났고, 함께 밥 먹었고, 가끔 사는 얘기 한 기억만 있어요. 그 권사님, 혹은 그 분으로 대표되는 교회 내의 숨은 “그녀”들, 제 신앙의 토대입니다.
마지막으로, 2011년 부터 2022년 까지, 제가 등록해서 다닌 한인 교회, 그 텅 비어있음을 말하고 싶습니다. 그 교회는 끊임 없이 사람들이 오고 가는 미국의 작은 대학촌, 한인들이 별로 없는 지역에 자리 잡은 미자립 교회에요. 보수적인 신학을 공부하신 목사님께서 일주일에 한 번 씩 설교하러 5-6 시간 운전 해 오셔서 섬겨 주셨고, 그 외 “한국 교회”의 제도와 문화는 없었습니다.
물론, 15-30명 사이의 교우들이 매주 모였고, 같이 식사했고, 이런 저런 프로그램들도 기획했었지만, 단촐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고, 팬데믹을 거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죠. 없어도 되는 구나…. 좋은 신학교 졸업하고 빛나는 외국 학위도 가지신, 풀타임 남자 목사님. 오직 남자 장로님들로만 구성된 당회. 새벽기도, 수요예배, 금요 철야, 여전도회, 남전도회, 각종 선교회, 여러 명목의 헌금들, 전도 폭발, 말씀 사경회, 다니엘 기도 다 없어도 망하지 않는구나. 오히려, 그 텅 빈 공간에서, 나는 더욱 절실하게 “본질”을 생각하고 살아 남으려 애 쓰게 되는 구나.
제가 속한 이 교회는 아직도 진화 중입니다. 이 교회를 이상화 할 생각도 없고, 제 경험을 일반화 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만, 돌아보며 깨닫는 건, 신앙 공동체가 반드시 오래오래, 강하고 뚜렷하게 존속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극적인 변화와 발전을 내 눈으로 내 세대에 관찰하지 않아도 괜찮겠다, 작아도, 망해도, 없어져도 괜찮겠다 라는 점이에요. 언젠가 제가 다트머스 대학을 떠나게 될 때, 이 교회에 대해, 또, 여기서 제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뭔가 써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지난 27호 <여름의 신간소개>에 온 답장입니다.
- 좋은 책 소개 감사드려요. 특히 <예배자의 기도>가 반갑습니다. 이런 기도책이 더욱 많아지면 좋겠어요. 사고픈 책은 많고 이렇게 못 읽고 쌓여가는 책들만 늘어납니다😅 →기도책을 좋아하시는군요! 반가우실 책을 앞으로도 잘 찾아서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제가 요즘 기독교서적 중에 핫한 5무교회가 온다라는 책을 읽고, 한 동안 깊은 고민이 빠졌어요. 세대가 교체되고 교회의 문화도 점차 바뀌어 가고 있는데, 저는 그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더라구요... 아니면, 변화가 두려워 모른척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기회가 된다면 교회가 앞으로의 시대 속에서 어떤 시선과 태도로 다음 세대를 품어야 할지 고민할 수 있는 책들을 큐레이션해주면 감사하겠습니다^^ →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호는 8월 10일에 박현철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의 신간 소개로 찾아 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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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스스로를 억지로 접고 구부려 좁은 틀에 맞춰야만 지속할 수 있었던 "신앙생활", 없어도 망해도 괜찮았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고, 베풀고, 힘껏 사랑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닐까 생각하는 요즘인데, 실제로 그런 삶을 살고 계신 분의 이야기를 들은 것 같아 기뻤어요.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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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
독특한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해요.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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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제 마음도 차오릅니다. 언젠가 미자립교회에서 함께하셨던 오랜 시간들에 대해서도 나눠주실 날을 기대합니다. 인터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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