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성큼 찾아왔는데, 이 세상은 아직도 전쟁 중입니다. 이 폭력 한 편에서는 사람이 죽고, 또 누군가는 ‘이 때다!’ 테마주를 검색하는 이상한 한 때를 모두가 보내고 있지요. 전쟁만이 답인 것처럼 구는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목회자들의 축복기도가 이목을 끌기도 했고요. 이 세상은 도대체 어디로 굴러가는 것인지 새삼 한숨이 나오는 요즘입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전쟁의 비극과 자본의 탐욕이 교차하는 시대, 여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 어둠을 견디는 사람이 있습니다. 분노가 아닌 기쁨을 동력 삼아 행진하는 나민 님을 만났습니다.

1. 입시 경쟁에서 ‘정상성’ 밖으로
유미(유) :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나민(나) : 안녕하세요. 저는 TMTG(가자로 가는 천 개의 매들린호, Thousand Madleens to Gaza) 한국지부와 플랫폼c라는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여성신학, 민중신학에 관심이 많아서 주변부에서 어슬렁 어슬렁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영상이론과에서 탈식민 영화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유 : ‘영상이론과’라는 전공이 제게는 조금 낯설어요. 전공을 선택하신 이유나 계기가 있으신가요?
나 : 저는 고등학교를 나와서 대학을 진학하지 않고, 지식순환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대안대학(지순협에서 운영하는 대안대학은 ‘공감과 협력의 교육’을 교육의 이념을 바탕으로 경쟁교육을 극복하고자 모인 교육공동체입니다)에 진학을 했어요. 대학을 가지 않고도 사람들이랑 재밌게 공부를 하는 게 좋았고, 또 그 속에서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코로나를 기점으로 그 공동체가 거의 없어지고, 갈 곳을 잃게 되었죠. 어떻게 하나 싶었는데, 지순협에서 수업을 해주시던 교수님이 본인이 있는 학교에 오면, 지순협에서 하던 공부를 이어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다른 건 몰라도, 지순협의 교수님들에게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커서 학교를 준비하게 되었어요. 지순협2.0을 다니는 기분으로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상이론과를 다니고 있어요.
유: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나민님의 청소년기를 엿볼 수 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어요. 고등학생 때 ‘신학자들’이라는 소모임을 하셨다고요. 그 시절에 했던 활동들 이야기를 조금 해주세요.
나: 저희 부모님은 교회에서 만나서 열성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 어린시절 기억 속에는 엄청 강렬하게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장면이 많이 남아있어요. 뛰면서 기도하고, 울면서 기도하고, 그런 장면들이요. 저는 원래 그렇게 기도를 해야 신앙인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걸 흉내내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잘 흉내내면 칭찬을 받으니까, 칭찬을 받으면 기분이 좋으니까, 저도 함께 동화되어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가족들이 모두 신앙생활을 멀리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리고 그 위기를 가족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극복했던 것 같아요.
저는 고등학생이 되어서 신앙에 대한 고민을 더욱 깊게 했어요.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에 학교에서 선배들을 중심으로 여성주의 담론이 많이 퍼졌거든요. 그 당시 ‘계기 수업’ 이라고 학생들이 준비해서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그때 ‘페미니즘’을 주제로 선배들이 계기 수업을 열어줬어요. 다른 학생이 ‘그런데 왜 나는 여성이라고 자각해야 하지?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안되나? 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수업을 맡았던 한 선배가 “페미니즘은 사회에서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진짜 많은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이 제게는 어렴풋이 품고 있었던 신에 대한 생각이랑 착 만났어요.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친구들이 모이면서 자연스럽게 모임이 생겼어요. 그 모임 이름이 ‘신학자들’이였어요. 교회를 오랫동안 다녔지만 교회의 언어, 신앙의 언어에서 고민이 있던 친구들이 학교나 책에서 배운 논의들, 예컨대 비거니즘을 공부하며서 ‘여기가 내 신앙의 언어구나’, 여성주의를 공부하면서 ‘여기가 내 신앙의 언어구나’를 찾고 나누고 했던 거죠.

유: ‘신학자들’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나민님과 어떻게 이어져있는지 궁금해요.
나: 고등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저에게 큰 영향을 줬어요. 만약에 그 공간에서 그 시기에 ‘신학자들’을 하지 않았더라면, 저는 이렇게까지 신앙에 대해서 오래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살면서 너무 버리기 쉬운게 신앙같거든요. 특히나 저는 저에게 신앙이 있다고 인정하는 게 조금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어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는 아주 열성적인 신앙고백들을 어렸을 때부터 많이 봤거든요. 언어화되지 않는 신앙을 표현하는 방식이 멋이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언어화 되지 않고 그래서 서로 나눌 수 없는 고백들이라면 그게 꼭 신앙일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신학자들’ 모임에서는 제가 익히 알고있던 신앙의 고백들과는 다른 고백도 가능하다는 걸 배웠어요. 그리고 ‘신앙이 내 삶에 굉장히 중요한 축이구나‘를 인정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유: 제도 밖에서 교육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그 시간의 경험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큰 영향을 남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렴풋 느끼기에 나민님에게도 대안학교였던 고등학교에서의 경험이 나민님을 이루는 데 큰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더 질문하고 싶었어요.
나: 맞아요 제도 안 학교였더라면, 쉽게 경험하지 못 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다들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었는데 입시와 관련된 공부를 하지 않고 백소영 교수님 책 읽으면서 모임하고 그랬던 거니까요.
저는 입시에 혈안이 된 사립중학교를 다녔어요. 시험을 봐서 들어가는 학교였는데, 학교에 들어가서도 시험의 연속이었어요. 1반부터 12반까지 성적으로 학생을 분류하는 곳이었고, ‘서울대 안 가면 인생 망한다’라는 생각이 팽배한 학교였거든요. 선생님들도 8반에서 12반까지의 학생들을 노골적으로 무시하는 곳이었어요. 저는 1반이었는데 10반인 친구랑 되게 친했거든요. 친구랑 놀고 있으면 선생님들이 오셔서 제 친구들 툭툭 건드려요. 친구한테 “얘 시간 뺏지마”하고 말하는 거예요. 그게 너무 끔찍했어요. 그런 말도 싫고, 우리 관계가 그렇게 되는 것도 싫고, 이 학교에 있다보면 자연스럽게 나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될까 싫고 그랬던 것 같아요. 싫으면서도 ‘나는 계속 1반에 있어야 하는데’하는 부담도 있었고요. 한번은 제가 수학시험을 망했는데 그때 과호흡이 엄청 심하게 왔어요. 그 순간 깨달았던 것 같아요. ‘나는 진짜 이렇게 살 자신이 없다’
이우학교 면접이랑 외국어고등학교 면접이 똑같은 날 있었는데, 그 때 이우학교 면접을 간 거죠. 제가 대안학교를 간다고 하니까 선생님이 친구들이 다 있는 앞에서 “대안학교는 사회 부적응자들이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했어요. ‘정말, 끝까지 싫다’라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정상성을 피하자!’가 인생의 모토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2. 낙담하지만 계속 웃는 사람들
유: 대안 교육의 순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네요(웃음) 어떤 시간을 통해서 나민님이 나민스러움을 만들어갔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어서 지금 나민님이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의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나: 신앙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여러가지 사건들이 만나서 생겨난 것처럼 평화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한 가지 사건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지순협에서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 중에 해초도 있었죠. 해초가 그때 한참 배를 공부하고 있었어요. 강정에서 배를 수리하는 걸 배우기도 하고, 저는 그걸 구경했죠. 그때 해초가 “평화 운동하는 사람들의 마음에는 가자가 있다”는 말을 얼핏 해줬는데, 그때부터 조금 궁금했었던 것 같아요. ‘100년이 넘는 점령 동안에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자기 문화를 지키는 힘, 그 영혼이 이어지는 힘은 무엇일까’ 그런 것들이 궁금해졌어요. 전공이 전공이니까 자연스럽게 팔레스타인 영화제를 학내에서 준비하게 되었고,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자막을 만들었거든요. 자막을 만들기 위해서 아주 천천히 정말 느리게 영화를 봤어요. 그런데 그 영화가 무척 좋았어요.
<soraida, A women of palestine>이라는 영화였는데, 여성들이 무한히 수다를 떠는 이야기였어요. 그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영화 속 여성들이 폭격이 난무하는 이야기, 점령군의 총을 맞지 않았음을 자랑하는 이야기를 하다가 중간 중간에 민트차를 끓여요. 답답하니까 “차나 마시자!” 하고요. 그 장면이 참 좋았어요. 낙담하지만 계속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계속 팔레스타인이 제 마음 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결정적이었던 계기는 도쿄에서 포럼을 참석했는데 마침 팔레스타인 집회도 열린 거예요. 제가 일본어를 아무 것도 모르는데 2시간동안 행진하다보니까 일본어로 구호를 외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아, 행진은 역시 참 좋은 거구나(웃음) 행진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모양을 바꾸는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가서도 팔레스타인 운동을 계속 해야겠다’ 했던 것 같아요.

유: 운동을 하면서 나민님의 마음을 사로잡은 한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 지난 주일에 강남향린교회에 갔는데 (유: 아니, 왜 이래) 그때 김유미 전도사라는 분이 (유: 왜 그러는 거야 진짜) 설교에서 엄청 느리게 그런데 되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저는 긴장하면 말을 빨리 하는 편이어서 이렇게 천천히 말을 하는 사람들을 멋지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유미님 말에 푹 빠져서 듣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들 너무 행복하게 듣고 있고, 어느 순간에는 함께 웃었단 말이죠. 그게 진짜 너무 좋은 거예요. 그냥 모두가 그 순간에 유미님의 말 안으로 다같이 들어갔고, 다같이 웃었고, 다같이 행복했단 말이죠. 그 이야기 안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어요.
누군가 마이크를 잡고 말을 하면, 그건 그 사람의 말이니까 거기에 내가 없는 건 자연스럽잖아요. 그런데 어떤 순간에는 거기에서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집회 현장에서도 그런 걸 느끼는데, ‘어머 저 이야기, 내 이야기네, 우리 이야기네,’하면서 들뜨고 신나는 거죠. 그런게 가능하다는 점에서 저는 예배가 집회랑 조금 비슷한 것 같아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르는 익명의 사람들이랑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는데, 듣다 보니까 ‘와! 내가 저 말 안에 있어! 와! 그런데 너도 저 말 안에 있어! 와 신난다! 우리 기분 좋다! 또는 저 말이 왜 슬픈 말인지 우리가 안다.’하는 거요. 그런 시간을 보내고 나면, 엄청 단단해지거든요. 지난 일요일도 그랬어요.
3. 분노 대신 기쁨으로 맺는 ‘불가능한 우정'
유: 어떻게 실을지 난감하네요.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 실어 보겠어요. 저는 뻔뻔하니까 (웃음) 나민님이 저를 앞에 두고 저를 놀릴 겸, 띄워 줄 겸, 겸사 겸사 하신 말씀이시지만 사실 어떤 이야기인지 알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다른데, 너무 달라서 ‘내가 너를 알아’라는 말은 전혀 가능하지 않은데 아주 이상한 순간들이 잠깐 잠깐 우리를 찾아 올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아는지도 몰라. 내가 너를, 네가 나를, 또 우리가 우리를, 아는 지도 모르겠어’하는 순간들이요. 예배에도, 집회에도, 그런 순간들은 잘 숨어 있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마찬가지이고요.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말이예요. 운동을 하면서 나민님은 뭘 배웠어요?
나 : 친구가 해 준 이야기인데요. 운동을 왜 하느냐고 했을 때, 사람들은 보통 슬프거나 화가나서 운동을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슬픔도 분노도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슬픔이나 분노는 너무 커다래서 보통 저는 그런 감정 앞에서 도망가고 싶거든요.
저는 기뻐서 운동을 하는 사람같아요. 기쁜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감격스러운 순간들이 하나 둘 쌓여서 운동을 해요. 아까 나눈 이야기랑 비슷해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만나서 생길 리 없는 우정이 생기고 그런 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기적이 늘 궁금했거든요. 오병이어의 기적 같은거요. 집회 현장에서 사람들이 모여 불가능한 우정을 맺어버리는 게 늘 기적같아요. 이런 기적이라면 계속 보고 싶어요. 기적은 정말 멋지군.
이런 게 주식보다 더 재밌어요. 그리고 주식보다 원하는 걸 더 빨리 얻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같이 모여서 무언가를 말하고, 또 말하다보면 현실의 모양이 우리의 모양을 따라 변하고. 그럼 또 세계가 변하는 거 아니겠어요. 기적이죠. 이래서 사람들이 간증하나?
자본주의라고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슬픈 것도 너무 잘 알고, 화나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우울한 것도 너무너무 잘 아는 것 같아요. 그런데 기쁜 건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기쁘면 이상하고, 기쁘면 의심하고, 그런데 저는 적어도 기쁨은 의심하고 싶지 않아요. 의심하지 않고, 주눅들지 않고 기뻐하면서 살고 싶은데 운동하면서는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어요.
유: 주식보다 더 확실한 기쁨을 운동에서 배웠다는 말씀이군요(웃음) 좋네요. 나민님이 운동에서 다른 것이 아니라 기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고 해서 더 좋은 것 같아요. 덩달아 저도 기분이 좋아지는 답이고, 또 왜인지 엄청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예요.
토드 파의 그림책 <평화책>은 ‘평화는’으로 시작하는 문장들이 나열된 그림책이예요. 그림책 속 평화는 ‘신발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신발을 주는 것’이고, ’낮잠을 자는 것’이며 ‘친구를 안아주는 것’인데요. 나민님에게 평화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나: 저에게 평화는 오른쪽에는 없는 것 같아요. (유: 그게 또 무슨 말이야) 최근에 친구랑 나눴던 이야기인데, 제가 믿는 신은 오른쪽 신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우리가 흔히들 ‘전쟁의 반대는 평화, 싸움의 반대는 평화’ 이렇게들 생각하는데, 제 생각에는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거든요. 평화는 고요하지도 않고 그보다는 시끄러운 것 같거든요. 행진할 때를 떠올려보세요. 얼마나 시끄럽고, 덥고, 습하고, 깃발은 무겁고, 경찰은 짜증나고, 아무튼 간에 고요하고는 굉장히 멀거든요.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세상의 질서나 안정, 그런 것들이 옳은 것이라면 평화는 오른쪽보다는 왼쪽에 있는 게 아닐까, 꼭 왼쪽도 아니어도 좋죠. 어쨌든 간에 어긋나고 뒤틀리고 그릇된 것에 있는 게 평화인 것 같아요. 틀리고, 좀 뭉개지고, 오른쪽이 될 수 없거나 오른쪽에 있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튕겨져 나왔거나 그 모든 것이 평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4. “우리 만나서 놀아요”
유: 오늘날의 상황에서 교회가 또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을 보시는 독자 분들을 향해 나민님이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나: 우리 만나서 놀아요. 놀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놀다 보면, 사람들이 늘어나잖아요. 평소에 잘 놀지 않던 이 사람이 저 사람이랑 놀다가 만나게 되고, 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가 하지 않던 놀이들을 하게 되고, 또 새로운 놀이의 방법들을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가 운동이 커지게 되는 것 같거든요. 모든 건 노는 일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그레타 툰베리 이야기도 자주 하게 되는데 그의 운동은 학교 벽에 낙서를 하면서부터 시작 됐대요. 그 낙서에 누군가 응답을 하고, 응답을 하고 그러다가 같이 만나서 밥을 먹고, 그러다가 모임이 생겨나고, 일상의 공동체와 작은 일상의 놀이가 거대한 운동의 시작이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같이 노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유: 나민님에게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나: 저의 꿈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멋진 혁명 영화를 찍어보고 싶고요. 혁명 영화라고 하면, 그 영화가 끝나고 나서 다같이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할 수 있는 영화예요. 야외 영화제는 집회랑도 아주 닮아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이 시대의 이야기를 잘 찾아서 그 이야기랑 연결이 되는 영화를 언젠가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는 사람들이랑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망원에 어딘가 조금 커다란 교회를 인수해서 그 공간을 사회 운동의 거점으로 삼고 싶어요. 그러면 재밌지 않을까요? (유: 왜 교회야?) 교회가 크니까요.
유: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는 나민님의 신앙 소스리스트*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나민님의 신앙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의 소스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는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1) 요나단의 목소리 1-3
정해나 지음, 놀 펴냄,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너무너무 유명해서, 저를 포함한 많은 분들이 이미 마음에 품고 있는 작품일 것 같아요. 저는 이 만화를 처음 보고 너무 좋아서 한참 멍하게 앉아 있다가 에끌툰 후원회원에 가입했던 기억이 나요.
(2) 친하게 지내자

‘친하게 지내자’ 영일 작가님의 첫 만화인데, 진짜 최고로 멋진 만화예요. 이 만화에 ‘희지’라는 인물의 전사를 다룬 한 에피소드가 나와요. 고등학교 때 처음 읽고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나요. 보수적인 사이비 교회에서 퀴어 여성으로 정체화하는 희지라는 인물이, 그 공간과 무한히 불화하면서도 자신의 신앙을 그 사람들의 언어에 내어주지 않는 장면을 오래오래 생각했어요. 제가 진짜 좋아하는 대사는 “내가 믿는 주님은 그딴 식으로 안 하신다. 돌로 패는 게 아니라 울면서 끌어안는 게 그분의 방식이니까.” 를 포함한 희지의 모든 대사들입니다…
(3) <재신론>, 리처드 카니
리처드 카니 지음, 김동규 옮김, 갈무리 펴냄, 384쪽 [도서정보보기]

이 책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서문에 깜짝 놀라서 몇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던 기억이 나요. ‘다시 시작되는 잃어버린 것’. 선형적인 시간성을 거스르는 감각이 곧 신앙의 감각이라면, 거기서부터 자본화된 삶의 양식을 거부할 수 있는 방법, 다시 삶을 말할 수 있는 방법이 시작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문단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컨대, 재신론적 신앙은 다시 발견되는 잃어버린 어떤 것에 대한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을 다시 찾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것은 이전의 것을 이후에, 일찍이 있었던 것을 나중에 되찾는 일-선형적인 크로노스적 시간의 순차성을 재배치하는 재생-과 관련합니다. 갑작스러운 빛 비침. 은총이 순간을 가로지르는 에피파니의 순간(찰나의 일별 내지 지금시간) 그것은 접두어 ‘재’가 포착하고자 하는 미래-로서의-과거의 신비입니다. 시간 안에서 시간을 벗어나는 이 시간은 복음서가 ‘남겨진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나민님의 인터뷰를 읽으며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주식보다 즐거운 기쁨이 전해지셨을까요. 소감을 나누어 주신다면 나민님도 저희도 함께 기쁘게 읽을게요.
그리고 지난 45호였던 '이 책 한번 잡솨봐 - 2026년 2월의 신간 소개'에 주신 답장이에요.
- 이번 뉴스레터는 무언가 레터 자체가 주는 '글맛'이 느껴진 거 같아요. (이새해 시인의 영향인가..) 어릴 적 예화(?)로 많이 들었던 코리 텐 붐의 이야기가 다시 새롭게 다가오고 추천해주신 <철저히, 친밀하게, 취약하게 사랑하다>는 2권 주문했습니다. 생각나는 친구가 있어서.. 매번 꾸준히 활동해주시는 그 정성에 감사드립니다. → 소개드린 책을 선물로 구입하셨다니 마음이 웅장해지네요. 다만... 박현철 개인의 글이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다음 호는 또 한 분의 특별한 분이 큐레이션 하신 책을 들고 성실하게 돌아오겠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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