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희님을 처음 만난 곳은 농성장이었습니다. 저는 농성장을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는 연대인이었는데 농성장에 가방을 놓고 가버렸죠. 농성장과 함께 그의 가방을 지켰던 기억이 납니다. 가방을 들어 농성장 안쪽 구석으로 옮기려는데 세상에 무슨 가방이 그렇게나 무거운지 벽돌을 이고 다니나 했어요. 나중에 그가 보여준 그의 가방 속에는 두꺼운 책 두 권과 다이어리가 있었습니다. 읽고 쓰고 부지런히 다니는 사람, 그런데 이제- 칠칠치 못함을 곁들인, 그것이 만희님의 첫인상이었어요. (웃음) 그의 칠칠치 못한 면에도 불구하고 저는 만희님을 신뢰합니다. 읽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 사람, 자신이 뱉어낸 글에 무게를 알고, 그 짐을 버리지 않고 이고 지는 사람이니까요. (물론 가끔 두고 올 수는 있는데 찾으러도 옵니다) 언제나 그렇듯 이렇게나 멋진 사람을 여러분에게 소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유미(유): 만희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만희(만): 박만희입니다. 목사고요. 또 자영업자예요. 제 생각에 저는 별로 재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매사 좀 진지하죠. (그런 저한테 어쩌다 청어람 인터뷰가 왔을까요?) 가끔 유미님처럼 톡톡 튀면서도 재밌는, 또 재능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는데, 그쪽은 이제 탐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설프게 탐내다간 우스워질 것 같아서요. 그냥 잘 하는 거 하려고 합니다. 진지한거요. 좀 진득한 편이긴 합니다. 번뜩이는 재치 같은 건 없지만, 모르면 두 번 세 번 읽고, 글로 써봅니다. 읽은 다음 글로 쓰고 자꾸 말해서 이해하는 쪽이랄까요. 그렇게 했더니, ‘어, 너 잘 읽는데? 좀 쓰는데?’ 라는 소리 들을 때 슬쩍 뿌듯하기도 했죠. 물론 아주 가끔 듣습니다. 공부 좋아합니다. 철학, 여성주의, 문학, 신학 이렇게를 주로 읽는데, 느릿하게 읽고 보고 쓰는 게 지금은 제일 좋아요. 딱 한량이죠.
그런데, 요즘엔 진득하기마저도 어려워서 좀 힘듭니다. 시간이 너무 없거든요. 부모님과 작은 감자탕집을 운영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생계형입니다. 맛있습니다. 대박 맛집은 아니지만, 100점 중 79점 정도는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 그리고 [함께걷는교회]에서 시작부터 함께하고 있습니다. 벌써 11년이 되어가는데요. 이중직이나 텐트메이커라는 그럴듯한 자의식은 없습니다. 요즘엔 목사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좀 어려워하는 중이에요. 둘 다 잘 못하는 것 같고, 시간이 없어서요. 아, 혼자 삽니다. 개인적으로 집이 만족스러운데 초대할 사람이 없어서 아쉬워요. 와보실래요?
유: 초대는 언제든지 환영이죠. 저는 만희님도 좋아하지만 만희님네 감자탕집을 좋아합니다.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저를 위해 채식감자탕을 만들어주셨더랬어요. 무척 맛있었습니다. 대박 맛집 맞아요. 여러분도 선릉역 인근에 있는 남도감자탕을 한번 들러보세요. 틈을 보고 왔다고 하시면 제가 면이 조금 살겠습니다.
목사와 자영업자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고 말씀하셨어요. 잘은 모르지만 확실히 쉴 틈이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보내시는 하루일과 중에 만희님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궁금해요.
만: 그럴듯하게 답하고 싶어서 잠깐 생각해봤는데요. 식당 브레이크 타임인 것 같아요. 오후 3-6시까지 집에서 와서 쉬거든요. 보통 책 읽습니다. 디저트랑 커피 준비해 놓고, 화면 있는 음악 튼 다음, 최근 마련한 조명 밑에서 책 펴는 딱 그 순간을 좋아합니다.
나도 모르게 ‘좋다, 좋다’를 연신 내뱉을 때는 퇴근 후 샤워할 때예요. 그게 정말 좋아서 그런건지, 아저씨라 그런건지 저 스스로도 좀 궁금합니다.
유: ‘좋다, 좋다’에 멜로디가 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혼잣말을 노래로 하는 때가 중년이라고 했어요. (웃음) 바쁜 한 때를 보내다보면, 나를 위한 시간부터 줄이게 되는 것 같아요. 만희님이 만희님을 위해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신가요
만: 어려운 질문이에요. 생각보다 그런 시간이 없어서요. (유: 상상해보세요. 상상! 천국 소망! 그런 거 모릅니까!) ㅋㅋ 상상해봤는데요. 걷기 좋은데 가서 이만보쯤 걷는거요. 둘레길도 좋고, 수목원도 좋고, 해안가도 좋아요. 걷다가 아무데나 들러 밥 먹고, 또 걷다가 아무데나 들러 책읽는거요. 그리고 그 날 마지막 밤엔 좋은 영화요. 지금은 일본 영화가 좋겠어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영화요. 이 정도면 만족합니다.
유: 러닝타임이 긴 영화를 즐기시겠다는 이야기처럼도 들리네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해피아워는 5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을 자랑합니다. 숏폼의 시대에 엄청난 영화이죠?) 저도 좋아하는 감독이예요. 하루 하루가 예상하지 못하는 변수로 가득하면 조금은 잔잔한 이야기로 마음을 다독이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때마다 하마구치의 영화가 떠오르곤 하죠. 만희님도 그런 이유이지 않을까 넘겨짚어 봅니다.언젠가 만희님이 “내가 가장 많이 배우고, 나를 바꾼 건, 거리에서 누군가와 함께 드리는 예배”였다고 이야기하신 게 기억나요.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인가요? 거리 예배에서 만희님이 배운 것을 뭐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요?
만: 유미님과 맥주를 마시며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네요. 여전히 유효합니다. 유효한데 그때 마음을 까먹은 것 같아 조금 슬프네요. 거리 예배에서 배운 것이라… 찐 신앙을 배웠죠. 성경을 다시 배웠다고 생각해요. 길바닥에 앉아, 때마다 어떤 무력감을 마주하니 예수의 말이 다 다르게 들렸어요. 종말도, 구원도, 사랑도요. 예전 파인텍 굴뚝농성 때 읽었던 본문 중 정말 사무치는 말이 있는데,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는 말이에요. 그 말 생각하면, 정말 예수는 신이구나 싶어요. 그건 얼마나 큰 실패를, 날마다 마주하며 내뱉은 고백일까요.

유: 맞아요. 그날 나누었던 이야기 같아요.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자리라는 것이 참 신기하죠.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이 살갗에 와닿지 않는 자리와 순간도 많을 텐데- 높게 솟은 굴뚝에 서있어 얼굴도 채 가늠이 되지 않는 노동자를 바라보며 드리는 예배에서는 온 몸으로 그 말이 다가오는 것 같아요. 추워서 그런가 (웃음) 거리예배는 확실히 추우니까요. 이번에는 만희님이 서 있는 오늘의 자리에 관한 질문이에요.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에서 펴낸 사순절 묵상집의 편집을 맡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소개해주세요.
만: 2년 전 성탄절기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이예요. 큐앤에이는 국내에 퀴어와 앨라이들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묵상집이 없다는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었어요. 동시에 그건, 묵상집 역시 정상성과 주류의 시선으로만 되풀이해서 읽어왔다는 문제의식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이 맨날 비슷하잖아요. 그렇다는 건 우리가 이제까지 되풀이 했던 묵상이 다양한 소수자들을 염두에두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들을 기억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다시 말해, 묵상집이 기억 그 자체이기를 바라기도 했습니다. 큐앤에이 묵상집에 담긴 이야기가 이제야 쓰여진 새롭고 낯선 읽기이지만, 사실은 그 전부터 있었던 이야기의 기억이기를 바라는 것이요. 퀴어들의 삶이 이제껏 없던 삶이 아니니까요. 그래서 일반의 교회가 주목하지 않는 성서 속 인물들을 주목하거나(예를 들면 롯의 아내의 시선), 이미 주목해오던 이야기도 새로운 시선으로 읽어볼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어쩌면 그것 자체가 퀴어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한편, 새로운 방식으로 읽고 있는 이들이 이미 많거든요. 새롭지만 여전히 성서를 사랑하고 읽으려 애쓰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 꽤 많이 있었고, 그런 그들의 이해와 시선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유: 얼마 전에 읽은 <장애학의 도전>이라는 책에서 ‘시좌’라는 말을 배웠어요. 보는 자리라는 말인데요. 어떤 세계의 중심에 자리 잡은 이들이 볼 수 있는 것과 변방/경계에 서 있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것의 차이를 시좌라는 용어로 담아낼 수 있다는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큐앤에이의 묵상집이 한국교회의 시야를 넓혀주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해요. 만희님에게 그 과정이 어떤 의미였을지, 또 그 속에서 무엇을 배우셨는지 궁금해요.
만: 우선 저는 큐앤에이 운영위원회이예요. 그런데 현재 제가 큐앤에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현재로는 글에 관한 것 밖에 없어서, 제안이 왔을 때 거절할 수 없었던 게 크고요. 동시에 어떤 마음이냐고 하면, ‘조심스러움’과 ‘부디’랄까요? 쓰여진 글들이, 묵상집을 읽을 이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구라나 판타지로써가 아니라, 하나님이 진짜로 읽는 당신들 편이다라는 마음이 닿기를 바라고요.
사실 여러모로 한계가 많은 묵상집입니다. 우선 묵상집의 특성상 보편적으로 읽히기는 힘들 것 같고, 여러 필진들이 함께 쓴 묵상집이다보니 글의 흐름이나 일관성 부분에서 다소 아쉽죠. 또 짧은 글이다보니 주요한 정보나 생각의 흐름이 많이 생략되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글을 받아 읽으며 필진들이 쓴 글들에게서 저 역시 생각하지 못했던 신선한 시선과 짙은 마음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고, 그게 제가 편집날짜에 쫓기면서도 문득 만났던 좋은 순간이었습니다. 엄청 뛰어난 글들이 아닐 수는 있지만, 글을 따라가다보면 마음이 깃든 문장을 어느 글에서나 만날 수 있습니다. 부디 독자분들께서 천천히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과정을 통해 배운 것은, 역시 이런 건 선뜻 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다? 마감일을 믿지 말자?
유: 편집자를 속 썩였던 필진으로서 더 할 말이 없고만요. 그래도 펑크는 내지 않았으니 훌륭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만희님은 묵상집이 누구에게 닿기를 바라세요? 어떤 사람이 어느 순간에 읽으면 좋을까요?
만: 사순절에 무엇을 묵상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여느 교회들요. 어느 공동체에서 읽고 성경을 어떻게 이렇게 읽을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하지만 쉽지 않겠죠? 퀴어들과 엘라이들뿐 아니라, 기존 묵상집을 읽기 힘든 분들, 예수뿐만 아니라 예수가 만났던 사람들이 궁금한 분들이 읽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낯선 읽기와 우리가 외면했던 이들의 이야기가 들어있으니까요.

유: 제가 아는 만희님은 호기심이 많은 사람같아요. 그 호기심이 만희님을 현장으로 끌고 사부작 사부작 무언가를 계속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만희님의 호기심이 만희님을 또 어디로 이끌까 그런 것이 궁금해집니다. 앞으로 또 해보고 싶은 일이 있으신가요.
만: 제가 호기심이 많을까요? 무엇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알고 싶은 게 많은 것 같긴 해요. 근데 그게 제가 처분하지 못한 여러 남성성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합니다. 정보욕 혹은 지식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요. 잘 모르는 빈 칸을 채워넣어 세상은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고 싶은 욕구요. 한편으로는, 배움을 끝내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배움이 가장 즐겁고, 또 그게 저를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고, 낫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리스도인을 제자로, 그러니까 배우는 자로 부르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요. 저는 가르침은 없고, 오직 배움만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그래서 뭘 하고 싶다는 거냐? 고 하시면, 지금은 공부요. 학위를 위한 공부 말고, 저를 위한 공부와 글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수다떨고 싶습니다. 앞에서도 우는 소리를 했지만, 당장은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누구든 그럴까요?)
아, 기회가 된다면 지금하고 있는 식당을 조금 더 정직하게, 더 재밌게 운영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현재는 부모님과 같이해서 마음껏 하기가 좀 어렵지만, 언젠가는 제멋대로 해보고 싶어요.
유: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는 만희님의 신앙 소스리스트*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만희님의 신앙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의 소스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는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도 있고, 만희님이 만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만: 첫 번째는 10년 전 제가 한 설교입니다. 교인 중 한 사람이 제 설교를 다 듣고 난 후, 뭔소리인지 모르겠다고 말해주었어요. 철학에 발을 들여 뜬구름을 한 참 잡던 때였는데, 크게 한 대 맞은 기분이었지요. 엄청 창피했고요. 그 이후로 글쓰기 수업에 등록해서,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때 이후로 지금도 글쓰기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난 연애입니다. 연애했던 친구에게 영향을 받아 페미니즘과 문학을 접하게 되었어요. 글쓰기와 더불어, 제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시간이었습니다. 모두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 저게는 너무 큰 의미가 되어버려서요.
마지막으로 길거리 현장 예배예요. 신학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진행하는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 읽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부당해고로 투쟁 중인 현장을 방문하는 형태였는데, 그 프로그램 후에 투쟁 기도회에 참여하게 됐죠. 사람과 관심이 가장 적은 투쟁현장에 참여하자고 마음 먹었었습니다. 당시엔 그 투쟁기도회가 저에게 수요예배이고 금요철야였습니다. 이 순간들이 저한테는 에큐메니칼 예배의 첫 시작이었네요.
지난 42호였던 '이 책 한번 잡솨봐 - 2026년 1월의 신간 소개'에는 아무도 답장을 주지 않으셨어요. 아마 책 소개에 마음이 동한 탓에 바로 책을 구매하느라 그러셨겠죠! 만희님의 인터뷰를 보며 혼자 간직하고 싶은 여러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함께 나눌고픈 소감이 있으시다면 아래의 버튼을 눌러 남겨주세요.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