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18호 : 내가 없는 청어람, 잘 놀아라 🐶

청어람의 물 양동이를 옮기던 수경 님이 남긴 말

2025.03.01 | 조회 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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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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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안녕하세요! 김유미입니다. 지난 16호에서는 인터뷰이로 만나뵙고, 이번호부터는 틈의 인터뷰어로 만나 뵙게 되었네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누구를 제일 먼저 만나볼까, 고민이 많았는데요. 여러 얼굴들 중에서 제가 고른 얼굴은 오수경이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까지 뽕을 뽑겠다는 저의 의지가 느껴지시나요? (히히)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시는 줄 알고, 그 마음을 달래드리고 싶었어요. 

수경 님이 청어람에서 보낸 시간이 13년 2개월이라고 해요. 그 긴 시간을 틈을 통해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테고, 또 앞으로의 시간을 말하기에도 부족하겠죠. 그렇지만 어디에서도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렇게나마 살짝쿵 들려드릴 수 있지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수경님의 첫 출근부터 마지막 출근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이야기까지 들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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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유)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수경(수) : 안녕하세요. 저는 오수경입니다. 첫 질문부터 막히네요. 그간 이 질문을 인터뷰이들에게 쉽게 던졌지만 막상 대답을 하려니 이 질문이 가장 어렵네요. 저는 하나이지만 여러 개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를 오래 알아온 친구들에게는 ‘바쁜 년’ 혹은 ‘말이 느리고 고집이 쎈 시사요정’이고요. 청어람을 통해 저를 보아온 이들에게는 청어람 간사 혹은 대표겠죠. 보수적 신앙인이면서도 페미니스트에 엘라이라서 진보적 신앙인으로 읽히기도 하겠죠. 종교 영역 바깥에서 저를 만난 분들께는 작가님 혹은 평론가님으로 불리기도 해요. 또 누군가는 페이스북을 조금 많이 하며 쓸데없이 글을 길게 쓰는 사람일 테고, 드라마 덕후이기도 할 거예요. 이쯤 되면 어느 ‘자기’가 가장 마음에 드냐는 질문이 생기겠죠? 그래서 생각해 봤는데요. 예전에 <복음과상황>에 연재할 때 사용한 자기소개가 가장 마음에 들어요. "낮에는 청어람ARMC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드라마를 보거나 글을 쓴다. 세상의 수많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이웃들의 희로애락에 참견하고 싶은 오지라퍼다." 이게 딱 저예요. 이렇게 대답하고 보니, 유미 님은 저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하고 계신지 궁금해지네요.

유 : 저에게 수경 님은 단체 사진 속 무채색 사이에 있는 보라색이에요. SNS를 통해 올라오는 행사 단체사진 속 수경님을 보고 몇 번 웃었던 기억이 있거든요. ‘전체적인 채도를 수경님이 높여주시고 계시네!’ 하고요. 옷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고요. 어제 했던 말을 오늘도 하고, 오늘 했던 말을 내일도 할 것 같은 공간에서 수경 님이 던져주는 따뜻하고 까칠한 이야기들이 그 공간을 다른 색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 같아요. 오수경 없는 청어람 하면, 벌써부터 칙칙한 사무실 색이 그려지는데요? 오수경을 기억하는 마음으로 3월 한달간은 제가 보라색 옷을 입고 출근하도록 할게요. 청어람 첫 출근길이 기억에 나시나요? 처음 출근하면서 가졌던 기대와 설렘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 궁금해요.

수 : 제 치명적 약점 중 하나가 기억력이 나쁘다는 거예요. 그래서 ‘첫’ 출근은 도무지 기억나지 않더라고요. 다만 그 무렵 출근길 풍경은 기억에 남아요. 당시 청어람 사무실이 명동에 있었는데요. 명동역 3번 출구로 나오면 남산 둘레길로 가는 골목이 나와요. 그 골목 입구에 ‘퍼시픽 호텔’이라는 오래된 호텔이 있는데요. 그 앞 갈림길에서 왼쪽 골목으로 쭉 걸어 올라가다 보면 둘둘치킨, 뚱뚱이 족발, 털보네, 전광수 커피 하우스를 지나게 되고 왼쪽에 파란색 철골 건물이 나와요. 청어람은 그 건물 6층에 있었어요. 그 골목길이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 앞에 배달된 식재료 박스들이 놓여있고, 우리에게는 흔하지만 관광객에게는 유명한 ‘이삭 토스트’ 앞에서 사진 찍는 관광객들이 있고, 학교 가는 숭의여대 학생들과 같은 길을 걷기도 했어요. 그 길에는 참새가 유난히 많았어요. 참새들이 통통통 튀어가며 짹짹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골목길을 걸어 출근하던 기억이 나네요. 출근길이 좋게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 시절 제가 재미있게 지냈다는 뜻이겠죠? 물론 엘베 없는 6층이라 막판에 욕이 나왔지만. 

유 : 출근길을 좋게 기억하고 계시다니 첫 출근날도 분명 기쁜 발걸음이었을 것 같아요. 방금 출근길을 따라서 거리뷰를 찾아봤어요. 퍼시픽 호텔에서부터 왼쪽 골목으로 둘둘치킨, 뚱뚱이 족발까지는 찾았는데 털보네를 못찾고 인터넷 세상에서 뱅글뱅글 돌았네요. 말씀해주신 출근길 장면이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장백기의 출근길 장면을 닮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수경님은 장백기처럼 하루를 여는 기쁨을 아는 신입이었나봐요. 지금의 저로서는 신입시절의 오수경이 잘 상상가지 않아요, 신입시절에 저질렀던 실수 한가지만 소개해주시면, 청어람의 신입들이 큰 위안을 얻을 것 같아요.

수 : 이 질문은 기억력이 나빠서이기보다는, 너무 많아서 (깊은 한숨) 오히려 잘 안 떠오르는데요. 한 가지만 소개해 달라고 해서 감사합니다. ^^ 청어람은 강좌나 행사가 매우 많았는데 참가자들에게 안내 문자나 메일을 보내는 게 저의 일이기도 했어요. 어느 날인가. 행사를 하고 있는데 어떤 분이 서성이시더라고요. 어떻게 오셨냐고 물으니 행사 이름을 대며 그 행사 장소가 여기 아니냐고 물어보셨어요. 알아보니 제가 글쎄 이틀 뒤 행사 요일을 잘못 입력해서 발송했던 것이에요. 그분은 그걸 보고 부랴부랴 오신 거였고요. 죄송하다고 거듭 말씀드렸는데 화도 안 내고 허탈한 표정으로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시던 그 뒷모습이 꽤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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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등줄기가 서늘해지셨겠어요. 화를 내시는 것보다도 허탈하신 표정이 더 무서웠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시절의 실수담을 들어보니 지금의 오수경이 실수를 한 신입 오수경에게 어떤 말을 건낼지 궁금해져요. 앞으로 청어람에서 다양하게 실수를 할 예정인 제가 듣게 될 조언 같기도 하고요. 

수 : 저는 제 실수에 그리 너그러운 편은 아니어서 자책을 많이 해요. 남들이 그만하면 잘했다고 말해줘도 정작 저는 저를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래서 그때도 아마 저에게 좋은 이야기를 못해줬을 가능성이 크네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좀 너그러웠어도 될 텐데 그때는 왜 그게 어려웠을까요? 저에게 엄격하니 동료로서도 저는 칭찬에 인색한 것 같아요. (저의 동료들께 죄송합니다) 이런 제가 일반 매체에 쓴 첫 글이 ‘실수’에 관한 것이었더라고요? ‘오타’를 많이 내는 저에 관해 이야기 하며 일 못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얼마나 명랑 사회에 기여하는 창조적이며 이타적 인간인지 역설하는 글이었는데요. 참 양심도 없었네요. ^^ 생각해 보니 저는 ‘실수’를 ‘’성의없음’으로 여겨서 화를 냈던 것 같아요. 꼭 그렇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래서 잘하고 싶었던 상대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부족한 면은 함께 해결해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이왕 일어난 일, 웃으며 넘기고, 다시 잘해보자고 토닥이며 천 년의 놀림거리로 삼을 것입니다. ^^

유 : ‘그때는 그게 왜 이리 어려웠을까’라고 하셨지만, 자신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그 날의 예리한 마음이 지금의 오수경을 만들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때도 맞고, 지금도 맞다고 대답하고 싶은 이 마음은 뭘까요? (웃음) 일을 잘 하고 싶어하고, 또 잘 해내는 오수경의 비결이 무엇일지 궁금해요, 청어람에서 보낸 시간만해도 13년이고, 그 이전의 시간까지를 더 하면 소위 ‘복음주의 운동판’에서 보내신 시간이 적지 않으시잖아요. 이 운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오수경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수 : 보통 이런 질문을 받으면 제법 진지하게 대답을 해야 소위 간지가 날 텐데 저는 재미있어서 했어요. 대학 졸업 후 선교단체 간사도 ‘복음전도’ ‘제자화’ 이런 거룩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글 쓰는 게 좋아서 지원했어요. 당시 단체에서 발행하는 회지를 만들고 싶다는 야심을 품고. 결국 그걸 못 만들게 될 상황이 생기니 애정이 팍 식더라고요. 그 이후 학원복음화협의회도 <물근원을 맑게>라는 회지 담당자로 간 거였어요. 청어람도 원래는 ‘온라인 매거진’을 만드는 일을 맡기겠다고 해서 왔는데… 별 걸 다 하게 되었네요. 제 직업 경로를 보면 일단 제가 좋아하는 일을 익숙한 곳에서 할 수 있는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그리고 이곳들은 저의 신앙과 사회적 시야를 확장시켜 주는 곳이기도 했어요. 일하면서 배울 수 있고, 배우면서 어떤 변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된 것이죠. 예수님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 때 사람들은 그 의미를 몰랐지만 “물을 떠 온 일꾼들은 알았다”라고 하잖아요. 저는 제가 그 일꾼인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친구들 가운데 가장 가난하고 불안정한 직업이었는데 직업 만족도는 가장 높아서 친구들이 신기해했었어요.

유 : 앞으로 혼인잔치 이야기를 읽을 때, 수경 님이 떠오를 것 같아요. 청어람에서 한 달 시간을 보내보니, ‘이 물이 포도주가 되겠구나’ 설레는 마음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요.  요즘을 통해서 이야기를  드리기도 했었는데, 기획안으로 존재하는 프로그램이 실제로 진행되는 것을 보게 될 때의 기쁨이 있잖아요. 그 기쁨이 직업 만족도를 높이는 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지만 즐겁다, 즐겁다해도 동력이 떨어졌을 때도 분명히 있었겠죠? 그 때마다 어떻게 충전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참고하도록 할게요. 

수 : 징징댔어요. 청어람에 입사하며 페이스북을 시작했는데 페북에서 대표 욕도 하고, 힘들다고 징징대기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고요. 정말 힘든 날이면 버스에 실려가면서 울거나 자기도 했어요. 그리고 많이 걸었어요. 청어람 사무실이 있던 명동이랑 신촌, 종로 모두 저만의 걷기 코스가 있었어요. 대략 1시간 정도 걸리는? 그 코스대로 걷다가 버스 타고 귀가하거나 집에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 드라마 한두 편 보다가 스르륵 잠이 들면 충전이 되었어요. 감사하게도 제 주변에 함께 노는 업계(!) 친구들이 많았어요. 다른 단체 실무자들 모임인 ‘간들’을 만들어 항상 네이트온에 접속해 수다를 떨고 자주 만나고 엠티도 갔었어요. 그리고 제 또래 중간 관리자 모임인 ‘언저리’ 모임도 있었고 업계 분들은 아니지만 여러 경로로 연결된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는 게 저에게는 큰 힘이 되었죠. 그리고 한 번 ‘도망’도 갔어요. 2014년에 너무 힘들어서 유럽 가는 비행기 티켓을 선결제하고 후통보했어요. 그때 대표님이 심각하게 사유를 물었는데 “너무 힘들어서요…”라고 대답하다가 울어버린 기억이 나네요.

유 : ‘간들’과 ‘언저리’라니 귀여운 모임명인데요? 보노보노라는 만화에서 보노보노가 “혼자 해야하는 일은 혼자 하도록 해. 함께 해야하는 일은 함께 하자”라는 말이 나와요. 수경 님은 혼자와 함께의 균형을 잘 잡아서 힘든 순간들을 건너신 것 같아요. 여러 순간들을 건너 도착한 지금 돌이켜보면, 첫 출근을 하던 오수경과 마지막 출근을 하는 오수경을 많이 다른가요? 다르다면 뭐가 다르고 같다면 뭐가 같을까요?

수 : 그때의 저보다는 아무래도 신체적 기능이 달라졌기에 조금 피곤한 몰골로 출근하는 것 외에는 별로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걱정이 많아졌죠. 그때는 저에게 주어진 일만 걱정하면 되었는데 지금은 보다 넓은 범위의, 다양하고 심화된 고민을 해야 하는 게 달라진 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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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 청어람 그 이후의 행보에 모두들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관련해서 질문도 많이 받으셨죠? 저도 궁금한 사람 중에 하나인데요. 다양한 매체에서 드라마 평론을 쓰는 오수경 작가의 팬으로서  다른 것보다 일 하느라 쫓기며 보았던 드라마를 더 편안한 마음으로 보시지 않을까, 더 가열차게 평론을 쓰시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떤가요? 퇴직하자마자 봐야지 하고 아껴두었던 드라마가 있나요? 

수 : 다음 스텝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이렇게 아무 생각이 없어도 되나 불안감이 몰려올 정도로 아무 생각이 없어요. ^^ 일단 쉬면서 비워내며 다음 행보를 생각할 예정이에요. 그런데 집에서 쉴 때도 스케줄 정해서 집안일하는 계획형 인간이라 ’푹‘ 쉬지는 못할 것 같아요. 3월에 하겠다고 미뤄둔 일만 처리해도 ’ 과로사‘ 할 각이에요. 드라마도 ’ 정주행‘하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딱 시간 정해놓고 볼 거예요. 아껴두었던 드라마는 있어요. 방영되던 시절에 시간이 없어서 못 본 드라마 <인간실격>이랑 작년에 볼 기회를 놓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우선 볼 예정이고요. 최근 재미있게 본 <멜로무비>도 다시 정주행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일드를 몇 편 보고 싶어요. 일드는 예전에 많이 보다가 한드에 집중하느라 끊었는데 요즘 한드 보는 게 너무 피곤해져서 일드로 잠시 도망치게요. 일단은 <브러쉬 업 라이프>와 <핫스팟>을 찜해놨어요. 아 그리고 시트콤 좋아해서 온종일 ‘하이킥’ 시리즈만 나오는 채널을 라디오 틀어놓듯 틀어놓곤 했는데. 오랜만에 봐야겠어요.

유 : 제가 만화보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일종의 일상으로부터의 도피라고 말씀드렸을 때, 큰 공감을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수경 님에게 드라마도 그런 도피인가요? 

수 : 맞아요. ‘남의 이야기’로 잠깐 도피하는 거죠. 그렇게 잠깐 다녀오면 이상하게도 기분이 나아지곤 했어요. 도피이기도 하고 일상에서 도망가지 않도록 붙드는 힘이기도 했어요. 아무리 피곤해도 드라마 두 편은 보고 잠들던 게 저에게는 일상력을 유지할 힘이 되었거든요. 드라마에는 다양하고도 이상한 인간들이 나오고 저마다 불행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게 묘하게 위로가 되었어요. 과정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어쨌든 사랑이 이루어지고, 문제가 풀리고, 정의가 구현되는 걸 보는 것도 나름 힘이 되었고요. 그런 결말을 보려면 일단 끝까지 봐야 하잖아요. 어떤 드라마는 내 취향도 아니고 재미도 없는데 기어이 끝을 보고 싶어서 욕하며 막화까지 본 적도 있어요. 좀 웃긴 희망사항인데 “드라마 다음 회차가 궁금해서 죽기 싫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의 삶이… 이 세상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사람은 되기 싫다고, 드라마를 보면서 가끔 생각해요.

유 : 수경 님 다음으로 틈 인터뷰 코너를 맡으며 고민이 많았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오수경만큼 이 세상을,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았거든요. 수경 님의 글을 보면서 ‘이 사람은 참 세상만사를 궁금해하고 애정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오수경 인터뷰 비결인 것 같은데 훔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 아마, 오수경은 이 세상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러면 이미 오수경이 아닌 느낌이랄까요? 불현듯 ‘요즘 오수경은 무엇을 사랑하고 또 궁금해할까?’ 궁금해지네요. 새롭게 사랑에 빠진 무언가가 있으신가요? 

수 : 좀 웃긴 호기심인데 제가 머무는 동네(사무실과 집) 상권(!)에 관심이 많아요. 어떤 가게가 나가면 여기에는 무엇이 들어올까 궁금해 하며 ‘예쁜 카페가 들어오면 좋겠다’ ‘맛있는 백반집아 들어와라~’ 생각하곤 해요. 그러다 공사가 시작되면 유심히 보면서 유추를 해보죠. 환풍기가 큰 것 보니 주방이 들어서겠고… 음… 식당이군. 의자가 저런 형태면 카페겠군.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요즘 궁금한 건 얼마전 건물이 통째로 비워진 청어람 사무실 건너편 건물에 무엇이 들어올까, 무려 1년 가까이 공사를 한 청어람 옆옆 건물에는 무엇이 생길까, 너무 궁금해요. 우리집 근처에 리모델링한 건물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요즘 사랑하는 건 잘 모르겠어요. 어떤 상태가 사랑에 빠진 것일까요? 계속 관심을 두게 되는 걸까요? 그렇다면 내란 수괴와 동조범들, 우리집 벽에 핀 곰팡이인데… 그걸 사랑할 수는 없으니 참 어렵네요. ^^ (그는 결국 끝내 이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유 : 내란 수괴와 동조범들, 곰팡이로 답을 해주시다니 당황스러운 걸요. (웃음) 수경 님이 오래오래 좋아하신 건 아무래도 곰팡이보다는 드라마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수경 님을 처음 알게 된 건 사실은 평론가로서의 오수경이었거든요. 수경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드라마의 기준이 있을까요? 그 기준의 부합하는 드라마가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수 : 드라마도 문학과 비슷해서 인간 사회의 모순과 딜레마, 기쁨과 슬픔, 욕망과 선망, 절망과 희망 등을 잘 읽히는 문장(대본과 연출)으로 표현한 게 좋은 드라마겠죠? 여기에 더해 드라마 마니아들은 ‘작감배(작가, 감독, 배우)’의 조합을 중요하게 여기는데요. 이 조합이 좋은 드라마가 대체로 좋더라고요. 저에게 좋은 드라마의 기준은 되게 단순해요. 다음 회차가 궁금한 드라마. 어떤 드라마는 별로 안 궁금한데 일단 시작했으니 관성적으로 보게 되는데 어떤 드라마는 한 회차가 끝날 때 너무 서운하고, 궁금하고, 빨리 다음 회차를 보고 싶어요. 그런 드라마가 저는 좋아요. 드라마에 관한 리뷰 글을 쓰기 시작하며 생긴 좋은 드라마의 기준은 소위 ‘글이 잘 붙는’ 드라마예요. 아무리 좋아도 글이 잘 안 붙다면 저에게 재밌는 드라마지, 좋은 드라마는 아니에요. 그 기준에 부합하는 드라마는 너무 많죠. 이건 마치 “인생 드라마가 뭔가요?” 같은 질문인데요. 저는 인생 드라마가 없어요. 드라마 박애주의자라 인생 드라마가 너무 많아서 차라리 없애기로 했어요. ^^ 하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있어요. <발리에서 생긴 일>, <지붕 뚫고 하이킥>, <풍문으로 들었소>에요. 이 드라마들에 관해 이야기하자면 ‘박찬호’급으로 하게 될 것 같으니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유 : 이야기를 듣다보니, ‘다음 회차가 궁금한 드라마가 좋은 드라마’ 라는 말에서 드라마라는 말을 빼고 어떤 말을 넣어도 말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떤 공동체가 좋은 공동체일까? 이 공간에서 나누게 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공동체게 좋은 공동체가 아닐까’ 하고요. 그러면 이어서 질문을 해 볼까요? 수경 님이 앞으로 청어람에서 나오길 기대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내가 없는 청어람, 이런 것을 꼭 지켜하거라’ 이렇게 남길 말씀이 있는지 궁금해요. 잘 받잡도록 할게요.  

수 :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박현철 대표님과 배한나 팀장님은 “있을 때나 잘하시지?”라며 비웃겠지만 잘 놀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워커홀릭’이어서 노는 걸 잘 못했어요. 놀아야 새로운 상상력도 생기고 재미있는 기획도 나올 텐데 말이에요(앗! 또 일로 연결시키다니… 제가 이런 인간입니다). 그래서 동료들에게 참 미안하고 후회도 돼요. 그리고 청어람이 조금 더 북적이면 좋겠어요.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고, 수다도 떨고, 그러면서 여러 일들과 연결도 되고(앗! 또 일로 연결을…). 경험상 사람들 틈에서 나온 기획들이 더 좋았던 것 같아요. 청어람이라는 공간과 시간이 지금보다 더 다양한 이야기로 채워지길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응원하겠습니다.  

김유미 간사님이 글에 쓰일 사진을 고르더니 이런걸 제작하였다
김유미 간사님이 글에 쓰일 사진을 고르더니 이런걸 제작하였다

유 : 벌써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인터뷰는 항상 ‘책’으로 끝나는 거 아시죠? 수경님이 최근에 재미있게 읽으신 책을 추천해주세요.

수 : 세 가지를 골라봤어요.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 엄지혜 지음, 마음산책 펴냄 

몇 년 전 <드라마의 말들>이라는 책을 쓸 때 같은 시리즈의 다른 책들을 참고했는데 그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게 <태도의 말들>이었어요. 저자인 엄지혜 작가님은 예스24에서 매거진 <채널예스>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만들었는데 그때 그의 신중하고 사려 깊은 태도가 좋았어요. 글도 그런 그를 닮아서 약간 무심하게 다정하고 단정하게 정확한 데가 있더라고요. 그의 두 번째 책 <까다롭게 좋아하는 사람>은 엄지혜 작가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목록인데요. 이 목록이 제가 좋아하는 사람의 목록이랑 꽤 많이 겹쳐서 공감하며 읽었어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그 사람의 태도와 지향을 드러낸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 ‘까다롭게’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절망하는 이들을 위한 민주주의> 최태현 지음, 창비 펴냄

지난 12월 3일 이후 꽤 많은 분들이 ‘내란성’ 통증을 호소하시던데요. 저도 그랬어요. 우리 사회의 토대인 민주주의가 허물어지는 것 같은 위기감도 들었고요. 그래서 책모임을 만들었어요. 이 책은 그 책모임에서 읽었던 책이에요. 민주주의의 위기다! → 민주주의가 뭐지? → 어떤 민주주의가 필요하지? 대략 이런 생각의 흐름을 타고 선정한 책이에요. 저자이신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태현 교수님은 민주주의의 ‘마음’과 ‘작은 공’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라는 체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조곤조곤 알려주세요. 딱딱한 행정학 책이 이렇게 은혜로워도 되나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은혜를 받고 말았어요. 함께 책모임 했던 분들도 이 시기에 큰 위로를 받았다는 소감을 남겨주셨는데요. 덕분에 ‘내란성’ 무엇무엇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참 고마운 책이에요.

<한겨레21> · <시사인> · <복음과상황

저는 ‘잡지’를 좋아해요. 한창때(아련…)는 <한겨레21>, <시사인>, <시네21>을 한꺼번에 정기구독하기도 했는데요. 요즘에는 관심 있는 주제를 다룰 때 사서 봐요. 일간지도, 주간지도 저는 인터넷으로 ‘보는’ 것보다는 종이로 ‘읽는’ 것을 더 선호해요. 맥락과 흐름을 알 수 있거든요. 지하철 플랫폼에 있는 편의점에서 종이 잡지를 사서 한 번 어루만져보고 소중하게 가슴에 품는 순간을 좋아해요. <복음과상황>은 제가 유일하게 정기구독하는 잡지예요. 복음주의 학생 운동, 사회 운동을 경험했는데 그 곁에는 항상 복상이 있었어요. 복상과 함께 자라왔달까요? 청어람 사무실 한쪽에 복상 창간호부터 쭉 있는데요. 가끔 그 목록들을 들여다봐요. 그 역사 속에 나도 있고, 우리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미래’도 있고요. 요즘 복상 너무 알차고 재밌어요. 꼭 구독해 보세요. ^^ 아 그리고 세 잡지는 제가 글을 연재했거나, 연재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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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호에는 강렬한 주제 때문인지 답장을 남겨주신 분이 없었어요! 틈을 내어 이번 인터뷰에 답장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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