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설레는 마음으로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매거진의 첫 문장을 쓰고 있는 오수경입니다. 저는 어딜 가든 두리번거리는 버릇이 있어요. 남들에게는 주의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세상 오만 가지 것에 관심이 쏠려 두리번거리는 것이지요. 버스를 타고 갈 때 보이는 간판들 이름마저 너무 재미있고, 지하철 맞은편 사람들을 보며 그분들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백색소음처럼 들리는 누군가의 대화 속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곤 해요. 그런 일상 속 풍경이 저에게는 어느 소설이나 드라마 못지않게 흥미롭지요.
‘매거진’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나왔을 때 이 매거진은 무조건 ‘사람’과 ‘책’ 이야기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비슷해요. 우리가 만나야 할 거의 모든 이야기는 사람 사이, 책 속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청어람 매거진은 단순해요. 사람과 책. 딱 두 가지만 담을 예정이에요. 그중 저는 ‘사람’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어요. 무수한 사람들 중 특히 세속사회에서 의미 있는 일상을 살아내는 평범한 분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사람 부자’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이에요. 내향형이지만, 제가 만나온 의미 있는 타인들, 남들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분들의 목록이 늘어날 때 보람을 느껴요(벌써 인터뷰 대상자 목록이 늘어나고 있어요). 앞으로 제 소중한 목록을 털어 구독자 님께 연결시켜 드릴게요.
아직 정식 발행되지 않은 미생과 같은 ‘0호’에는 어떤 사람을 소개할까 고민하다가… 하루 중 저와 가장 오래, 저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동료 배한나 님을 만나봤어요. ‘내향적 흥부자’ 배한나 님을 소개합니다.
수경(수) : 어려운 첫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한나(한) : 안녕하세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한나’의 그 ‘한나’라는 이름을 가졌고... 청어람에서 ‘시끄럽지만 조용한’ 캐릭터를 담당 중인 배한나라고 합니다. 각종 홍보 디자인 및 영상, 굿즈 제작, 후원 관리 업무 등을 하고 있습니다.
수 : 여러 일을 하고 계시네요. 일 외 요즘 가장 좋아하는 것(원래 좋아하던 것, 새롭게 좋아하게 된 것)이 있나요? 있다면 언제부터 - 왜 좋아하게 되었나요?
한 : 앞의 대답 중 굿즈 이야기가 나와서 떠올랐는데요. 굿즈 만드는 작업을 좋아합니다. 어릴 적부터 매년 성탄 카드를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주곤 했어요. 종이에 크레파스로 그리거나 색종이를 붙이던 시절을 지나, 10대 때는 사진관에서 필름통을 얻어 필름에 종이를 연결해서 쓰고, CD의 반짝이는 면을 활용해서 밤새 만들기도 하는 등 열심을 다해 만들었던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는 매년 인쇄소에 카드를 맡기고, 연초에 연하우표를 미리 대량 구입해서 성탄절 카드에 우표를 붙여서 보내는 일이 소소한 기쁨이었어요. 선교단체에 있을 때에 티셔츠 디자인도 몇 개 해 보고 재밌어서 몇 년은 개인적으로나 일하는 곳에서 계속 만들었고요. 여력이 있었을 때는 탁상 달력을 디자인하고 인쇄해서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책갈피 투명카드도 만들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여력이 나지 않아 단순한 그림을 인쇄소에 맡겨서 카드를 쓰는데요. 받는 친구들의 기쁜 모습을 보는 게 즐겁고, 만들고 나타나는 그 과정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수 : 굉장히 이타적인 취미 활동인 것 같네요. 태어나보니 ‘목회자 가정’이었다고 들었어요. 목회자의 딸로서 경험한 신앙은 다른 이들과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태어나보니’ 경험하게 된 신앙과 한나 님이 ‘주체적’으로 형성하게 된 신앙은 다른가요? 다르다면 어떤 계기로, 어떻게 다르게 되었나요?
한 : 예전에는 세례의 시/분/초를 생각하거나 신비체험의 날짜를 기준으로 다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어릴 때의 순수한 믿음과 기도, 어느 정도 커서 내 의지로 ‘믿었다’라고 확신했던 때, 이리저리 방황하며 회의하던 생각 모두 저의 신앙을 한 겹씩 이루고 있다고 생각해요.
수 : ‘이리저리 방황하며 회의하던’ 한나 님이 상상이 잘 안 가는데요. 그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요. 어떤 계기로 방황과 회의를 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이 지금의 신앙을 형성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한 :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으라'식의 말을 들을 때면 '난 당연히 그 편에 있지!'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 신앙을 되묻게 되는 두 번의 순간이 있었는데요. 천하보다 한 영혼이 귀하다던, 예수를 영접하면 그리스도인이라던 선교단체에서 성 소수자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보았을 때 큰 혼돈이 왔었고요. 두 번째는 세월호 사건을 보며 커다란 충격과 함께 신의 부재를 떠올리게 되었었어요. 당시에 '그래도 하나님은'이라는 말을 해 주던 이들이 있었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조심스러운 게 유가족이나 세월호 관련된 분 앞에 '내 감정이나 회의'를 감히 언급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죄송스러워져요. 어쨌든 그렇습니다…
수 :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의 ‘한나’가 되었던 거군요. 현재 한나 님의 신앙과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세 가지가 있다면 뭔가요?
한 : 첫 번째는 ‘곁을 내어주는 만남들’이에요. 서로의 곁을 내어주는 일은 쉬워 보이면서도 어려운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소중한 친구들이 내어준 곁 덕분에 지금의 저로 살며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렵고 괴로웠던 때도, 막막하고 무심한 순간에도 그 곁의 시간들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저도 소중한 이들에게 그런 '곁'을 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 가지로 꼽아보았습니다. 두 번째는 ‘나를 알아가는 것’인데요. 평생 숙제이자 어쩌면 알 수 없을 답 같은데요. 영화 <인사이드아웃>에 나오는 여러 감정 캐릭터들이 기능을 적절하게, 제때에 하도록, 제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싶어서 두 번째로 꼽아보았어요. 세 번째는 ‘믿음’이에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믿음'이라는 말의 모양이 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하나님의 '존재',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느 정도는 알듯한 '선'이자 보통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제 인생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수 : 졸업 후 일반 회사에 다니다가 캠퍼스 선교단체 간사로 헌신하게 되었는데요. 왜 굳이…?
한 : 질문의 순서를 바꾸면 되는데요. 선교단체 간사를 하기 위해서 일반 회사를 다녔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우선 제가 속한 선교단체는 간사가 100% 후원 모금을 해야 했기 때문에 4년간의 학자금을 갚고 사역을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고요. 두 번째로는 사회생활을 경험하면 학생들과의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것 같아서였어요. 짧은 시간 동안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일하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봐서 재밌었고, 한국에 있는 일본 공공기관에서 계약직으로 2년 동안 일하며 다양한 일을 접할 수 있어서 유익했습니다. 다만 매달 월급의 70% 정도를 학자금 갚는 데에 써서 허리를 바짝 졸라맸어요. 그리고 계획한 대로 학자금을 다 갚고 선교단체 간사를 지원할 수 있었어요.
수 : 와~ 정말 대단하신 분! 특별한 과정이었네요. 그렇게 지독하게(?) 한나 님을 ‘선교단체 간사’의 길로 가게 한 계기가 궁금해요.
한 : 오래전부터 영화 <시스터 액트 2>를 계속 돌려보며 주인공인 '들로리스'처럼 되고 싶었어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보통의 사람이랄까. 그러다가 선교단체에서 '좋은 '기독교인' 어른 간사님을 만났는데요. 학생들을 동등한 어른으로 대해 주시고 '귀한 존재'라며 모두에게 자주 말해주셨어요. 그분의 메시지에 카리스마가 있다거나 독보적인 장기가 있지 않았는데도(오히려 잔잔한 말투에 설교시간에 조는 학생도 많았어요), 학생들이 많이 모였고 같이 재미있게 사역을 했었어요. 함께한 동기나 선후배들도 마음이 따뜻하고 좋은 이들이었고요. 이렇게 신앙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라면 평생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돌아보니 그분이 사역했던 시절에 유독 간사를 지원한 학생이 많았고 그중 저도 한 명이었습니다.
수 : 그분이 정말 ‘들로리스’였네요. 선교단체에서 나온 후 기독연구원 느헤미야에도 오래 계셨죠. 그러고 보니,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독교 영역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거네요. 그럴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가요?
한 : 뿌리 깊은 이분법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노골적인 '기독교적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선교단체 간사를 결심했을 때에 '평생 선교사'를 꿈꿨었거든요. 그 계획이 틀어지고는 좌절감에 아무런 계획을 가지지 말고 길이 나는 대로 걸어보자는 생각으로 살았는데, 돌아보니 기독교 영역에서 계속 걷고 있더라고요. 사실 걷다 보니 길이 된 거지, 동력은 잘 모르겠어요.
수 : 비영리 단체는 ‘돈’을 못 버는 대신 ‘보람과 자긍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라고들 하잖아요. 한나 님에게는 어떤가요? 지금까지 활동해 오며 가장 보람되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한 : 저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들이 다 좋았고요. 마음이 어려웠던 분이 모임을 계기로 힘을 얻었다거나 재미를 얻었다는 찰나를 만나면 보람찼던 것 같아요. 다른 곳에서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꺼낸다던가, 풀지 못했던 실타래 하나를 풀었다던가, 신앙의 또 다른 계기를 얻었다던가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기쁘더라고요.
수 : 한나 님은 어느 때 행복하세요? 최근 행복감을 느낀 일이 있다면 어떤 순간이었나요?
한 : 친구들을 만날 때, 마음이 편하고 행복한 것 같아요. 뭘 더 드러내거나 덜어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들이 좋더라고요.
수 : 그러고 보니, 한나 님은 친구들과 있을 때 참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애교와 흥이 폭발하는 걸 종종 봤거든요. ^^ 친구들, 혹은 한나 님이 만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이고 싶나요?
한 : 저는 친구들이 저를 많이 참아주고 다정하게 있어준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지금보다 더 설익고 어설펐던 그때의 저를 떠올리며 누구든 저 자신을 대하는 마음으로… 가능한 한 다정하려고 애쓰고 노력합니다.
수 : 스트레스가 현대인의 불치병이 된 지 오래이고, 부정적 감정에 노출되기 쉬운 시절을 살고 있는 것 같은데요. 한나 님은 멘탈이 흔들릴 때 어떻게 붙들거나 회복하세요? 방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한 :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냥 여러 방법을 기웃거리는 편입니다. 마음이 편한 친구들, 보고 싶은 이들을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잠을 일찍 자고요. 말도 안 되는 문장으로 일기를 써 보기도 하고요. 인터넷에서 쇼핑할 거리를 찾아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결제하고 바로 취소하기도 하고요. 한때 좋아했던 H.O.T의 방송 공연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서 팬들이 지르는 함성을 듣기도 하고요(도파민 폭발). 몇몇 즐겨찾기에 넣어둔 여러 가수 공연 영상을 보기도 합니다. 동네 산책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떡볶이를 사 먹기도 하고, 마트 구경을 하며 '오늘은 이게 가격이 좋네'식의 생각을 하며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 같아요.
수 : 정말 일상적이지만, 꼭 따라 해보고픈 방법이네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한나 님의 책장이 궁금해요.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 세 권만 추천해 주세요.
한 :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 편이라 책도 팟캐스트에서 다뤄진 걸 듣고 사는 편인데요. 몇 번이고 읽고 주변에도 많이 선물한 책은 허지원 작가의 <나도 아직 나를 모른다>(김영사)입니다. 청어람에서 '숨모임 브런치'를 기획하며 이 책을 함께 읽기도 했는데요. 저자분이 출연했던 팟캐스트 제목이 “내 탓이 아니라 뇌 탓입니다”였는데, 뇌인지과학과 임상심리를 통해 풀어낸 말과 글이 새롭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잔잔하게 다가온 다기보다는 냉수마찰로 정신을 차리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두 번째 책도 팟캐스트를 통해 접했는데요. 김예지 작가의 <저 청소일 하는데요?>(21세기북스)라는 책입니다. 디자인 일을 하던 저자가 청소일을 선택하며 겪어온 순간을 그림으로 그려낸 책이라 금방 읽히면서도 여러 생각이 몰려와서 멈추게 되는 책이었어요. 특히 저같이 '기독교적 일' 안에서만 맴도는 사람에게는 다른 삶을 떠올릴 때 마주치는 벽이 다양한데, 작가가 그려낸 여러 상황과 선택이 던져주는 질문과 도전이 많았어요. 추천합니다.
세 번째 책은 청어람에서 함께 읽은 <성서의 역사>(비아토르)입니다. 예전에 '여기 우리들의 신학'이라는 신학 팟캐스트를 만들었었는데요. 녹음 중에 신학생 '신나' 님이나 다른 신학생 패널들을 통해 성경의 역사라던지 신학에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었거든요. 무슨 말인지를 어렴풋하게 이해하며 지나갔었는데, 성서의 역사를 읽으니 그때의 말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그렇다고 이 책을 100% 잘 소화하며 살폈던 건 아니에요. 옆에 두고 성경과 함께 보면 더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3부를 먼저 읽고 2부, 1부를 읽는 게 수월할 것 같더라고요. 으깨져서 '신앙'으로 알고 뭉쳐있던 것들을 잘 풀어볼 수 있는, 어쩌면 자유로울 수 있는 부분을 취하실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준비한 메일 매거진 0호 어떻게 보셨나요? 15일에는 흥미로운 책 이야기를 담은 0-1호를 보내드릴게요. 메일 매거진은 7월부터 매월 1일과 15일에 발송되고, 1일에는 인터뷰, 15일에는 책 이야기를 담을 예정입니다.
우리 곁에 존재하는 무수한 이야기들 중 더 주목하면 좋을 이야기를 모아서 공유하는 ‘메일링’을 시작합니다!
이 메일링은 한 달에 두 번(매월 1일, 15일)에 발행될 예정인데요. 1일에는 세속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곁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를, 15일에는 책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펼치는 글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6월에 발간준비 0호, 0-1호가 발행되고, 7월부터 본격적으로 발행합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면 여러분의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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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첨자 발표: 6/12(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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