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틈의 신간 모니터링 요원 박현철입니다.
매달 소개할 책을 고르고 읽다 보면 하나의 흐름 같은 것이 보이곤 합니다. 서로 다른 기획에서 시작되어 다른 고민 속에서 세상에 나왔지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한 계단과 다음 계단처럼, 질문과 답변처럼 연결되어 보이는 책들이 있어요. 가끔 책의 순서에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는데, 사실 그런 느낌적 느낌을 따라 책을 고르고 순서를 정합니다. 이번 달에도 그런 흐름이 제 나름대로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어떤 흐름인지, 이 책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저 책이 어떤 답변을 했는지까지는 시시콜콜 설명하지 않고 저 혼자만의 이야기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다만 여러분이 소개를 읽으면서 어떤 흐름을 감지하셨고, 그것이 여러분께 말을 건네는 것 같다면 망설이지 말고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부탁드립니다. 아마 여러분께 다가온 그 느낌이 맞을 거예요!
목사 딸의 백팔배
이정은 지음, 온다프레스 펴냄, 270쪽 [도서정보보기]
솔직히 제목부터 조금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종교학자의 자기 배려하기’라는 부제에 ‘유쾌하고 아름답고 치열한 아버지 살해과정’이라는 추천사까지. 이런 훅을 썩 좋아하지 않는 터라 경계하며 책을 폈는데, 뜻밖에도 한달음에 읽었다. 한숨을 쉬며 읽은 대목도 있었고, 피식 웃게 되는 순간도 제법 있었다. 생각보다 자극적이지 않았고, 읽고 나니 묵직한 여운이 남았다. 저자는 부모와 교회를 향한 애증, 오랜 공부와 수행, 그렇게 애써도 말끔히 정리되지 않는 마음을 솔직하게 담아냈다. 순응과 저항 사이에서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 성실하게 공부하고 몸을 움직여 온 저자의 여정에 존경을 표하고 싶다. 특히 과거의 신앙과 화해하고 싶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신앙을 완전히 버리거나 예전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것이 내 안에 무엇을 남겼는지 천천히 들여다보는 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화해란 한 번의 결심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이 책도 깔끔한 결론을 내리기보다 계속 살아가며 자신을 돌보는 쪽을 택한다. 그러니 서두르지 않는 마음으로, 백팔배 하듯 한 장씩 읽어보자. 나도 책을 읽고 백팔배를 다시 시작해 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
김기현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260쪽 [도서정보보기]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은 한 목회자이자 신학자가 자신의 삶을 되짚으며 써 내려간 신앙적·신학적 회고록이다. 아직 왕성하게 활동하는 저자가 벌써 회고록을 쓸 때인가 싶었지만, 책을 읽다 보면 곧 수긍하게 된다. 무언가를 이뤘거나 삶을 정산할 때뿐 아니라, 무엇을 묻고 믿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돌아볼 때도 회고는 의미 있다. 아버지를 잃은 소년 시절부터 신앙과 사회참여 사이에서 고민하던 청년기, 목회와 공부, 가정집 교회, 글쓰기와 위기 청소년들과의 만남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종횡무진 다작했던 저자의 신학이 책상 위에서만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익숙한 신학자와 사상들이 한 사람의 구체적인 삶과 선택 속에 놓이면서 새로운 얼굴을 얻는 과정, 생계와 관계, 실패와 회의, 뜻밖의 우회, 단 한순간도 쉽지 않았던 시간을 통과하며 생각이 흔들리고 다시 다듬어지는 과정이 진솔하게 기록되어 있다. 결국 무엇을 믿게 되었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의심하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는지까지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 사람의 신학적 성찰과 성장, 고민에 관한 솔직한 기록이자, 책을 읽은 독자에게 자연스럽게 질문을 돌려주는 책이다. 나의 신앙과 신학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있는가.
완벽하지 않아도
케이트 보울러 · 제시카 리치 지음, 정다운 옮김,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304쪽 [도서정보보기]
예쁜 표지에 감성적인 제목 덕분에 눈에 띄는 책이다. 구성은 40일간 읽을 수 있는 짧은 묵상글 하나, 축복 혹은 기도문, 그리고 오늘 해볼 만한 작은 실천 하나. 성경구절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세련된 미국 작가의 자기계발서 혹은 묵상집으로 느껴질 만하다. 『완벽하지 않아도』는 이 뻔한 형식을 꽤 재치 있게 활용하며 오늘 해볼 일을 매일 권하지만, 보통의 자기계발서처럼 몰아붙이지 않고, 사람을 조금씩 설득하고 움직이게 한다. 무겁지 않게 주제를 꺼내고, 설교가 되기 직전에 멈추며, 생활에 잘 붙여낼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들을 내놓으니 묵상집과 자기계발서 사이에서 절묘한 선을 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저자인 케이트 보울러의 삶을 알고 읽으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금세 이해할 수 있고, 책의 내용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지만, 사실 사전지식은 크게 상관없다. 그의 이력과 이 책의 맥락을 전혀 모르더라도 이 책은 충분히 제 힘으로 서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고통을 겪은 사람의 특별한 지혜라기보다는, 잘 살아내기 위해 매일 자신을 개선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따뜻한 지혜와 격려를 나누기 때문이다. 40일 묵상집이니 사순절에 맞춰 읽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면, 그런 완벽함의 강박을 내려놓으라(는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40일간 하루에 하나씩 읽지 않아도 되고,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된다. 너무 멀지 않은 곳에 두고 생각날 때 아무 데나 펼쳐 읽어도 Good Enough!
평신도의 재발견
로버트 뱅크스 지음, 송인수 옮김, IVP 펴냄, 206쪽 [도서정보보기]
‘평신도’라는 말은 여전히 논쟁적이다. 개인적으로도 이 말을 자주 쓰기는 하지만, 모든 신자가 동등하다고 말하면서도 성직자와 나머지 신자를 나누는 이 명칭이 늘 마음에 걸린다. 『평신도의 재발견』은 이 논쟁적인 단어를 정면에 내걸고 교회의 새로운 구조를 고민하는 책이다. 성경과 초기교회의 모습에서 ‘모든 성도가 함께 세워간 교회의 원형’을 복원하고, 교회사 속에서 다수의 흐름은 아니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는 평신도 중심 교회 운동의 흔적을 탐구한다. 교회의 제도화와 위계화에 선명하게 반대하고, 모든 사람들의(of), 모든 사람을 위한(for), 모든 사람에 의한(by) 교회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오늘날 새로운 신앙운동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할 지혜가 담겨 있다. 오늘날에도 꽤 다양한 평신도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데, 그런 평신도 교회에 신학적 기반을 마련해 주고,그들을 격려하고 권장한다는 면에서 꼭 필요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발판으로 삼아 더 많은 학습과 토론, 시도가 일어나길 바라고, 동시에 이 책이 극복해야 할 부분도 놓치지 않으면 좋겠다. 기본적으로 평신도-성직자의 구분을 수용하고 대응하는 방법, 그러니까 제목에 등장하는 ‘평신도’라는 말 자체에 대한 토론이 더 꾸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또 이 책의 저자가 지향하는 교회의 방향이 초기 교회를 다소 이상화하는 복원주의적(Restorationism) 경향에 치우친 것은 아닌지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회의 형태와 구조에 관해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며, 실제로도 그런 다양한 형태의 교회들이 존재한다. 이 책은 그 풍성한 세계의 일부를 들여다보게 해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고, 새로운 교회를 찾아 나서는 과정에 있는 독자들은 이 책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커튼콜, 퀴어 크리스천
미동 · 소리꽃 · 이슬하 · 이동환 · 서다은 · 이해(폴짝) · 노랑조아 · 다른 지음, 도서출판QNA 펴냄, 328쪽 [도서정보보기]
한국 교회에서 성소수자 그리스도인이 자기 삶과 신앙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고, 그 이야기가 존중받는 자리는 여전히 부족하다. 교회 안에도 성소수자들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믿는지 듣는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큐앤에이가 이번에 펴낸 『커튼콜』은 퀴어·앨라이 크리스천 11명의 이야기를 담은 반가운 구술집이다. 누군가의 신앙과 존재를 판정하기 바쁜 교회를 향해, 먼저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는 다정한 말 건넴이다. 책에는 혐오 속에서도 믿음을 놓지 않은 이야기, 축복받는 자리에서 자기 존재를 새롭게 받아들인 순간, 예배와 공동체를 기쁘게 기다리는 마음이 생생히 담겨 있다. 이들의 삶을 상처나 피해라는 한 가지 말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구술집의 힘은 바로 이런 구체성에 있다. 서로 다른 이름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범주와 판단이 얼마나 거친 것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성소수자와 교회의 관계를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관련된 신학적 논쟁을 살피는 것만큼 이 같은 삶의 기록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이미 우리 곁에서 살아온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지구에 속한 자
그레이스 지선 김 지음, 신동한 옮김, 대장간 펴냄, 19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텀블러 사용하고, 쓰레기 분리배출 성실히 하면 기후위기 시대에 적절하고도 충분한 에티켓을 갖춘 것인가? ‘창조세계 돌봄creation care’이 오늘날 중요한 신앙적 주제로 떠올랐지만,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자연 ‘돌봄’에 치우쳐 있다. 이 세계의 청지기가 되어 지구를 돌봐야 할 책임이 있다는 말 속에서 우리는 여전히 인간을 창조세계의 정점에 있는, 혹은 바깥에 서 있는 관리자로 상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가장 큰 문제는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 자체, 그리고 밝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지구에 속한 자(Earthbound)』는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다. 인간을 이 지구라는 행성에 속한 존재로 보는 저자의 시선은 이 책이 단순한 ‘창조세계 돌봄’보다는 한발 더 내딛고 있음을 보여준다. 주목받는 한국계 캐나다 신학자인 그레이스 지선 김은 이 책에서 물의 사유화와 오염, 환경 인종주의, 젠더와 경제적 불평등을 짚으며 기후위기가 결코 모두에게 공평한 재난이 아님을 역설하고, 나아가서 자연을 이용하고 지배할 대상으로 여겨온 인간의 태도와, 하나님을 위에서 명령하고 통치하는 존재로 상상해 온 신학의 근본적 문제까지 파고든다. 결국 단순히 자연을 사랑하자는 메세지를 넘어 인간을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지구에 속해 살아가는 존재로, 하나님 역시 고정된 지배자라기보다 사랑하고 관계 맺으며 움직이는 존재로 다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두껍지 않은 분량 이지만 ‘창조세계 돌봄’을 넘어 ‘기후 정의’에까지 닿는 여정을 촘촘하게 잘 그리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이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땅과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는 기회로 삼아보자.
한 줄 보태는 책들
놓치면 아까울 책을 단평으로 소개합니다. 흥미가 생기면 자세한 정보를 꼭 확인해보세요. :)

내면을 돌보는 일
척 드그로트 지음, 정효진 옮김, 성서유니온 펴냄, 280쪽 [도서정보보기]
사람은 상처받은 순간보다, 그 뒤 오래도록 스스로와 불화하며 더 깊이 무너진다. 척 드그로트는 치유를 상처의 삭제가 아니라, 몸과 감정과 신앙의 균열 속에서 다시 자기 자신과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로 그리고, 치유를 위한 현명한 조언을 전한다.
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 옮김,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380쪽 [도서정보보기]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책 중에서 가장 널리, 부담 없이 읽히는 책이 새 옷을 입고 돌아왔다. 성경 앞에서 생겨나는 질문을 품고도 다시 읽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오히려 더 풍성한 읽기가 가능하도록 돕는 책이다. 새 옷을 입었으니 처음 읽는 이들뿐 아니라 이미 좋은 기억을 가진 분들의 재독도 권해보고 싶다.
친절히 차별하는 교회
권주은 지음, 오픈스토리 펴냄, 252쪽 [도서정보보기]
이주민 사역을 하는 저자가 교회의 익숙한 말과 관행에 스민 차별의 얼굴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단순히 이주민을 ‘품는’ 교회를 넘어 모든 구성원들이 차별없이 함께 결정하고 책임지는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지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가자 이후의 신학
미트리 라헵 · 그레이엄 맥기오크 엮음, 김승범 · 박선교 · 신재식 옮김, 오이쿠메네 펴냄, 632쪽 [도서정보보기]
홀로코스트 이후 신학에 거대한 전회가 일어났듯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가자의 학살을 통해서도 신학의 큰 변화가 필요하다. 가자를 성찰하고 팔레스타인 해방신학에 응답하는 여러 학자의 글을 모았다.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동원된 신학의 책임을 묻고, 거짓된 신화들을 깨뜨리는 첫걸음이 되면 좋겠다.
아우슈비츠에 나타난 하느님의 여성적 얼굴
멜리사 라파엘 지음, 한성수 옮김, 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 448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는 하나님의 부재를 고민하게 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신의 부재보다는 그곳에서 서로를 씻기고 먹이고 지켜낸 여성들의 돌봄 속에서 신의 얼굴을 찾아낸다. 관계와 돌봄을 통해 신과 인간성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묵직하고 도발적인 신학이다.
다음 책들은 출판사에서 증정받았습니다.
『유배지에서 만난 하나님』(복있는사람),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성경으로』(바람이불어오는곳), 『평신도의 재발견』(IVP), 『내면을 돌보는 일』(성서유니온)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
책을 보내주신 출판사의 마음에 감사드리며, 해당 책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이벤트 참여 링크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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