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한번잡솨봐

60호: 성경과의 적당한 거리를 찾아서 🔭

청어람 신간 모니터링 요원 박현철 님의 큐레이션 🐿️

2026.08.31 | 조회 3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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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가깝게 지내던 사람과 어색해진 적 있으시지요. 그 사람을 뜨겁게 사랑하기라도 했다면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잘 지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요즘 여러분은 성경과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혹시 성경이 결별한 애인처럼, 서먹해진 친구처럼 느껴지시는 분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이번 호 ‘틈’은 한때 성경과 열렬한 사이였지만 더는 전과 같지 않은 분들을 생각하며 꾸려 보았습니다. 허수경 시인의 「혼자 가는 먼 집」에 나오는 문장처럼 성경을 “끝내 버릴 수도 무를 수도 없는” 분들께 보내는, 정직하고 정성스러운 큐레이션을 살펴보아 주세요. 여러분만의 적당한 거리를 찾게 되실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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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레이터 : 박현철 | 청어람 신간 모니터링 요원


Q. 안녕하세요, 얼마 전 청어람에서 <서먹한 성경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을 보았습니다. ‘성경을 완전히 떠나고 싶지는 않지만, 이전에 가졌던 방식의 믿음을 지속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표현하신 대목이 정말 제 상황을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성경이 믿어지기보다는 의심과 의문이 늘어갑니다. 예전에는 신앙으로 덮어두었던 질문들이 이제는 자꾸 고개를 듭니다. 그렇다고 성경을 떠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여전히 제 삶의 뿌리이고, 저는 여전히 그 말씀 앞에 서고 싶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무조건 믿는 방식으로 더 이상 돌아갈 수 없을 뿐입니다. 사랑했던 책과 서먹해진 채로, 어떻게 다시 그 책 앞에 설 수 있을지, 선배들의 경험과 지혜가 담긴 책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저희 <서먹한 성경학교>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질문을 읽으며 저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저 역시 성경을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성경은 제 삶의 오래되고 단단한 뿌리이고, 여전히 소중하게 읽고 싶은 책입니다. 그래서 일부러 더 성경 가까이에 있으려고 합니다. 매일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청어람에서 ‘성경 함께 읽기 챌린지’나 ‘성서일과 원정대’ 같은 프로그램을 이어가는 마음도 그렇습니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열심히 읽는다고 성경과의 서먹함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더군요. 오히려 어떤 부분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서먹함이 더 선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저는 아버지나 왕으로 표현되는 ‘하나님 상’과 서먹함을 느낍니다. 과도해 보이는 선민주의나 그 울타리에서 배제된 사람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가해지는 폭력의 문제도 해소하지 못하고 있고요.

신학자 마커스 보그는 사람들이 성경과 신앙을 대하는 과정을 ‘전비평적 순진성-비평적 단계-후비평적 순진성’으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모두가 반드시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한다거나, 마지막 단계에 도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다만 한 번 비평적인 질문을 통과한 사람이 이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후에는 성경 읽는 법을 다시 고민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처음부터 새롭게 배워야 할 지도 모릅니다.

아래에서 소개할 책들은 제게 모든 문제의 답을 준 책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질문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성경 본문의 세계와 제가 사는 세계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준 책들입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 그 간격 자체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멀어져 다시는 말을 걸 수 없는 것도 곤란하지만, 아무 거리도 없이 성경의 문장을 곧바로 하나님의 뜻과 동일시하는 것 역시 위험할 수 있으니까요. 성경과도 ‘적당한 거리’를 갖는 일이 필요합니다.

 

성경 너머로 성경읽기

피터 엔즈 지음, 노동래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356쪽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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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것은 피터 엔즈의 책입니다. 청어람에서 <서먹한 성경학교>를 기획하게 된 데에는 사실 피터 엔즈의 영향이 컸습니다. 최근에 번역된 『하나님이 커브볼을 던지실 때』(새물결플러스 역간)도 좋고, 『확신의 죄』(비아토르)도 좋습니다. 모두 자신의 경험과 연구, 성경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모아서 읽기 쉽게, 하지만 묵직하게 쓴 책들입니다. 특별히 이 책에서 엔즈가 직격해 비판하는 것은 성경 자체보다 성경을 어떻게든 ‘방어해야 한다’는 강박입니다. 엔즈는 그런 방어의 강박이 오히려 성경을 읽지 못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는 가나안 정복의 폭력, 서로 다른 역사서와 복음서의 차이 같은 대표적인 성경의 문제들을 에둘러 감추지 않고 정직하게 들여다볼 것을 제안합니다. 성경의 여러 문제들을 ‘없다’고 회피하지 말라는 것이죠. 엔즈는 그 문제들을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하되 낯설고 불편한 것은 정직하게 받아들이라고 권합니다. “성경을 우리의 끊임없는 기대들에 정렬시키고 그것이 의도하지 않은 어떤 것으로 만들려고 애쓰는 것은 경건한 신앙의 행위가 아니다. … 이는 두려움이자 내적 동요의 거울이며, 우리가 실제로는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을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는 경고 신호다.” 결국 엔즈가 강조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책이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마주하면서도, 우리가 여전히 성경을 ‘신뢰하며’ 읽을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칸앤메리 옮김,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404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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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소개할 책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책입니다. 엔즈가 성경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서 한 걸음 물러서고 적절한 거리를 만드는데 도움을 준다면, 에반스는 그 거리를 차갑고 서먹한 거리로 남겨두지 않고 다시 친밀한 관계로 만들어가는 법을 보여줍니다. 에반스는 창세기를 현대 과학 교과서와 경쟁시키는 것이 아니라 ‘유배의 정체성’을 통해 읽어내고, 출애굽 이야기가 흑인 노예 공동체와 해방신학에서 어떻게 읽혔는지를 살피며, 여호수아의 전쟁 이야기가 식민주의를 정당화한 역사도 외면하지 않습니다. 욥기에서는 고난 앞에서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않는 지혜를 찾고, 요한계시록에서는 미래를 맞히는 암호가 아닌 제국에 맞서는 저항의 언어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유대교의 미드라시 전통을 적극 활용하는데, 이를 통해 성경이 하나의 정답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며 다성적인 목소리들이 공존하고 긴장하는 책이라는 점을 잘 드러냅니다. 다른 책에서 에반스는 주로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길을 열어보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에반스가 던져 온 질문들이 단순한 반항이나 천방지축 같은 발상이 아닌, 성경을 정직하게 읽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에반스의 치열한 노력과 폭넓은 공부의 범위, 그리고 성경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보며 약간 놀라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김근주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184쪽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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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책을 읽고 나면 “그렇다면 성경은 결국 사람마다 각자의 기준대로, 마음대로 해석해도 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남을 수 있습니다. 이때 권하고 싶은 책이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입니다. 이 책은 성경 해석의 기본적인 원리와 원칙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나를 넘어선’다는 게 무슨 의미이고, 그것은 성경해석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일차적으로는 나 중심적 신앙을 넘어 사회적이고 공적인 신앙을 생각한다는 뜻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내가 이미 갖고 있는 생각’, ‘내 해석의 원리’를 넘어선다는 뜻으로 제목을 읽는 게 좋겠습니다. 성경을 내 생각과 세계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울타리와 굳어진 생각을 깨뜨리는 도구가 되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김 교수님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사람의 글’로 읽습니다. 그렇기에 역사적 배경과 문학적 구조, 편집과 배열을 살피는 비평적 읽기를 경건한 읽기와 대립시키지 않고요.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비평적 성경 읽기를 ‘성경을 의심하는 방법’이라기보다 ‘내 해석을 의심하고, 나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정말 본문을 읽고 있는지, 아니면 내 욕망을 읽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하며 성경을 읽는 것이지요. 얇지만 중요한 원칙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책입니다. 더불어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해석학의 원리를 차근차근 공부하고 싶다면 이상환 교수님의 『RE: 성경을 읽다』(학영)도 함께 권합니다. 이 두 권의 책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할 성경 해석의 원리들을 충실히 알려줍니다.

 

세계관적 성경읽기

전성민 지음, 성서유니온 펴냄, 200쪽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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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왔다면 이제 본문에서 독자로 시선을 조금 옮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본문에는 역사적·문화적 맥락이 있는데, 읽고 있는 나에게는 그러한 맥락이 없을까요? <서먹한 성경학교>에서 강의해 주시기도 했던 전성민 교수님의 『세계관적 성경읽기』는 우리의 콘텍스트를 안고 다시 성경 텍스트를 읽는 시도입니다. 이 책은 사울, 에스더, 하와, 바울 같은 익숙한 인물을 읽으면서 혐오와 환대, 여성, 중심과 경계, 공적 신앙, 평화 같은 오늘의 질문을 본문 안으로 가져옵니다. ‘기독교 세계관’의 지향이 중심이 아니라 경계로, 대결이 아니라 대화로, 혐오가 아니라 환대로, 무엇보다 평화로 옮겨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성경을 있는 그대로 읽는다’는 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세계관을 갖고, 어떤 맥락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지, 읽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투명한 독자로 성경을 읽을 수 없습니다. 특정한 시대와 사회, 교회와 정치적 환경, 성별과 계층과 경험 안에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독자로서 지금 우리의 자리를 돌아보고, 그 자리 위에서 어떻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줍니다.

 

성서, 역사와 만나다

야로슬라브 펠리칸 지음, 김경민·양세규 옮김, 비아 펴냄, 420쪽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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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는 성경을 읽는 방법이나 원칙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이라고 부르는 이 책 자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을 골랐습니다. 개신교인으로서 성경을 대할 때 우리는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존중합니다. 문제는 때때로 성경의 권위를 특정한 문자적 독법이나 무오성의 관념과 동일시 해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를 둘러싼 질문은 사실 성경이 어떤 책인지에 대한 질문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성경의 형성사, 문화사, 영향사를 살피는 책들은 단순히 역사적 지식을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독자로 하여금 성경의 권위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해 줍니다. 그중에서도 야로슬라브 펠리칸의 『성서, 역사와 만나다』는 방대하지 않으면서도 매우 흥미롭게 구성된 책입니다. 펠리칸은 구전에서 시작해 히브리어 성서와 칠십인역, 유대교의 해석 전통, 신약 정경의 형성, 가톨릭·정교회·개신교의 서로 다른 정경, 인쇄술과 종교개혁, 자국어 번역, 근대 성서비평을 거쳐 성경이 우리 손에 도착하기까지의 긴 역사를 따라갑니다. 지금 손에 든 한 권의 성경 뒤에는 성경을 기록하고 편집하고 선별하고 번역하고 해석해 온 수많은 공동체의 역사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책’이라는 것을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성경의 권위에 대한 우리 생각도 교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책 중에 가장 분량이 많지만, 어쩌면 이 책이 가장 흥미롭고 얻는 게 많은 책일 수도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각각 특징이 분명한 책으로 존 바턴의 『성서의 역사』, 브루스 고든의 『성경의 세계사』도 있으니 관심이 생기신다면 더 읽어보셔도 좋겠습니다.

 

5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성경과의 서먹함은 반드시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좋은 관계가 그렇듯 성경과의 관계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한 걸음 물러나 이 책이 어떤 책인지 바라보고, 다시 다가가 오래 읽고, 때로는 질문하고 반박하면서도, 이 오래된 이야기가 여전히 내 삶을 흔들 수 있도록 곁을 내주는 거리 말입니다.

성경이 서먹해졌다고 해서 너무 조바심내거나 예전처럼 아무 거리 없이 믿는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느끼는 답답함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기에 가까웠던 관계에서 질문하면서도 곁에 있는 관계로 성숙해져 가는 중의 진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서먹한 가운데서도 성경과 오래 대화하고 씨름할 수 있는 진지한 관계가 아닐까요?


여름의 끝과 가을의 시작이 맞닿는 9월이 코앞입니다. 일상의 틈마다 선선한 바람을 닮은 작은 쉼이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 호에서 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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