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화는 또렷한 선언으로 시작되기보다는 마음 한켠에 남아 있던 작은 불편함을 다시 들여다보는 데서 시작되곤 합니다. 이번 인터뷰에선 순례를 지나며 스스로 무대를 만들고, 삶의 선택들을 다시 돌아보는 의민님을 만났습니다. 조용하지만 진지하게 자신의 방향을 다시 세워가는 의민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될지 몰라요. 우리에게 알고도 미뤄두었던 불편함이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그 불편함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질문 끝에 여러분이 택한 작은 선택을 응원합니다! 오늘의 이야기도 즐겁게 읽어봐 주세요.

유미(유) : 자기소개해주세요!
의민(민) : 안녕하세요! 신의민이라고 합니다. 옳을 의(義)에 옥돌 민(珉), 모든 것에 대해 견고한 진정성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뜻의 이름이고요. 이름대로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 현재 한국선교사자녀교육개발원(KOMKED)이라는 단체에서 미디어 분야로 일을 하고 있어요. 본업은 그래도 바이올리니스트라고 꿋꿋이 말하고 다니는 중입니다. 뭐가 됐든 나름대로 즐거운 자취 생활을 하고 있는 청년입니다. 아, 그리고 청어람을 좋아합니다.
유 : 사랑을 받고 있는 청어람이군요!
의민님이 청어람과 함께하는 대림절 묵상 순례에서 “올해의 도전”으로 “도전을 하는 것에 도전하기”를 꼽아주셨던 게 기억나요. 그 도전의 일환으로 연주회를 위한 대관을 하고, 그 날짜를 기준으로 개인 음악회를 준비해보겠다고 하셨던 것도요. 그리고 얼마 전, 그 연주회를 실제로 여셨죠. 그날의 순간을 조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특히, 그 자리에 서 있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가장 자주 마주했던 감정은 무엇이었는지도 궁금해요.
민 : 도전하겠다는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으면서도, 동시에 부담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아요. 물론 좋은 부담이요. 그 부담 덕분에 더 추진할 용기도 생겼던 것 같고요.
저는 만 여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과 함께해 왔습니다. 미국에서 유학을 마친 후, 한국에서는 연주할 기회를 찾기가 쉽지 않았어요. 특히 음악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을 하다 보니 더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고요. 그래서 올해의 도전을 연주회를 여는 것으로 결심했습니다. 그 연주회가 지난 3월 7일이었어요.
이번 연주회는 ‘새벽’이라는 주제로 준비했습니다. 새벽과 관련된 곡들, 그리고 새벽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과 그림들을 함께 엮어가며, 음악을 들으러 오실 분들과 함께 공유하게 될 그 시간을 떠올리며 정말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던 것 같아요. 직장 생활을 하면서 준비하는 거라 원하는 만큼 충분히 연습과 준비를 하진 못했어도, 틈날 때마다 준비하던 순간들이 저는 참 즐거웠던 것 같아요.
연주회 당일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 주셔서 굉장히 신나고 감사했어요. 연주회를 준비하는 기간도 즐거웠지만, 제가 무대에서 곡을 설명하고 연주를 이어가며 느꼈던 관중들과의 호흡, 공감, 그리고 그 공간의 공기를 함께할 수 있었던 특별한 순간이었어요.

유 : 도전을 결심한 계기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공연이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바이올리니스트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 공연의 어떤 순간이 의민님을 움직이게 했는지 궁금해요.
민 : 미도리 고토라는 바이올리니스트의 공연이었는데요. 어린 시절부터 그분의 연주를 듣곤 했어요. 저는 시기마다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있었는데, 사실 미도리 씨는 그중 한 명은 아니었어요. 나중에 그분의 바흐 연주 음반을 들으며 잔잔한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 작년 가을, 미도리 씨의 내한 공연 소식을 듣고 처음으로 실황 연주를 들을 기회가 생겼어요. 어린 시절에는 화려하고 압도적인 연주자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곤 했었는데요. 이번 공연을 통해 제가 좀 바뀌었다고 느껴졌어요. 그녀의 세월이 담긴 절제된 소리, 그 안에 내재된 아름다움, 그리고 과장되지 않으면서도 신선하고 맛있는 해석을 넋을 잃고 들었던 기억이 나요. 그녀의 연주를 들으면서 연주를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결심했죠. 기회가 오길 기도하거나 기다리기보다, 그냥 해야겠다고요.
유 : 음악 이야기를 조금 더 이어서 여쭤보고 싶어요. 의민님에게 바이올린은 어떤 의미인가요? 혹시 연주를 하거나 음악을 가까이하는 순간이 의민님의 신앙과 맞닿아 있다고 느껴질 때도 있는지 궁금해요.
민 : 음악을 어릴 때부터 해오다 보니, 어떻게 보면 바이올린은 저의 성장 과정을 부모님 이외에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존재인 것 같아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제 안의 무언가를 가장 잘 표현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고요. 음악을 할 때만큼 몰입하는 일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렇게 몰입할 때의 제 모습이 가장 저답다고 느껴지기도 하고요.
신기하게도, 그렇게 음악을 하며 가장 저답게 연주할 때, 그 음악이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리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정말 기쁨을 느껴요. 그리고 그런 순간들을 창조주 또한 기뻐하실 거라고 믿어요. 음악을 배우고 연주해 온 여정 가운데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을 떠올려 봐도, 음악과 제 신앙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느껴져요.
유 : 올해 사순절을 맞아 청어람과 함께 채식순례를 참여하셨는데요. 돌이켜보면, 중요한 절기마다 청어람과 함께하고 계신 것 같아요. 역시 청어람을 좋아하시는 의민님 입니다.(웃음) 이번 순례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해요.
민 : 저는 학부 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는데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비건’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어요. 당시 인기가 많으셨던 비건 철학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 수업을 들으면 비건이 안 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분 수업을 일부러 피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저도 첫 해에는 용기를 내지 못했고요. 2학년 때, 그 수업을 용기 내어 듣게 되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동물권’이라는 개념을 접했고, 믿기 어려울 만큼 잔인하고 암울한 방식으로 고기가 생산되는 과정을 다양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더 이상 고기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게 되었어요. 친구들의 이야기처럼 수업을 듣는 중에 비건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약 2년 정도 비건 지향을 유지하며 지냈어요.
미국에서는 제 주변에도 이미 비건인 분들이 꽤 있었고, 어딜 가든 웬만하면 매력적인 선택지들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비건으로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반면 한국에서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선 ‘비건’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직은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많고, 어쩌면 약간의 거리감이나 부담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선뜻 비건으로 살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이번에 다시 비건을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들이 느끼는 아쉬움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아요. ‘이제 같이 치킨 먹으러 못 가겠네’, ‘고깃집도 함께 못 가겠네’ 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함께 나누던 어떤 일상이 하나 사라진 느낌을 서로 받는 것 같았어요. 특히 한국은 음식을 함께 나누는 문화가 강하다 보니, 그런 변화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명절에는 또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지…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되겠죠.
유 : 저는 알레르기가 있어서 돼지고기를 먹지 못 하는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여름 수련회에서 불을 피우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이 큰 즐거움인데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즐거움들이 많아!” 하고 답하면서도 ‘저 아쉬움을 내가 왜 달래줘야 하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웃음)
말씀하신대로 한국에서 비건지향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아쉬운 소리를 듣고 미안한 마음을 느껴야하는 일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결심하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민 : 순례를 하면서 계속해서 드는 생각이 있었어요. ‘나는 한때 고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어 비건 지향을 실천하며 살던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왜 다시 고기를 먹고 있는 걸까. 그리고 언제까지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그 불편함과 주저함을 외면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요.
순례 중에 『아무튼, 비건』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작가가 비건이 된 이유와 비건 지향적인 삶을 지켜 나가는 여정, 그리고 실질적인 팁들을 읽으면서 그 선택이 더 이상 막연한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것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부담도 있었지만, 동시에 용기도 생겼고요.
원래는 순례를 마친 뒤에 비건을 다시 시작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책을 읽다 보니 더 이상 비건이 아닌 상태로 이 책을 계속 읽어 나갈 수는 없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 책 읽는 것을 멈추거나, 아니면 비건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유 : 이번 채식 순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 한 끼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그 한 끼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민 : 채식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걸 제 주변에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해 초에 저장해 두었던 ‘고사리 익스프레스’라는 비건 레스토랑을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함께 간 친구들은 비건 지향은 아니었지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친구들이어서 ‘미안한’ 마음 없이 같이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라 오픈런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린 끝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
여러 메뉴를 시켜 나눠 먹었는데요. ‘고사리 익스프레스’라는 이름 때문에 모든 음식이 ‘고사리 고사리’ 하겠다고 생각했는데, 각각의 메뉴가 전혀 다르면서도 하나의 흐름과 이야기가 느껴지는 맛이었어요.
서로 너무 감탄하면서 먹었던 기억이 나요. 식사 시간의 일부를 먹방처럼 영상으로 남겨 두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모두가 정말 즐거워하며 먹고 있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맛있는 비건 식당들이 더 많아져서, 비건 지향이 언젠가는 특별한 선택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 되는 세상이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

유 : 채식 순례에 여정 가운데 달뜨는 보금자리(소 생추어리) 방문도 있었어요. 꽃풀소를 만난 순간이 의민님에게 어떻게 남아있나요?
민 : 일단 보금자리(생추어리)라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그곳을 방문해 달뜨는 보금자리의 여정에 대해 듣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마음에 감동이 있었어요. 고기로 여겨지던 소들이 생명으로 존중받고 구해지는 이야기가 뭔가 복음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소들을 ‘마리’라고 칭하는 게 아니라 ‘명’이라고 칭하는 걸 저는 그때 처음 들었어요. 동물도 한 생명인데, 너무나 당연한 사실임에도 그 말을 듣고 놀라는 제 자신이 뭔가 부끄럽기도 했고요.
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깜짝 놀랐어요. 제가 상상했던 크기보다 훨씬 컸거든요. (유: 맞아요! 공룡 같았어요!) 그 생명으로 가득 찬 몸을 가진 꽃풀소들의 눈을 바라보며, 내가 어찌 이들을 이전에는 고기로 바라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보금자리에서 누리는 시간들을 더 많은 소들과 동물들이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가 나눔을 하는 시간에 한 아이가 했던 질문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이 소들은 언제 자연으로 풀어 주냐고 묻더군요. 저는 이곳 보금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는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질문을 듣고 다시 한 번 놀랐던 것 같아요. 그렇지, 이들이 진짜 원하는 자유는 뭘까. 그리고 그 자유를 과연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날이 올까.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겠지만, 저는 그 질문을 들으며 오히려 더 분명해졌어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선택과 행동이 동물과 환경을 위한 변화로 이어지고, 그 자유에 조금 더 가까워지게 하는 작고도 큰 움직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 : 우리의 작은 선택이 큰 움직임이 된다는 의민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조금 더 넓은 질문을 드려보고 싶어졌어요. 의민님은 일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언제 가장 실감하시나요? 의민님의 어떤 작은 선택들이 궁금해요.
민 :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할 때인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는, 제가 사랑하기 힘든(싫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할 때, 그리고 크고 작은 선택 속에서 내 유익보다는 타인과 힘없는 이들의 안녕을 택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할 때요. 살아가다 보면 당연히 나와 생각과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부대끼며 지내야 할 때가 많아요. 그럴 때 저는 본능적으로 나를 지키고 싶고, 때로는 그들을 밀어내고 바꾸고 싶어져요. 그럴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그리스도인이라면 결국 누구를 대하든 사랑과 겸손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예수님이 몸소 보여주셨잖아요.
또 비건 지향적인 삶을 결심하면서, 동물뿐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제 주변의 힘없는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내가 할 수 있는 자리에서 고민하고 선택하며 행동할 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더 선명하게 실감하게 되는 것 같아요.

유 : 보통 이런 질문은 연말이나 새해에 많이들 하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의 새해는 부활절부터 시작될 수 있는 것 아닌가(?)하는 이상한 주장을 해보며 의민님이 2026년에 또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지 질문해보고 싶어요.
민 : 도전인지, 소망인지, 아니면 그 중간 어딘가인지도 잘 모르겠는데요. 남은 2026년에는 함께 예술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친구들, 동료들을 만나고 싶어요. 지난 3월에 한 연주는 독주회였는데, 그 나름대로 즐겁고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함께 연주하고 기획하는 과정을 더 좋아하거든요.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그래서 예술가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남은 올해의 가장 중요한 도전이 될 것 같아요.
유 : 인터뷰의 마지막 순서는 의민님의 신앙 소스리스트*를 들어보는 시간입니다. 의민님의 신앙여정에 영향을 준 세 가지의 소스리스트를 들려주세요. 소스는 책이 될 수도 있고, 음악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소스 리스트는 2021년 1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미공작소의 오프라인 문학 행사의 이름입니다. 소스 리스트에서 호스트 작가는 자신의 첫 시집 혹은 첫 소설집 탄생에 영향을 준 영감의 원천 열두 가지를 '소스 리스트'라는 이름으로 소개를 해요.)

첫 번째는 C. S. Lewis의 『나니아 연대기』입니다. 어린 시절, 서재에서 우연히 『마법사의 조카』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당시에는 아직 나니아 연대기가 한국에서 널리 알려지기 전이었던 것으로 기억해요. 아마 영화가 나오기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책을 읽고 나니아라는 세계와 아슬란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 세계를 제가 그려온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의 모습과 겹쳐 생각하며, 제 신앙 여정을 걸어온 것 같아요.

두 번째는 On Being이라는 팟캐스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절, 미국에서 거의 매일 듣던 프로그램이에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삶과 지혜를 나눕니다. 이 팟캐스트는 어떤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만들어 주기보다는, 살아가며 마주하는 슬픔, 어둠, 아름다움, 혼란 같은 다양한 감정과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과 신앙 자체를 바라보는 저의 굳어 있던 마음을 부드럽게 풀어 주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는 양초입니다. 저는 미국 Calvin University에서 공부했습니다. 작고 보수적인 기독교 학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물론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다양한 배경과 국적, 인종, 성적 지향,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었어요.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밤을 지새우며 나눴던 대화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여전히 비슷한 질문들로 고민하며 씨름하고 있지만, 그때의 대화들이 제 신앙과 삶의 방향을 깊이 형성해 주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항상 방 안에 밝은 불을 끄고 대신 양초나 잔잔한 램프를 켜고 이야기하던 기억이 나는데요. 그 조명만이 주는 대화의 몰입과, 세상 걱정과의 일종의 단절을 즐겼던 것 같아요. 여러분도 한 번 친구들과 형광등 대신 양초 한두 개나 잔잔한 조명으로 바꿔 대화를 나눠보시면 재미있는 경험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잠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도 그것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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