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달은 좋은 신간이 많았습니다. 덕분에 책을 고르고, 내용을 살피며 소개글을 쓰는 데도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신간 목록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내 관심이 지금 어디를 향하는지, 내가 어떤 질문을 붙들고 어떤 답을 찾는지 그제야 알아채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번에는 고르고 보니 제가 '대화'를 꽤 필요로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이, 의심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이,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사람이 한 자리에 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일. 쉽지 않으나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호에 소개하는 신간은 모두 그 대화의 가능성을 조금씩 다른 방향에서 탐색합니다. 이 책들이, 또 이 소개가 여러분께 건네는 대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계를 살다
에스더 드발 지음, 이민희 옮김, 비아토르 펴냄, 19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경계에 서는 일은 어렵다. 현실에서의 경계는 지도에 그어진 선처럼 선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야 할 지점을 찾는 것부터가 지난한 서성임이 되곤 한다. 그러니 경계를 서성이는 사람에게는 더 많은 자원과 격려가 필요하다. 이 책은 그런 사람을 위한 고마운 격려가 될 것이다. 켈트 기독교와 베네딕트 수도 영성을 탐구해 온 저술가 에스더 드발은 경계와 문턱에서만 누릴 수 있는 거룩과 은총을 아름답게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경계 경험을 공감 가는 방식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열려 있는 존재, 안팎의 문턱에 서 있지만 양쪽에 심겨 있는" 경계적 존재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다. 이 작지만 풍성한 책은 항상 불확실하고 흐릿해 보이던 내 자리를 단단하게 인식하게 했고, 주변 풍경도 또렷하게 보게 해 주었다. 저자의 앞선 책들(『켈트 기도의 길』, 『성 베네딕도의 길』)이 설명하는 책에 가까웠다면, 이 책은 동행하는 책이다. 저자가 그런 독자를 특별히 염두에 두지는 않았겠으나, 개인적으로는 교회를 떠나지도, 완전히 머물지도 못한 채 경계에 서 있는 사람에게 좋은 동행이 되는 책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경계를 서성이는 사람, 격려와 동행이 필요한 사람으로서 이 책과 오래 함께할 것 같다.
내가 떠난 이유 내가 남은 이유
바트 캠폴로, 토니 캠폴로 지음, 노종문 옮김, 비아토르 펴냄, 24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출간 전에 추천사를 부탁받아 먼저 읽고, 꽤 오랫동안 여러 생각으로 머물러 있는 책이다. 내가 이미 쓴 추천사보다 소개를 더 잘 쓸 수 없을 것 같아 추천사를 그대로 싣는다. 이하 추천사 전문.
’기독교-이후 Post-Christianity‘를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다. 열심이던 누군가가 신앙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혀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그런 이와 서로 존중하며 이야기할 수 있는 능력이 간절하다. 서구의 기독교로부터 우리가 여전히 배울 것, 혹은 함께 찾아가야 할 것이 있다면 그런 ’기독교-이후' 시대를 위한 대화와 공존의 지혜일 것이다. 이 책은 신앙과 삶을 사이에 둔 부자간의 대화다. 아들은 떠나서 질문을 던지고, 아버지는 남아서 지키려 한다. 하지만 탁월한 복음주의자였던 아버지의 명성 때문에 이 책이 신앙에 대한 변증서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란다. 토니와 바트의 정중하면서도 진심 어린 대화에 편견 없이 귀 기울이고 함께 고민해보라. 누구의 이야기가 더 정합적이고 공감할 만한지, 누구의 비전이 더 나은 사회를 그리고 있는지 진지하게 따져 보라. 그 고민이야말로 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내가 떠난 이유와 내가 남은 이유를 각자 설명할 뿐 아니라 ’네가 떠난 이유‘와 ’네가 남은 이유‘를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깊어지고 조금 더 다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하는 일도 대화 뿐이다. 이 책은 그 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기독교-이후 시대에도 여전히 우리가 더 나은 신앙과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하느님을 잊은 그대에게
파울 M. 쭐레너 지음, 김기철 옮김, 생활성서사 펴냄, 248쪽 [도서정보보기]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이라는 말이 트렌드가 된 지도 제법 되었다. 한국 교회는 이 현상을 미국 복음주의의 언어로 받아들여, 선교 전략과 부흥 운동으로 돌파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하지만 SBNR의 핵심은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겪는 세속화-탈세속화의 흐름에 있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의 변화를 읽어내고 그에 맞춰 교회의 갱신과 변화를 모색하는 데 좀 더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세속화를 더 오래, 더 깊이 겪어온 유럽, 특히 가톨릭의 논의를 참고하는 것은 충분히 의미 있다.
파울 쭐레너는 사목신학(목회신학)을 가르치며 유럽의 종교 지형과 교회 갱신을 연구하고 왕성하게 발언해 온 가톨릭 사제다. 그는 오늘날 유럽이 무신론 사회라는 통념을 거부하며 신을 잃은 것이 아니라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보자고 교회와 사회 모두에 질문을 던진다. 또한 전쟁, 기후 위기, 이주민의 고통으로 비틀거리는 세계에서, 교회가 그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열정에 함께 뛰어들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며 교회의 갱신과 변화를 향한 진지한 제안을 내놓는다. 짜임새 있는 단행본이라기보다 짧은 칼럼 모음에 가까운 형식이지만, 수십 년의 경험과 고민을 담은 글은 묵직하다. 가톨릭 교회를 염두에 두고 가톨릭 출판사에서 펴낸 책이라 개신교 독자에게 낯선 대목도 있다. 그러나 세속화의 현실을 정직하게 직면하고 그에 맞는 교회 갱신을 고민하는 노신학자의 통찰은, 오늘 우리에게도 충분한 참조점이 된다.
메노나이트 평화신학
존 리처드 버크홀더, 바버라 넬슨 깅그리치 엮음, 김성한 옮김, 생각비행 펴냄, 32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메노나이트는 종교개혁사에서 '급진 종교개혁'으로 분류되는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 전통을 따르는 교파로, '평화'를 교회의 이상으로 삼는다. 이 책은 메노나이트 안에 있는 평화에 대한 여러 입장을 정리한 일종의 자료집이다. 같고도 다른 형식을 지닌 10개의 입장이 평화에 대한 다양한 이해와 희망을 보여준다. 정당전쟁론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래서 전쟁이 그치지 않는 현실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유용하고 희망찬 책이다.
이 책을 평화신학의 입문서라고 권하려는 게 아니다. 솔직히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번역자의 서문 때문이다. 번역자 김성한 대표는 첫 책으로 아나뱁티스트의 대표적인 평화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 문제를 다룬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IVP)을 썼다. 부정의 언어로 첫 책을 써야 했던 괴로움을 털어놓으며,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요더의 정치학이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아나뱁티스트-메노나이트를 중심으로 한 평화교회 전통과 거기에서 형성된 평화신학(들)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이 책은 보여준다." 부정과 긍정을 동시에 응시하는 그 자리에 평화의 좁은 길이 있지 않을까. 그 고민에 함께하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평화는 너무나 험난한 이상이지만, 포기할 수 없는, 포기하지 말아야 할 길이니까.
바울의 다문화 감수성
권주은 지음, 오픈스토리 펴냄, 158쪽 [도서정보보기]
한국에 체류하는 이주민이 260만(총 인구 대비 5%)에 달하고, 이미 여러 지표상 다문화 사회로 진입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에는 '단일민족 신화'가 여전히 강하게 작동하며, 교회의 이주민 사역에서도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며 이주민을 선교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 점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나 한국 교회 안에는 오래전부터 이주민 사역을 전개하며 성숙한 담론을 발전시켜 온 이들도 있다. 『바울의 다문화 감수성』은 그 결실 중 한 권이다. 신약을 전공하고 실제로 다문화 교회를 꾸리는 목회자가 현장의 경험과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다문화 시대에 교회가 갖추어야 할 본질을 논하는 책이다. 이주민에게 진정으로 다가서려 한다면, 사역 방향이나 프로그램 일부를 조정하는 수준으로는 부족하다.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처음부터 다시 묻고, 다문화 시대에 걸맞은 감수성과 존재 방식을 새로 빚어야 한다고 이 책은 역설한다. 사역의 방법론이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건드리는 책이다.
한 줄 보태는 책들
몇가지 책을 단평으로 소개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욕망이라는 선물
A. J. 스워보다 지음, 정옥배 옮김, 이레서원 펴냄, 332쪽 [도서정보보기]
‘욕망’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걷어내고 솔직하게 직면할 수 있게 도와주는 책이다. 금욕도 방종도 아닌 제 3의 길, ‘욕망의 방향 전환’을 제안하는 실천적 욕망신학이다. A.J 스워보다라는 저자 이름도 기억해 둘 만하다.
무신론자 아버지vs신학자 아들
그레고리 A. 보이드, 에드워드 보이드 지음, 정옥배 옮김, 비전북 펴냄, 312쪽 [도서정보보기]
기독교 국가라는 신화
그레고리 A. 보이드 지음, 정병준 옮김, PCKBOOKS 펴냄, 288쪽 [도서정보보기]
미국의 인상적인 신학자 그레고리 보이드의 책 두 권이 복간되었다. 『기독교 국가라는 신화』는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시리즈 설교로 이전에 『십자가와 칼』로 번역되었었다. 『무신론자 아버지vs신학자 아들』은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그레고리 보이드의 대답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변증서로 『어느 무신론자의 편지』로 번역되었었다. 둘 다 오래된 책이지만 많이 읽히지 못해 아쉬웠던 책인데 복간되어 반갑다.
성서와의 대화 - 마르코복음
마커스 J. 보그 지음, 박경준 옮김, 성공회출판사 펴냄, 198쪽 [도서정보보기]
마커스 보그의 책이라 일단 무조건 구입했는데, 꼭 보그의 책이 아니라도 이 ‘성서와의 대화’ 시리즈는 교회의 성경공부 교재로 유용해보인다. 진보적 기독교(Progressive Christianity)가 성서를 어떻게 읽는지, 그러면서도 전통적 기독교와 어떤 접점을 갖는지를 잘 보여준다.

죽음, 부활을 품다
김호경 지음, 뜰힘 펴냄, 104쪽 [도서정보보기]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빈 무덤 앞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 그들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부활을, 아니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얇은 책이다. 김호경 교수 특유의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가 잘 담긴 매력적인 책이다.
어느 수도자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 베유 지음, 이창실 옮김, 복있는사람 펴냄, 156쪽 [도서정보보기]
시몬 베유는 노동운동가, 레지스탕스이자 철학자로 일반 독자들에게도 사랑을 받지만, 근본적으로 신과 씨름해 온 신앙인으로 읽을 때 가장 매력있다. 교리와는 거리를 두되 성서와 전례를 사랑하고 동경했던 베유의 서성이는 마음이 밀도 높게 담겨 있다. (이전에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로 번역된 책과 같은 책이다.)
가톨릭 신학 방법론 소개
프랜시스 쉬슬러 피오렌자 지음, 김지호 옮김, 도서출판100 펴냄, 224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고전부터 현대까지 ‘신학’이라는 학문이 가진 특징과 과제, 방법론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며 오늘의 신학이 선 자리를 점검하고 신학 탐구의 기초를 다지는 책이다. ‘가톨릭’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지만 개신교 신학에 적용해도 크게 상관이 없다.
쉽게 읽는 칼 바르트 교회교의학
마티 폴섬 지음, 윤상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448쪽 [도서정보보기]
‘언젠가 바르트를 읽어 보리라’ 혹은 ‘바르트를 읽어야 하는데...’ 라는 부담을 가진 이들을 위한 좋은 우회로가 되는 책. 단순한 개요 소개를 넘어 충실한 요약과 해설이 덧붙여진 알찬 책이다. 다만 이 책도 무려 5권 시리즈라는 점은 함정. 끝까지 잘 번역되길 응원한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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