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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호: 당연함의 재구성 — 장애와 비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이의 이야기

한국 현대사를 장애의 관점에서 탐구하는, 연구자 박은영 님의 큐레이션 📣

2026.11.03 | 조회 4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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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한국 사회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편견 없이 대하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서로 만나고 대화하며 관계를 맺을 기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요. 장애에 대한 왜곡된 관점에서 비롯된 교회 안의 크고 작은 장애 혐오도 여전한 상황이고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 우정과 도움을 주고받는 동등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당연한 생각을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박은영, 『소란스러운 동거』) 세상에서 우리는 이 당연함을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을까요? 이번 호 〈틈〉에서는 ‘장애여성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 박은영 님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갈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될 다섯 권의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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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레이터 : 박은영 | 기독교인이자 장애여성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사람, 그 외에도 여러 정체성을 지닌 사람. 학교를 다니고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생활을 했을 뿐인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질문 세례에 시달려 왔다. 장애여성 동료들과 함께 장애여성학을 배우면서, 그 물음표들을 모아 세상에 되돌려 주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소수자만 다수의 사회에 조용히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두가 끊임없이 대화하며 서로에게 적응해 가는 공동체를 꿈꾸며 책 『소란스러운 동거』를 썼다. 사람의 사람다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이야기의 힘을 믿어 대학에서 국문학과 사학을 전공했고, 소설을 쓸 재능은 없는 것 같아 대학원에 진학해 역사학을 좀 더 공부했다. 30대 이후에는 한국 현대사를 장애의 관점에서 이야기해 보고자 자료를 뒤지며 글을 쓰며 살고 있다.

 

* 이번 호의 제목과 부제는 박은영, 『소란스러운 동거』(IVP, 2022)에서 빌려왔습니다.

 


 

Q: 장애 관련 보도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심각한 편견을 드러내는 말뿐 아니라 선의와 응원을 담은 말 속에도 차별과 편견이 배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 역시 그런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장애인의 일상을 잘 모르다 보니, 혹시 실수할까 봐 지나치게 조심스러워질 때도 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장애인이 경험하는 불편과 불이익을 함께 해결해 나가려면, 서로 자주 만나고 우정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일이 중요할 거 같아요. 이때 비장애인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특히 장애인과 만나고 대화할 때 비장애인이 기억하면 좋은 것들이 있을까요?

 

A: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야 할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난감해하곤 합니다. 가뜩이나 장애인은 말을 걸기 ‘조심스러운’ 사람으로 인식되는데, 제 대답이 어떤 식으로든 그 ‘조심스러움’만 더하고 역동적이어야 할 관계를 뻑뻑하게 고정시키게 될까 봐 주저되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좀 머뭇거리게 됩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장애는 관계와 공동체를 말하지 않고는 아예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인 것 같네요.

1960년대 이후, 장애는 신체적 특성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방식으로 구성된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산물’이라는 인식이 세계 곳곳의 장애인 공동체에서 태동했습니다. 예를 들면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을 ‘장애화’하는 것은 그의 신체적 특성이 아니라, 휠체어로 이동할 수 없는 계단과 턱으로 구성된 건물이나 거리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런 통찰을 하게 된 장애인들은 사회가 구성된 방식이 ‘장애(disability)’를 만들고 누군가를 ‘장애인’으로 분류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그들에게서 사회의 성원권과 사회적 기회를 박탈해온 역사를 증언하고 연구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장애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설정하는 시각은 결국 장애를 관계의 문제라고 바라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회 구조가 장애를 만든다’는 문장은 ‘사회가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집단과 개인이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도록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말이기도 하니까요. 사회적 관계와 제도가 장애/장애인이라는 개념 혹은 분류를 만들고 사회가 ‘정상’으로 설정한 것과 다른 신체적·정신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기회와 자유를 제한했다는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결국 장애에 관한 대화는 곧 사회 혹은 공동체에 관한 대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서설이 너무 길었지만, 그래서 이번에 저는 공동체에 대한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특히 서로 다른 몸과 특성을 지녔어도 누구나 동등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막상 낯선 타자와의 만남 앞에서는 걸음이 멈칫거려질 때, ‘다르지만 평등하다’는 명제를 구체적인 일상과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질 때 기대 봄 직한 책 몇 권을 가져와 보았습니다.

 

장애의 발명 - 산업화와 공공정책은 어떻게 장애인을 일터에서 밀어냈는가

세라 F. 로즈 지음, 김승섭 옮김, 동아시아 펴냄, 55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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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할 『장애의 발명』은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으로, 장애가 사회적 산물이라는 말의 의미를 미국의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책입니다. 종래에는 가족과 지역사회 가운데 한 명의 구성원으로 살았던 장애인들이, 19~20세기 산업화가 진행되고 삶의 조건이 변화함에 따라 어떻게 일터에서 배제되어 가고 ‘좋은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잃어 갔는지에 관한 역사를 풀어줍니다.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평범한 일터와 일상에 장애인 동료가 없는 상황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님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에 사회가 ‘경제적 효율’을 목적으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풍경임을 알아가게 됩니다.

 

가장 느린 정의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산하 지음, 전혜은·제이 옮김, 오월의봄 펴냄, 51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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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느린 정의』는 기존 장애 권리 운동이 백인, 중산층, 이성애자, 신체장애인 중심임을 비판하며, 인종, 계급, 젠더, 장애 등에 대한 다양한 억압과 능력주의에 대항하는 장애정의운동을 소개하고 그 정신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특히 천차만별의 역사와 온갖 취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역동적인 연대의 구체적인 장면을 다양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입니다.

“나 버스정류장에 있는데 너무 아파. 데리러 올 수 있어? 이봐, 나 20달러만 빌려줄래? 나갈 때 식료품점 좀 들러서 먹을 것 좀 사다줄 수 있니?…(61쪽)” 서로 다른 취약함을 가진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보는 일이 가능할까요? 사실 이 질문에 갈수록 더 머뭇거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지만 혼란과 갈등, 부담이 계속되는 중에도 서로의 다름, 취약함이 배제의 빌미로 이어지지 않도록 매일매일 길을 찾아내는 사람들을 책을 통해 확인하면서, ‘예’라고 대답할 수 있는 마음을 다시 한번 품어보게 됩니다.

 

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에이미 케니 지음, 권명지 옮김, 이레서원 펴냄, 304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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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소개한 장애정의(운동)를 교회에서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나는 내 몸에 대해서는 기도하지 않습니다』는 교회에서 작동하는 비장애중심주의와 능력주의를 시원하게 뒤흔들며, 하나님은 오히려 그분의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장애와 장애인을 등장시키셨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인 에이미 케니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교회가 장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고 그들을 통해 변화하지 않고는, 하나님나라를 제대로 맛보기 힘들 것이라고 확언합니다. 약함이 강함이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된 그 나라의 모습을 그려보기 원하시는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장애정의 책입니다.

 

책임의 생성 - 중동태와 당사자 연구

고쿠분 고이치로‧구마가야 신이치로 지음, 박영대 옮김, 에디토리얼 펴냄, 344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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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는, 인간은 늘 타인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뜻으로, 특히 그가 마주한 상대 혹은 상황에 응답해야 할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라고 풀이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책임의 생성』은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소아과 의사로서 당사자 연구를 수행하고 이끌고 있는 구마가야 신이치로와 『중동태의 세계 – 의지와 책임의 고고학』의 저자이기도 한 철학자 고쿠분 고이치로의 대담집입니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중동태의 상황을 강조하는 철학자와, 환청, 우울, 감각과 운동 기능의 손상 등의 ‘일탈적 특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장애인들이 동료 혹은 사회와의 관계를 조정해 나가며 그 과정을 스스로 연구하는 방법론인 ‘당사자 연구’를 수행하고 자문해 온 연구자의 대담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책임 개념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그들은 개인의 능동적 의지와 선택이라는 개념이 인간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인간은 생각보다 의지대로 움직이기 힘들며, 외부의 영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은 능동과 수동의 중간 상태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지요. 두 사람은 이러한 인간의 실제적인 조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상대에게 응답하는 책임’에 대한 새로운 사유로 우리를 이끕니다.

 

지적장애인의 삶과 유산

Kenneth D. Keith ‧ Heather E. Keith 지음, 박승희·김유진 옮김, 학지사 펴냄, 264쪽 [도서정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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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철학자들은 지적 장애인들을 도덕적 능력이 결여된 존재라고 여겼으며, 때로는 그들이 인간인지 여부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까지 했습니다(34쪽). 실제로 그들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치부되어 시설에 격리된 채 살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장애 권리 운동의 진전으로 지적 장애인이 좋은 삶을 살아갈 권리,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시민권을 누릴 권리가 인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지적장애인의 삶과 유산』은 지역사회에서 성장하고 교육받고, 직업과 다양한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그 속에서 가족‧이웃과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지적 장애인들의 삶을 다룹니다. 특히 그들의 삶이 친지들에게 어떤 의미이며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 지인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는지 연구한 책입니다(13쪽). 책은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장애인이 아닌 지역사회와 이웃이 변화해 간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저자들은 이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도덕적 공동체를 확장하고 다양화하는 데 기여하는 주체로 지역사회에 존재했음(107쪽)을 밝힙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보통보다 느리거나 무능력해 보이고 기능적으로 저하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기를, 그들과 서로 응답하고 연대하는 책임으로 연결되기를 주저합니다. 하지만 위의 다섯 권의 책들은 철학과 역사와 신학과 사람들의 삶을 통해, 개인의 기능과 능력의 위계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지고 변화해 왔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구조화된 사회에서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오늘 마주 보고 있는 서로에게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고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이번 추천 중, 어떤 책에 마음이 가셨나요? 저희에게도 들려주세요!


 

지난 64호 ‘윤슬, 가득한집’의 ‘있는 사람’ 차리보 님 인터뷰 레터에 답장을 주셨어요.

  • 💌 오늘 저녁에 “윤슬,가득한 공간”에 들를 예정인데 이렇게 메일이 오니 반가워요! 더 많은 공간과 사람이 소개되면 좋겠어요. 👉 맛있는 커피를 드셨겠네요! 말씀해주신 것처럼 앞으로도 다양한 공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꾸준히 소개해보겠습니다.
  • 💌 여기저기서 윤슬 이야기를 듣게 되네요. 인터뷰를 통해 좀 더 궁금해졌고, 듣고 싶어집니다. 방문해보고 싶어졌어요 ^^ 👉 직접 방문하여 만나시면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어보실 수 있을 거예요! 방문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 윤슬 공동체 이야기가 더 궁금하네요. 교회밖의 교회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안과 밖의 이야기도요. 원불교 분들과의 관계도 궁금하고요. 음악과 선생님 등의 예시가 한 명씩은 있었으면 찾아봤을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인터뷰 감사해요! 👉 꼼꼼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인터뷰도 지켜봐주세요!

 

연구자 박은영 님의 '오늘 마주 보고 있는 서로에게 기꺼이 응답할 수 있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말이 내내 마음에 남네요. 오늘 부디 그런 하루를 살아낼 수 있기를 바라보며, 다음 호는 신간 소개로 '꼭' 다시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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