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일상생활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꾸준히 들려옵니다. 하지만 신앙과 일상생활 사이에서 우리는 번번이 난감해집니다. 신앙의 언어와 합주하듯 일상생활을 멋지게 일구어가는 일은 늘 어렵고 모호하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비슷한 주제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어차피’나 ‘결국’ 같은 부사들이 우리 안에 가득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냉소 뒤에는 닫힌 마음을 흔들고 열어젖혀줄 활력에 대한 갈망도 있는 법이죠. 이번 호 <틈>은 신앙과 일상생활 사이의 ‘새로운 틈’을 은근히 바라고 계실 분들을 상상하며 준비했습니다. 오랜 벗들과 함께 진지하고도 유쾌한 걸음으로 일상신학과 생활신앙을 꾸준히 탐구해 오신 “평화만사”의 홍정환 목사님께 큐레이션을 부탁드렸습니다.

🖋️ 큐레이터: 홍정환 목사 | 서른 살에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식구가 되어 교회 안과 밖을 구분하는 관점에 도전하고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훈련을 받았다. 중간 결과물을 글로 정리해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를 썼으며, 연구소를 잠시 떠나 방황하는 동안 독서 운동과 선교적 삶의 접점을 다룬 책 「공동선을 위한 독서」을 번역했다(이상 죠이북스). 오십을 목전에 둔 지금도 일상에서 성령의 이끄심을 갈구하는 저자는, 현재 함께하는교회 목사이자 일상생활사역연구소의 운동체 “평화만사”의 대표다.
파트 1.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의 신학
A. 일상과 신앙 사이의 간극을 뼈저리게 느낀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죽은 물고기는 강물을 거스르지 못합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는 이유는 거룩을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일은 성스럽고 세상 일은 속되다고 선을 긋습니다. 이 이분법이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하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시장통의 소음 속, 복잡한 엑셀 시트 속, 거래처와의 껄끄러운 미팅 속에서 여전히 맹렬하게 일하고 계십니다.
일상의 영성은 매번 거창한 영적 승리를 거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일 반복되는 단조로움과 부조리를 묵묵히 견뎌내는 힘입니다. 일터에서 완벽한 빛과 소금이 되려고 자신을 몰아세우지 마십시오. 대신 오늘 마주치는 동료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내게 주어진 업무를 대하는 성실하고 정직한 태도에 집중하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이 받으시는 고결한 예배입니다. 억지로 간극을 없애려 하기보다, 그 벌어진 틈 사이로 하나님의 은총이 흐르게 하십시오. 일터는 우리를 소진시키는 전쟁터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가장 정직한 신앙의 뜰입니다.
파트 2. 일상생활과 신앙을 잇는 책 5권 추천
1) 성경 전체를 일의 렌즈로 꿰뚫다
일의 신학
폴 스티븐스 지음, 주성현 옮김, CUP 펴냄 , 288쪽, 전자책 있음
우리는 은연중에 일을 타락의 결과로 여깁니다. 아담의 범죄 때문에 땀 흘리는 형벌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폴 스티븐스는 이 오래된 오해를 단호하게 부숩니다. 그는 성경 전체를 일이라는 렌즈로 다시 읽어냅니다. 그에 따르면 일은 타락 이전에 주어진 창조의 섭리이며,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일하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주일의 거룩함과 월요일의 세속성 사이에서 분열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아픈 지점을 정확히 찌릅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만큼이나 사무실 책상 앞의 기획서 작성과 공사 현장의 육체노동이 영적이라고 말입니다. 이 책은 지친 직장인에게 "힘내라"는 위로를 쉽게 건네는 대신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관통하며 노동의 본질을 추적해 단단한 뼈대를 세워줍니다. 세상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이 땅의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자신의 노동을 설명할 언어를 쥐여줍니다. 월요일 출근길마다 신앙과 삶을 통합하고자 애쓰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는 책입니다.
2) 평범한 순간 속에 숨겨진 거룩함을 찾아서
일상에 깃든 하나님의 손길
로널드 롤하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포이에마 펴냄, 336쪽
현대인은 늘 바쁘고 불안합니다.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망하지만 쉽게 채워지지 않습니다. 로널드 롤하이저는 이 채워지지 않는 근원적인 불만족을 거룩한 갈망이라 부릅니다. 그는 이 갈망을 해소하기 위해 자극적인 영적 체험을 찾아 헤매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대신 시선을 자신의 발밑, 지극히 평범한 일상으로 돌리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성육신의 신비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냅니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이웃과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 그 평범한 일과 속에 이미 하나님의 은총이 깊이 스며 있습니다. 거창한 종교적 헌신만이 영성이 아닙니다. 영성이란 삶의 권태와 피로 속에서도 하나님을 감각하는 태도입니다. 통찰은 깊고 문장은 시적입니다. 삶의 무게에 눌려 신앙의 감각마저 무뎌진 이들에게, 이 책은 잃어버린 일상의 거룩함을 다시 발견하는 맑고 투명한 눈을 선물합니다.
3) 노동의 의미를 성령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다
일과 성령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백지윤 옮김, IVP 펴냄, 360쪽
우리는 흔히 일을 생계 수단이나, 개인적인 소명 정도로 이해합니다. 물론 루터가 말한 소명은 일의 신학에서 중요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복잡한 현대 사회의 노동을 설명하기에는 다소 정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는 한계가 있습니다. 미로슬라브 볼프는 이 지점에서 과감하게 나아갑니다. 그는 일의 신학을 성령론과 종말론의 토대 위에 다시 세웁니다. 볼프에 따르면 우리의 노동은 단순히 현상 유지를 위한 활동이 아닙니다. 성령의 권능 안에서 행하는 모든 노동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 즉 새 창조의 세계를 건설하는 벽돌이 됩니다. 우리의 땀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사용하여 당신의 나라를 완성해 가십니다. 이 책은 노동의 위계를 허물고, 소외된 노동과 휴식의 의미까지 치밀하게 파고듭니다. 밥벌이의 고단함에 짓눌려 일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대, 이 책은 당신의 출근길을 성령과 동역하는 거룩한 발걸음으로 바꾸어 놓을 것입니다. 탁월하고 급진적인 일의 신학서입니다.
4) 하나의 정신으로 빚어낸 일상 신학
<일상 신학 트릴로지>
새로운 일상 신학이 온다
지성근 지음, 비전북 펴냄, 200쪽, 전자책 있음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
홍정환 지음, 죠이북스 펴냄, 383쪽, 전자책 있음
일상 기도
정한신 지음, 죠이북스 펴냄, 308쪽, 전자책 있음

이 세 종의 책은 각각 따로 읽어도 훌륭합니다. 하지만 셋을 하나로 묶어 읽을 때 비로소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저자인 지성근, 정한신, 홍정환은 스승과 제자이자 동료입니다. 이들의 글은 오랫동안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며 치열하게 살아낸 일상 신학의 결과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우리 삶의 터전에서 일하고 계시며, 우리를 바로 이곳으로 초청하셨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고백입니다. 활용법을 제안합니다. 먼저 『새로운 일상 신학이 온다』를 통해 왜 우리가 탈교회 시대에 일상을 주목해야 하는지, 그 신학적 방향을 잡으십시오. 이어서 『호당 선생, 일상을 말하다』를 펼치십시오. 오덕이라는 인물과 호당 선생의 대화를 통해 먹고, 자고, 싸는 구체적인 삶의 주제들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상 기도』를 통해 그 모든 순간을 기도로 연결하십시오. 이 삼부작은 생활 신앙의 관념과 삶을 단단하게 꿰어줍니다.
5) 평범한 일상에서 비범한 아름다움을 발견하다
심미안 수업
윤광준 지음, 오픈하우스 펴냄, 320쪽, 전자책 있음
"일상생활을 아느냐?"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고른 책은 신학 서적이 아닙니다. 사진가 윤광준의 에세이입니다. 신앙이 깊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 세계의 풍요로움을 온전히 누릴 줄 아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 즉 심미안이 필요합니다. 심미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하는 것입니다. 저자는 미술, 음악, 건축,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물건들 속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가치와 기쁨을 찾아냅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쳤던 평범한 풍경들이 그의 시선을 통과하면 비범한 아름다움으로 재탄생합니다. 매일의 일상이 지루한 반복으로만 느껴진다면, 그것은 세상이 재미없는 곳이라서가 아닙니다. 눈의 해상도가 낮아진 탓입니다. 이 책은 일상을 낯설고 경이롭게 바라보는 관찰의 힘을 길러줍니다. 아름다움을 아는 것, 그것이 곧 일상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지난 43호, 박만희 님 인터뷰를 보시고 답장을 주셨어요.
- 비건 감자탕이 무척 땡깁니다. 감자탕이 비로소 이름 값을 하는 느낌이랄까요.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삶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일상을 살며 신앙을 고민하는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한결 따뜻해진 날씨와 함께 다음 '틈'으로 인사드릴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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