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세계는 여성에게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그곳은 여성을 사회적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부장적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여성들이 성경이 여성 인물을 다룰 때조차 여성의 목소리를 지우거나 굴절시키고 있다고 느낍니다. 성경 속 여성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으려면 거의 ‘고고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향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는 말할 것도 없겠지요. 이 어렵고 난감한 일을 앞장서 해낸 여성 신학자들과 저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번 호 <틈>은 신앙의 선배들의 노력으로 밝혀진 성경 속 여성들의 저항과 믿음의 서사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성경 속 여성에 대해 꾸준히 연구해 오신 최은영 목사님께 큐레이션을 부탁드렸습니다.

🖋️ 큐레이터 : 최은영 | 목사. 구약의 여성들에 대한 관심과 주제로 계명대학교 대학원에서 구약학을 공부했다(Ph.D.). 여러 대학 및 기관 등에서 강의했으며 실천여성회 판(구 대전여신협)과 한국여신학자협의회 등에서 활동했다. 저서 및 공저로는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넘다』, 『성서에서 만나는 다문화이야기』, 『다문화사회에서 성경읽기』, 『자본주의시대, 여성의 눈으로 성서를 읽다』,『여성신학의 새로운 지평』, 『두란노HOW주석 열왕기하』와 논문이 있다.
A. 성경 속 여성들의 이야기가 답답하게 느껴진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성경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경전으로, 수많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전해 온 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가부장적 사회에서 기록되고 오랫동안 남성 중심으로 해석되어 온 차별의 역사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속 여성들은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종종 주변 인물로만 기억되거나, 그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드러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성경 자체가 여성을 침묵시키는 책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여성의 눈과 약자의 시선으로 성경을 다시 읽을 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하나님의 해방과 평등의 메시지가 새롭게 드러납니다. 하갈과 룻, 미갈과 리스바, 뵈뵈와 브리스길라 외 이름도 불리지 않은 채 등장하는 많은 여성들은 하나님의 역사 속에서 결코 주변인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에 여성신학이 소개된 지도 4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회에서는 이러한 성경 읽기를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 속 여성들의 삶과 믿음을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하려 합니다.
그 외 자세한 여성신학 관련 책목록은 여신협 홈페이지(www.kawt.co.kr)를 참고해 주세요. 성경의 여성들을 새롭게 만날 준비가 되셨는지요. 자 이제, 어떤 책들이 있는지 알아볼까요?
입문: 고정관념을 깨는 첫걸음
오늘 다시 만나는 구약여성
박유미 지음, 헵시바 펴냄, 264쪽 [도서정보보기]
여성신학을 처음 접하는 분들에게 가장 먼저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저자는 보수적인 신학 전통 안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며, 왜 구약성경을 여성의 관점으로 다시 읽어야 하는지를 차분하게 풀어냅니다. 어려운 이론보다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교회 안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하와부터 입다의 딸, 레위인의 첩, 다말, 하갈, 미갈, 와스디 등 구약성경의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남성 영웅들의 이야기 속에서 주변 인물로 머물렀던 이들을, 저마다의 삶과 신앙을 가진 인물로 다시 만나게 합니다. 특히 사울의 딸이자 다윗의 아내였던 미갈은 인상적입니다. 우리는 흔히 미갈을 공주나 왕비보다 다윗을 비난해 벌을 받은 여성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를 "때론 좋고, 때론 나쁘고, 때론 불쌍하다"고 표현합니다. 선과 악으로 쉽게 판단하기보다 권력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간 한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우리의 삶과도 닮아 있습니다.
이 책은 남성의 관점으로 기울어진 성경 읽기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습니다. 여성을 새로운 주인공으로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살아가는 성경의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합니다. 구약성경 속 여성들을 처음부터 새롭게 만나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입문서가 될 것입니다.
심화: 성경 본문을 고찰하기 위한 도구
그 女를 기억하며: 페미니스트 비평적 해방의 해석학
엘리자베스 쉬슬러 피오렌자 지음, 조선영 옮김, 감은사 펴냄, 636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1982년 처음 출간된 이 책은 여성주의 성서학의 고전으로, 오늘날에도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책입니다. 최근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출간되면서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오렌자는 성경 속 여성들이 원래부터 주변적인 존재였던 것이 아니라, 성경이 기록되고 해석되는 과정에서 그들의 목소리와 역할이 점차 지워졌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읽을 때 먼저 기존의 해석을 비판적으로 살펴보는 '의심의 해석학'을 제안합니다. 이어 이를 ‘선포의 해석학’을 통해 알리고 성경 본문과 역사 속에 남아 있는 흔적을 통해 잊힌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시 기억하고 공동체 안으로 불러오는 '회상의 해석학'을 제시합니다.
성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누구의 목소리가 기록되었고 누구의 목소리가 침묵되었는지를 함께 묻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학을 통해 사도행전과 바울서신 등에서 단편적으로 언급된 여성 루디아, 브리스길라, 다비다 등의 지도력과 신실한 신앙을 새롭게 만나게 합니다.
또한 피오렌자는 여성과 남성이라는 성별의 문제를 넘어, 인종과 계급, 민족, 종교 등 다양한 권력이 얽혀 사람을 억압하는 구조를 '퀴리아키(kyriarchy, 지배권력구조)'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가부장적 억압의 역사가 여성들의 삶, 투쟁, 리더십의 역사를 무효화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상호평등한 제자도 아래 ‘여성들의 에클레시아’를 제안합니다.
조금 두껍고 만만한 책은 아니지만, 성경 속 여성들을 새롭게 만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는 왜 지금까지 그렇게 읽어 왔는가"를 질문하게 하는 책입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읽고 싶은 분이라면 한 번 꼭 도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구약 편
캐롤 A. 뉴섬, 샤론 H. 린지 편저, 이화여성신학연구소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832쪽 [도서정보보기]
여성들을 위한 성서주석: 신약 편
캐롤 A. 뉴섬, 샤론 H. 린지 편저, 장양미,박인희,정혜진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펴냄, 424쪽 (품절) [도서정보보기]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읽고 싶은 분들, 특히 설교를 준비하거나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세계적인 여성 성서학자들이 성경 66권 전체를 여성의 관점에서 주석한 기념비적인 작업으로, 성경 본문을 새로운 시선으로 읽도록 돕는 든든한 길잡이입니다.
이 책은 1895년 엘리사벳 캐디 스탠턴이 여러 여성신학자들과 함께 펴낸 『여성의 성서』의 문제의식을 계승하면서도, 현대 성서학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새롭게 집필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구약편과 신약편이 출간된 후(1992, 1998), 한국 여성신학자들의 번역을 통해 두 권으로 소개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해석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 성서학자들의 연구가 함께 담겨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이 책은 성경의 모든 본문을 여성의 눈으로 다시 읽습니다. 흔히 배제되거나 왜곡되었던 여성들의 삶과 목소리를 드러낼 뿐 아니라, 성경이 기록된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여성과 남성, 권력과 공동체의 관계를 함께 성찰하도록 이끕니다. 세밀한 주석서라기보다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의 관점을 실제 본문에 적용한 안내서에 가깝습니다.
저자들은 "해석은 그 자체로 특정한 상황에서 고대와 현대의 여러 동역자들과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고통을 주는 세상 속에서 치유와 해방의 말씀을 듣고 이를 지키겠다는 목회적·신학적 목적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과제"라고 말합니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이 지향하는 성서 읽기를 잘 보여 줍니다. 성경을 더 깊이 이해하고, 오늘의 삶과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오래 곁에 두고 읽을 만한 책입니다.
확장과 실천: 연대와 환대로
성서에서 만나는 다문화이야기
김혜란, 최은영 지음, 대장간 펴냄, 208쪽 [도서정보보기]
이 책은 성경 속 이주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다문화와 환대의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제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한국사회의 다문화 현실을 성경과 연결해 보고자 했습니다. 성경 안에서 신앙, 기근, 결혼 등 여러 이유로 이주한 이들의 경험을 담았습니다. 여성신학적 성서해석은 백인 중산층 여성의 경험에만 갇히지 않고, 인종·계급·이주 등 다중의 억압을 받는 사회적 약자들의 자리로 확장되어야 진정한 해방의 언어가 됩니다.
창세기 16장과 21장에 등장하는 하갈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이주민'이자 '종'이었습니다. 그는 삼중의 억압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새민족을 이루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갈은 성경에서 최초로 하나님을 '엘 로이(나를 보시는 하나님)'라고 부른 인물이기도 합니다. 모압여성 룻 역시 외국인이었지만, 시어머니인 나오미와 맺은 깊은 신뢰와 연대를 이루게 되며 나아가 다윗, 예수의 조상이 됩니다. 12명의 이야기는 각각 독백의 형태로 그 처한 현실을 자신의 목소리로 고백함으로써 보다 친밀하게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경험을 합니다. 이 책은 '단일민족' 신화와 혈통주의에 익숙한 한국 교회가 성경 본연의 환대의 정신을 다시 발견하도록 이끌며, 여성신학이 지향하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가 오늘의 이주민과 난민, 다문화 이웃에게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페미니즘 설교집: 여성, 퀴어와 동행하는 교회가 되어가기 위한 이야기
구아름, 김동환, 김수정, 김영준, 김윤정 외 23명 지음, 믿는생각 펴냄, 359쪽 [도서정보보기]
'페미니즘 설교집'이라는 제목을 내세운 국내 첫 설교집입니다. 성경 본문을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공적 예배에서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설교를 담았습니다. 그동안 남성 중심의 제도교회가 외면하거나 침묵해 온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신앙 안에서 성찰하며, 여성과 퀴어를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와 함께하는 교회의 가능성을 모색합니다. 국내외 신학자와 목회자, 활동가 등 28명의 필자가 저마다의 삶과 신앙의 자리에서 성경을 새롭게 읽어 낸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여성신학이 과거의 본문 해석에 머무르지 않고 오늘의 설교와 삶의 언어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컨대 사무엘하 21장의 리스바 이야기를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잔혹사와 '진실과 화해' 과정에 연결하여, 자식과 가문을 잃은 리스바의 깊은 애도가 어떻게 역사적 상처를 회복하는 의식이 되는지 잘 보여줍니다. 이 책은 성경을 여성과 퀴어, 사회적 소수자의 경험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읽게 합니다. 다양한 설교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정의와 환대가 교회 안에서 어떻게 실천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의미 있는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책 소개 및 저자 모임 영상은 '한국예수교회연대' 유튜브 채널에 올라와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소개된 책 중에 어떤 책이 가장 궁금해지셨나요? 인상적인 부분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셨다면 저희에게도 들려주세요!
지난 56호 6월의 신간 소개 레터에 답장을 주셨어요.
- 💌 왜 그리스도인인가 - 쉽게 답을 내리기보다, 편지처럼 이어지는 질문과 사려 깊은 응답을 통해 신앙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확신보다는 고민에, 결론보다는 과정에 머물러 있는 저 같은 이들에게 부담 없이 곁을 내어주는 책처럼 느껴집니다. 👉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셨군요! 고민과 과정에 머무르실 때 좋은 친구가 되길 바라봅니다.
- 💌 희망을 짓는다는 것이나 통쾌한 희망사전 한번 살펴보고 싶네유, 늘 좋은책 소개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 살펴보시고 기억남는 부분이 있다면 저희에게도 귀띔해 주세요!
열대야가 이어지는 요즘입니다. 여름에 얽혀 지내는 모두가 이 시기를 무탈하게 지나가면 좋겠네요. 익숙하고도 새로운 8월도 잘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질 다음 레터에서도 생각과 마음을 시원하게 할 책과 세속성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뵙겠습니다. 🏄♂️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