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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신앙의 언어를 낯설게 하는 책들 💡

김주련 작가님의 큐레이션

2026.01.30 | 조회 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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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어람AR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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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사회 사이 -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운 신앙의 언어를 갈망하는 시대입니다. 새로움은 어디에 있을까요? 우리가 본 적 없는 것들 속에만 있을까요? 이번 호 <틈>은 익숙한 신앙의 낱말들을 유심히 살피고 돌보는 노력 속에서 발견되는 새로움에 주목해 보려고 합니다. 섬세한 감각으로 신앙의 말과 일상의 말 사이를 오가며 신앙 언어에 깃든 경이로움을 소개해 오신 김주련 작가님께 큐레이션을 부탁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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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레이터: 김주련 작가 | 읽고 쓰고 걷기를 좋아하며, 성서유니온에서 「매일성경」 책임편집과 출판국장, 대표를 역임했다. 그러는 동안 신앙 언어와 일상 언어의 거리에 대한 고민을 담아 『어린이를 위한 신앙낱말사전』과 『다시』(이상 성서유니온)를 썼고, 『안녕, 안녕』(선율)을 썼다. 2025년 9월 『약함을 돌보는 단어들』(성서유니온)을 발간했다.


Q. 안녕하세요. 요즘 저는 신앙의 언어와 다소 서먹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한때 제 삶의 정답처럼 느껴졌던 신앙의 언어들이 어느 순간부터 너무 완고하고 거칠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죄'와 '회개' 같은 단어뿐 아니라, '사랑'이나 '은총'처럼 좋은 뜻을 가진 말들 앞에서조차 무미건조한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한 편으로는 기독교 신앙이 여전히 제 삶의 터전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런 복잡함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제가 기독교 신앙을 다시 생명력 있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신앙의 언어와 낯설게 재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줄 책을 추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몇 년 전 TV 드라마를 보다가 낯선 곳에서 느닷없이 옛 친구와 조우하듯 신앙 언어를 만났습니다. 한편 반갑기도 하고, 다른 한편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박해영 작가의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에서였습니다. “날 추앙해요. 사랑으론 안 돼. 추앙해요.”라는 유명한 대사뿐만 아니라, “교회 다닐 때 기도제목 적어 내는 게 있었는데, 애들이 쓴 거 보고, 이런 걸 왜 기도하지? 성적, 원하는 학교, 교우관계... 고작 이런 걸 기도한다고? 신한테? 신인데? 난... 궁금한 건 하나밖에 없었어. 나... 뭐예요? 나... 여기 왜 있어요?”와 같은 대사들이었습니다. 신앙 언어들이 교회 밖에서 쓰이는 것이 무언가 생경한 느낌이 들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추앙’, ‘기도’, ‘해방’... 과 같은 신앙언어들이 일상 속에서 치열하게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 사이에 전폭적인 환대의 언어로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그리스도인들끼리 반복해서 사용하는 말들이 교회 안에서만 소비되고 맴돌다가 어느 순간 진부해져서 교회 밖 사람들에게 조금도 가닿지 못하는 것이나, 그 말들이 용도폐기된 언어처럼 무시되는 것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엄기호 작가는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에서 우리 사회에는 ‘동원의 언어’만 있고 ‘동행의 언어’가 사라져서 사회적 고통이 크다고 탄식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탄식이 우리 교회가 새겨들어야 할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동행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늘 기억하면서 ‘성육신의 언어’를 더 깊이 고민한다면, 신앙 언어들을 회피의 대상이 아닌 우리의 일상과 동행하는 언어로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러한 신앙 언어들이 실제 우리 삶 속에서 신앙의 사건으로 경험되기를 늘 소망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다른 사조들과 대화하거나 다른 언어를 학습하고 훈련하면서 우리의 언어를 진부하지 않게 만들어 가고 계시지요. 그런 노력으로부터 우리는 분명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부족하지만 다양한 책들 및 사상들과 교류하면서 이미 제가 알고 있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 열렸으니까요. 하지만 이 대목에서 조금 더 고민해 보고 싶습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 언어를 진정으로 생명력 있게 경험하는 일은, 그 언어의 원천인 성경의 깊은 곳에 이르는 만남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이미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선입견으로 인해 성경의 본래 의미를 읽어내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럴 땐 성경을 낯설게 읽어내며 신앙 언어들을 새롭게 길어내는 이들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월터 브루그만의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마침내 시인이 온다

월터 브루그만 지음, 김순현 옮김, 성서유니온 펴냄,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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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브루그만은 『마침내 시인이 온다』에서 성경의 본문은 예언자적 언어이자 시적 담화이며, 성경의 예언자들은 곧 시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늘의 상상력을 품고서 산문처럼 밋밋하고 건조한 세계를 날카롭게 찢고 들어왔으며, 어둠 속에 묻혀버린 이 세계의 담론들을 거침없이 파헤치고 드러냈습니다. 브루그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 본문마저 산문으로 축소되면, 삶이 단조로워지고 지독한 침체가 인간의 정신을 포위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몰지각한 순응주의자가 되거나 성난 시위대가 되고, 우리 안에는 활력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우리를 살릴 기회가 시적 표현에만 있을 정도로 우리는 산문에 흠씬 두들겨 맞은 상태다.”(p.23)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저는 기독교의 복음이 사람들 가운데서 존중받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와 조롱을 받기까지 하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오랫동안 상투적인 범주들 안에 굳게 문을 잠그고 지냈는지를 통렬히 반성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의 진부한 언어와 단조로운 삶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가져오는 새로운 대화를 가로막아 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산문으로 가득 찬 우리 시대의 징후를 읽어내고, 그 속에서 같이 신음하며 아픔을 앓는 시인의 마음과 시인의 언어가 필요한 까닭입니다. 저는 늘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대화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됩니다.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 - 죄, 참회, 구원에 관하여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 지음, 정다운 옮김, 비아 펴냄, 188쪽, 전자책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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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와 함께 살아가라』는 책으로 국내에 소개된 적 있는 바바라 브라운 테일러가 쓴 『잃어버린 언어를 찾아서』를 반갑게 읽었습니다. 신앙 언어에 배가 고픈 저에게 이 작은 책이 소중한 선물처럼 다가온 것은, 무엇보다 이 책이 그동안 적절히 사용되지 못해 거의 폐기된 것처럼 보이는 죄, 참회, 구원과 같은 단어들이 지닌 고유한 의미를 재발견하고 되살려내려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신앙의 언어를 잃어버리면 이 언어가 재현하는 실재도 함께 잃어버리게 된다...‘죄’라는 말을 쓰지 않으면 줄어든 어휘와 함께 우리의 경험세계도 그만큼 축소되기 마련이다.”(p. 20-21)라고 말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도 ‘죄’라는 말, ‘죄인’이라는 말이 불편하고 불쾌하게 느껴져서 다른 말로 대체하거나 축소하려는 시도들을 해왔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죄’라는 말을 제대로 사용할 때, 그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을 실제 사건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함민복 시인의 ‘죄’라는 시가 떠올라 이곳에 함께 소개하고 싶습니다. “오염시키지 말자 / 죄란 말 / 섬뜩 빛나야 한다 / 건성으로 느껴 / 죄의 날 무뎌질 때 / 삶은 흔들린다 / 날을 세워 / 등이 아닌 날을 대면하여 /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 / 구분하며 살 수 있게 / 마음아 / 무뎌지지 말자 / 여림만으로 세울 수 있는 / 강함만으로 지킬 수 있는 / 죄의 날 / 빛나게 푸르게 / 말로만 죄를 느끼지 말자 / 겁처럼 신성한 / 죄란 말 / 오염시키지 말자”

 

광장에 선 기독교 - 공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미로슬라브 볼프 지음, 김명윤 옮김, IVP 펴냄, 2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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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슬라브 볼프는 『광장에 선 기독교』에서 현대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대안을 제시합니다. 저자는 이 책 앞부분에서 ‘상승’(ascent)과 ‘회귀’(return)를 언급하면서, “기독교 신앙이 신비주의 종교처럼 실천되어서 창조적인 회귀로 이어지지 않고 황량한 회귀가 될 때 기능장애가 일어난다.”라고 밝혔습니다. 특히 예언자적 종교의 수행자가 신과의 만남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한 믿음을 잃음으로써, 겉으로 보기에는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상은 신앙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럼에도 그 수행자는 ‘상승’을 위장하여 신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척하면서 살아있는 신을 예언자 자신이 사용하는 종교적 언어의 한 기능으로 축소시켜 버릴 수 있습니다. 이 논의는 폴 틸리히가 『흔들리는 터전』에서 “거룩하다”(이사야 6장 3절)라는 말의 이중적인 의미를 밝힌 것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즉, 거룩은 ‘위엄’(majesty)과 ‘순결’(purity)을 의미하는데, 순결이 없는 위엄을 모든 이방 신들의 특징이라고 밝힌 부분입니다. 폴 틸리히는 예언자 이사야가 특별한 환상을 보는 위대한 황홀경의 순간에, 자신을 그의 부정한 백성과 동일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백성에게 돌아가 변혁을 이루는 사명을 감당했다고 말합니다. 이는 ‘상승’과 ‘회귀’가 함께 있어야 예언자적 종교를 살아 있게 만든다는 미로슬라브 볼프의 주장과 같습니다. 우리의 신앙 언어 안에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만 가득 차 있고 신음하는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이야기는 축소되고 있다면, 기독교 신앙의 기능장애는 갈수록 더 심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유심히 읽어 본다면, 하나님의 손을 잡는 언어와 더불어 세상 사람들의 손을 잡는 언어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마음사전

김소연 지음, 마음산책 펴냄, 320쪽, 전자책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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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언어’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만든 책입니다. 저는 이 책에 자극을 받고 교회 안에서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대로, 배운 대로 쉽게 써왔던 신앙 언어들의 의미를 새롭게 살펴 보았습니다. 그 언어들을 좀 더 풍성하게 말해보려고 애썼습니다. 덕분에 부족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신앙낱말 사전』을 쓰는 용기를 내기도 했습니다. 책의 저자인 김소연 시인은 이미 발표한 시들 속에서 언어에 대해 대해 깊이 탐구하며 익숙한 단어들을 새롭게 씻어 내놓았고, 그 시들을 통해 독자들을 전혀 다른 경험 가운데로 인도했습니다. 시인은 이 책에서도 우리가 보통 한 데 얼버무려 사용하는 단어들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서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낱말이 지닌 본래의 의미를 훨씬 더 풍성하게 경험하도록 돕습니다. 예컨대 ‘중요하다’와 ‘소중하다’, ‘행복’과 ‘기쁨’, ‘평안’과 ‘편안’ 등과 같은 단어들의 같음과 다름을, 개별 단어가 가진 결을 따라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설명하며 감동을 자아냅니다. 그중에 ‘축하’와 ‘축복’에 대한 글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아쉬레’)의 의미와도 뜻을 같이하는 설명입니다. “축하하기는 쉬워도 축복하기는 어렵다. 축하는 마음 없이 객관화된 폭죽 터트리기를 하고, 축복은 마음을 다해 주관화된 폭죽 터트리기를 한다. 축하가 얻은 것에 대한 박수라면, 축복은 얻을 것에 대한 위로이기도 하다. 축하는 이미 벌어진 일을 놓고 행해지고, 축복은 지나온 것과 앞으로 벌어질 것까지 포함하기 때문이다. 또한 축하는 축하받는 사람과 축하하는 사람의 자의식이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면, 축복은 받는 사람과 하는 사람이 포개진 자리에 존재한다. 또한 축하는 좋은 일에만 표출되고, 축복은 좋은 일이든 좋지 않은 일이든, 어느 때라도 우러나온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 - 마음의 혼란을 언어의 질서로 꿰매는 감정 사전

존 케닉 지음, 황유원 옮김, 윌북 펴냄, 3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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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에 이름 붙이기』는 슬픔에 관한 책이 아니라, 슬픔과 같은 감정들을 표현하는 신조어의 목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자는 영어가 아닌 언어에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들, 이를테면 휘게(hygge), 사우다지(saudade), 두엔데(duende), 우분투(ubuntu)와 같은 단어들을 배우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 경험에서 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 독자들 가운데 언어에 특별한 은사가 있는 누군가가 이 책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어 신앙 언어에 대한 신조어 사전을 만들면 좋겠다는 욕망을 담아 이 책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처음엔 모르는 단어들로 독자들을 당황시킵니다. 하지만 읽다 보면 그 단어들을 만들기 위해 수많은 사전들과 이야기들을 뒤적이고 기어이 어원을 밝혀 새로운 언어를 길어낸 저자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가령 ‘트루홀딩’(trueholding)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명사인데, “놀라운 발견을 했지만 그것의 가치가 떨어지고 왜곡돼서 더는 자신만을 위한 게 아니게 될까 두려운 마음에 그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른 채 혼자 간직하려 애쓰는 행위”라는 설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 어원의 근거는 J.R.R.톨킨의 전설 모음집입니다. 저자는 이 단어의 어원이 자신의 소중한 마법 반지를 지키고 숭배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채 어둡고 축축한 동굴에서 수백 년을 보낸 스미골(골룸)의 본명인 ‘트라할드’(Trahald)에서 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책에 기록된 모든 단어들이 어마어마한 공을 들이면서 탄생한 선물 같은 말들이어서 거듭 감탄하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상의 한계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의 신앙 언어가 우리의 한계를 넘어 계속 새로운 이야기로 쓰이기를 소망하며 이 책들을 소개합니다.

 

 


지난 40호 더께더께님 인터뷰에 온 답장이에요.

  • 아이가 '나는 그렇게 믿어'라고 말하는 부분을 읽다가 광광 울어버렸습니다.. ㅠ ㅠ → 마음을 건드리는 말이셨나봐요. ㅠ

 

길을 걷다가 꽃순이 제법 올라온 목련나무가 보이더라고요. 달력을 살펴보니 다음주가 벌써 입춘입니다. 아직 멀어보이는 봄이 얼른 오기를 바라며, 다음 호에도 여러분의 책 장바구니를 채울 1월의 신간을 들고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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