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계절성 센티멘털리즘 증후군(쉽게 말해 가을 탄다는 의미죠)에 빠져버린 오수경입니다. 독자님은 요즘 무엇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나요? 저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에 파묻혀, 때로는 저와 신앙적 견해가 다른 이들의 주장들에 화도 내다가, 그런 흐름에 속무무책으로 흘러가지 않는 단단한 목소리에 위안과 용기를 얻기도 하는 날을 보내고 있어요. 저와 비슷한 흐름을 타고 계신 독자님께 새말과 창연을 소개하고 싶어요. 새말과 창연은 차별과 혐오의 언어가 광장에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굳세게 그것과는 다른 언어를 만드는 운동을 하는 그리스도인이에요. 두 사람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제가 받았던 생기와 용기를 이 인터뷰를 읽으시는 독자님께서도 받으시길 바라며 인터뷰를 보내드립니다.
수경(수)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려요. 좋아하는 것 세 가지도 알려주세요.
새말(새) : 안녕하세요! 공부하고 일하고 놀면서 살고 있는 새말입니다. 사람들(과 놀거나 일하거나 모이거나 기타 등등 으쌰으쌰 하는 것)을 좋아하고요. 술도 좋아하고 운동도 좋아합니다. 요즘은 주짓수와 유도를 배우고 있어요. 저녁 시간에 주로 셋 중 하나 또는 둘을 하는 것 같아요. 사람들과 술을 먹거나, 사람들과 운동을 하거나.
창연(창) : 안녕하세요. 저는 기독여성운동 활동가로 일하고 있는 창연입니다. 저는 반려냥이와 함께하는 아침, 한적한 저녁 드라이브, 판타지 영화와 애니메이션, 소설을 좋아해요. 하나하나 소개드려볼게요! ^^ 저는 현재 사랑스러운 반려냥이인 ‘구름이’ ‘여름이’와 함께 살고 있는데요. 이 두 친구는 매일 아침 저를 스윗하게 깨워주는 고마운 존재예요. “냥냥~”거리며 배 위에 올라와 꾹꾹이도 해주고, 품으로 파고들어 한참을 지긋이 바라봐주기도 해요. 냥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눈을 뜨면 하루종일 행복한 일만 가득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또 저는 운전을 좋아해서, 음악을 틀고 달리는 저녁 드라이브를 좋아해요. 이 세계를 배경으로 마법사가 등장하는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을 즐겨 보는 취미를 갖고 있답니다.
수 : 와~ 두 분의 일상이 상상되어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하게 되네요. 그러고 보니 두 분 모두 활동명이 인상적이에요. 무슨 뜻인가요?
새 : 기후위기와 더불어 여기저기에서 지긋지긋한 소식이 들릴 때 세상이 말세인 것 같아서 말세를 거꾸로 해서 세말로 지어봤는데요. 세상이 엉망진창이긴 하지만 기분이라도 좀 프레시하게 하고 싶어서 새로운 느낌으로 ‘세’ 대신 ‘새’를 사용하고 있어요.
창 : 제 활동명은 사자성어 ‘고색창연(古色蒼然)’에서 따왔어요. ‘오래되어 예스러운 풍치나 모습이 그윽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요. 애정하는 언니가 ‘시간이 갈수록 제 빛깔을 내는 사람’이 되라는 바람을 담아서 지어 주었어요. 소중하게 여기는 활동명이랍니다. ^^
수 : 반갑지 않은 소식이 많이 들리는 요즘인데요, 요즘 들었던 가장 반가운 소식은 뭔가요?
새 : 좀 부끄럽지만 연프(연애 예능 프로그램) 보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대체로 이성애자 연프를 챙겨보는데, 최근에 레즈비언 연프가 나올 예정이어서 출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웠어요. 국내에서 게이 연프는 시즌3까지 나왔는데, 레즈비언 연프는 해외에서만 찾아볼 수 있어 아쉬웠거든요. 미디어에서 다양한 레즈비언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같이 민망해하고 즐거워하고 두근거리며 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됩니다.
창 : 저는 아주 개인적인 소식인데요, 제가 고모가 되었습니다! 🙌🙌🙌 워낙 아이들을 좋아하기도 하고, 첫 조카인지라 기쁨이 컸어요.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땐 축하하는 마음 정도였는데, 막상 조카가 태어나니 굉장히 설레더라고요. 매일매일 달라지는 조카의 얼굴을 보는 행복감이 큰 요즘입니다.
수 : 저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소식이네요. 최근 저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은 (한강 작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제외하고)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역전을 이루는 평등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제목’을 본 것이었어요. 이 기도제목은 '한국교회 200만 연합 예배 및 큰 기도회(1027 집회)’ 주최 측이 발표한 '대한민국의 복음의 역전을 이루는 연합 예배를 위한 100대 기도 제목’에 대항하는 운동으로서 주목을 받았는데요. 두 분이 최초 제안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처음 아이디어를 내게 된 이유는 뭔가요?
새 : 친하고 믿음직한 사람과 밥을 먹으면 곤란해집니다. ㅋㅋㅋ 아이디어를 내고 실행하는 과정이 너무 빨라져 버려요. 창연과 10월 4일 금요일에 저녁밥을 먹다가 ‘200만 연합 예배 100대 기도 제목’을 봤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날 같이 있는 단체 카톡방에 링크가 올라왔거든요. “위협적이다” “무기력하다”는 대화를 나누며 “간단하게 뭐라도 해보자”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기도제목을 미러링 해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렇게 처음 이야기를 꺼낸 지 10분도 안 지나서 같이 할만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돌리기 시작해 기독교인이면서 페미니스트인 사람들을 15명 정도 모았을 때 진짜 해볼 수 있겠다는 감이 왔어요. 처음에는 ‘20명 모아서 5개씩 작성하면 쉽겠다. 까짓 거 해버리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처음 생각보다 일이 커진거예요.
수 : 정말 ‘눈 떠보니 기도제목을 쓰게 되다니...’와 같은 신비로운(?) 상황이었군요.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 한 과정이 더 궁금해지는데요?
창 : 시작했을 때의 마음은 흥분 그 자체였어요. 크게 어렵지 않게, 유쾌한 방법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새말의 말처럼, 막상 시작하니 일이 점점 커지더라고요. 20여 명의 인원이 5개씩 기도제목을 맡아 미러링 하는 기도제목을 써주시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각 주제별로 기도제목의 핵심 주제도 만들어야 했고, 기도제목을 발표하는 방식과 연서명 진행 절차 등도 논의해야 했어요. 다행히 각 기도제목을 맡아주신 분들이 시간 내에, 정성이 듬뿍 담긴 기도제목을 작성해 주셨어요. 함께하는 동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과정에 지혜를 더해주셨죠. 그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100대 기도제목 발표를 진행할 수 있었어요. 금요일 저녁에 밥 먹다가 작당모의를 시작해, 월요일에 연서명을 시작했으니…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겨있을지 예상되시죠? ^^
수 : 그럼요, 그럼요! 모두의 신속한 협력 덕분에 정말 의미 있는 기도제목이 나오게 된 것이군요.
창 : 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통해 꼭 이야기하고 싶었던 부분이 있어요. 첫 번째는 포스터!!! 우리의 예쁜 무지개 파도 포스터!!! ㅎㅎㅎ 저와 새말이 행정적인 부분을 맡아하다 보니, 일이 과중하다고 느껴졌어요. 또 저희가 디자인을 주로 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이 ‘멋진 기도제목’을 담아낼 ‘멋진 포스터’를 만들어낼 자신이 없었죠. 그때 혜성처럼 엘리님이 등장해 주셨어요. “포스터? 내가 해줄게!”라고 시크하게 답하고는 멋진 디자인을 완성해 주셨어요. 이번 100대 기도제목이 더욱 빛날 수 있었던 건, 무지개파도 포스터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기도제목 작성자가 모두 여성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꼭 알려드리고 싶어요. 홍보가 나갈 때 ‘여성들과 활동가’라고 발행되기는 했는데, 전달되는 과정에서 남성 활동가의 존재가 지워진 것 같아 죄송하고 아쉬웠어요. 22명의 작성자 안에는 깊은 연대감을 갖고 함께 활동해 주신 ‘남성 활동가’가 존재합니다. 이 부분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수 : 저는 이 기도제목을 보며 많이 배웠어요. 특히 교회, 성평등, 퀴어, 기후위기, 생명, 평화, 착취적 사회 구조… 등 우리가 주목해야 할 이야기를 페미니즘 관점에서 폭넓게 이해하게 하며 ‘연결되기’를 시도한다고 봤어요. 두 분에게 이 기도제목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나요?
새 : 솔직히 창연과 주제 리스트를 뽑을 때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기도제목 작성자로 참여해 주신 분들의 기도문구를 모아, 하나하나 읽으며 저도 큰 감동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속상하고 화나는 마음으로 유머를 살짝 넣어 시작한 건데 페미니스트이며 기독교인인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를 단순히 키워드뿐 아니라 언어로 구체화하는 작업이 의미 있었어요. 언어, 특히 기도에는 힘이 있어서 분노의 마음은 위로가 되기도 하고, 사랑과 연대가 되기도 했어요. ‘우리’라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참여해 주신 분들의 상황과 생각이 서로 다르다는 걸 느끼기도 했어요. 서로 연대하는 ‘우리’는 사실 동질적이지 않잖아요. 우리 안의 차이가 있음에도 우리가 어떻게 서로 엮이고 오염되고 투닥거리며, 또 어떻게 계속 연결되고 합의하며 무언가를 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더불어 생겼어요.
창 : 저는 이번 기도제목을 정리하며,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의 지향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어요. 존재를 지우고, 혐오하기 위해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존재를 북돋고, 세우며, 사랑으로 품어 안기 위해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 신앙의 지향이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1027 집회 측이 발표한 기도제목을 읽을 땐, 마음에 바늘이 박힌 것처럼 따끔거리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상처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죠. 그러다가 새롭게 쓰인 ‘평등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제목’을 읽으니 울컥하더라고요. 다정함과 사랑, 존재를 향한 애정이 듬뿍 느껴졌어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랑을 말하고, 평화를 말하고, 서로의 존재를 세워가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배울 수 있었어요. 우리의 지향이 생명을 향한다면, 길이 다를지라도 분명 만날 수 있다는 확신도 얻고요.
수 : 새말이 “단순히 키워드뿐 아니라 언어로 구체화하는 작업”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저도 이 100대 기도제목이 차별과 혐오의 신앙에 대항하는 신앙의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는 이 과정을 ‘사건’으로 기억하고 싶어요. 이번 일은 분명 누군가에게는 전환의 계기가 될 테니까요. 두 분도 이 ‘사건’을 통해 많은 걸 느끼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고 싶으세요?
새 : 연서명을 받은 기간이 하루밖에 되지 않았는데 600명이 넘는 단체 및 개인이 참여한 것을 보고 놀랐어요. 화가 나고 속상했던 게 나뿐만이 아니었다는 걸 숫자를 통해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만큼 기독교 내 혐오의 목소리가 너무 과대대표되고 있다고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앞으로도 그렇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는 것을 더 많이, 더 넓게 퍼뜨리고 싶어요. 방식에 있어서도 보다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하면서 서로 다친 마음을 다독이며 운동을 지속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창 : 저는 개인적으로, 소진되지 않고 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을 발견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요. 혐오에 대응하고, 폭력에 맞서는 방식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점점 사람이 과격해지더라고요. ㅎㅎㅎ 그런데 이번 100대 기도제목을 정리하면서는 계속 생동감이 돌았던 것 같아요.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며 기도문을 작성하는 과정이 참 행복했어요. 또한 우리의 신앙을 언어로 정리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우리의 하나님을 선명하게 만난 것 같아요. 서로에게 다정한 존재로 함께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주체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그려가는 것. 이 두 요소가 제게 힘을 불어넣어 준 것이죠. 혐오세력의 논리를 따라가며 대응하기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동료들과 함께 우리의 신앙을 구체화시켜 가는 것이 제겐 큰 기쁨이었어요. 이 기억을 자양분으로 삼아, 이 척박한 한국교회에서 “우리의 신앙”을 큰 소리로 외치고 싶습니다.
수 : 어떤 이들은 ‘페미니즘’을 악으로 규정하던데 두 분이야말로 참 신앙인이네요! 여러 사회참여 활동 중 페미니스트로서 활동을 주로 하고 계시는데요. 이런 활동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새 :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시기를 겪으며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생겼어요. 그다음 해에 당시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서 시간이 생겨 관련된 강의를 듣고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기도 했어요. 그러면서 크리스천 페미니즘 운동인 ‘믿는 페미’와 풀뿌리여성주의운동을 만나 페미니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네요. 하나씩 하나씩 활동을 하면서 마주치는 사람들에 따라 운동의 범위와 영역도 다양해지는 것 같아요. 낯선 사람들을 만나고 친해지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고 이전에는 아주 낯설었던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되었어요. 우연히, 운명적으로 마주치며 일어나는 변화가 반갑기도 하고 기대도 돼요.
창 : 저는 특별한 계기 없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했어요. 스며들었달까요? 보수적인 교단에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도 모르며 살았던 저는 세월호 사건 이후에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사회적 참사, 노동운동현장 등을 찾으며 기독인권단체 활동가가 되었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여성 선배들, 동료들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보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어요. 함께 책모임을 하고, 여성혐오 사건에 대응하며 하나씩 배워나갔어요. 그렇게 천천히 ‘페미니스트’라는 정체성이 자리 잡은 것 같아요.
수 : (저를 포함하여) 그냥 생각만 하고, 배우는 것으로도 충분할 수도 있는데… 활동을 한다는 건 큰 결심 같아요. 두 분을 계속 현장에 있게 하는 힘이 뭔가요?
새 : 그렇게 큰 결심은 없지만요…! 하다 보니까 뭐라도 하나씩 하게 되네요. ^^ 하고 싶은 일, 재밌는 일이 생기거나, 저를 필요하다고 해주는 상황이 생기면 활동을 하게 되고요. 무엇보다 자꾸 눈에 밟히는 사람들, 사건들이 생겨요. 친한 사람이 있는 곳에 나도 있고 싶어서 활동을 하기도 해요. 꼭 알지 못하는 사람이더라도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때, 나도 연루되어 있는 사건이라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러한 감각이 계속 현장을 찾도록 해요.
창 : 현장에 있게 하는 힘이라기보다는, 현장에 가야 힘이 나는 것 같아요. 과거 1년 정도 시민사회단체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는데요. 당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업무를 했기에, 업무 만족도는 높은 편이었어요. 그런데 어딘가 허하더라고요. 제가 있던 단체는 현장을 주로 나가는 곳은 아니었거든요. 동료들이 현장에 나가 활동한 사진들을 보며 ‘나 왜 지금 저기에 없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렵게 바쁜 업무를 밀어 두고 현장에 나가면 그렇게 몸과 마음에 힘이 돌더라고요. 활동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제겐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수 : 자꾸 눈에 밟힌다니… 몸과 마음에 힘이 돌다니… 운명적인 느낌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문득 두 분의 관계도 궁금해지네요. 어떻게 만났나요? 서로의 장점을 세 가지씩 이야기해 볼까요?
새 : ‘평화산책’이라는 시민 합창단에서 처음 만났어요. 2년 정도는 지금만큼 친하진 않았고 합창단에서 매주 노래를 같이 부르며 내적 친밀감을 쌓았어요. 2020년에 창연이 교회를 찾아 방황하던 저를 (지금도 다니고 있는) 교회로 초대해 주며 더 깊게 친해지게 되었어요. 창연의 장점은 정말 많은데, 세 가지만 꼽기가 어렵네요. ^^ 첫 번째 장점은 따뜻하면서 유능하다는 점이에요. 진심을 담아 사람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진심의 마음으로 꼼꼼하고 깔끔하게 일하는 점이 감동적이고 믿음직스러워요. 어떻게 일을 하면 될지 그림을 잘 그려주는 느낌이에요. 두 번째 장점은 창연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다정한 창연은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들을 집까지 바래다주곤 합니다), 창연의 집에서(창연 집에는 맛있는 음식이 많습니다) 나누는 대화가 무척 재밌고 진솔하다는 점이에요. 세 번째 장점은 창연이 아주아주 귀여운 고양이를 두 마리 키운다는 점이에요. 제가 처음으로 친해진 고양이들!
창 : 저희가 만나게 된 계기는 새말이 잘 소개해주었네요. 저는 새말의 장점으로 바로 넘어가겠습니다. ^^ 첫 번째 장점은 제가 새말에게 자주 하는 말인데요. 새말은 다정하지만 거리를 잘 유지하는 사람이에요. 함께하는 동료와 친구들이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다정한 관심을 전해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선을 침범하지 않죠. 그렇기에 다정함과 동시에 안전한 친구라는 생각이 늘 들어요. 두 번째 장점은 성실하면서도 자유롭다는 점이에요. 늘 맡은 일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해내는 새말은 ‘자신의 즐거움’도 놓치지 않고 챙기는 똑쟁이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새말은 아주 사랑스러운 사람이에요. 이건 설명하지 않아도, 새말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이시리라 생각해요. ^^ (수경 : 크게 고개를 끄덕임)
수 : 서로를 자랑했으니 다시 페미니즘 이야기로 돌아가볼까 봐요. 저도 오래 고민해 왔고, 많은 여성 그리스도인이 페미니즘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을 하곤 하는데요. 두 분 안에는 페미니즘과 신앙이 어떻게 공존 혹은 불화하고 있나요?
새 : 페미니즘과 신앙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는 사실 요즘의 고민은 아니긴 해요. 지금은 그걸 넘어선 느낌이랄까요? 이렇게 대답하는데 시간이 걸렸어요. 페미니즘 필터로 보기 전에도 신앙은 너무 모호하고, 신과 신이 만들었다는 세상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계속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고 운이 좋은 날에는 그중 어떤 질문에 이해할만한 대답을 찾기도 했어요. 이러한 과정이 페미니즘 필터로 신앙을 바라볼 때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요즘에는 소소하게 의심하고 다투며 공존하고 있어요.
창 : 신앙은 결국 내가 만난 하나님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생각해요. 신앙의 여정을 통해 저는 ‘나 자신’을 배워왔거든요.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고유한 나의 빛깔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죠. 제게는 페미니즘 역시 큰 틀에서 신앙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남성의 경험에 기대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서의 나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나의 언어, 내 존재 그 자체로 무엇인가를 꿈꿀 수 있게 되었죠. 사회가 요구하는 내 모습이 아닌, 진짜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었어요. 이런 점에서 저는 요즘 신앙과 페미니즘이 공존하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신앙과 페미니즘은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 고마운 길목이거든요. 기독교가 갖고 있는 몇몇 요소들과 페미니즘은 불화할지 모르지만, 큰 틀에서 보자면 저에게 신앙과 페미니즘은 함께 손 붙잡고 갈 수 있는 친구 같은 느낌이에요.
수 :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하며 제 안에서 신앙과 페미니즘이 같은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새말은 현재 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떤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 공부가 새말의 그리스도인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관점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요.
새 : 저는 커뮤니케이션 미디어학과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요. 학부 전공은 간호학과인데요. 헬스 커뮤니케이션과 언론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가 언론과 미디어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그러한 노출이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사회적 소수자들이 보다 건강한 삶, 존엄한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대중을 설득하고 파급력 있게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더 연구하고 싶어요.
수 : 정말 필요한 연구인 것 같아요. 논문을 기대해 볼게요. 창연은 비교적 최근에 목사 안수를 받으셨지요. 목사님이라니! 거리감이 느껴지는데요? (농담입니다) 어떤 목회자가 되고 싶으세요?
창 : 저는 학교를 다닐 때, ‘설교 잘하는 목사’가 되고 싶었어요. ㅎㅎㅎ 그래서 전공도 성서학으로 정했었더랬죠. 하지만 지금은 그 지향이 조금 달라졌어요. 졸업한 이후 현장을 만나게 되면서, 기능적으로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닌 ‘말씀’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 것 같아요. 저는 성경의 말씀이 ‘생명을 살리기 위해’ 기록되었고, 그렇게 사용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거든요. 그렇기에 말씀을 오독해 생명을 해치는 데 사용하지 않는 목회자, 배운 것을 ‘생명살림’에 적용하는 목회자가 되고 싶어요. 이 큰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삶과 신앙 앞에 정직하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수 : 나중에 창연이 목회하는 교회에 다니고 싶어 지네요. 인터뷰가 거의 마지막으로 흘러가고 있어요. 약간은 장래희망을 묻는 것 같은 질문인데요. 어떤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나요?
새 : ‘평정심’과 ‘신나는’이라는 단어가 떠올라요. 너무 일희일비하지 않고, 지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길게 길게 가고 싶네요. 저는 좀 신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신나는 기운을 같이 전해줄 수 있으면 더 좋겠어요. 넷플릭스 드라마 <보건교사 안은영>에 “그럴수록 칙칙하게 가지 말고 달리는 모험 만화로 가야 돼”라는 대사가 나오는데요. 그런 느낌으로 씩씩하고 신나게 가고 싶어요. 이왕이면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젤리’나 귀여운 것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요.
창 : 저는 다정하고 유쾌한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동료들의 마음을 살피되, 힘든 마음을 나눌 때는 그 마음을 살살 풀어줄 수 있는 사람. 무거운 짐을 가볍게 덜어줄 수 있는 사람. 기쁜 일은 즐겁게 반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수 : 두 분의 현재 모습을 보니 그 바람을 이미 이루신 것 같아요. 요즘 가장 관심을 가지는 건 뭐예요?
창 : 이런 답을 내놓아도 될지 모르겠어요. 저는 현재 저희 단체에서 준비하고 있는 ‘종교개혁제’에 온 마음과 생각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행정적인 영역보다는, 이 안에서 함께 나누게 될 이야기들이 너무 궁금해서요! 이번 종교개혁제는 ‘페미니스트 리더십이 여는 내일의 교회’라는 주제로 진행되는데요, 주제발제와 함께 참여자 모두가 함께하는 워크숍이 준비되어 있어요. 이게 마치 홍보하는 것 같아서 민망하긴 한데요, 정말입니다. 정말 요즘 제 가장 큰 관심사예요. ㅎㅎㅎ
새 : 부끄럽지만 저는 요즘 ‘사랑밖에는 난 몰라 상태’인데요. 여자친구와 다정한 시간을 보내고 서로 알아가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즐거워요. 소위 ‘결혼적령기’라 주변 친구들의 결혼식을 참 많이도 가는데 ‘나도 앞으로 여자친구와 그런 관계가 될 수 있을까? 서로를 책임지고 돌보는 법적 테두리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해요. 그래서 최근 10월 11일 동성부부 11쌍이 제기한 혼인평등 동시소송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나이가 들수록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문제일 것 같아요.
수 : ‘반가운 소식’으로 인터뷰 문을 열었으니 ‘보람찬 것’으로 인터뷰를 마치고 싶어요. 요즘 하는 것 중 가장 보람찬 일은 무엇인가요?
창 : 요즘 가장 보람찬 일은 ‘평등세상을 위한 100대 기도제목’ 연서명 리스트에 추가 연서명자를 업로드하는 일입니다!!! 연서명 마감 이후 많은 분들이 연서명을 할 수 있게 열어달라 요청하셨어요. 연서명 기간을 놓치신 분들을 위해 지난 10월 16일부터 연서명을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분들이 추가 연서명에 동참해 주고 계세요. 추가된 명단을 기입할 때마다, 평등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분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새 :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일상을 무사히 차근차근해나가는 게 보람찬 일이에요. 아침에 눈 뜨고, 하루에 하기로 한 일을 하고, 끼니를 챙기고,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미루지 않고, 운동을 하고,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화분에 물 주는 일들을 하며 소소하게 보람이 생겨요.
수 : 제가 뭐 드릴 건 없고 반가움과 보람이 늘 충만한 일상을 사시길 응원할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페미니즘에 관해 소개하는 책을 추천해 주세요(이유도 함께요).
창 : 요즘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반성하며, 책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많지 않은 독서 리스트 중 하나를 꼽자면 <여성, 존엄을 외치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여성의 저항>을 추천하고 싶어요. 힘들고 무력한 소식이 들려오는 요즘, 우리에게 기운을 북돋아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새 : 저는 오드리 로드의 <시스터 아웃사이더>를 추천합니다. 오드리 로드는 흑인 여성,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두 아이의 엄마, 암 투병 생존자, 활동가인데요. 두려움을 건너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꿀 수 있는 통찰이 담겨있어요. 그리고 경험과 교차성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우리 안의 차이를 인식하고 연결지점을 찾아 연대를 구축할 용기를 주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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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호에 보내주신 답장을 소개드릴게요!
- 감사합니다. 좋은 책을 전하여 주셔서 함께 읽을 귀한 마음이 일게 됩니다. → 소개를 드려도 읽는데까지 이어지기가 쉽지 않던데요! 귀하십니다!
- 분명 읽었는데 읽었다고 말할 수 있는 확신을 거의 앗아가는 저자 본회퍼. 그래도 계속 읽고 싶어져서 기웃거리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타박하지 않을 것 같은 안내자인데요, 그분이 <틈>을 타고 와주셨네요. 김광현 선생님의 글을 읽다보니 다시 본회퍼의 책을 집어들 용기가 생깁니다만, 박현철 모니터요원님이 잡솨보라고 내밀어 주신 책들도 아른거려서 어쩌질 못하게 행복한 고민에 놓입니다. 튼실한 8호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 행복한 고민이라고 하시니 저희도 보람차네요. 감사합니다!
다음 호는 “소개할 책이 너무 많아서” 즐거운(!) 고민인 신간 모니터요원이 소개하는 책 이야기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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