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금만 방심하면 책상 한구석에 책이 탑처럼 쌓입니다. 저는 주로 책상 왼쪽에 책을 쌓는 편인데요, 사무실 책상도, 집 책상도 왼팔을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책이 쌓였네요. 책이 쓰러지겠다 싶을 정도가 되면 신간 소개를 써야할 시간이 왔구나 생각합니다. 매달 10일인데, 이번달은 책이 좀 늦게 쌓였는지 날짜를 놓쳐 소개가 늦었네요. 부지런히 나오는 책들처럼 저도 조금 더 부지런해야 겠다는 다짐을 하며 1월의 신간 소개합니다. 🙂
헬라어의 시간
김선용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192쪽
신학교에서 헬라어를 처음 배웠을때, 헬라어가 그리 어렵지 않다고 자만했던 적이 있다. 익숙한 한글 텍스트로 단어 뜻만 대치하니 쉬워 보였던 탓이다. 하지만 번역과 언어 공부는 단순히 단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그 언어가 품은 뉘앙스와 세계를 되살리는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한 단어에 담긴 한 세계를 해석하는 데 필요한, 상상 이상의 수고를 자주 간과하곤 한다. 『헬라어의 시간』은 헬라어라는 고대 언어 안에 담긴 풍성한 세계를 보여주는 책이다. 얼핏 보면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단순히 뜻풀이한 책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한 단어 안에 담긴 세계와 오늘 우리의 세계를 연결해 보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상상 이상의 책일 것이다. 2,000년 전 광장과 시장에서 쓰이던 언어의 맥락을 폭넓은 자료를 통해 복원해냄으로써, 익숙했던 성서의 단어들을 전혀 새로운 풍경으로 마주하게 한다. 저자는 ‘또 하나의 신학 입문서’를 넘어 ‘사회사, 감정사, 심성사의 시선으로 고대 텍스트에 다가가’고자 했다고 하고, 그 목적을 매우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다만 편집상 한가지 아쉬움은 남는데, ‘주註는 더 깊은 연구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되도록 기획했’다는 저자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235개의 각주를 모두 미주로 처리한 점은 못내 서운하다. 페이지당 1.35개의 주석이 달린 책이라면 당연히 주석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하지 않을까. 어쨌거나 이 책을 발판 삼아 ‘헬라어 붐’이 찾아오길!!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 숨쉬는 모든 순간
제니퍼 터커 지음, 전의우 옮김, 아바서원 펴냄, 208쪽
기도를 영혼의 호흡이라 한다면, 때로(사실은 자주) 우리 영혼은 호흡불능의 순간에 빠지기도 한다. 숨이 턱 막히는 압박과 불안 속에서 기도가 막히는 순간. 제니퍼 터커의 『말씀으로 드리는 기도, 숨쉬는 모든 순간』은 바로 그 지점에서 기도의 숨통을 틔워줄 수 있는 책, 영혼의 흔들림을 잡아주고 깊고 안정적인 호흡을 도와주는 책이다. 이 책이 제안하고 있는 ‘호흡 기도’는 일면 요즘 유행하는 명상과 호흡법의 아류 같지만, 사실은 사막 교부들이 ‘쉬지 말고 기도’하기 위해 실천했던 우리 신앙의 ‘오래된 유산’이다. 짧은 말씀 구절을 읊조리며 들숨에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을, 날숨에는 내면의 무거운 짐을 내뱉다보면, 단순한 리듬 속에서 어느새 하나님께 감싸 안기는 영혼의 안식을 경험할 수 있다. 책은 호흡 기도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실제 말씀에 기반한 호흡 기도문과 짧은 에세이 모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일러스트와 캘리그라피는 더욱 편안하게 기도의 동반자가 되어주고, 단단한 양장 제본은 곁에 두고 언제든 펼쳐보고 싶은 신뢰감을 준다. 한글 제목 번역이 좀 긴데, 원제인 『Breath as Prayer』를 생각하면 오히려 이 책의 목표와 효용을 더 단순하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 기도 생활을 위해서도, 선물용으로도 좋은 책이다.
강영안의 공부한다는 것
강영안,최종원 지음, 복있는사람 펴냄, 400쪽
역사학자 최종원이 묻고, 철학자 강영안이 답한 대담집이다. 기획부터 발간까지 7년이 걸렸다고 한다. 두 지성이 한국과 캐나다를 넘나들며 나눈 긴 동행과 대화는 철학과 신학, 역사와 일상을 가로지르는 치밀한 탐구와 해박한 지식, 따뜻한 지혜로 풍성하다. ‘공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이 공부는 단순히 책상 머리에서의 지식 습득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강영안 교수는 공부가 머리 뿐 아니라 몸의 실천, 전인적 수행과 형성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하게 역설한다. 변화(Transformation)를 위한 형성(Formation)을 추구하는 공부론은 과연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지성의 영성’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요구받는 공부와 자기를 닦는 공부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 시대의 구도자들에게 이 책은 든든한 나침반이자 따뜻한 격려가 되어줄 것이다. 대담자인 최종원 교수님의 이야기도 조금 더 담겼더라면 대담이 더욱 풍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욕심도 들지만 한 권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니, 다음에는 ‘최종원의 공부한다는 것’도 듣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지성과 영성, 앎과 삶이 조화를 이루는 더 나은 삶을 형성해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기독교×대중문화 3.0
김상덕,이민형 지음, IVP 펴냄, 300쪽
‘아직도 대중문화 이야기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첨단 기술이 동원된 미디어를 누구보다 빠르게 적용하고, 트렌드를 쫓아기에 바쁜 한국 교회 현실에서 기독교와 대중문화의 관계를 논하는 것이 여전히 의미있는지 회의적인 질문도 든다. ‘문화를 논하는 책이라면 좀 더 매끈하고 친절한 제목을 달았어야 하는건 아닌가?’ ‘3.0이라면 1.0, 2.0은 뭐지?’ 라는 질문도 들 수 있겠다. ‘표지 그림은 이게 뭐야. 포스트 모던이야?’ 같은 질문이 꼬리를 문다.(사실 다 내가 했던 질문들이다.) 그렇지만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 및 둘 사이의 역동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 논의되어야 하는 주제고, 이런 질문을 끌어내는 책도 계속 나와야 한다. 우리가 그 문화 안에서 살아가고 있고, 그것을 향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끝나지 않는 질문들에 답하며 계속 변해가는 시대의 욕망을 읽어내는 해석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좀비물부터 갓생 살기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이면에 숨겨진 사람들의 욕망과 갈등, 고민 등을 신학적 시선으로 예리하게 포착하고 섬세하게 읽어낸다. 단순히 문화를 즐기는 법을 넘어, 지혜롭게 읽어내는 ‘리터러시’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느슨해진 대중문화 논의에 새 숨을 불어넣는 두 저자의 열정과 여정에 감사하며 응원한다.
기독교와 현대의 문화전쟁
스티븐 D. 스미스 지음, 노재현 옮김, 새물결플러스 펴냄, 560쪽
한국 교회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적극적으로, 심지어 전투적으로 사회 정치적 이슈에 참여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관련 논의나 최근의 계엄 정국, 종교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을 보고 있으면 과연 ‘문화전쟁’의 시간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전쟁의 이유가 무엇인지, 진영과 전선을 어떻게 구분하는지에 따라 이 전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양하게 변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현실을 사회가 세속화된 결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교회의 잘못으로 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몇몇 지도자들의 탐욕과 오판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어쨌든 교회와 사회가 일종의 전쟁 중에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고 우리는 이 대립을 이해할 수 있는 진지하고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다. 『기독교와 현대의 문화전쟁』은 현대의 문화전쟁이 사실상 오래전 로마 제국에서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와 이교의 충돌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하며, 지극히 세속화된 현대 사회에 여전히 내재되어 있는 종교성을 밝히고 사실상 종교전쟁, 세계관의 전쟁임을 설명한다. 솔직히, 개인적으로 내재적 종교성과 초월적 종교성을 강하게 구분하고, 특히 성과 종교 자유에 대한 진보적 주장들을 ‘이교적’이라고 규정하는 논의가 편안히 읽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무지 출구가 보이지 않는 균열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에 종교적 뿌리가 있다는 점에 동의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서로의 입장과 전선을 잘 확인하고 화해의 지점을 찾아내기 위한 실마리로 이 책에 대한 꼼꼼한 독해가 필요하다는 점은 납득이 되었다.
종교개혁 중세에서 근대로의 역사적 대전환
최종원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 1008쪽
종교개혁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루터와 깔뱅을 통해 잘못된 가톨릭 전통을 개혁하고 교회를 바로 세운 사건’이라고만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종교개혁이 정말 ‘역사적 사건’이라고 믿는다면 역사라는 것이 그리 납작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리고 모든 역사는 이어져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책은 종파적 관점으로 인해 납작해져버린 역사인식, 특별히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종교개혁에 대해 갖는 단순한 이해를 더 풍성하게 하고자 하는 기독교 인문주의자의 오랜 노력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종교개혁을 중세와의 단절이 아닌 ‘연속성’ 위에사 바라보며, 익숙한 영웅 서사를 과감히 걷어낸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을 선악의 대립구도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 사회적 맥락 속에서 함께 쇄신을 꾀했던 흐름으로,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낸다. 나아가 종교개혁이 낳은 불관용과 국가 권력의 강화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까지 빠짐없이 파헤친다. 서양사학자로서 학계와 교계의 경계에서 치열하게 연구해 온 저자의 자존심과 결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물론 종교개혁을 이해하자고 이런 학술서 벽돌책까지 읽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나만 하더라도 이런 두꺼운 책까지 읽어야 할 필요는 솔직히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많은 지식만을 담은 책이 아니라, 한 기독교 인문주의자의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담긴 책이다. 그 고민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도전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쓴 사람도 있는데, 읽지 못할쏘냐. 나는 끝까지 읽어볼 참이다.
한 줄 보태는 책들
몇가지 책을 단평으로 소개합니다.

- 『사순절, 돌이키며 바라보다』(IVP)는 많이 나오는 묵상집이 아니라 보기드문 사순절 ‘해설서’다. 고대의 전통과 현대적 통찰을 엮어 은혜 안에서 자라는 절기, 사순절에 대해 안내해주는 얇지만 단단한 책이다.
- 『톰 라이트 사순절과 부활절』(야다북스)은 제목 그대로 톰 라이트의 사순절, 부활절 '묵상집'이다. 나는 톰 라이트가 탁월한 학자일 뿐 아니라 정말 좋은 성경교사, 설교자라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그가 이런 설교집이나 묵상집을 더 많이 써주면 좋겠다.
- 『절기와 설교 하나님을 배우다』(좋은씨앗)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하나님을 배우는 시간으로 절기의 의미를 단단히 하는 신학서적이다. 상대적으로 교회력이나 절기에 관심이 적었던 보수교단 신학자들의 책이라 오히려 약간 낯설게 보이는 면도 있지만, 일단 반갑다.

- 『예언자의 말들』(복있는사람)은 20세기의 위대한 랍비이자 예언자, 헤셸의 글을 선별한 선집이다. 『Thunder in the Soul』이라는 원제처럼, 메마른 현대인들의 영혼에 경이와 정의의 감각을 되살려주는 천둥 같은 글이다.
- 『십계명, 인류 보편의 기본법』(아르토스)은 고대 이스라엘의 종교 규범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보편적 윤리로 자리잡았는지 추적하며, 단지 율법으로서가 아니라 시민 교양으로 십계명을 다시 보게 하는 십계명의 형성사, 영향사다. 얇다고 얕보지 말것.
- 『성경왜곡의 역사』(갈라파고스)는 논쟁적 신학자 바트 어만의 대표작으로 20년만에 증보판으로 출간되었다. 바트 어만이 던진 폭탄은 여전히 폭발력이 있다. ‘불편한 진실을 넘어 성서가 형성된 진짜 역사로 이끄는 책’이라고들 하는데… 그 역사는 정말 진짜일까?
- 『세속의 시대』(새물결)는 철학자 찰스 테일러의 대표작으로 팀 켈러나 제임스 스미스 등이 비중있게 다룬 현대의 고전이다. 분량이나, 난이도, 가격 어느 한가지 만만한 구석이 없는 책인데, 그래도 이런 책이 존재한다는 것, 심지어 번역되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두면 도움이 된다.
✍️ 박현철 | 종교/역학 신간 모니터요원
지난 호였던 김주련 작가님의 큐레이션 '신앙의 언어를 낯설게 하는 책들💡'에 답장을 주셨어요.
- 김주련 작가님 글 너무 좋은데, 추천해 주시는 책들도 너무 좋네요. 한 권씩 읽어봐야겠습니다.
- 또 하나의 생각을 하게 되는 귀한 시간을 열어 주시어 고맙습니다.
작가님의 소개 덕분에 독자님들의 책장바구니가 또 가득해졌겠네요.
1월의 신간을 훑어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무엇인가요? 어떤 부분이 궁금해지셨고 어떤 부분이 갸우뚱 하신지 답장을 남겨주시면 함께 읽고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호는 김유미 요원의 톡톡 튀는 인터뷰로 돌아오겠으니 많은 기대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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