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 과잉의 시대입니다. 읽을거리는 어디에나 있고, 우리는 날마다 읽습니다. 읽은 것뿐 아니라 읽는 행위를 남에게 보여주는 일도 자연스러워졌지요. 그런데 뭔가를 읽고 나서도 마음에 남는 것이 없는 경험을 한 번쯤 해보지 않으셨나요? 문제는 무엇을 읽느냐보다 어떻게 읽느냐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좋은 읽기는 텍스트와 나 사이에서 조용한 사건을 일으킵니다. 읽기 전과 이후의 나를 아주 조금이라도 바꾸어 놓지요. 이번 호 〈틈〉은 다독보다 다상량(多商量)에 관심이 있는 분들, 시간을 들여 읽고 기록할 때 일어나는 변화가 궁금한 분들을 떠올리며 준비했습니다. 사려 깊은 독서가 〈복음과상황〉의 강동석 기자님께 큐레이션을 부탁드렸습니다.

🖋️ 큐레이터: 강동석 기자 | 학부에서 국어국문학과 문예창작학을 공부했으며, 〈뉴스앤조이〉에서 편집기자로 일했다. 현재 〈복음과상황〉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A. 더 나은 방식으로 읽을 수는 없을까?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질문을 벗어날 수 없겠죠. 저는 타고난 독서가가 아니었기에 꽤 오랜 기간 “독서는 노동이자 고행이다” 떠들고 다니기도 했고, ‘책은 공부하듯이 빡세게 읽어야 한다’ ‘취미 독서는 잊으라’ 한 최재천 교수의 말에 동의하기도 했던 터라, 치열하게 읽기 위해 애쓰다 보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독서의 방식을 ‘좋은 읽기’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고 있네요.
버지니아 울프는 〈책은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말했어요. “정말이지 독서에 관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고 자신의 본능에 따라, 자신의 이성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에 이르라는 것뿐이다.”(《문학은 공유지입니다》) 제가 질문하신 내용에 대답하기에 적합한 사람인지, 적절한 책을 추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조언을 전제하고서 제 생각을 덧붙여보려 합니다.
더 나은 방식으로 읽는 법에 대한 고민은 ‘더 가치 있는 삶을 위해서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 가까울 테지요. 인간의 기억은 유한하고, 삶에 뚜렷한 형상을 남기는 책은 무척이나 적은 까닭에, 읽은 내용을 전부 내 것으로 만들 방법은 없을 거예요. 다만 나의 ‘읽기’와 ‘읽기의 태도’를 점검하도록 돕는 책이라면, 더 나은 삶을 위한 독서로 우리를 인도해줄지도 모르겠네요.
저의 ‘최애’ 소설가로, 지독한 독서가였던 오에 겐자부로는 책을 통해 받아들인 상상의 형태를 현실의 힘으로 전환해나가는 독서론을 강조했는데요. 따라서 제가 글쓰기 수업을 할 때 인용하는 소설 쓰기에 대한 그의 말은, ‘읽기’로 바꿔서 적용해도 유효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인생을 다시 고쳐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소설가는 다시 고쳐 쓸 수가 있다. 그것이 다시 고쳐 사는 일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애매하게 살아온 삶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 될 것이다.”(《읽는 행위》) 이렇듯, 삶을 삶답게 살아내도록 ‘읽기’를 고민하게 하는 책들을 소개해보려 합니다. 절판 상태가 아니면서, 두껍지 않고, 출간된 지 오래되지 않은 책 위주로 골랐습니다.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정혜윤 지음, 민음사 펴냄, 256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2000년대 이후 ‘독서 에세이’로 이름을 알린 정혜윤 PD가 ‘책 읽기’를 둘러싼 질문들에 답하는 책이에요. 그는 방대한 독서량을 바탕으로 자신과 주변 이야기를 책과 엮어서 풀어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작가죠. 그의 글은 두서없는 강의 같기도 하고, 책과 책 사이를 종횡무진 여행하거나, 어떨 때는 각종 인용과 에피소드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라, 스타일에 ‘불호’를 표하는 독자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의 글을 읽고, 그가 인간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견에 반대할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독서 관련 강의를 할 때면 종종 듣는다는 질문들, 곧 이 책의 화두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여덟 가지 질문은 이렇습니다. ‘먹고살기도 바쁜데 언제 책을 읽나요?’ ‘책 읽는 능력도 없는데 어떡하나요?’ ‘삶이 불안한데도 책을 읽어야 하나요?’ ‘책이 정말 위로가 될까요?’ ‘책이 쓸모가 있나요?’ ‘책의 진짜 쓸모는 뭐죠?’ ‘읽은 책을 오래 기억하는 법이 있나요?’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사실 비밀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어쩌면 전부 다 소소한 물음일 수 있겠는데요. 이 책은 몇 문장 혹은 몇 줄로도 쉽게 정리될 법한 이 질문들에 마음을 다해 대답해 나갑니다. 때로는 동문서답, 때로는 설명이 비약이나 과장처럼 느껴지지만, 특유의 스타일대로 다종다양한 책과 인생 이야기를 쏟아내며 한바탕 책 수다를 펼쳐놓습니다.
출간된 지 벌써 14년이 흘렀지만, 행간에 언뜻언뜻 비치는 각자도생에 관한 불안의 그림자는 오늘날 사회적 현실과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질문 하나하나를 의식하면서 읽다 보면, 독자로서도 책이 나에게 무엇인지, 나는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지, 왜 책을 읽으려 하는지를 가만히 생각해보는 시간이 찾아옵니다.
읽지 못하는 사람의 미래
전병근 지음, 유유 펴냄, 260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왜 굳이 책을 읽어야 할까?’라는 물음은 인공지능(AI) 시대에 필수 질문이 되어버린 것만 같습니다. 이 책은 하나의 대답으로 ‘돌봄의 읽기’를 제안하고 있어요. “돌봄의 읽기란 짜임새 있는 긴 글, 책 읽기를 통해 돌보는 눈을 기르는 것을 말한다. 정보의 수동적 소비가 아니라 자신의 주의력을 능동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이기적 자아의 근시안을 벗어나 타자와 세계를 호기심과 애정의 눈으로 둘러보고 돌아보고 살펴보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읽기’가 인간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앞으로의 변화를 염두에 두었을 때 우리의 ‘읽기’는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가 드러납니다. 구술문화에서 본격적인 문자문화로 넘어오고 오늘날의 AI 시대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진화’ 관점에서 인류 역사의 긴 맥락을 압축 정리하면서 읽기와 쓰기의 미래를 고민하는 책이에요. AI 시대의 읽기와 쓰기를 논하는 책이 많지만, 굳이 300쪽도 안 되는 이 얇은 책을 추천하는 까닭은, 균형 잡힌 위치에서 관련 논점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식 큐레이터’를 자처하는 저자를 인터뷰집 《지식의 표정》을 통해 처음 알았는데요. 유발 하라리를 이미 몇 차례나 인터뷰하고 그의 책까지 번역한 이력이 있고요. 거물급 문화비평가 대만의 탕누어와 미국의 데이비드 브룩스를 비롯해 인터뷰 상대자로 다루었던 뇌과학자·인지신경학자 등은 ‘AI 시대의 읽기’를 말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인물들이에요. 최신의 문해력 연구를 망라한 《다시, 어떻게 읽을 것인가》, ‘깊이 읽기’를 뇌과학적으로 조명한 《다시, 책으로》를 번역하기도 한 저자는 꽤 일찍부터 이 주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비관하지도, 낙관하지도 않으면서 미래를 전망하는 태도가 인상적인 책입니다.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홍한별 지음, 위고 펴냄, 27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100권 넘는 책을 옮겼고, 출판사로부터 무엇을 언제까지 써도 상관없다는 ‘백지의 출판계약서’를 받은 번역가라고 한다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이 백지 계약서의 결과물인 이 책은 수전 손택, 조앤 디디온, 클레어 키건 등의 작품을 옮긴 저자의 ‘지적인 에세이’예요. 번역이 지닌 모호성과 불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번역의 세계를 비유의 방식으로 설명하는 책인데요. 우선은, 허먼 멜빌의 《모비딕》을 통해서 번역을 ‘흰 고래를 그리려고, 연필 선을 더해 흰 고래를 그리는 대신 흰 고래를 제외한 모든 것을 그리는 일’이라고 말하죠. 성경의 바벨탑 사건, 단테의 《신곡》,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텍스트를 ‘번역’이라는 키워드로 읽어내는데, 인간의 관계 맺음과 소통의 불가능성 가운데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희망’을 말하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 책은 번역가의 변명이라기보다, 쉬운 비판의 대상이 되는 ‘번역’을 신중하고 섬세하게 들여다보는 ‘읽기’ 작업에 가까워요. 특히 직역과 의역에 관한 이슈들, 경전 번역에 관한 역사, 국가 간 번역 문화의 차이, 〈채식주의자〉 영역본을 둘러싼 논쟁, 기계 번역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에 대한 글들은 번역서 출간이 활발한 한국의 독자라면, 한 번쯤 귀 기울이고 숙고할 만할 내용들이에요. 보통 이런 이야기는 업계 종사자들을 고려하여 에둘러서 하기 마련인데, 저자는 퍽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밝히죠. 이 중에서는 무엇보다 ‘기계 번역의 발전’보다 기계 번역이 표준화되면서 ‘대중의 언어 감각’이 그에 맞춰 변화하는 것을 우려하는 의견에 공감이 갔습니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제임스 우드 지음, 노지양 옮김, 신형철 해제, 아를 펴냄, 232쪽, 전자책 있음 [도서정보보기]
저는 이 책 저자 제임스 우드를 15년 전 수강한 ‘소설창작실습’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2011년 번역 출간된 저자의 다른 책 《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교재로 삼아 강의를 진행한 교수님은, 작중인물을 다룰 때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소설가였어요. 소설의 구성 요소에 관한 123개의 짧은 글 모음집인 이 책은, 문학의 본령을 떠올릴 때면 생각이 나서 서너 번 정독하고 좋은 교보재로 가끔 들춰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의 관점을 한마디로, “문학이 우리를 좀더 삶을 잘 알아차리는 사람으로 만들면, 우리는 삶 자체에서 실습하게 되고, 그리하여 이것이 우리를 문학의 세부사항을 좀더 잘 읽는 독자로 만들면, 그것이 이번에는 우리를 삶을 좀더 잘 읽는 사람으로 만든다”(《소설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로 정리할 수 있겠어요. ‘삶’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길러주고, ‘삶다움’을 숙고하는 데 문학의 역할이 있다고 말하죠. 전통적 관점의 소설론인데, 이 이상으로 저를 설득하는 소설론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전공자 혹은 마니아가 읽기에 더 적합해 보였어요. 예시로 언급하는 작품과 장면이 많고, 번역서라는 점이 읽기에 어려움을 더하죠.
그런데 몇 달 전에 저자의 다른 책이 번역돼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어요.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이 바로 그 책이죠. 책 제목은 “예술은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우리의 경험을 증폭시키고, 개인의 운명의 한계를 넘어 동료 인간의 삶과 맞닿게 한다”라는 조지 엘리엇의 글에서 따왔습니다. ‘정확한 글쓰기’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한국어판 출간이 성사되는 데 관여하고 이 해제까지 스스로 떠맡는” 수고를 자처한 책이더군요. 강연들에 기초하고 있어 전작보다 쉽게 읽히지만, 여전히 꽤 많은 작품이 예시로 언급된다는 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하여 텍스트를 통과해서 읽는 법’을 일러준다는 점에서 여러 번 읽을 책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어요.
자기이론
로런 포니에 지음, 양효실·김수영·김미라·문예지·최민지 옮김, 마티 펴냄, 480쪽 [도서정보보기]
오래전부터 글의 세계에서는 ‘나’를 드러내는 텍스트를 저평가해 왔습니다. 자기에 관해 쓰더라도, 거리 두기를 통해 감상주의나 나르시시즘적이라고 여겨질 요소들을 떨쳐낼 수 있어야 했죠. 제 서가에서 잘 보이는 곳에 꽂혀있는 조앤 디디온의 《상실》은 배우자와의 급작스러운 사별 이후의 일들을 다루는데, 첫 페이지에서 “자기 연민이라는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자기 객관화의 화신으로서 저자의 냉철한 태도는, ‘나’를 날것 그대로 드러내는 글이 폄하돼왔던 역사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해요.
그런데 근래에 특별한 영감을 준 책들의 면면을 보면, 하나같이 ‘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던 것 같아요. 각종 이론을 녹여내 결국 ‘나’를 넘어서는 담론을 만드는 ‘소수자’(여성·선주민·유색인·성소수자·장애인 등)들의 텍스트(에세이·자서전·회고록·오토픽션 등)였지요. 이 책 《자기이론》에서도 사례로 제시되는 리아 락슈미 피엡즈나-사마라산하, 앤 보이어, 요하나 헤드바 등의 글이었는데요. 최근 일련의 한국 저자들 또한 자기이론적 작업물을 펴내고 있습니다. AI 시대에 사라지지 않을 인간 고유의 글이란, 이런 수행적 글쓰기가 아닐까요?
저자는 ‘자기이론’(Autotheory)을 “직접적이고 자기-인식적인 방식으로 이론 및 철학과 자서전을 통합하려는 문학, 글쓰기, 비평의 작업”이자, 페미니즘·탈식민주의·퀴어장애학 등을 경유하여 “예술, 삶, 이론, 비평 사이를 이렇게 자기-성찰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정의하는데요. 특히 1960년대 이후 페미니즘적 글쓰기와 행동주의 역사에 주목하면서 ‘자기이론’의 계보를 정리하고, 2010년대 이후 ‘유럽-미국-백인-시스젠더-남성’ 중심의 ‘이론’을 자기 것으로 삼은 퀴어 작가-예술가에게서 본격화된 자기이론의 사례를 분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자기이론적 작업은 상호텍스트성과 교차적 방법론을 통해 관계성·의존성·취약성 등을 재정의한다는 측면에서 급진적이지만, 자신과 주변의 삶을 텍스트화하면서 발생하는 윤리적 긴장, 이론의 위계를 전복했으나 여전히 학술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 장르 혼선의 문제 등이 가능성과 한계로 남습니다. 이론들과 텍스트들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을수록 쉽고 유의미하게 읽히지 않을지요. 읽기와 쓰기의 지평을 확장해주는 책입니다.
다시 ‘독서에 관한 유일한 조언은 아무 조언도 따르지 말라는 것’이라는 버지니아 울프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는 이 말을 전제로 깔고 독서에 관한 몇 가지 자유로운 생각을 전하는데요. 어떤 책이든 독서에 있어서 두 가지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해요. 첫 번째는 ‘아무리 다정해도 지나치지 않은 친구처럼 읽기’, 두 번째는 ‘아무리 엄격해도 지나치지 않은 판관처럼 읽기’입니다. 확증편향에 빠지기 쉬운 인간에게 필요한 제안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실 독서에 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말 중에 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그가 아버지에게서 서재 자유이용권과 함께 받은 유일한 독서 지침이었습니다. “실제로 좋아하지 않는 책들을 좋아하는 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존재의 순간들》)이었죠. 제한된 분야의 책 다섯 권을 소개해 드렸지만, 책을 읽는 나 자신과 내가 읽는 책 자체를 진솔하게 대할 수 있다면, ‘좋은 읽기’는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거예요.
지난 46호 나민 님의 인터뷰에 답장이 도착했습니다.
- 기쁨이 원동력이 되어 꿈을 이루길. 야외 영화제도 하고 큰 교회도 인수하고!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평화책도 주문했답니다.
- 소스리스트를 보고 『요나단의 목소리』를 읽었어요. 깊고 디테일한 이야기에 푹 잠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떠나보낸 후 힘든 시간을 견디고 살아가는 소중한 친구에게 이 책을 건네보려 합니다.
나민 님 보고 계실까요! 함께 나민 님의 꿈을 기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다정한 독자님들과 필자님들 덕분에 '틈'을 내는 즐거움이 크네요. 이번에 소개된 책들을 따뜻한 볕과 함께 잘 누리시길 바라겠습니다. 다음호는 3월의 신간소개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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