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별로 궁금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최근 만난 분은 달랐습니다. 독특한 차림에 언제나 웃는 얼굴, 70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인공지능부터 인문학까지 어느 영역에서도 막힘이 없는 이 분. 그의 열정과 호기심은 제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했습니다.
여전히 현역에서 뛰며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모습은 마치 파도를 유연하게 타는 서퍼 같았습니다. 이 분을 통해 '100세 시대,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과연 이 분은 누구일까요?
지금부터 그의 독특한 인생 여정과 우리 모두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조언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인터뷰 핵심 요약
- 다국적 경험을 통해 유연한 사고와 일을 즐기는 방식을 체득했습니다.
- 적극적인 자기 어필과 기존의 경험을 활용하여 새로운 기회를 포착, 경력을 전환했습니다.
- "Say Yes" 철학으로 완벽보다는 실행 중심의 접근법을 실천했습니다.
- 70대에 진정한 꿈과 비전을 발견하여 라이프 코칭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개념을 제안하고, 기존 직업을 새롭게 해석하여 실행했습니다.
자기 소개
Q1. 간단한 자기소개와 현재 하시는 일은?
창직학교 맥아더스쿨의 교장으로, 21세기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에 대한 개인 코칭을 하고 있어요. 지난 11년간 450명을 코칭했고, 현재도 주 2-3회 코칭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제 힘이 닿는 한 이 일을 계속할 것입니다.
경력의 변천사: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
Q1. 첫 직장은?
1980년대 초 컴퓨터 보급이 시작될 때, 국내 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5년 간 일했어요. 그 경험이 제 경력 전환의 핵심 역량이 되었죠.
Q2. 시티은행, 전환점이었나요?
네, 15년간 시티은행에서 일하며 큰 전환을 경험했습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프로젝트 매니저로써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게 된 것입니다. IT 부서와 실무 스태프 사이에서 양쪽을 조율하는 일이었죠. 이 과정에서 비즈니스와 IT를 모두 이해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발달하고 시야가 넓어졌습니다.
또한, 다국적 동료들과 일하며 새로운 시각을 얻었어요. 특히 칠레 출신의 세르히오 아라네다가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업무 외적인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도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했어요. 대화의 70~80%는 업무와 무관한 얘기였지만, 오히려 그렇게 해서 신뢰가 쌓이고 일이 더 잘 진행되더라고요. 이를 통해 일을 즐기면서도 유연하게 대응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서 저는 '파도타기' 식으로 경력을 관리하게 됐어요. 관심 있는 분야가 생기면 상사에게 직접 제안하고 그쪽으로 옮겨가곤 했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또 그것이 다른 기회로 연결되는 식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과정에서 제 사고방식과 경력이 계속 확장될 수 있었습니다.
Q3. 경영 분야로 전환 후 가장 큰 깨달음은?
시티은행 퇴직 후, 비즈니스와 IT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영 컨설턴트로 일했습니다. 이어서 반월 공단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일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죠.
처음에는 팀장들에게 질문을 해도 "다 아시잖아요. 그냥 오더만 내리세요"라는 답변만 돌아왔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1대1 면담을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질문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죠. 이 경험을 통해 질문이 단순한 정보 수집 도구가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이끌어내고 자기 인식을 돕는 강력한 도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Q4. 다양한 직업 경험 후 코칭을 하게 된 계기는?
교육 사업, 프로퍼티 매니저, HR 강사 등 다양한 경력을 통해 사업가보다 사람을돕는 일이 제게 맞다고 느꼈어요.
특히 웃음 연구소 경험이 전환점이었죠. 제가 50대 초반까지 웃음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제가 웃음을 배우고 나서 강의를 하고 싶었지만 처음에는 기회가 없었어요. 그래서 교회 노인 대학에서 1년간 무료로 봉사했죠. 1년동안 했더니 소문이 나서 7~8년 동안 웃음 강의를 하게 됐습니다.
결정적 계기는 친구들의 퇴직이었어요. 고등학교, 대학 친구들이 퇴직 후 방향을 잃고 힘들어 하는 걸 보며, 이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것이 제가 본격적으로 코칭을 시작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Q5. 코칭에서 맥아더 스쿨 설립까지 과정은?
코칭을 하면서 퇴직한 친구들을 돕기 위해 뭔가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과정에서 웃음 강사 시절 만난 고정욱 작가와 대화를 나누다 '맥아더 스쿨'이라는 이름을 제안받았죠. 처음엔 무슨 국방 연구소도 아니고 의아했지만, 맥아더 장군에 대해 찾아보니 큰 의미가 있더라고요.
맥아더 장군은 55세에 은퇴했다가 61세에 다시 군에 복귀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항복을 받아냈어요. 그리고 정확히 70세에 6.25 전쟁 때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해 우리나라 승전의 전환점을 만들었죠. 이런 그의 이력이 제가 추구하는 '인생 2막'의 의미와 딱 맞았어요.
그래서 '맥아더 스쿨'이라는 이름을 선택했고, 매년 9월 15일 즈음 인천상륙작전을 기념해 맥아더 장군 동상을 방문하고 차이나타운에서 짜장면을 먹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맥아더 장군의 정신을 이어받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돕는 학교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맥아더 스쿨과 창직의 의미
Q1. 맥아더 스쿨의 시작은?
맥아더 스쿨을 시작하면서 개인 사업자 등록과 상표 등록을 했습니다. 학교와 제 이름을 브랜딩하기 위해 다양한 SNS 채널을 적극 활용했어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카카오 스토리, 브런치, 블로그, 유튜브 등 가능한 모든 플랫폼을 사용했죠.
10년 이상 꾸준히 셀프 홍보를 한 결과, 지금은 SNS를 통해 많은 사업 기회가 생기고 있습니다. 이런 노력이 맥아더 스쿨을 알리고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Q2. 창직의 의미와 특징?
창직이란 전혀 새로운 직업을 만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창직은 두 가지 측면이 있어요. 첫째, 누군가 하고 있지만 제대로 하지 않는 일을 제대로 하는 것. 둘째, 기존 직업을 살짝 비틀어 새로운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2011년경 매일경제 컬럼에서 처음 등장했지만, 아직 사전에는 없는 용어입니다. 창직은 기존 직업의 재해석이나 개선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Q3. 창직의 성공 사례는?
정병길이라는 모바일 아티스트가 있어요. 농협 지점장 퇴직 후, 제 코칭을 받으며취미를 직업으로 발전시켰어요. 아들에게 선물받은 아이패드에 꾸준히 그림을 그리라고 했어요. 오늘부터 당신은 화가다. 이미 화가라고 정의를 해 주었죠.
서울 앱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삼성 전자 담당자를 만나 갤럭시 후원을 받게 되었고, 꾸준한 활동으로 500명의 문화생이 생겼어요. 16번의 전시회도 열었고요. 문화생 중 400명이 갤럭시 탭을 구매 했으니 삼성전자의 마케팅도 성공했죠.
저는 모바일 아티스트가 직업이 될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그분은 생각을 못 했죠. 그런데 그분이 잘한건 처음에 돈이 되지 않아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했기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터닝 포인트, 새로운 기회의 발견
Q1. 스마트폰이 당신의 경력을 어떻게 바꿨나요?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직감했어요. 프로그래머 경험 덕분에 이게 단순한 폰이 아닌, 휴대용 컴퓨터라고 생각했죠.
이를 계기로 주변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워드프레스로 홈페이지도 만들어주었어요. 이 과정에서 '맥아더 스쿨' 이름을 지어준 고정욱 작가를 만났죠.
특히 고정욱 작가에게 스마트폰으로 말로 글 쓰는 법을 가르쳐 1년에 2-3권에서 10권으로 저술량이 늘어나는 데 기여했어요. 이런 경험들로 인해 저는 스마트폰 강사로 변모하게 되었습니다.
Q2. Zoom으로 인한 새로운 기회는?
코로나 초기에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장충 중학교 1학년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당시 만났던 진로교사에게 줌의 필요성을 논의했죠. 아이들이 학교에 못 올 가능성이 있으니 줌을 써야 된다. 선견지명으로 중학교 선생님들에게 zoom사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강의가 직업인 분들을 위한 "줌 원데이 캠프"를 진행했죠.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zoom을 활요해 코로나 시기를 잘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 경험이 제게 새로운 교육 방식과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했고, 동시에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Q3. AI가 당신의 코칭에 미친 영향은?
AI를 퍼스널 브랜딩을 위한 코칭 도구로 활용하고 있어요. 단순히 AI 사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코칭 받는 분들이 자신의 일과 삶에 AI를 효과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코칭의 범위를 확장하고, 내담자들에게 더 실질적인 가치를 제공하고 있어요.
나의 인생과 삶
Q1. 꿈 있으세요?
젊었을 때는 꿈보다 현실에 집중하며 살았어요. 하지만 코칭을 하면서 오히려 제 자신을 깨닫게 되었죠. 내 스타일과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된 거예요. 꿈은 사실 중년 이후에 생기는 것 같아요.
지금 제 꿈은 '등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코칭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게 하고, 스스로 길을 찾도록 돕는 거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는 역할이 제 꿈입니다.
Q2. 후배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은?
직장 생활을 오래 할수록 유연성이 떨어지는데, 이게 가장 큰 장애물이에요. 문제는 본인들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는 거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해요. 자신의 경험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세상이 넓다는 걸 인정하세요. 배울 것이 많다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유연성을 키우세요. 이것이 제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입니다.
내 인생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3가지
후해해 봐야 아무 소용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과거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인생 여정에 꼭 갖고 가고 싶은 2가지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개선되고 나아질 수 있다면, 제 모든 역량을 동원해 도와주고 싶습니다. "쓰레기를 덜 남기는 것" 이는 물리적인 쓰레기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쓰레기도 포함합니다. 지구와 사람들에게 부담을 덜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정은상 교장 선생님의 인생선언문
나는 등대지기입니다. 창직을 통해 사람들이 평생의 직업을 찾도록 돕는 것, 그것이 나의 사명입니다. 길을 잃은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 그들이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고, 스스로의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각자의 여정에서 그들 스스로가 주인공이 되도록 이끄는 것, 이것이 나의 창직 선언문이자 인생의 목표입니다.
평생 현역이 가능할까요? 정은상 교장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저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두려워하지않고 적용하며, 망설이지 않고 일단 시작하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가짐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삶의 철학이 되고 행동의 지침이 됩니다.
이제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진부한 위로가 아닌 현실이 되었습니다. 유연한 사고로 끊임없이 배우고, 도전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가져야 할 진정한 자세가 아닐까요?
우리 모두 오늘부터 '시작을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다음 주에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주실 분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