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서나입니다.
서서히 뉴스레터의 두 번째 편지를 띄우게 되었어요.
서로 다른 이유로 제주에 살고 있는 세 명의 작가들이
매주 월요일, 제주에 관한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보려고 합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는, 이 섬이 익숙한 공간이에요.
하지만 이곳에 잠시 머무는 사람들 덕분에
익숙했던 풍경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죠.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제주토박이가 바라본 시선과
제주살이를 시작한 이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보려 해요.
빠르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이 만남의 기록을, 조심스럽게 건넵니다.
서서히, 제주에 스며들도록.
<오늘의 주제>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❶ 서림 - 울타리를 넘어오는 사람들
❷ 서나 - 내게 여행이 된 사람들
❸ 서흘 - 연을 날리던 선생님
1. 울타리를 넘어오는 사람들
서림
전 제주에 온 지 1년이 채 안된 이방인이에요.
전입신고를 마쳤기에 주소는 제주로 되어있는 어엿한 제주도민이지만,
제주 맛집, 제주 현지인 스팟… 관광객보다도 제주에 관해 아는게 별로 없죠.
제주에 처음 올 때는 그리 마음을 먹었어요.
‘올해 1년은 사람 만나지 말고, 하고 싶었던 [일]들을 실컷 하는 거야!'
그렇게 마음 속 울타리를 높게 치고 그 속에 스스로를 가둔 체 시간을 보낸 지 반년쯤 되었나.
이게 웬걸… 기어코 제 울타리를 넘어 들어온 사람들이 생겨버렸어요.
쉬는 날이면, 차를 끌고와 제주의 바다와 바람을 느끼게해주는 사람.
배가 고프다하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주고, 집 갈 때는 양 손 한가득 귤을 쥐어주는 사람.
한 번 웃을 땐 배가 찢어지게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한 소년 같으면서도,
자신의 인생을 행복하게 채워 나갈줄 아는 솔직하고 어른스러운 사람.
그저 이방인으로 살다 이방인으로 떠나려고 했던 제주인데
자꾸만 선물같은 따듯한 순간들에 이듬해 제주를 떠나야 할 때가 오면
발걸음이 다소 무거울 듯 싶지만, 그것도 꽤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2. 내게 여행이 된 사람들
서나
저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토박이입니다.
제주토박이의 시선으로 보는 제주살이 친구들은 어떨 것 같나요?
사실 저는 어쩌면 당연했던 제주의 일상을
여행처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제주살이를 하러 온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되었어요.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제주에 왔더군요.
긴 도심 생활을 잠시 내려놓고, 숨을 고르고 싶어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고민하다가 잠깐 멈춰보기 위해서.
혹은, 아주 작은 계기 하나로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사람도 있었죠.
시작은 조심스럽지만, 그 용기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어요.
어떤 분은 바리스타가 되었고,
어떤 분은 카메라를 들고 여행을 기록하기 시작했대요.
방송 작가, 웨딩 스냅 작가, 여행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까지.
오롯이 자신을 위해, 삶의 방향을 바꿔 나가고 있더라고요.
일과 일 사이, 전환의 시기를 지나며
자기만의 속도로 제주를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조차 낯설게 느껴지곤 해요.
익숙한 풍경 속에서 새로움을 발견하게 되고,
제주라는 땅에서 저도 다시 여행자가 되기도 하고요.
다양한 삶의 궤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저의 세계도 조금씩 넓어졌어요.
여행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조금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잖아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살던 사람들이
잠시 같은 풍경 안에 머물며 나누는 이야기엔 예상하지 못한 울림이 있거든요.
제주살이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저 역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어디인지
조금씩 더 선명하게 그려나가고 있답니다.
그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처럼 제 세계가 넓어지진 않았을 거예요.
그들 덕분에 저는 일상을 여행처럼 바라보게 되었고,
그 안에서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3. 연을 날리던 선생님
서흘
“일주일이요?”
제주 게하 스텝 시절에 최장기 숙박 손님이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이 작은 시골 마을에 일주일이나 뭐 할 게 있는 걸까 싶었죠.
“연을 날리시더라고요...”
“연이요?”
그렇게 물음표가 가득했던 손님의 정체를 저녁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연을 좋아해서 많이 날리거든요.”
연을 날리는 손님의 정체는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이야기 나누시는 걸 좋아해서 밤마다 라운지에는 이야기꽃이 피었어요.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즐거워 보이셔서 천직 선생님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뜻밖의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엄청 늦게 선생님이 되었어요.”
그것도 회사를 꽤 다니다가, 한창 주변에서 직장인이 되고 이직을 준비할 때
본인은 교대에 들어가서 선생님이 되셨다고 하셨어요.
“... 남들보다 느려서 불안하지는 않으셨어요?”
“음, 그러긴 했죠? 하지만 회사 생활을 해 봐서 학교로 발령 받고 난 후,
다른 부장 선생님들을 대하거나 학교 사회에 적응하는 게 빠르더라고요.
저는 오히려 바로 선생님이 된 젊은 친구들이 적응하는 게 많이 힘들어 보일 때 안타까웠어요.”
당시 첫 번째 제주살이를 할 때에는
한창 친구들이 취업 준비 중이거나 직장을 다니기 시작할 때라,
나만 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건가 고민이 많았던 시절이었거든요.
“선생님이 되고 좋으시나요? 잘 맞으시나요?”
“네, 좋아요.”
잔잔히 웃음 지으며 단호하게 말하던 그 모습이 참 멋져 보였습니다.
제주 게하 스텝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단정한 직함을 지닌 이도,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 만한 자리에 있는 이도 있었지만,
그 분만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빛나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더 이상 초조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속도로, 나만의 얼레를 감으며 내 꿈을 하늘에 띄우기 시작했습니다.
언젠가는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아직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봅니다.
연을 날리던 그 선생님은, 아직도 어딘가에서 연을 날리고 계시겠죠?
오늘은 각자 다른 이유로 제주를 찾은 사람들이
잠시나마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
잔나비의 『외딴섬 로맨틱』라는 노래를 추천해봅니다.
이 노래는 조금 외롭지만 따뜻하고, 느리지만 단단한 이야기예요.
제주에서 처음 만난 누군가와 어디선가 조용히 스며든 관계처럼요.
혼자라는 감정마저도 괜찮아지는 순간들, 그리고 그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따뜻한 인연들.
시간이 흘러야 비로소 아름다웠음을 알게 되는 순간들처럼,
지금의 고민과 방황도 언젠가 찬란한 추억이 될 거라 믿으며 -
지금 이 순간, 당신의 일상에 잔잔한 음악 한 곡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인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떠셨나요?
이번 주제로 글을 쓰면서 알게 된 건,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저마다의 사연과 빛나는 순간을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낯선 땅에서 삶을 다시 그려가던 그들의 용기와 따뜻함은,
제주토박이인 저에게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 당신이 고민 가득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면
제주에서 만난 그들의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더 단단해지길 바랍니다.
다음 주 주제는 <제주에서 살길 잘했다고 생각했던 순간>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만나요 :)
서서히 뉴스레터 https://maily.so/seoseoh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