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Ep 19. 제주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제주는 정말 평화롭기만 할까요?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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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매주 월요일, 제주의 세 작가가 전하는 제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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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건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제주 3년차 서흘입니다.

 

제가 이 주제를 발제했을 때, 다른 에디터님들께서 

도파민이 너무 가득한 거 아니냐고 했었는데요.

 

오히려 뉴스레터라는 공간이기에

솔직하게 풀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큰 자극이 될 수 있어서 마음의 준비를 해주시고요.

제주 이면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보아요.

 


 

<오늘의 주제>

"제주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서나 - 평화의 섬, 그늘 아래에

❷  서흘 - 제주에서 여자 운전자, 그런데 경차면 생기는 충격적인 일

  서림 - 제주도의 집이 사라졌다.

 


 

1. 평화의 섬, 그늘 아래서

 

서나

 

제주는 평화의 섬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모든 평화가 그렇듯, 그 아래에는 우리가 보지 못한 얼굴들이 있습니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저는 그 사실이 더욱 와닿곤 합니다.

 

2020년, 도두동 오일장 인근에서 일어난 사건이 있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남성이 우발적으로 여성을 살해한 일이었죠.

피해 여성은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성실히 하루를 살아가던 분이었습니다.

가해자는 결국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그날의 비극은 여전히 제주라는 공간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때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곳은 ‘평화의 섬’이라 불리지만,

정작 누군가의 일상은 그렇게 평화롭지 않았다는 사실을요.

 

사실 여전히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조심스럽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을 다시 꺼내는 것만 같아서요.

하지만 그날의 이야기를 외면하는 건,

그 아픔이 잊히는 또 다른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잠시 분노하고, 금세 잊곤 합니다.

뉴스 속 한 장면으로, 지나가는 이야기로,

그렇게 흘려보내는 사이 누군가의 이름과 목소리가 희미해집니다.

 

하지만 분노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이 일이 단지 ‘충격적인 사건’으로만 남지 않길 바라기 때문에—

그날 일어난 비극이,

이 사회가 더 안전하고 단단해지기 위한 출발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평화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과 관심, 그리고 서로를 향한 연대로 만들어진다고 믿습니다.

누군가의 상처를 잊지 않는 일,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는 일.

그것이 우리가 이 섬의 그늘 아래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평화’의 시작 아닐까요.

 

오늘 이 이야기가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면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당신 마음 어딘가에 조용히 남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만드는 씨앗이 되기를 바랍니다.

 


 

2. 제주에서 여자 운전자, 그런데 경차면 생기는 충격적인 일

 

서흘

 

제주에 와서 가장 충격적인 일들은 대부분 차랑 관련된 게 많은 것 같네요.

 

예전에 제주에 사는 여자 지인분들이 SUV를 선호하길래 ‘왜지? 골목 다니고 주차 다니려면 경차가 편하지 않을까?’ 했었는데, 여자 운전자가 경차를 몰고 다니면 길에서 무시가 너무 심해서 그렇다고 해요. 

 

그중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이 3건 정도 있는데, 풀어보겠습니다. 전혀 과장 없는 이야기입니다.

 

1. 애월 카페거리 주차장 사건

애월 카페 거리를 처음 갔을 때, 차가 이렇게 많을 줄 몰라서 당황했어요. 거기에 유료주차장이라고 해서 그냥 나오려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차들이 꽉 막힌 상황이라 빠질 수가 없어서, 주차장에 들어가서 회차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어떤 남자 직원분이 안내 중이길래 창문을 열고 정중하게 안에서 회차 가능한지 여쭤보았는데, 엄청나게 화를 내셨어요.

 

너무 심하게 화를 내셔서 너무 놀라 회차가 안 되는 곳이라서 화가 나셨나 보다하면서 빨리 나가려고 하는데, 제 뒤에 들어온 차가 같은 질문을 하니 굉장히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요. 제 뒷차 운전자는 건실한 남자분이셨거든요. 제가 어린 여자 운전자라는 이유로 그렇게 화를 받아 마땅했을까요? 심한 사건은 아니었지만 데미지가 컸던 사건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2. 차에서 내리라고 창문 두드리던 버스 기사

가족여행 중에 빨간불이라 잠시 살 게 있는 동생을 내려주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무섭게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너무 놀라서 심장이 뛰며 ‘내가 뭐 잘못했나?’ 하면서 확인해 보는데, 제가 서 있는 차선은 직우 차선이고 빨간불이 맞았어요. 상황을 파악하니 뒤에 버스가 우회전을 하고 싶어서 난리를 치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비켜줄 수도 없는 도로 폭이었습니다. ‘그냥 있어도 된다’고 옆에서 가족이 말해서 그냥 있었는데요. 충격적이었던 일은 버스 기사가 내려서 제 차로 다가와 “문 열라”고 창문을 쾅쾅쾅 두드린 거예요.

 

일단 버스 주행 중에 기사가 내렸다는 상황 자체가 굉장히 혼란스러웠고,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경황이 없어서 창문을 내렸지만, 운전 경험이 생긴 지금 조언하건대 이럴 때는 절대 창문 내리지 말고 상황을 촬영하거나 블랙박스 등을 모아 신고하는 편이 나을 듯합니다.

 

짧은 상황이었지만 굉장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운전을 할 때마다 심장이 뛰었을 정도로요. 저는 아직도 뒤에서 누가 경적을 울리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3. 소리를 지르면서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운 버스 기사

우회전해서 들어가는 상황이었는데, 앞의 차가 너무 안 가서 ‘길이 다른가? 뭐지?’ 하면서 한참 기다리다가 그 옆으로 빠져서 우회전을 했습니다. 앞차에 가려져 있다가 제가 나와서 놀랐는지, 버스가 멀리서부터 경적을 울리며 다가오다가 멈췄습니다. 사실 제가 그냥 가도 되는, 충분히 거리가 있는 상황이었는데 경적을 울리니 안전운전을 하는 저는 놀라서 멈췄고, 그럼에도 버스가 멈춰서 기다려 주셔서 ‘아, 먼저 가라나 보다’ 하면서 움직였습니다. 감사하다는 의미와 죄송하다는 의미로 비상등을 켰고요.

 

그런데 그 버스가 옆 차선에서 저를 쫓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좌회전 대기하느라 서 있었고, 그 차는 초록불인 상황이었는데 초록불에 버스가 길 한복판에서 멈추고 경적을 울렸어요.

 

너무 공포스러운 상황이었는데 기사님이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초록불이고 그 버스는 가야 하는 상황이라서, 여기에 반응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못 들은 척 앞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전에 버스에서 내렸던 기사가 생각나서 패닉에 빠질 뻔했는데, 다행히도 제가 반응이 없자 결국 다시 출발을 하긴 했습니다.

 

 

제가 운전을 하면서 차가 아닌 사람 때문에 이렇게 공포를 느끼는 순간들이 많을 줄은 몰랐습니다.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는 없는 걸까? 아쉬운 부분입니다.

 

+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제주에서 택시·버스·트럭들은 사고나 험한 일이 있으면 웬만하면 상대하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3. 제주도의 집이 사라졌다

 

서림

 

‘이번 달 말까지 침대 비워주세요.’

두 달 동안 동고동락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방적으로 받았던 통보였습니다.

 

전 제주에 처음 내려오고 집도, 직장도 없던 시절 고정비용을 아끼고자 게하 스텝에 지원을 했습니다. 손님들을 안내하고 게스트하우스를 청소하는 게 주 업무로, 일 자체는 큰 어려움이 없었고, 기존에 있던 스텝들도 텃세 없이 편하게 대해주어 금방 제주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는데요.

 

평상시엔 같이 장을 봐온 식재료들로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많아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고, 쉬는 날에는 휴무가 맞는 다른 스텝들과 제주 여행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게 조금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측면에서 꽤나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었기에 1년 제주 살이를 쭉 여기서 보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긴 건 제가 게스트하우스 스텝이 아닌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저는 급여를 아예 받지 않는 무급 스텝이었기에 육지에서 모아온 돈으로 생활했는데요. 게하 스텝이 월세나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는 건 맞지만,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출만 있었기에 새로운 일을 구하지 않는 이상 통장 잔고가 바닥 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몇 군데 카페에 이력서를 돌렸고, 그중 한 곳의 면접을 통과해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초반에는 게하 근무 요일을 피해 카페 일을 병행했지만, 두 곳의 근무가 겹치는 날이면 어쩔 수 없이 게하에 양해를 구하고 다른 스텝들과 스케줄을 바꿔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큰 규모의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다 보니 근무 인원이 많지 않아 대타를 구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고, 무엇보다 주 7일을 휴무 없이 계속 일하는 게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었기에 결국 게스트하우스를 그만두는 게 맞다고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장님께 제 상황을 말씀드리고, (적어도 다음 스텝을 구할 수 있는 기간인) 한 달 후에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하자 사장님은 실망하신 듯한 말투로 다음 달 스케줄 짤 때 복잡하니 이번 달 말까지 침대를 비워달라 말씀하셨습니다. 월말까지는 고작 17일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말이죠.

 

제 입장에선 게하 스텝을 지원했을 당시 신청했던 기간인 2달의 약속을 지켰고, 적어도 그만두기 한 달 전에 말씀드렸기에 나쁘지 않게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장님의 입장에선 게하보다 카페 일을 더 우선시 여기고 결국 그만두는 것에 실망하신 듯했습니다.

 

대부분의 스텝은 자신이 왔던 날짜로부터 한 달 혹은 두 달로 계산해서 그만두기에, 그만두는 날짜 역시 제각각이고 그다음 달 스케줄표는 스텝이 그만두는 날짜를 반영해 짜여집니다. 그러니 스케줄을 짜기 힘들다는 건 핑계고, 더 이상 저한테 침대 하나도 내어주기 싫다는 마음이신 거겠죠.

 

하지만 저에겐 그걸 따질 힘도, 시간도 없었습니다. 당장 제주에서 묵을 곳이 없었거든요.

그날부터 일이 없는 날이며 틈나는 대로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2주 후에 입주 가능한 집을 찾으려니 매물도 한정적이고 시간도 촉박했지만, 다행히 당근을 통해 햇빛이 잘 들고 위치도 괜찮은 곳에 집을 찾게 되었고, 그렇게 쫓겨나듯이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제주에 와서 겪은 일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일이었습니다.

 

복잡한 계약 없이 단기간 제주에서 살기에 게하 스텝이라는 시스템은 꽤나 편리하지만, 그만큼 주장할 수 있는 권리도, 힘도 없다는 걸 몸소 깨달았던 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어떠한 후회도, 조금의 미움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게스트하우스 사장님과 저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또 그 일을 계기로 더 다양한 제주를 맛볼 수 있게 되었거든요.

 

아, 그렇다고 과거로 다시 돌아가면 똑같이 겪고 싶냐고요?

절대 아니요!! 당장 잘 곳이 없어진다는 그 불안감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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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흘 pick>

토닥토닥 마음을 다독여줄 음악

 

 

충격적인 이야기로 놀란 마음을 달래줄 폭닥폭닥한 곡을 소개해드릴게요.

노래 소개는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첫눈 올 때까지 봉숭아가 물들여져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

이야기를 소재로 만든 곡인데요.

 

따뜻한 소망과 희망이 담겨 있는 예쁜 곡이에요.

한겨울에 봄을 만난 듯한 느낌이랄까요.

 

추운 겨울, 여러분의 마음도 따뜻하게 지펴지길 바랍니다.

 


 

이번 뉴스레터의 주제인 <제주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어떠셨나요?

생각보다 이번 호 주제는 자극적이기도 하고 무겁기도 해서 놀라셨죠?

사실 우리는 부정적인 부분들을 빨리 외면하고 묻고 싶어해요.

 

그렇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짝 다가가 열어볼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더 단단해질 수 있을 거예요.

 

다음 주 주제는 <제주에서의 밤, 당신은 보통 무엇을 하나요?>입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만나요 :)


서서히, 제주에 스며들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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