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홍이가 '문화'에 대해 말하다- Today's Topic
📌스크린으로 이주한 인류, 잃어버린 우리의 영토
인류의 역사는 곧 '영토'를 확장해온 기록이다. 농경 문화가 정착의 안정감을, 산업 문화가 물리적 속도의 해방을 가져왔다면 현대의 디지털 혁명은 인류의 삶을 '스크린'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영토로 이주시켰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에게 스마트폰은 더 이상 단순한 통신 기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감각하는 창(窓)이자 개인의 취향이 집약된 문화적 자아 그 자체다.

과거의 문화가 광장이나 거리에 모여 긴 호흡으로 공유되던 것이었다면 스마트폰이 재편한 지금의 문화는 '손바닥 위'에서 짧고 강렬하게 소비된다. 우리는 이제 정보를 외우기보다 검색하는 능력을 상위의 문화적 가치로 두며 현실의 물리적 거리보다 알고리즘이 큐레이션한 취향의 거리를 더 가깝게 느낀다. 스마트폰은 우리 몸의 일부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문화적 문법'마저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그러나 이 화려한 디지털 문명이 선사한 편리함 이면에는 우리가 아직 적응하지 못한 문화적 부작용이 도사리고 있다. 찰나의 자극에 길들여진 뇌는 깊은 사유의 즐거움을 잊어가고 전시된 일상의 화려함은 역설적으로 개인이 감내해야 할 고립감을 심화시킨다. 우리는 지금 풍요로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에서 표류하고 있는 것일까.
도파민의 굴레 속에서 끝없는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는 대학생 A씨, 그리고 SNS라는 광장에 일상을 전시하며 그 무게를 견디는 대학생 B씨. 이 두 사람의 진솔한 인터뷰를 통해 스마트폰 혁명이 바꾼 우리 시대 문화의 명암을 들여다보았다.
👩 Interviewee: 경기도 소재 대학 학생 2명
👩💻 Interviewer: 찬우
🖱️기획: 찬우
🗓️ 인터뷰 날짜: 2026.01.13
📌끝없는 스크롤, 출구 없는 유토피아
새벽 1시, 다음날 일찍 일어나야하지만 아직 잠들기 아쉽다. 고단했던 하루에 대해 스스로 보상을 주듯 방 안에는 휴대폰 불빛만이 밝게 빛난다. 천장을 보며 누워 있다가 자세가 불편한지 이내 엎드려 휴대폰을 바라본다. 동시에 엄지손가락은 화면을 넘기느라 쉴 틈이 없다. '조금만 더'라는 유혹 속에서 살고 있는 대학생 A씨를 만나봤다.
Interview

Q. 어제 저녁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시청한 숏폼은 어떤 영상인가. 기억에 남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어제 새벽 2시쯤 '자취생 간단 레시피' 쇼츠였다. 근데 웃긴 건 난 이미 저녁을 먹은 상태였고, 심지어 요리할 생각도 없었다. 그냥 30초 안에 재료가 착착 썰리고 완성되는 그 리듬감이 좋아서 멍하니 시청했다. 딱히 정보가 필요해서 본 게 아니라 그 시각적인 타격감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Q. 하루 평균적 숏폼 시청 시간이 얼마나 되는가? 본인이 생각하는 '적정 시간'과 실제 사용 시간의 차이가 궁금하다.
A. 실제 시청 시간은 하루 평균 3~4시간 정도다. 등하교 지하철, 공강 시간, 자기 전... 다 합치면 이 정도 나오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적정 시간은 1시간 이내. 딱 밥 먹을 때 기분 전환 정도로만 쓰고 싶은데, 현실은 그 3~4배를 쓰고 있는 셈이다.
Q. 특별히 볼 콘텐츠가 없는데도 무의식적으로 앱을 켜고 나도 모르게 화면을 위로 넘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진짜 자괴감이 든다. 분명히 과제 자료 찾으려고 폰을 들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인스타 릴스를 넘기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가끔은 내가 폰을 조종하는 게 아니라, 폰이 나를 조종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다음 영상이 궁금해서 못 멈추는 게 제일 문제다.
Q. 알고리즘이 추천해주는 영상들이 나보다 내 취향을 더 잘 안다고 느껴질 때, 소름 돋거나 혹은 안도감을 느낀 적이 있는지?
A. 솔직히 안도감보다는 소름 끼칠 때가 훨씬 많다. 내가 친구랑 메신저로 말했던 주제나, '아 이거 사고 싶다' 했던 게 바로 다음 영상으로 뜰 때. 근데 그 소름 끼치는 감각도 잠시뿐, 결국 내 취향에 딱 맞는 게 나오니까 하고 계속 보게 된다.
Q. 분명 '딱 5분만'이라고 다짐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한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던 가장 당혹스러웠던 순간은 언제였는가?
A. 시험 기간 밤샘 공부할 때다. ‘딱 5분만 머리 식히고 시작하자’ 생각했는데 눈 깜빡하니까 1시간이 지나갔다. 공부는 하나도 안 했는데 눈은 뻑뻑하고, 머리는 멍하고... 그때 느꼈던 그 허망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날 시험은 당연히 망쳤다.
Q. 강렬한 숏폼의 자극에 익숙해진 탓에 현실의 대화나 책 읽기처럼 느린 호흡의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팝콘 브레인' 현상을 체감하는가.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상대적으로 무미건조하게 느껴지지는 않는지?
A. 완전 체감한다. 전에는 영화 한 편 집중해서 잘 봤는데, 요즘은 영화도 1.5배속으로 보거나 조금만 루즈해지면 바로 폰을 확인한다. 책은 아예 못 읽겠다. 텍스트를 읽는데 뇌에 입력이 안 되는 느낌이다. 자극의 역치가 너무 높아진 것 같다.
Q. 수백 개의 짧은 영상을 보고 난 뒤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을 때, 머릿속에 남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가?
A. 남는 게 거의 없다. 수백 개를 봤는데 머릿속이 먹구름으로 가득 찬 느낌이다.
Q. 만약 내일부터 전 세계에서 숏폼 서비스가 영구적으로 중단된다면, 당신의 일상은 어떻게 변할 것 같은가?
A. 처음 일주일은 금단현상 때문에 엄청 불안하고 미칠 것 같다. 습관적으로 폰을 켜고 엄지손가락을 위로 튕길 것 같다. 하지만 한 달쯤 지나면 오히려 삶의 질이 엄청 올라갈 것 같다. 억지로라도 책을 보거나 운동을 하러 나갈 테니. 내 뇌가 다시 '느린 호흡'을 찾으면서, 잃어버렸던 집중력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좀 섞여 있다.
📌 '피드 속 낙원 사진 밖의 사막'
어느덧 식어버린 음식과 사진 각도를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손길.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B씨에게 SNS는 단순한 앱이 아닌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는 소중한 다이어리이자 친구들과 연결되는 창구다. 하지만 그 기록의 무게가 가끔은 대학생 B씨의 어깨를 짓누르기도 한다. B씨의 '업로드' 뒤에 숨겨진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Interview

Q. 오늘 하루 중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스토리로 공유한 것 같다. 혹시 하루에 보통 몇 번 정도 '공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가?
A. 솔직히 말하면 거의 매 순간이다. 뭘 먹든 어딜 가든 '이거 올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라는 생각이 습관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하루에 몇 번이라고 숫자를 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일상의 필터 자체가 이미 SNS에 맞춰져 있는 느낌이다.
Q. 아주 자연스러운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 한 장을 올리기 위해 보이지 않는 노력이 꽤 들어갈 것 같다. 그 과정이 즐겁기도 하지만 때론 고단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가?
A. 남들은 툭 찍은 것처럼 보겠지만, 사실 그 뒤에는 수십 번의 구도 수정과 보정 시간이 든다. 친구랑 즐겁게 대화하러 가서도 사진이 마음에 안 들면 기분이 확 가라앉기도 한다. '내가 지금 이 시간을 즐기는 건가, 아니면 남들에게 보여줄 장면을 수집하는 건가' 싶을 때 참 피곤하다.
Q. 게시물을 올린 후 핸드폰에 알림 불빛이 들어오면 마음이 어떤가? 혹시 기대했던 것보다 조용할 때면 조금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지 궁금하다.
A. 알림이 울리면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든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인정해 준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반응이 기대보다 없으면 마음이 정말 헛헛하다. '내가 재미없는 사람인가?', '다들 나한테 관심이 없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폰을 확인하게 되고, 결국엔 게시물을 지워버릴 때도 있었다.
Q. 친구들이나 모르는 사람들의 멋진 일상을 구경하다 보면 가끔 나의 평범한 일상이 유독 심심해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B씨도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A. 많이 느낀다. 다들 제일 행복하고 빛나는 순간만 올린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침대에 누워 폰만 보는 내 모습이랑 비교하게 된다. 남들은 앞서가는 것 같은데 저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아서 괜히 우울해질 때가 자주 있다.
Q. 공연이나 여행을 갔을 때 눈으로 직접 보는 것보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보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A. 여행을 가거나 공연을 볼 때 특히 그런다. 눈 앞에 멋진 광경이 있는데도 '이걸 잘 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다. 나중에 영상을 보면 정작 그때의 떨림이나 현장의 공기는 기억이 잘 안 나서 허무할 때가 많다.
Q. 밤늦게까지 SNS를 확인하게 되는 건 아마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안도감 때문일 텐데, 그 연결이 실제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준다고 느끼나?
A. 잠깐의 위로일 뿐인 것 같다. 밤늦게까지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누군가와 연결된 것 같아 안심이 되지만 화면을 끄는 순간 밀려오는 적막함은 더 크게 느껴진다. 진짜 마음이 채워지는 게 아니라 그냥 공허함을 잊으려고 폰에 매달리는 느낌이다.
Q. 친구들과 함께 있는 즐거운 시간에도 습관적으로 핸드폰 화면에 눈길이 가는 자신을 발견할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A. 미안하고 한심하다. 바로 앞에 소중한 사람이 있는데, 정작 제 신경은 온라인 세상에 가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안, 나 이것만 좀 올리고’라고 말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도 참 별로라고 느낄 때가 많다.
Q. 만약 잠시동안 SNS와 거리를 둔다면, 그 시간에 B씨가 가장 해보고 싶은 '핸드폰 없는 일상'은 무엇인가?
A. 그냥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고 긴 산책을 해보고 싶다. 사진을 찍어서 누군가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 없이, 풍경이 예쁘면 예쁜 대로, 날씨가 좋으면 좋은 대로 오롯이 내 감각에만 집중하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고 싶다.
에디터의 한 줄:
두 대학생의 고백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문화적 영토로 이주한 인류가 치르고 있는 '존재론적 비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우리는 손바닥 안의 작은 기기를 통해 전 세계와 연결되는 문화적 유능감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고요 속에서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내면의 영토'를 상실해가고 있다.
과거의 문화가 인간의 사유를 심화시키는 토양이었다면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지금의 문화는 인간의 욕망을 파편화하고 소비하는 가속 장치에 가깝다. A씨의 '먹구름 가득한 허망함'은 정보의 과잉이 곧 지혜의 빈곤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B씨의 '사진 밖의 사막'은 전시된 삶이 실존의 공허를 결코 메울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문화적 자아로 받아들였으나 어느덧 그 도구의 문법에 우리의 삶을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물어야 할 시점이다.
물론 인류의 진화는 되돌릴 수 없고 디지털 영토는 이미 우리의 거대한 삶의 터전이 됐다. 하지만 진정한 문화적 진보는 기술의 속도에 함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다루는 인간의 정신이 주체성을 유지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스크롤이 아니라 잠시 멈춰 서서 화면 밖의 공기를 호흡하는 '단절의 미학'이다.
기록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웠던 노을, 1.5배속의 효율성으로는 결코 닿을 수 없는 깊은 대화의 잔향, 그리고 아무런 자극 없이도 충만했던 고독의 시간. 이러한 느린 호흡의 감각들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알고리즘의 통제에서 벗어나 나의 영토를 되찾는 유일한 길이다.
스크롤을 멈추고 고개를 드는 그 짧은 순간 우리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가장 눈부신 문화적 성취는 화면 속의 화려한 시청각물이 아니라 지금 내 곁에 살아 숨 쉬는 현실의 질감을 온전히 느껴내는 '인간다운 감각'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주해 온 그 디지털 유토피아에서 당신의 영혼은 여전히 안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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