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서울메이트 에디터 타미입니다. 벌써 상반기가 훌쩍 지나버렸네요. 우리의 K리그도 개막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중간 지점에 다다르게 됐네요. 참 시간이 야속하게도 빠르게 흐르는 거 같아요.😅
7월부터 해외 주요 리그는 다음 시즌 보강에 들어갑니다. 우리 K리그도 이 기간에 맞춰 여름 이적시장이 열리는데요, 올 2023시즌 K리그의 여름 이적시장은 6월 23일부터 7월 20일입니다. K리그의 여름 이적시장은 팀의 부족한 전력을 채우는 데 주력한답니다. 작년에 일류첸코를 영입해 공격력을 강화하듯이 말이죠.
그리고 유럽 축구도 이적시장이 열리기 때문에 이 기간에 유럽 오퍼를 받고 해외로 진출하기도 합니다.🌎 팬으로선 참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팀의 선수가 해외에서 활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오늘은 이적시장을 맞이해 그간 우리 FC서울 40년 역사상 해외에 진출한 선수는 누군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정원 (1997년, RC 스트라스부르)
구단 40년 역사에서 첫 번째 유럽진출에 성공한 선수는 바로 서정원 선수(現 청두 룽청 감독)입니다. 대학 시절부터 이미 국가대표로도 발탁된 서정원은 1992년 LG 치타스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1997년까지 90경기 26골을 넣고 리그컵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날쌘돌이의 면모를 팬들에게 보여줬는데요, 그 덕분인지 1997년 프랑스 르 샹피오나(現 리그1)🇫🇷의 RC 스트라스부르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후 계약기간이 끝난 시점에 서정원의 소속 팀이 2부 리그로 강등되면서 K리그로 복귀하게 되는데요, 이때 문제가 터집니다. 바로 우리 팀이 아닌 ‘수원 삼성’으로 가버린 것이죠.😢 당시 우리 구단은 서정원 선수에게 이적료의 절반 정도를 지급하면서 K리그 복귀 시 ‘안양 LG’로 돌아오는 조건을 걸었어요. 하지만 그걸 깨버리고 서정원 선수는 수원으로 가게 됐습니다. 이때부터 우리 팀과 수원과의 라이벌리(Rivaly)가 생기게 됐습니다.😡
사실 서정원 선수는 1997년 이전에도 SL 벤피카 등의 많은 유럽팀에서 오퍼가 들어왔지만, 우리 구단 프런트와의 여러 가지 충돌로 인해 실제 이적까지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서정원 선수는 계약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구단 역사상 유럽에 진출한 선수의 끝이 그리 좋지 못해 씁쓸할 뿐입니다.😣
#2 이영표 (2002년, PSV 에인트호번)
2002년 한일월드컵의 주역인 이영표 선수는 2000년에 우리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하면서 프로에 데뷔했습니다. 신인 선수임에도 주전급으로 활약하면서 2000시즌 리그 우승에 이바지했습니다.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 PSV 에인트호번🇳🇱에 입단, 이후 토트넘 홋스퍼🏴, 도르트문트🇩🇪 등에서 선수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안양 LG 시절, 이영표 선수는 총 81경기를 뛰었으며 3골 7도움을 기록했습니다.
#3 이을용 (2004년, 트라브존스포르)
이을용 선수(現 용인시축구센터 총감독)는 총 두 번의 유럽 무대에 진출한 경험이 있습니다. 모두 튀르키예의 ‘트라브존스포르’🇹🇷였습니다. 이을용 선수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활약한 덕분에 유럽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월드컵 당시에 이을용 선수의 소속팀은 부천 SK였습니다.
처음 유럽 무대에 진출했을 때 이을용 선수의 신분은 임대생이었습니다. 아쉽게 완전 이적까지는 무산되면서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우리 팀 선수로서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우리 팀에서 뛴 이을용 선수는 총 27경기에 출전해 2개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이후 다시 한번 트라브존스포르에 재입단을 하게 됩니다. 이때는 임대생이 아닌 완전 영입이었네요.
이후 이을용 선수는 튀르키예에서 인연을 맺은 귀네슈 감독과의 인연으로 2006년에 우리 팀에 재입단, 2008년까지 서울의 중원을 빛내주었습니다.✨
#4 김동진 (2006년, FC 제니트)
풀백은 물론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까지 모두 소화할 수 있었던 김동진 선수(現 킷치 SC 수석코치)는 2000년부터 2006년까지 우리 팀에서 맹활약한 선수였습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국가대표 주전 풀백으로도 뛰었었는데, 당시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딕 아드보카드 감독과의 인연으로 러시아의 FC 제니트🇷🇺로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됩니다.
제니트에서 5년 동안 선수 생활을 이어온 그는 2010년 아쉽게 메디컬 테스트에 탈락하면서 다시 K리그에 복귀했습니다. 처음에는 울산 현대 유니폼을 입게 됐으나 1년 뒤인 2011년 친정팀인 우리 FC서울로 이적하게 됩니다.
김동진 선수는 우리 팀에서 총 148경기를 뛰었으며 14개 득점과 7개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5 박주영 (2008년, AS 모나코)
‘축구 천재’ 박주영 선수(現 울산 현대 플레잉코치)는 아마 우리 팀 역사상 가장 센세이셜한 선수가 아닌가 싶어요. 2005년 K리그 데뷔한 시즌에 신인왕은 물론 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었죠. 본격적으로 유럽 무대에 진출하기 전, 박주영 선수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96경기에 출전해 무려 35골과 10개 어시스트를 기록해 그야말로 팀 역사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이후 2008년 AS 모나코로🇲🇨 이적해 2011년까지 103경기를 출전했으며 총 26골을 넣었습니다. 덕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까지 진출, 아스널에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뛰게 됩니다.
다만, 아스널에서의 기록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주전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서 셀타비고, 왓포드 등에서 임대생 생활을 이어왔고, 이후 원소속팀 아스널에서 방출되자 사우디아라비아 리그 알샤바브로 옮기게 됩니다.
사우디에서 반년 정도 뛴 박주영은 결국 백의종군, 2015년 친정인 우리 팀에 돌아오게 됩니다. 2015년부터 2021년까지 218경기에 출전하고 55골과 21개 도움을 기록했으며 특히 2016시즌 K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결승 골을 기록하면서 팀 우승에 큰 이바지하기도 했습니다.✨
#6 이청용 (2009년, 볼턴 원더러스)
쌍용시대, 유럽 진출하면 이청용을 빠질 수 없죠. 2004년에 FC서울로 입단한 이청용은 이미 유소년 시절부터 기대를 한몫 받는 유망주였습니다. 중학교도 중퇴하고 우리 팀에 입단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이청용 선수는 프로 4년 차인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아직 어린 선수였지만 첫해 25경기 3골 6도움을 기록, 당시 리그컵에서 도움왕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쌍용시대의 주역이었던 이청용 선수는 FC서울 통산 78경기 출전, 12골과 20개 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한국은 물론 세계가 주목하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2009년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튼으로 이적🏴하면서 유럽진출에 성공, 크리스탈 펠리스와 독일 VfL 보훔🇩🇪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쉽게 친정팀이 아닌 다른 팀으로 K리그에 복귀하게 됐지만, 쌍용시대를 생각한다면 이청용 역시 우리 팀 역사상 대단한 선수가 아닌가 싶네요.🥰
#7 기성용 (2009년, 셀틱 FC)
‘리빙 레전드’ 기성용 선수도 우리 팀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선수이자 지금도 우리 중원을 책임지는 사령관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습니다.👨✈️
2006년 K리그 드래프트로 우선지명 받으면서 FC서울에 입단한 기성용 선수는 2007년 본격적으로 1군에 합류하게 됩니다. 이후 2008년에는 이청용 선수와 함께 시즌 베스트 일레븐에 등극하면서 쌍용시대의 전성기를 써냈습니다.
기성용 선수도 2009년에 유럽, 셀틱🏴으로 가게 됩니다. 이청용 선수와 다르게 겨울에 가게 됐죠. 서울 팬으로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쌍용시대를 풍미한 두 선수가 유럽으로 떠나게 되면서죠. 당시 기성용 선수는 2006년부터 2009년까지 93경기에 출전, 9개 골과 13개 도움을 기록했습니다.
셀틱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준 기성용 선수는 2012년 여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스완지 시티🏴에 입단하게 됩니다. 이후 선덜랜드와 뉴캐슬에서 뛰면서 프리미어리그의 주요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2020년 1월, 뉴캐슬과의 계약이 해지된 뒤, 기성용은 K리그 복귀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 프런트의 엄청난 삽질로 끝내 친정팀 복귀는 무산😡됐고, 다시 한번 유럽으로 가게 됩니다. 스페인 RCD 마요르카로 떠나게 됐죠.
당시 우리 팬들의 심정은 참담했었죠.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 계속해서 우리 팀을 사랑해온 선수인데, 프런트의 안일함 때문에 한순간에 팬들의 기대감은 물거품이 됐으니까요.🤬
다행히 2020년 7월, 우여곡절 끝에 기성용은 우리 팀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8 정조국 (2011년, AJ 오세르)
마지막으로는 패트리어트 정조국 선수(現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가 있습니다. 고교 최고의 유망주로서 촉망받고 있었던 정조국 선수는 2003년 안양 LG에서 프로 데뷔하게 됩니다.
다만 데뷔 초 정조국의 선수 생활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공격수 자리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2010년 8월, 정조국 선수가 득남하면서 상승곡선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팬들은 그를 ‘분유캄프’🍼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역시 아버지의 힘은 대단한 것 같아요.
그 덕분에 정조국 선수 역시 유럽 무대에 진출하게 됩니다. 프랑스 리그1의 AJ 오세르🇫🇷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조국은 오세르를 강등권에 탈출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후 AS 낭시에서 한 시즌 임대생으로 보낸 뒤 정조국 선수는 군 복무를 위해 FC서울로 복귀하게 됩니다. 총 11시즌을 FC서울에서 활약한 정조국 선수는 통산 266경기를 출전해 84득점을 기록했습니다.
유럽 무대에 진출한 우리 선수 이야기, 재밌게 보셨는지요?
우리를 웃게 해 준 선수가 우리 팀을 떠난다는 건 참으로 마음 아픈 일 같아요. 하지만 선수를 사랑한다면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면서 항상 꽃길만 걷길 바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네요.
그럼 서울메이트의 스물두 번째 레터💌 <유럽진출에 성공한 서울 선수는 누구?>는 여기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