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경] 8. 1999년의 시간들

2026.08.16 | 조회 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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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가족과 떨어져 살았던 시기가 있었다. 주말마다 가족들을 만나곤 했었는데,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 게 지하철로 16개 정거장을 가야 만날 수 있었다. 도착까지 한 30-40분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그땐 가는 길이 그리 길게 느껴졌는지 지루해 죽을 것 같았다.

 

토요일과 일요일이 지나고 나면, 월요일 아침에 다시 살던 곳에 돌아가 학교를 가야했다. 일요일 밤에 그토록 바라던 게 황사라던가 갑작스레 학교가 휴교가 되어 하루만 더 가족들과 있고 싶었거늘, 떨어져 사는 동안 단 한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그렇게 우울에 빠져 학교에 가면, 몇몇 친구들이 “너 무슨 일 있어?” 라며 내 기분을 풀어 줬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간 나는 극 내향인이야- 라며 내 정체성?을 만들어 왔지만, 매번 주위 사람들 덕에 잘 지내고 있던 것 같다.

 

그리고 학교가 끝나면 집에서 오래 된 TV를(레버를 돌려 채널을 바꾸는) 보며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때쯤에 마법천사 루비라는 애니메이션을 저녁에 방영해주고 있었는데, 시작 전 애니 오프닝 송이 너무 구슬프게 들렸다. 이거 가사랑 다르게 왜이리 슬픈걸까- 생각하곤 했는데, 나이가 들고도 그 느낌이 그리워 찾아 듣곤 한다.

 

그 해 여름 어느 날인가 - 당시 같은 반 친구가 내게 ‘우리 여행 가자!’ 이래서 알겠다고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공휴일에 별 생각 없이 학교 앞에서 만났는데, 친구가 집에서 밥이랑 반찬들을 이래저래 싸와서 놀랬던 기억이 있다. 나는 빈손이어서 음료랑 과자 같은 것을 슈퍼에서 급하게 샀던 것 같다. 그 나이에 여행이라고 별 것이 있나 근처 동산 끝에 올라가 둘이 음식을 나눠 먹었는데, 이유야 모르겠지만 예전 이야기를 하면 이 일이 자꾸만 생각이 난다.

 

1999년은 세기말이어서 21세기가 되면 아주 큰 일이 일어날 것이라 걱정하는 이야기를 엿듣곤 했다. 이야기를 다 듣곤 당시 친구들과 ‘이제 곧 다 끝이구나’ 싶었는데, 그냥 저냥 별일 없이 넘어가더라.

 

아마 나의 어린 시절에 가장 깊게 새긴 해 아닐까 싶다. 언젠가 어릴때 꿈을 꾸면 매번 이 시절이어서 우울하고 즐겁고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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