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셰프>를 한동안 재미있게 봤다. 샘 킴, 권성준(나폴리맛피아), 정지선 세 명의 셰프가 각각 이탈리아 파르마/나폴리, 중국 청두에서 다른 직업을 하던 사람이 요리를 배운다는 컨셉으로 위장취업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5일 간의 기간 동안 마지막에는 자신의 메뉴를 현지 식당 메뉴판에 올리는 것이 메인 미션이었다.
요리, 음식 관련 프로그램을 굉장히 좋아하는 편이다. 그건 말 그대로 음식과 식문화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문화까지도 관심이 많은 편이라 그렇다. 하나를 더하자면, 셰프 혹은 레스토랑에 대한 일종의 동경도 있다. 나는 음식을 만드는 일,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일, 음식으로 장사를 하는 일을 멋있다고 생각하고, 그 자체로 재밌어 한다.
시작은 2015년, 내가 전역을 한 다음 복학 전까지 했던 레스토랑 알바였다. 생 어거스틴이라는 동남아 음식 레스토랑에서 일했었는데, 2개월 가량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내 인생에서는 가장 기억에 남고 많이 배웠던, 강렬한 알바 기억이다. 그건 아침 10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긴 시간 동안 주 5일, 때론 주 6일 일해서 말 그대로 다른 알바보다 근무시간이 많아서기도 하겠지만, 그 때 나는 진심으로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해 알아볼 만큼 그 경험이 즐거웠다.
물론 내가 요리를 했던 건 당연히 아니고 홀 서빙으로 시작해서 백 사이드라고 불리는, 들어온 주문을 관리하고 만들어진 요리가 서빙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과정을 담당하고 그 외 간단한 일들을 처리하는 곳에서 일했다. 예를 들어 팟타이는 고춧가루와 레몬을 함께 내고, 쌀국수는 소스와 그릇을 함께 내는 식이었다. 그 외에도 음료 주문이 들어오면 직접 비율을 맞춰 제조하거나 음료별로 맞는 컵을 함께 내곤 했다. 과정에서 피클이나 기타 소모품의 재고를 체크하고, 와인잔을 설거지하는 등 여러 일이 섞여 있었다.
그 일이 즐거웠던 건, 내 일의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맛있게 먹는 손님, 길게 늘어선 주문지를 비워내는 순간, 가득찬 손님들이 다 빠져나가기까지의 과정 같은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완벽한 ‘팀플’이었다. 어떤 주문이 안나갔는지 요리사분들과 소통하고, 복잡한 메뉴들을 각 자리로 알맞게 보내고, 다양한 주문을 순서대로 그리고 효율적으로 ‘쳐내는’ 과정은 홀과 주방 모든 구성원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야 하는 일이었다.
백사이드로 들어온지 며칠 되지 않는 날, 단체 점심 예약이 있었다. 나는 미리 피클 따위를 내자고 제안했고, 한꺼번에 몰려든 주문서와 수십개의 요리들을 무사히 쳐냈다. 개중에 어떤 메뉴가 빠졌음을 알아차리고 주방에 요청하기도 했다. 바쁜 시간이 지나가고, 메인 셰프 분이 ‘잘하네’라고 한 마디 칭찬을 던져주었을 때의 희열이 아직도 기억난다. 모두가 하나가 되어 정신없이 하나의 결과를 만드는 일. 몸은 피곤해도 그 보람은 이후에 했던 일들과 비교해도 결코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언더커버 셰프>를 보며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어 더 즐거웠다. 얼마 되지도 않고 별 것도 아닌 수준의 경험이었음에도 저 주방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서로를 돕고, 바쁜 와중에도 농담 하나 던지며 일하는 모습이 훈훈하기도 했다. 스탭밀을 먹는 시간, 사고가 나고 대처하는 과정 등 사소한 부분까지 눈여겨 보곤 했다(실제로 그 알바를 하면서 좋았던 건 맛있는 직원식을 먹을 수 있어서기도 했다).
예를 들어 방송에 나오는 3곳의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 길었고, 도중에 다들 집에 가는 형태였다. 한국은 보통 브레이크 시간이 길지 않고(3시-5시), 손님이 늦게 가거나 일찍 오면 그마저도 줄어들다 보니 집에 가는 건 어려운 일로 알고 있었다. 파르마와 나폴리가 보다 대도시가 아니라서 가게와 집이 멀지 않아서이기도 할 것이다. 서울은 보통 집과 거리가 먼 곳에 자리를 잡곤 하니까.
포르투갈/스페인으로 여행을 온지 9일 째인데(지금은 Faro라는 도시로 가는 기차 안이다), 여기서 본 것도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오기 전 남유럽은 식사 시간이 늦다는 건 들었지만, 실제로도 그랬다. 9시 10시에도 레스토랑엔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고, 식당들은 12시를 넘겨서 문을 열었다. 그렇다보니 15시부터 18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다 보니 3시간이라 한국보다 길기도 해서 집에 다녀오는게 낫기도 할 것이다. 대신 9시면 마감하는 한국과 달리 보통 12시까진 일을 하고 있지만(둘 중 어느게 나은 건지 고민하기도 했다)
내가 그간 했던 마케팅 업무의 대부분은 대행사로서의 롤이었다. 그를 통해 배우게 된 것들이 많았지만, ‘보람’의 측면에선 아쉽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바로 광고주와 커뮤니케이션하기보단 대행사를 하나 사이에 두는 일이 많기도 했고, 디지털 광고 특성상 ‘손에 쥐는’ 물리적 감각도 적었다. 동기들과 함께 일의 미래에 대해 말할 때면 ‘일하는 보람과 즐거움’을 느끼기 어렵다고들 생각을 나누었다.
나는 요리사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요리가 좋아 집에서 혼자 내가 먹을 한 끼 밥을 만들고 손님이 올 때면 바베큐나 라멘 등 요리에 도전하거나 시간이 나는 날은 베이킹을 하기도 하고, 몇 시간이고 음식하는 일을 즐기지만 이걸 업으로 하는 건 다른 이야기니까. 그 고민은 알바를 하던 시절 충분히 했다. 하지만 그 감각만큼은 자꾸 동경하게 된다. 눈에 보이고 감각할 수 있는 나의 ‘일’. 동료들과 실시간으로 함께 협업하며 결과를 만드는 것. 맛있어하는 손님을 마주하고 잘 먹었다는 피드백을 듣는 일.
셰프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만큼 많은 책을 읽고 영상을 찾아보았을 때에도, 모든 이들이 그 감각이 좋아서 요리를 한다고들 했다. 아무리 힘들고 고되어도 맛있다고 해주는 손님의 반응이 있어서 힘을 내고 일을 이어가게 된다고. 앞으로 내가 어떤 일들을 경험하게 되든, 그 즐거운 감각들을 느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곤 한다. 막 군대를 전역하고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두려움과 앞에 놓인 삶에 대한 기대로 가득찬 23살의 나를 떠올리면서. 앞치마를 두르고, 매장을 청소하고, 메뉴를 외우던 당시의 젊음과 열정을 추억하면서.
그래서 <언더커버 셰프>를 추천하냐고? 물론이다. 최근에 봤던 예능들 중 베스트였다.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프로그램에 나오는 맛있는 음식을 먹지 못하고 지켜만 봐야한다는 점, 그래서 뭐라도 집어먹게 된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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