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 여행에서의 'K'

한국 밖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한국

2026.09.10 | 조회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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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간의 여행에서 돌아왔다. 지긋지긋하면서도 그리운 나의 나라, 한국. 인천공항에 들어서며 마주하는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는 문장, 한국인 전용 입국 절차, 한글로 가득한 풍경에 조금씩 마음은 편안해진다. 한국에 있을 땐 느끼지 못했던 이 편안함. 거기에 찌개와 같은 한식까지 먹고 나면, 그제서야 나의 나라에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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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는 꽤 자주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그건 여러 층위가 있다. 해외에서의 한국과 한국인, 그리고 그 삶, 한국과 여행지의 비교, 한국인으로서 나, 다른 한국인을 바라보는 감정, 한식을 비롯한 '한국의 것'. 한국이 그립다는 향수병까지. 그저 '한국인'으로 정의되는 이 곳에서의 일상. 떼어버릴 수 없는 나의 정체성.

 

단순한 착각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나를 한국인으로 알아보고 말을 거는 일이 과거에 비해 늘었다고 느꼈다. 10년 전, 20년 전 유럽에 갔을 때 나는 그저 '아시안' 혹은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었다. 한자를 읽어 달라고 하는 일이나 '곤니찌와'와 같은 말을 듣는 일도 왕왕 있었다. 이번엔 먼저 내게 한국인이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다. 간단하게는 '안녕하세요' 혹은 '감사합니다' 같은 인삿말을 건네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는 과거 한국 방문의 이야기나 한국 제품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식당이나 상점에서 한국어 인삿말을 듣고,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다른 여행객과 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꽤나 즐거웠다. 부산이 얼마나 매력적인 도시였는지 말하며 엑스포에서 떨어져 아쉽겠다는 이야기, 입국하고 나서 구글 맵이 잘 되지 않아 '네이버 지도'를 소개받아서 썼다는 이야기나, 계산해주며 '난 기아 차를 타고, 삼성 휴대폰을 써'라고 웃으며 한 마디 말을 건네거나, 한국에서 일하기도 했다며 한국말로 먼저 인사를 걸어오는 사람들은 소소하지만 잊혀지지 않는 기억들이었다.

 

한국 문화의 인기를 실감할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 주요 도시엔 '모이다'와 같은 K뷰티 전용 편집샵이 중심에 있었는데 현지인들이 꽤 많았다. 현지 뷰티샵에서도 한국 브랜드를 발견할 수 있고, AI로 만든듯한 어설픈 한글로 K뷰티 느낌을 내려는 시도도 있었다. 한식 수혈이 필요해 들렀던 몇 군데의 한식집에서는 한국인보단 현지인들이 훨씬 많았다. 한국인이 아니라 외국인이 퓨전 한식집을 차린 사례도 꽤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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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다니며 저 사람은 분명 한국인이다라고 생각하는 일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습관이었다. 머리 스타일이 어때서, 옷 입은게 어때서 등등 이유를 찾으며 확실히 한국 사람!이라며 추리를 돌리곤 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인 없는 여행지'를 찾아 떠나고 나 역시 후쿠오카에서 너무 많은 한국인에 조금 질렸던 적도 있지만(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한국인이라거나),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인을 보면 묘한 반가움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그 한국인이 나같은 여행자가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이라면 왠지 모를 친근감이 더 강해진다. 오랜 시간 한식당을 운영해온 사장님 부부, 유학하고 있는 학생, 대사관을 지키는 직원과 같은 사람들. 그들의 일상이 어떨지,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해 보며 몇 년 혹은 수십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려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나에게 대입해본다. 나라면 어떨까? 내가 해외에 살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을 나와서 나는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한국을 생각하게 된다. 저녁을 늦게 먹는 포르투갈/스페인의 문화와 한국을 비교해 보고, 한국에 있는데 이곳에 없는 것, 한국에 없는데 이곳에 있는 것을 찾는다. 왜 이곳엔 편의점이 없는 걸까? 이제 유럽에서도 대중교통은 신용카드 태그리스 결제가 되는데 한국은 왜 아직 안되는 걸까? 시간을 절대 지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짜증을 내거나, 한국이었으면 당연히 금연 구역이었을 기차역 플랫폼이나 축구 구장 등에서 담배를 피는 모습에 고개를 젓곤 했고 한국인과 서양인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끊임없이 AI와 대화를 나누며 그 원인을 찾았다.

 

마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불닭볶음면, 현지 서점에서 발견하는 한강 작가의 책, 아시안 마트 메인 자리를 차지한 한국 식재료와 라면들, '덕질'을 위한 공간에서 한 영역을 차지 하고 있는 K-POP 앨범과 굿즈들과 같이 '여기에 왜'라며 발견의 기쁨을 느끼고, 한국에선 당연한 것들이 이곳에선 당연하지 않은 일상에 답답해하며 '한국이었으면...'을 되뇌이고, 스페인 리그에서 뛰는 이강인 축구 경기를 예매해 응원 문구를 적어가고, 숙소에 돌아와 한국 유튜브와 방송을 연결해 시청하며 한국 밖에서 한국을 만나고 찾았다. 광장에선 한국 노래를 들었고, 오랜만에 먹는 제육볶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한식이 최고야'라고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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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짝사랑'은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게이트에서 마지막을 맞고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아예 막을 내린다. 나는 다시 익숙한 한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고 한국 콘텐츠와 한국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한국 문화에 갇혀 살아갈 것이다. 뭔 소린지 알 수 없는 글자 대신 모든 것이 한글로 적혀진 세상에서, '여긴 내가 우선인 나라'여서 가능한 편안함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어색한 다른 것에 맞추기보다는 내게 익숙한 방식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은 '지긋지긋한 한국'이라며 답답해 하고, 언젠가 다시 떠나는 날을 기대하겠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사는 어떤 특징들이 있다. 그 특징들은 좋은 것도 있지만, 싫어도 그냥 '어쩔 수 없다'며 그 특징을 가진 나로서의 삶을 그저 수용한다. 예를 들어 나는 어린 시절부터 눈이 나빴다. -9 정도 되는데, 안경사로부터 '손님 정도면 수술을 권한다'는 얘기를 듣기도 하고, 안경을 쓰지 않은 삶의 기억은 거의 없다. 그저 '눈이 나쁜 나'를 받아들이고 살아왔던 것처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그 중 하나라는 걸 해외에선 깨닫게 된다. 좋든 싫든 나는 한국인으로서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걸.

 

그렇게 나는 귀국했다. 모든 여행은 끝나기 마련이고, 그 끝은 '원래 있던 나의 자리'로 돌아가는 일이다. 그건 단순한 일자리나 역할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함께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 포근하고 익숙한 나의 침대, 단순한 '한국인 A'가 아니라 내 이름, 별명으로 존재하는 세상. 오랜 시간 기억과 추억을 쌓아온 사소하고 특별한 공간들이 내 자리다. 별 탈 없이 귀국한 일에 감사하며, 떠났기에 알수 있었던 '나의 것'에 감사하면서. 그렇게 나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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