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 여행은 무엇을 남기는 걸까

20살과 지금의 여행을 돌아보며

2026.09.04 | 조회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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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 유럽여행을 하다 보니 자꾸 과거에 했던 유럽 여행이 생각나곤 한다. 그 중 가장 많이 생각나는 건 2012년, 20살에 했던 여행이었다. 해외출장을 많이 다닌 삼촌의 마일리지가 만료될 예정이라 비행기표를 선물받게 되었던 건데, 감사하고 행운인 일이었다. 친구를 꼬셔 함께 여행을 떠났고, 약 3주간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에 있었다.

 

비행기표는 공짜로 생긴 것이었지만 여행비가 많지는 않아 도시 이동은 거의하지 않고 런던에 9일, 파리에 8일 이런 식이었고 나머지는 친구의 삼촌과 오스트리아에서 만나는 일정이었다. 숙소는 런던과 파리 모두 한인민박 도미토리였는데 그게 싸기도 했고 밥도 주기 때문이었다. 아침은 든든한 한식에 저녁은 라면을 제공했으니 점심만 해결하면 됐다.

 

어느 날의 나의 점심
어느 날의 나의 점심

 

물론 그 점심도 돈을 아낀답시고 마트에서 산 1-2유로 샌드위치나 맥도날드의 1유로 기본 햄버거를 먹곤 했다. 어느 날은 식빵을 사서 숙소에서 누텔라를 발라놓고 가지고 나가 도시락으로 해결하기도 했다. 식당은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각 딱 한 번 갔고, 돈이 아깝다고 모든 길을 걸어다녔다.

 

한인민박이 좋았던 이유는 하나 더 있는데 거기서 사람을 만날 수 있단 거였다. 가장 좋았던 때는 런던의 첫번째 한인민박이었다. A는 대학을 졸업하고 혼자 온 20대 중반의 형이었고, B와C는 대학생이었고 서로 친구였다. 그 외에도 약대생이었던 D도 있었고, 하루하루 다른 사람이 오갈 때도 있었는데 ABC와는 대화도 많이 나누고 동행을 하기도 했다.

 

A와는 여러모로 죽이 잘 맞았는데, 진지한 표정과 말투로 매번 농담을 치곤 했다. '난 여행할 때 한 손은 늘 주머니에 있어'. '왜요?'. '큰 유럽 형님이 내 앞을 가로막으면 바로 지갑 꺼내드리려고'였다. 상황마다 그 농담을 변주했는데 그게 너무 좋아서 매번 깔깔 웃었다.

 

B와C는 밝은 성격이었는데, C는 이번 여행에 자신있다고 했다. 왜 그러냐고 하면 이번 여행을 대비해서 구글어스로 자기들이 가야할 길을 예습해서 외워놨기에 괜찮다는 얘기였다. 밤에 같이 야경을 보러 가기로 한 날도, 함께 동행하며 축구 경기장과 자연사 박물관을 가던 날도, 먼저 파리로 떠나던 날도 자기는 모든 길을 외워놨으니 문제없다고 너스레를 떨었고 나와 친구는 그 얘기가 너무 웃겼다.

 

민박집에서의 맥주 파티(?)
민박집에서의 맥주 파티(?)

 

그 때는 스마트폰이 있긴 했지만 도입 초기라 기능과 앱이 많지 않았고, 인터넷 로밍은 비싸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인터넷 연결을 하곤 했다. 정보가 지금보다 더 적었고 한국인들이 지금보다 '약자'와 같은 느낌을 가지고 다닐 때였다고 생각이 든다. 20대 배낭여행으로 돈을 아끼며 이곳 저곳 다니는 이미지도 강했던 것 같다.

 

지금은 조금 더 당당하게 다니니 '바로 지갑을 꺼내드리려고'란 농담을 할 만한 일도 별로 없을 듯 하고, 바로 구글맵으로 가는 길을 알아보면 되니 한국에서 구글어스를 외워올 필요도 없다. 한국인들끼리 함께 다니기보단 한국인들이 없는 곳을 찾아 다니곤 한다. 외국인들은 먼저 내게 한국인이냐 묻고 감사합니다~와 같은 한국어를 하거나 본인도 한국에 가봤다며 여행 얘기를 풀어놓기도 한다.

 

그 때의 여행 경험이 모든 한국인의 여행도 아니었을 것이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 때에도 조금 더 편하게 여행을 했을 것이고, 누군가는 지금도 한인민박에서 한국인들과 한식 아침을 먹으며 동행을 자연스럽게 만들고 밤이면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누군가는 지금도 최대한 아끼며 조금 고생스러운 배낭여행을 하고 있겠지.

 

그럼에도 과거의 내 경험을 돌아보며, 14년이라는 시간 간격을 두고 그 때와 지금 변한 것을 굳이 생각해보곤 한다. 나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한국인의 유럽 여행이기도 하고,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이기도 하다. 많은 것이 변했다고 생각이 들고(다른 변화 대비 유럽은 많이 변하지 않았다고 느끼기도 하고), 대부분은 그 변화가 좋은 쪽이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A와 B,C와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던 그 순간을 떠올리면 묘하게 여러모로 부족했던 과거가 더 좋게 느껴지기도 한다. 파리 에펠탑 앞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와 BC는 일시만 정해두었는데 결국 실시간 인터넷이 안되니 연락을 못해서 BC가 도착이 늦었단 얘기를 듣지 못해 만나지 못하기도 했었는데도 말이다(각자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우린 서로 10분 차이로 만나지 못했단 걸 알았다).

 

이 곳에서 한 시간 넘게 돌며 사람을 찾았다
이 곳에서 한 시간 넘게 돌며 사람을 찾았다

 

그 불편함 안에서 아등바등하던 우리를 '낭만'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서 그럴까? 단순히 시간이 지나서 모든 것을 좋게 바라볼 수 있으니 그런건 아닐까? 숙소에 가기위해 민박 주인이 인터넷 카페에 올려둔 가는 길을 캡처 후 인쇄해서 들고 다니며 길을 찾던 때보다 구글 맵 하나로 쉽게 갈 수 있는 지금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닐까?

 

사실 답을 낼 생각은 없다. 그저 14년이라는 시간과 그 때 겪은 일들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라는 걸 실감하면 그 모든 것이 재밌을 뿐이다. 따라오는 묘한 그리움과 함께. 멀리 여행을 떠나오면 모든 것이 그리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족한 과거 속의 우리, 너무 더웠던 여름날, 지겨웠던 일상, 편한 집과 한국의 시스템까지.

 

당시 스물의 부족한 여행을 기점으로 나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됐었다. 작게는 반바지를 입게 되었던 일부터 20살 초반에 실패하고 실망하며 방황하던 내가 방향을 잡고 알바와 대외활동을 시작했던 일까지. 조금 더 자신감 있고, 세상을 즐겁게 바라보는 출발점이었다. 나중에 '20살에 뭐했지'라고 하면 '여행 다녀왔지'만이 남을 정도였다. 

 

이번 여행에도 그런 기대를 품고 왔다.  작게는 비행기를 무서워하는 내가 이 일을 계기로 무서워하지 않게 되기를,  크게는 내면의 불안함과 걱정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얻기를, 기나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를,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잡을 수 있기를, 함께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수 있을지 작은 답이나마 찾을 수 있기를...

 

긴 여행, 멀리 떠나는 여행은 사람을 확실하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 여행을 기점으로 사람은 아예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걸까? 여행이 끝나고 남는 건 A/B/C와 나눴던 농담과 같은 즐겁고도 사소한 순간일까 아니면 강렬한 충격일까? 그조차도 답은 모르겠다. 한 때 집 주변 도서관에 모든 여행책을 뒤져 읽었던 나는 20대가 되면 그렇게 떠나는 나를 상상하고 기대했다. 여행이라는 것에 무언가 대단한 가치를 부여했다. 그 기대와 일치했던 여행은 없었고, 지금의 여행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첨부 이미지

 

답을 알 수 없고, 때로 힘들고 우울하고, 사소한 순간에 기뻐하기도 하고, 두고온 것을 그리워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변할 수 있을까. 변하기는 하는 걸까. 여행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 걸까. 그만한 가치를 하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는 왜 떠나고 싶어하고, 왜 떠나는 걸까. 20살의 나는 런던으로 돌아오는 기차에서 노래를 들으며 한 번 울었고, 이번 여행에서도 비슷하게 몇 번 눈물이 나곤 했다.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감정은 다양하게 요동치곤 한다.

 

나는 언제나 다음 목적지를 향했지 페달을 거꾸로 되밟지는 않았다. 그렇게 페달을 밟는 동안에 감사하고, 미안해 하고,화해하고, 어울려 기뻐하는 모든 감정들이 잠시 불꽃처럼 일어나서는 내 가슴 한 쪽에 소리 없이 파묻혀 버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의외로 무미건조해졌다. 고독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두 바퀴로 유럽 지도를 그리다>에서 발췌

 

여행은 그 사람의 숫자만큼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적인게 있다면, 끝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종료라는 목적지를 향해 걷고, 뛰고, 달린다는 것이다. 끝나지 않는 여행은 없다. 여행이 끝나고 우리는 참 즐거웠다- 참 고생했다- 하고 다시 짐을 풀고 일상을 맞이한다. 이번 여행으로 내가 변해도 좋다. 변하지 않아도 좋다. 여행의 끝에서 내가 이 모든 일을 감사해 하고, 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고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별 탈 없이 잘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20살 유럽여행을 떠올릴 때마다 민박집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농담을 떠올리며 큭큭대듯이, 이번 여행도 사소한 무언가가 내게 남아 일상의 쳇바퀴에 눌리고 지칠 때 잠시나마 웃음을 선사할 수 있으면 좋겠다. 떠나오기 전 내가 이 여행에 덕지덕지 붙여둔 기대와 무게를 내려놓게 될 수 있다면, 이 여행을 통해 남은 것이 무언가 하나 쯤은 있겠지. 여행은 여행이고, 여행은 여행일 뿐. 떠나온지 2주를 넘기고 이제 끝을 바라보는 여행을 생각하며, 많은 생각은 내려놓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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