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일레터는 소소한 일상, 소일거리를 다루는 레터라는 뜻이다.
나이가 서른을 넘기고, 우리의 하루는 조금 더 예측 가능해지고, 뻔해졌다.
10대인 시절, 대학생인 시절, 취준생인 시절엔
조금 더 가진 게 없고 불안한 요소가 곳곳에 있었다.
확정된 미래가 없다는 건 긍정적 가능성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지금이 최선일지도'라는 의미도 품고 있었다.
그 때의 불안함을 지긋지긋해하고,
쉽게 바닥나는 잔고는 하루하루를 피폐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그대신 그 때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라는 불확실성이 주는 기대도 있었다.
어느 날 밤 편의점 앞 간이 테이블에 과자를 풀어헤치고
사는 삶을 얘기하는 시간이 행복했던 건
어차피 그때 당시 내게 필요한 건 비싼 물건이나 음식과 같은 것보다는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함께 나누고 기대할 수 있는,
우리의 내일은 조금 더 나은 것이 될 수 있다는
무의식 속의 생각들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 것이라고 다짐하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너는 충분히 그렇게 될 거라고 당당하게 말해줄 수 있는 일종의 무모함이나 근거가 없는 자신감을 부려볼 수 있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 아파도 내일은 괜찮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었고 실제로 그러했기에 나의 사소한 하루에 대해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을 지나고 몇 년차 마케터로 살아온 지금, 나는 그 시절 갖추지 못한 것들을 조금 더 쥐게 됐다. 적게나마 저축한 금액이라는 것도 생겼고, 나만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비록 은행의 돈을 빌린 것일지라도).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채워놓고, 조금은 비싼 물건도 나의 컬렉션(?)에 끼워 넣을 수 있게 됐다. 새벽에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택시를 타고 가는게 보다 당연해지고, 어디가서 나라는 사람을 소개할 때 써먹을 만한 타이틀도 가져보게 됐다(마케팅 일을 하고 있습니다라는 말이면 충분하다).
동시에 나는 몇 가지를 잃었다. 어떤 일을 하게 될지, 1년 뒤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고 예상할 필요도 없었던 시기를 지나, 어느 회사에서 어느 일을 할지는 바뀔지 몰라도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점에서 내 삶은 보다 단순해졌다.
만나는 사람의 범위도 갈수록 줄었고, 빈도는 더욱 줄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은 예전보다도 더 부담스러워졌고, 친구와 모여도 밤을 새기는 커녕 10시가 되기 전에 헤어지는 일이 흔하다.
내게 남은 건 '소일'이다. 대단하고 재미있고 특별하고 신나는 사건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남았고, 새로운 프로젝트나 대단한 도전, 여행이나 사건 따위보다는 소일거리로 할만한 일들이 늘었다. SNS 상에서 다채롭던 나와 내 친구들은 보다 업로드를 줄였고, 차는 생겼어도(난 아니지만) 과거보다 더 가까운 곳을 가고, 새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그동안 해왔던 걸 반복하고 있다. 그 안에서 작은 일들 하나하나에서 행복을 찾고, 삶의 만족감을 느낀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렇게 된 내가 불행하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 그저 삶의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런 변화 속에서도 내가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삶은 보다 다채롭게 꾸며낼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이렇게 바뀐 내 삶에서 나름의 변화를 주고 싶었고, 또 그 삶을 기록하고 싶었고, 이 소일들이 내게 주는 행복들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삶을 살게 되었으니까.
나는 그래. 너도 그래? 라고 묻고, 나는 요새 이런 것으로 삶을 채워라고 말하고 어쩌다 드는 잡다한 생각들을 적어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굳이 하고 싶었다. 별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별 일 아닌 걸로 친구를 불러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던 그 때처럼.
이제 그런 이야기를 다룰 셈이다. 하루에서 마주한 소소한 것들, 이야기들, 생각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