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최고 겁쟁이의 이야기

2026.08.13 | 조회 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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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많은 사람이다. 걱정하는 것도 많고, 무서워하는 것도 많고, 두려워하는 것도 많다. 예를 들어 공포영화는 물론 보지 못하고 스릴러 영화도 왠만해서는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추격자> 같은 영화가 그렇게 성공하는 동안, 난 그 영화를 보고 싶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건 영화의 완성도 같은 것과 별개로 '밝고 희망적인' 것만을 소비하려는 나의 성향 탓이다. 

 

살면서 나보다 겁이 많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썩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다. 이왕이면 나도 악기를 잘 다루거나, 머리가 좋다거나, 농구를 잘 한다거나 하는 것으로 나만큼 잘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다 못해 기깔나는 휘파람이라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잘 불 수 있다고 하면 좋겠지만, 확실하게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겁이 많다' 뿐이다.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하고 이런 건 비교적 흔한 수준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기에 걸릴까 무서워 마스크를 쓰다 못해 밥을 먹다 옆 자리 누가 기침을 하면 신경쓰느라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내 눈에 손을 댈 수 없어서 라식 수술은 커녕 렌즈도 끼지 못하고, 인공 눈물을 넣을 때도 깔끔하게 성공(?)시키지 못한다. 그 외에도 정말 많지만 부끄러워지는 기분이기도 하고 자랑할 일도 아니다보니 줄이고 싶다.

 

얼마나 겁이 많은지에 대해서 쓰자면 한도 끝도 없이 쓸 수 있겠지만, 최근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는 건 나도 비교적 두려움이 적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살 유럽여행을 할 때는, 비행기를 타는 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물론 비행기를 타는 일은 불쾌하고 원하지 않는 일이라곤 생각하고 있었지만 미리 걱정하며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진 않았다. 돈이 없어 쫄쫄 굶고 다니고 하루 수만 보를 걸어도 내 몸이 아프게 되는 건 아닐까라고 걱정하진 않았다.

 

취준생 때는 취업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취업을 잘 할만한 사람이어서라기 보단, '굶어죽기야 하겠냐'는 생각이었다. 내 보잘 것 없는 스펙(겸손을 떠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자세히 말하고 싶진 않지만 난 영어 점수도 없었다)으로 대단한 회사에 들어가긴 당연히 어렵겠지만 그래도 어딘가엔 가서 일을 할 수 있겠지라고 대충 믿었다. 그만큼 게으른 취준생이었고, 몇 차례 '광탈'을 하며 좌절을 맛볼 뻔 하다가 운 좋게 한 곳에 합격한 덕에 인턴을 하던 중 바로 신입으로 취업을 하며 취준생 기간도 별 일 없이 졸업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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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나는 퇴사를 했다. 다음 이직처가 정해진 환승 이직이 아니고, 그냥 백수가 됐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나오게 된 것이긴 하지만, 두려움이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백수가 된지 한 달 가까이 된 지금 여전히 일말의 두려움이 있기는 하다. 앞으로 회사를 못 구하는 건 아닌지, 이렇게 나의 커리어가 망쳐지는 건 아닌지, 모아둔 돈을 다 잃을 때까지 취업을 못하게 되면 어떡해야 할지, 앞으로 나의 인생은 어떻게 굴러가게 될지와 같은 두려움들은 지금까지 겪어본 바 없는 종류다.

 

나는 무엇을, 왜 두려워하는 걸까. 이번에도 취준생 때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취업은 하겠지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게 사실에 가까울 것이다. 내가 대단한 회사를 바라는 게 아니라면, 어디에선가 일은 할 수 있겠지(현재 나는 7년차 마케터다). 해외에서 유학 중인 애인을 만나러 3주 유럽 여행을 앞둔 지금 장시간의 비행기 탑승이 두렵다.

 

비록 그건 어릴 적에 생긴 이후 간헐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공황이라는 이유가 크지만,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그렇게 두려울 일은 아니다. 최악은 기절하는 것일 뿐이고, 그동안 나는 잘 비행기를 타왔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거니까. 게다가 안정제도 들고 탈 것이고, 최근에 '연습'용으로 일본을 다녀오며 괜찮음을 학습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설령 괜찮지 않더라도, 그 두려움에 지고 싶지 않다며 앞으로 나서기로 한 건 나니까. 그리고 두려워서 비행을 포기하는 건 더욱 싫으니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번째는 두려운 상황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어서. 두번째는 그 두려운 상황을 이겨낼만큼 자신이 강하다고 믿지 못하기에. 혹은 그 믿음이 약하거나 부족하기에. 그렇기에 나는 두려워한다. 애초에 두려움의 대상이란 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면, 그 무엇도 두렵고 두렵지 않은 사람이 되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으니까. 그리고 실제로 내가 그랬으니까. 한 때 나는 공포 영화와 통증을 두려워하는 건 여전했더라도 다른 건 두려워하지 않았으니까.

 

그럼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 그 수많은 상황을 파고 들어가면, 하나는 죽음이고 하나는 힘든 삶을 사는 일이다. 힘들단 건 경제적일 수도, 정신적일 수도, 신체적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죽음을 두려워하면 이 생에서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힘든 삶을 사는 것도 사실 마찬가지고, 내 노력을 통해 그 결과가 오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최근 친구 한 명이 내가 요새 걱정하는 것을 말하자 "왜 지금부터 걱정해?"라고 되물었다. 그 말을 들으며 흔한 표현으로 '망치에 한 대 얻어맞은 듯' 했다. 그러게. 왜 지금부터 걱정하는 걸까? 걱정한다고 바뀌는 건 없는데. 내가 걱정해도 비행기는 뜰 것이고, 내일 해는 밝을 것이며, 아픈 몸은 언젠간 나을 것이고, 백수인 나는 언젠가 다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문장만으로 모든 두려움을 벗어던지게 된 건 아니지만, 조금 더 용기를 가져보자고 생각했다. 

 

이번 일본 여행에서 고시엔 경기를 보러 갔다. 8월 한 달 간 진행하는, 일본 고등학생 전국 야구 대회다. 각 현에서 하나의 고등학교만 올라올 수 있는 대회, 그리고 거기서 매 순간 토너먼트로 1등 고등학교가 남을 때까지 경기하는 대회. <H2>와 같은 만화의 팬이라서 보러 온 것이었는데, 그 자리에서 나는 어떤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좋았다. 야구라는 이름에 자신의 10대 시절을 건 사람들의 열정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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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나도 그랬다. 10대 시절 나도 해리포터를 비롯한 여러 세상에 깊이 빠졌었고, 그 이후엔 저널리즘에 빠지기도 했다. 회사에서 신사업을 할 땐 신사업에 푹 빠졌었다. 그 때 나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우리는 무언가에 빠지고, 사랑하고, 그를 통해 에너지를 얻곤 한다. 두려울 수도 있는 패배를 앞에 두고 치열하게 삶을 거는 고등학생을 보며, 나는 도리어 기운을 받은 느낌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도 그 구장에 앉아있던 순간을 종종 떠올린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무엇은 중요한 단어가 아니다. 두려우면 무엇이든 두려울 것이고 두렵지 않다면 무엇이든 두렵지 않을 것이다. 비록 나이를 먹고 구체적인 불행에 대해 상상할 수 있게 되면서, 그리고 그게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겁이 더 많은 인간이 되었지만, 그만큼 나는 더 강해지기도 했을 테니까. 애초에 두려워할만한 일일지라도, 내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그만인 거니까.

 

응원한다. 나 자신을. 그리고 두려움을 앞에 둔 모든 사람들을. 

소망한다. 내가,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에 지지 않기를.

감사한다.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하는 수많은 것들에. 소중한 사람들, 살랑거리는 바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기분 좋은 소식들, 맛있는 음식, 응원의 메시지와 과거의 소중한 기억들까지. 

 


Hump Back - 친애하는 소년이여

이제 더 이상 꿈은 꾸지 않는 거야?
내일이 오는 게 무서워진 거야?
체념하기로 한 거야?
그 와중에 바보같이 하늘이 참 아름다워

(...)

아아 이제 더는 울지 말자
너는 네 생각만큼 약하지 않아
아아 계속 뒤쫓아보자
계속 지기만 하다가 끝낼 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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