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잎새입니다. 들풀 중에 한 잎새일 따름이고요. 언젠가 이 틈을 통과했고, 통과했는데 제 발밑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에요. 아, 뿌리... 뿌리는 들풀로 살아가는 누구라도 보면 안 되는 일이고... 저는 운이 좋게 이 틈을 유일하게 통과했어요. 다행이죠. 조금 더 자랄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까. 그렇지만 제 주변에 저와 같이 자랄 잎새가 없네요. 그건 좀 슬프고 외로운 일이에요. 다른 들풀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몰라도, 저는 이런 성장을 원했던 게 아니에요. 맨 얼굴로 햇볕을 쬘 때도 바람을 쐬고 비를 맞을 때도 그 기분을 같이 공유할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쇠에 닿아 있는 잎새들은 이야기해요. 너는 복 받았다고 그래요. 제가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바깥 이야기를 하려 해도 이건 아닌 것 같고, 바닥과 멀어지는 심정을 이야기를 하려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제가 모두에게 적절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저 또한 들풀 중 한 잎새일 따름이고요. 앞서 해주신 이야기 잘 듣고 있었어요. 근데 꼭 모두에게 적절한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저는 저에게 적절한 이야기를 해주는 데 평생을 바쳐왔어요. 왜 나는 바위 한가운데 서 있을까. 그 고민을 하다가 문득 내 주변에 잎새들은 없지만, 그 자리에 이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번지듯이 자라는 이끼 친구들이 부러울 때도 있었죠. 근데 말이죠. 이렇게 자라난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예요. 아, 이유라고 말하지 않고 의미라고 정정할게요. 나는 그러니까 나대로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이 바위도 쪼개질 수 있는데, 나는 이 바위가 바위일 때를 기억하고 있는 가장 긴 잎새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바위가 모래가 될 때까지 제가 지금의 저로 있을 일은 없으니까. 흙이 되더라도 지금 나는 잎새니까. 오늘 우리가 처한 각자의 기분을 나눌 수 있는 날들이 얼마 없어요. 도드라진 기분을 느낄 날이 얼마나 될까요.
추신, 만물박사가 만난 다섯 번째 인터뷰이는 틈새 시장에서 자라나고 있는 두 잎새였습니다. 한 발 뒤로 빠진 채 두 잎새의 성장담을 들어보면 답이 나올까 했는데 어쩐지 모두 질문을 계속 안고 갈 것 같네요. 여러 일들 속에서 살아남거나 살아보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모호해질 때가 있어요. 생활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유지만 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뭔가를 더 바라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는 생각을 해요. 다음 레터를 띄울 때까지 건강 챙기시고, 올해의 남은 절반도 좋은 인터뷰이 모셔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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