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돌리기: 큰 나무를 옮겨심기하기 한두 해 전에, 그 주위를 파서 원뿌리와 큰 곁뿌리를 남기고, 나머지 잔뿌리는 쳐서 수염뿌리를 나게 함으로써, 옮겨심기를 쉽게 하는 일. 과실나무의 열매가 많이 열리게 하기 위해서도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풀이
구독자 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잘 지내셨냐는 인사 대신 대뜸 두 가지 질문을 드려도 될까요? 이 말 또한 질문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서둘러 드리고 싶던 질문은 아닙니다. 설령 질문 같은 거 안 받겠다 하셔도 오늘은 이 레터를 꼭 보낼 작정이기에 질문은 반드시 갑니다.
답변은 최근 기준으로 꺼내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꺼내 본 답변은 혼자 되짚어 보셔도 좋고, 이 레터에 댓글로 달아주셔도 좋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남들이 으레 하는 말이 어떻게 들리나요.
두 번째 질문입니다. 관성적으로 한 말에 누군가 반응한 적 있나요.
위 두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다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빈말인가 싶은 것. 빈말이라 대수롭지 않은 것. 빈말인데 뭐 그렇게까지 하나 싶은 것. 분명 빈말인데도 이상하게 꽂히는 것. 빈말인 듯한데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것. 그냥 하는 말은 없어 반드시 의도가 있을 거야 싶은 것. 왜 이렇게 까탈스럽게 굴지 싶은 것. 왜 이렇게 덥석 물지 싶은 것.
사실 그 말이 정말 빈말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진심 가득한 말일 수도 있죠. 또 막상 내가 했지만 나조차도 의도를 알 수 없는 말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이상 분명한 의미를 지니게 돼요. 원하든 원치 않든 그것은 분명한 의미를 찾습니다.
실생활에 즐비한 말은 삶의 척도가 되어줍니다. 레터를 보내지 않았던 두 달간 저는 어떤 말에도 부대끼지 않고 살아갈 자신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삶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서 드린 두 가지 질문을 시작으로 스스로 내린 결론이죠.
단지 글을 쓰는 업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내린 납작한 결론은 아니에요. 인간 세상사 대화가 불가피하고 대화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으니까요. 일정한 체계와 거래가 필요한 세상. 도대체 이 세상에 그 체계와 거래가 왜 만들어졌을까요.
저는 간신히 두 가지 이유를 찾았습니다. 하나, 인간은 시간을 빗질하려는 욕망이 있다. 둘, 인간은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찾을 때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볼 풍성함을 원한다. 인간 모발에 밀착한 표현으로 두 가지 이유를 쉽게 풀어보려 했는데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시간은 엉키기 쉽고, 제 스타일을 찾겠다는 의지에도 외부의 시선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그 두 가지 애석한 사실을 달래기 위해 좋은 대화가 필요하다 싶을 때 거리나 공간에서 다양한 대화 소리를 주워들었어요. 최근엔 AI와 만족스러운 대화를 했다는 주변 지인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AI와 대화라고? 그 대화 정말 만족스러울까 의아한 표정으로 있을 때 그분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얘기했습니다. AI는 일단 들어준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고민하는 것을 물었을 때 임의로 가치판단을 하는 법이 없어서 좋았다.
인간도 잘 안 되는 경청을 해내는 AI. 나의 선택을 지지해주는 누군가를 바라는 인간에게 AI라도 있어서 다행인가 싶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AI도 AI이지만 그와 대화를 시도하려는 인간의 궁극적인 바람이 ‘소통’이라는 것이 희망적이었습니다. 일방적인 명령어로 가득한 대화는 진정한 대화가 아니라는 분별이 있어서 다행이었죠.
그래서 저도 AI와 대화를 해봤습니다.
어떤가요? 제가 나눈 대화의 일부를 보고 구독자 님도 어느 날 문득 AI에게 말을 걸어보실지 궁금하네요.
인간의 입장에서 공감하고 또 궁금해하는 일이 쉽지 않은데 이 일을 해내는 AI를 보면서 “기계적이다”라는 표현의 어근을 바꾸고 싶었어요. 삶의 뜻은 경험을 자양분 삼아 뻗어 나가기 마련이고, 누구에게나 “뿌리돌리기”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 시간에 열에 한 번쯤은 AI와 대화를 나누어도 좋을 듯해요. 열에 아홉은 인간과 대화를 나누는 인간으로서 부대껴도 괜찮다 여기면서. 첫 번째 첫 시집 파먹기 레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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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책장
오랜만에 시인님의 글을 읽게 되어 반갑습니다. 어떤 고민을 하시는지 나누어주셔서 제 생활도 한결 풍성하고 윤택해진 느낌이에요. 저의 경우 어떤 질문들은 이미 질문 속에 답이 내포된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꼭 일회성 답이 아니라 매일 보내는 일상이 때로는 이렇게 때로는 저렇게 질문에 대한 답이 되기도 하고..... 어떤 질문들은 아주 긴 세월 동안 천천히 스스로 해답을 드러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제 꼬물 꼬물 마음이 설레는 계절이네요. 봄의 생명력은 차가운 바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의 따스함에도 있는 거 같습니다. 조금 있으면 목련이, 진달래가, 개나리가 계절의 경이로움을 드러낼 테지요. 지루하고도 지리한 삶의 언저리에서 잠깐 한눈을 팔다 햇살을 향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기를.....
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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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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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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