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기 나름

두 번째, 길터뷰 에세이

2021.05.09 | 조회 1.2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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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박사 김민지

생활 전공자를 위한 내적 대화 콘텐츠

평소와 같은 생각을 이어서 하더라도 움직이다 보면 생각이 생각대로 흘러가주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건 평소 내 머릿속에 놓여 있는 그림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고, 예상보다 많은 그림이 놓여 있지만 주제를 잡고 기념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다. 이날은 황사가 심한 날이었고, 마스크를 쓰고 질문 하나 던지지 않고 그저 걷기만 했는데도 목이 칼칼한 하루였다. 말 없이 지나치던 길 위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계속해서 자연스럽게 머물고 있는 나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두 번째, 두 그루의 나무를 더 만나고 돌아오는 길

어느 날 이 나무는 다소 거센 바람을 맞았을 거예요. 무성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무 아래로는 계곡이 있었어요. 쓰러진 나무가 외나무다리라면, 저 위로 건너가던 생물 가운데 매달려서라도 기어갈 수 있는 곤충들은 다닥다닥 나란히 건너편에 도착할 수도 있었겠지요. 원수가 있어도 불리한 상황에서 원수를 만나고 싶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보폭과 동행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글쓰기보다 중요한 가치를 새길 수 있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도 우리 아래 깊은 계곡이 있고 그 흐름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랑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서로 조심하고 홀로 부단히 노력하지 않고는 도착할 수 없는 가치일 거예요.

저는 요즘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듬성듬성한지 자주 놀라요. 자연스럽다고 말하지만 하나도 자연스럽지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더 자라지 못하는 마음이어도 자라는 동안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면 내 바탕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아프지만 건강한 증거가 되기도 하니까. 잘려나간 마음의 밑동을 스스로 못 보고 넘어지는 일도 조금씩 줄여야겠어요.

추신, 첫 번째 나무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나무를 만나고 왔습니다. 이번 인터뷰이 분들은 워낙 말씀이 없어서 그냥 지켜보기만 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글을 썼어요. 지난번에는 비가, 이번에는 황사가, 날씨 좋은 날이 손에 꼽히는 나날이지만 오늘은 비교적 날씨가 좋았다고 하여 그 핑계로 메일 보냅니다. 지난번 메일을 보내고 또 오탈자가 나면 그때는 제가 사람이 아니고 사랑이라고 말씀 드려야지 했는데요. 이번에는 과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실수를 반복하고, 그러니 저는 그냥 사랑하겠습니다. 

● 만물박사 김민지의 뉴스레터는 구독자 여러분의 긴장성 두통, 과민성 방광 및 대장 증후군 치유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좋은 텍스트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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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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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반(半)예술대학 고양이는무엇일과 인생삽질전공 김다연

    1
    over 3 years 전

    문득 생각이 들었는데 용기있게 밑동에 걸려 넘어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내 뿌리가 깊다면 밑동은 쉬이 뽑히지 않을 뿐더러, 마음 씀에 대한 오래된 기억을 생채기를 통해 알 수 있으니까요. 다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끄러운 길은 워낙 걷기가 험난해서..

    ㄴ 답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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