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스커'는 왜 데스커라운지를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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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찹찹, 휴일 잘 쉬고 돌아왔나요!
날씨가 좀 따뜻해졌다 싶어 정신차려보니, 벌써 벚꽃이 화사하고 2분기가 되었더라고요.
'하기 싫어 죽겠네'와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를 지난하게 반복하다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1. 데스커 홍대라운지를 다녀온 이야기를 풀고,
2. 80대까지 일하는 운명을 가진 저의 최근 생각을 짧게 썼어요.

모두 모쪼록 오늘 하루도 각자의 책상 앞에서 평온하길 바라요! 🙏🏻

돌고 돌아 오늘도 책상 앞에 앉은 구독자에게

우리는 1년 동안 다짐을 세 번합니다. 1월 1일, 구정, 그리고 봄이 성큼 눈 앞에 들이 닥쳤을 때 말이죠. 날씨가 좀 따뜻해졌다 싶어 정신차려보니 벌써 1분기가 지나고 벚꽃이 화사하더라고요. 원대한 다짐 시즌의 마지막 카드까지 다 써버렸으니, 이제 계획한대로 올 한 해를 잘 지내는 일밖에 남지 않았네요. '하기 싫어 죽겠네'와 '어쩌겠어 그래도 해야지'를 지난하게 반복하다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왔습니다.

저 또한 새해의 원대한 다짐에 가슴이 두근거렸던 것도 잠시, '죽겠네'와 '어쩔그냥해' 엉겁의 시간을 한달여 보내다가 설연휴 직전에 데스커라운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 가면 왠지 일이 잘 될 것만 같고 해야할 일 다 해치우고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1. 배경 : 데스커는 왜 홍대로 나왔을까

주식회사 일룸(대표 정보은, 2007년 설립)의 '데스커'는 퍼시스 그룹에 속해있는 책상 브랜드입니다. 기존의 데스커 고객은 크게 두 그룹이었습니다. 하나는 자녀의 학습환경을 위해 책상을 구매하는 부모고요, 또 다른 하나는 사무환경 조성을 위해 사무가구를 꾸리는 비즈니스 섹터에요. 데스커는 강남, 송파, 마포에 오프라인 쇼룸을 운영하고 있는데, 제품을 체험해보고 상담 후 구매까지 가능한 서비스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당연한 이야기,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흥미로운 건 지금부터 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데스커의 브랜드 타겟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일하는 2030 위주의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조망하기 시작한 것인데요. "워크 앤 라이프스타일 가구 브랜드"라는 정체성을 앞세우고, 도전과 성장의 브랜드 스토리와 온오프라인 캠페인이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기능적으로 책상이 '필요'한 기존의 수요를 넘어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갖고 싶은 '욕망'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한 거죠.

대표적으로는 양양에 워케이션 라운지가 유명해요. 숙소와 오피스 공간 뿐 아니라 서핑, 밋업, 원데이클래스 등 다양한 프로그램까지 연계하고 있어, 업계 내에서도 많이 회자된 바 있습니다. (지난 여름 양양에 갔더니 DESKER 적힌 서핑보드가 얼마나 많던지요.) 뿐만 아니라 2022년부터는 “성장을 위한 질문 저마다의 가능성 We all differ”라는 슬로건의 Differ라는 미디어를 운영하며 다양한 '워크앤라이프스타일'을 콘텐츠로도 만들어내는 중이에요.

그리고 2024년 1월 21일, 데스커 홍대라운지가 오픈합니다.
제품 체험과 상담을 위한 기존 쇼룸과는 완전 다른 성격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도전과 성장을 응원하는 쉐어 오피스입니다. 데스커 홍대라운지는 자사 제품의 기능성 홍보는 넣어두고, 멋지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방문객을 모으고 있어요.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보다보면 그곳에 가면 일잘러들이 잔뜩 모여있고, 나도 능률이 폭발할것 같고, 영감을 듬뿍 얻어올 것만 같은 느낌이 들고요.
다시 말하면, 이 공간은 제품 기능의 우수함(needs)이 아닌, 공감의 스토리(want)를 전략적으로 메세징하고 있습니다.

2. 브랜드 : 일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

'시작하고 성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가구 브랜드' 데스커는, 홍대라운지를 '일하는 사람들의 연결고리'로 정의합니다. 공간 자체가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모인 사람들간에 영감을 주고받고 각자의 시작과 성장에 도움이 될 수 있길 바라고 있죠.

흥미로운 지점은 그 스토리텔링의 과정에서 수많은 이름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페르소나가 다뤄진다는 것이에요. 다양한 필드와 직급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조언, 영감 등의 이야기를 한 데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보면 내가 이입할 수 있는 이름을 최소 하나는 만나기 마련이고 거기에서부터 연결은 시작되죠.

데스커라운지는 다양한 스피커를 통해 '일하는 사람들을 연결'하는 가치를 던집니다. 브랜드가 직접 이야기하지 않고,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유저들의 입을 빌려 그 메세지를 던진다는 것 자체가 매우 영리한 전략으로 보여져요. 한 명이 강력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도 스무 명의 사람들이 슬쩍 같은 말을 할 때 더 설득의 효과가 크기 마련이니까 말이죠.

데스커라운지의 오픈 전 이벤트가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LETTER TO WORKER" 이벤트는, 일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의 고민이 담긴 편지를 신청받아, '선배'들이 진심 어린 답장을 한 콘텐츠입니다. 그렇게 17명의 선후배가 짝을 지어 주고 받은 편지는 모두 데스커라운지에 전시되었고, 오픈 첫 날엔 이들 모두가 모여 공간 오픈과 인사를 나누는 자리도 있었습니다. 데스커 브랜드의 실제 타겟 고객일 '후배'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 이벤트는 공간의 초기 목적방문을 이끌었고, 더불어 최소 34명의 다양한 스피커를 통해 오픈 바이럴 효과까지 충분히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진짜 고민을 담은 편지와 진심을 담은 회신들이 단단한 코어 콘텐츠로 작동하며 브랜드의 진정성을 처음부터 아주 잘 보여주었고요.

3. 공간경험 : 일잘러 모드로 몰입하는 하루

이제 본격적으로 데스커라운지의 공간과 경험 콘텐츠를 살펴볼까요!

유저플로우

데스커라운지는 네이버 예약을 통해 일일권을 끊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12시 이후에는 워크인도 가능하고요. 체크인 시간에 맞추어 현장에 도착하면, '커넥터'라고 하는 직원분께서 공간을 친절히 설명해주십니다. 바로 각자의 일을 시작하는 게 아니라, 스무스하게 일 모드로 전환할 수 있도록 재미있는 사전장치가 마련되어 있어요.

먼저 일하는 나와 연결하기 위해 오늘의 워크무드workmood를 선택합니다. 나는 지금 일하는 여정 중 어떤 단계에 와있는지도 고민하고 선택해요. 그렇게 두 가지 질문으로 오늘의 '일하는 나'는 어떤 과정과 상태에 있는지 셀프진단을 마치고, 그에 적절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장을 추천받습니다. 그리고 공간 이용안내, 상설로 비치된 다양한 콘텐츠와 탕비실, 데일리 프로그램까지 안내받고 각자의 책상으로 돌아갑니다. 

일일권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체크인만 예약한 시간에 진행되고 퇴실은 자유롭게 진행 가능합니다.

공간

데스커라운지는 홍대 누디트 1층에 위치하고 있어요. 누디트는 네오밸류에서 만든 문화복합시설 브랜드인데, 홍대지점은 로컬스티치와 협력하여 크리에이터 대상의 주거와 오피스공간을 함께 운영 중입니다. (데스커 기존 매장 중 마포에 위치한 쇼룸이 있었기에, 왜 굳이 또 홍대를 선택했을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아마도 키테넌트로서 좋은 임차조건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 이건 온전히 저의 궁예성 추측입니다.)

공간은 퍼스트펭귄에서 진행했어요. 웜톤의 실내공간에서 차분히 집중할 수 있으며, 나무가구들과 나무결의 바닥타일에 눈이 편안해집니다. 공간을 이용하며 제일 놀랐던 건 사실 패브릭 마감재의 벽면이었어요. 라운지 내에는 곳곳에 서서 읽거나 구경하는 콘텐츠가 꽤 많은 편이어서 쉽게 벽에 기대게 되는데, 차갑고 딱딱한 벽이 아니라 폭신한 재질이어서 촉각적으로도 거슬리는 것이 없이 계속 집중할 수 있었죠. 물론 흡음의 역할도 하겠지만, 촉각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진짜 디테일'이 아닐 수 없어요.

데스커라운지의 핵심인 일하는 공간은 오픈형 책상인 '빅데스크 존'과 분리된 '모션 데스크 존'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저 모션데스크 처음 써봤는데 정말 좋았어요. 오랫동안 앉아있다가 허리가 아플 때 잠시 서서 일하고, 점심먹고 식곤증이 몰려오면 또 잠시 서서 일하곤 했습니다.
공간을 이용하며 '모션데스크 써보시면 이렇게 좋습니다' 등의 제품 관련 가이드는 거의 없었는데요, 다만 실제로 종일 제품을 써보게 하며 고객이 먼저 '오, 좋다'고 생각하게 하다니. 오히려 고단수인가 싶었습니다.

콘텐츠와 응대

현장에 비치된 콘텐츠의 양과 깊이가 어마어마합니다. 하나씩 넘겨보고 열어보며 스크랩을 디깅하는 전시 콘텐츠들이 많기 때문에 전부 훑으려 한다면 챙겨간 일을 다 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 WORKER'S JOURNEY : 일의 여정 네 단계(시작-학습-한계-지속) 각각의 레퍼런스와 영감이 되는 이야기를 스크랩하여 전시하고 있어요. 체크인하며 나는 어떤 여정에 있나 고민하고 그 단계의 전시를 살펴보면 더 몰입하여 볼 수 있죠.

- LETTERS TO WORKER : 사전 이벤트로 진행했던 선배와 후배의 편지들을 전시하였어요. 더불어 그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도 함께 비치되어 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습니다.

- CONNECT LIBRARY : 일잘러 선배들의 책장을 그대로 가져와 책을 비치하고 있어요. 그들이 인상깊었던 구절이 밑줄 쳐있거나 메모가 되어있고요.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메모를 덧붙일 수 있어서 생각과 이야기가 점점 쌓여가는 책장입니다.

- 워커스룸 : 공간 안 쪽에 유리로 구분된 방이 하나 있는데, 바로 워커스룸입니다. 기획자 윤소정과 마케터 이승희의 책상을 그대로 재현하여, 실제 노트와 일기, 책, 사무용품 등을 구경할 수 있죠. (이 자리 예약에 성공한다면 말이죠) 

- 커넥팅 프로그램 : 매일 11시, 2시, 5시마다 희망참여를 받아 다른 주제로 스몰토크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처음 도슨트할 때 설명해주신 바로는,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있지만 갑자기 다가가서 이야기를 꺼내기 힘들기에 만든 장치라고 해요. 매달 일잘러 선배와 함께 하는 라운지 프로그램, 'WORK TOGETHER'도 진행된다고 하고요.

흥미로운 부분은 모든 콘텐츠가 다 '일하는 사람'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점이었어요. 보통 워커스라운지를 생각하면 좋은 큐레이션의 도서를 가져다두는 것에서 끝나기 마련인데, 데스커라운지에서는 지금 동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일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지향점, 위로로 연결되고 있어요. 혼자 체크인하였지만 엄청나게 많은 동료들을 만나는 것만 같죠.

실제로 공간을 운영하는 직원들은 '커넥터'라는 이름을 하고 있어요. 체크인과 도슨트할 때 엄청난 환대로 강한 첫인상을 남기고요, 자연스럽게 스몰토크를 이어가며 처음의 어색한 공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유니폼도 이뻐요..)

그 외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깊었던 콘텐츠는 탕비실입니다(!!?!) 나름 공유오피스 여러 군데 가봤지만 이만큼 빵빵한 탕비실 처음 봤고요. 베이커리에 발뮤다, 탄산수, 프로틴바까지 있는 탕비실도 처음이었습니다...

4. 비즈니스 : 매출보다 중요한 KPI가 있다면

데스커라운지가 운영된 지 약 3개월이 다 되어갑니다. 그동안 이 공간은 브랜드에게 어떤 효과를 가져왔을까요. 

먼저 비즈니스의 지속성을 위하여 빠트릴 수 없는 매출의 측면에서 바라볼까요. 데스커라운지 일일권은 36,000원입니다. 총 38좌석이 마련되어 있으니 단순히 계산하면 일매출은 최대 136만8천원, 월매출 약 4천1백만원입니다. 임차료와 운영유지비용, 보통 2-3인 정도 상주하는 현장인력비용까지 고려하면 그렇게 높은 매출은 아니죠. 현장에서 특별히 제품을 안내하거나 구매로 이어지는 채널도 없습니다. 애초에 매출을 목적으로 한 공간이 아닌 점을 생각해 볼 때, 데스커는 어떤 목표와 의도를 가지고 있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건 경험 중심의 강력한 브랜딩, 실제 다녀간 방문객을 통한 온라인 바이럴과 같은 마케팅 측면일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 다양한 페르소나를 통해 많은 채널로 데스커라운지의 소식과 가치를 전달하다보니, 그 채널의 오디언스들의 방문으로 2차 바이럴이 자연스럽습니다. 네이버 예약을 통해 이용을 하다보니, 지도 리뷰도 큰 허들없이 자연스럽게 쌓이고 있고요.

사실 우리가 살면서 책상을 구매하는 일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심지어 한 번 사면 오래 쓰기 마련이고요. 이와 같은 고관여 제품군의 경우 갑자기 해당 제품이 필요해질 때 바로 떠오르는 브랜드(TOM; Top of Mind)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직접적인 매출로 이어지는 것보다도 사람들 인식 속에 자연스럽게 '책상=데스커'와 같은 공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죠. 데스커가 뜬금없이 양양에 워케이션 라운지를 만들고, 시몬스가 침대 없이 그로서리 컨셉의 팝업을 하며, 맹그로브가 콘서트와 전시회를 주기적으로 기획하는 이유입니다.

더불어 데스커라운지를 이용하며 만족스러웠던 경험은 자연스레 멤버십 등록으로 이어집니다. 멤버십에 등록하면 라운지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이나 커넥팅 콘텐츠를 알려주고 있어요. 그렇게 모인 멤버십 리스트는 데스커의 잠재고객 리스트이자 브랜드로 락인 시키는 주요한 채널이 됩니다. 이것 또한 브랜드 데스커 입장에서는 아주 큰 자산을 계속해서 쌓아가는 셈이겠죠.

5. 계속해서 이어질 '책상+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팝업이라고 착각하지만 데스커라운지는 상설운영되는 공간입니다. '한 번도 안 가볼 수는 있어도 한 번만 가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돌 정도로 이미 단골도 있는 편이고요. 데스커는 추후에 부산 해운대와 대구에도 데스커 라운지 지점을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지점마다 차별화된 컨셉으로 차별성을 둔다고 해요. 

이제 사람들은 '일잘러가 쓰는 책상=데스커'라는 공식을 떠올리게 될까요.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저는 모션 데스크가 정말 맘에 들었기에 계속 눈 독 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모두 나선형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아닐까요

사주를 볼 때마다 저는 80대까지 일 하는 운명이며 점점 기세가 좋아져 중년이 되어야 전성기가 온다고 하더라고요.
가도가도 생각만큼의 성과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면 사주를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을 하곤 해요. 어차피 나중에 잘 될거라 지금 다양한 경험치 쌓고 있는거구나, 얼마나 깊어지려고 지금 이렇게 넓게 파고 있나, 50년 뒤의 나 정말 기대된다...ㅎ(부디 그때까지 건강해라 나 자신..)

커리어를 생각하면 우상향 직선으로 그려야한다고 생각했어요. 과거가 현재를 지나 미래가 되듯, 계획하고 실행하여 달성하는 삶이 옳다고 말이죠. 
하지만 돌아보면 늘 기시감 잔뜩 묻어있는 결심과 회고를 반복하여 계속 제자리인 것 같더라고요. 저는 실패한 계획을 한 번 더 다짐하는 것에는 매우 성실한 편이에요. '찹찹레터(데스커라운지) 발행하기'라는 태스크도 벌써 3달이 다 되도록 끈질기게 저의 주간계획에 적혀있는 것처럼 말이죠.
계획이 순탄히 흘러가지 않는 이유는 주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아 한 방향의 직선을 그리지 못하고 울렁대는 곡선을 비효율적으로 그리기 때문이에요. 저는 상업공간 만큼이나 숙박공간에 관심이 많고, 기획업무 만큼이나 자산운용과 프랜차이즈 사업이 흥미롭고, 매일 책과 영화, 수영을 즐기며 가방도 만들고 칵테일 말고 싶거든요.

사실은 그러니까, 우리는 직선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걸어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어요. 돌다보면 제자리인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크기의 원을 그려가고요, 한 방향으로 걷는 게 아니라 여러 방향 둘러둘러 보면서요. 속도가 뭐가 중요하고 효율이 뭐가 중요한가 싶어요. 동서남북 모두 빙 둘러보며 80대까지 재미있게 걸어가려고요. 나를 붙잡아주는 구심력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그 힘을 잃지 않으려 해요. 나선을 계속해서 덧대어 걸어가며 나만의 나이테를 그리는 거죠. 어차피 50년 더 긴 호흡으로 일 해야하는 것인데요..(부디 부디.. 그때까지 건강해라 나 자신..ㅎ)

나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죠, 내가 인정받아야 할 사람은 단 두 명, 17살의 나와 70살의 나라고 하더라고요. 17살의 저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을 지금하고 있듯, 70살의 저도 계속 멋진 나선을 걸어가며 상상 이상의 일들을 벌리고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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