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라톤이 아니라 여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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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안녕한가요? 소보카도입니다.
저는 최근에 조급함과 무기력의 너울을 타고 돌아왔어요.
(어른의 인생이란 정말 쉽지 않아요)
모쪼록 모두가 행복한 여행 중이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오늘은,
1. 번아웃의 업무일지와 함께
2. 당신의 여행을 풍성하게 해줄 공간 리스트,
3. 마지막으로 찹찹 스크랩했던 소소한 소식들을 
준비하였습니다. 

마라톤이 아니라 여행인 것

4월에는 화사한 벚꽃만큼 무기력증이 도졌다. 노력하는 만큼의 진전이 없는 것 같은 최근이었다. 늘 무언가를 하고 있는데도 한 발 씩 밖에 걸어나가지 못하는 능력치가 아쉬웠다. 계속 할 일은 더 많아지는데, 현실이 욕심을 따라오지 못했다. 필드에는 늘 대단한 작업들이 넘쳐나고,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벌써 8년차 짬을 가진 노동자인 나는 초기 번아웃의 낌새를 알아채고서는 벗어나려고 짧은 여행을 계획하거나 일기를 쓰는 등 아등바등하였지만 해결해야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조차 힘들었다. 페이스를 유지해야해, 지금 벌써 지쳐버리면 안 돼, 갈 길이 머니까 정신차리자, 등의 조급함으로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았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더 깊은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지금 바로 행복해지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은 나를 좋은 공간에 데려다 놓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쓴 적이 있다. 이것 또한 건축공부 13년 짬에서 나온 인생기술이다. 강릉이 그 돌파구가 되어 주길 바랬다. 도망가는 거지만, 그 곳에서 정답과 위안을 찾길 바랬다. 바다와 작은 가게, 커피 이 세 가지가 정답을 알려줄 것이다. 정답을 찾은 우리는, 밤마다 호기롭게 술을 마실 것이다.

다시 에너지를 얻은 것은 오히려 집으로 돌아온 뒤였다. 혼자서 짐을 정리하고, 건강한 저녁을 요리하고, 해가 지는 어둑푸릇한 창밖을 바라볼 때였다. 짙은 푸른색의 공기 아래에 화사한 벚꽃나무가 풍성했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강릉에서의 시간을 생각했다. 기대만큼 모든 순간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보니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꼭 가고 싶었던 가게가 생각보다 환대적이지 않아서 괜히 민망했지만, 큰 기대없이 지나가다 들렀던 카페가 정말 친절하고 햇살이 좋았다. 동행과 약간의 갈등이 있었는데 반대로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는 기회가 되었다.

인생은 여행이라는, 뻔하고 뻔한 말이 곱씹어보았다. 조바심 낼 것 없이 긴 길을 가야 한다. 마라톤이 아니라 여행. 방향이나 속도에 집착할 필요도 없다. 스스로가 즐거운 여행을 하면 되는, 참 쉬운 것. 다양한 경험을 하며 풍성한 순간들로 내 여행을 채워나가고 싶다.

여행 후 동행에게 추천받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읽었다. 이 책은 김보라 영화감독의 추천사를 담고 있는데, 감독은 쓰시마 유코의 단편소설 <엄마의 장소>를 애정담아 소개하며 책의 메세지를 강조한다.

"소설 속 엄마는 평생 일기를 써왔다. '아침, 은행, 슈퍼에 갔다 옴. 오후, 서예교실, 이른 저녁식사' 등 메모나 기록에 가까운 일기에는 몇 차례의 공백이 있다. 그 공백은 나의 아버지가 내연 관계의 여자와 동반자살한 후, 할아버지의 죽음 후, 남동생의 죽음 후에 나타난다. 몇 달간의 공백 후 엄마의 일기에는 다시 일상적인 메모가 시작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이. 공백은 그저 공백으로, 나의 상상의 공간으로 남는다. 공백의 시기에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독자인 나는 알 수 없다. 그것은 소설 속 나도, 나의 엄마도, 작가도 온전히 알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공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공백 이후 아무렇지 않게 돌아와서 다시 글을 쓴다. 이제서야 그 소중한 시간을 뚜렷하게 마주한다.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하나씩 풀어낸다. 공백의 시기조차 여행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의 촘촘한 시간들을 사랑하기로 하였다.

당신의 풍성한 여행을 도와줄 공간 3곳

적어도 저에게는 많은 힘과 영감이 되었던 곳들입니다 😎
구독자에게 힘이 되었던 공간도 궁금해요.

1. ATC : Aaron's Tourist Center

"we are all tourist"라는 슬로건을 가진 아론의 투어리스트 센터, ATC에요. 내추럴 와인과 먹거리, 기념품샵 등을 운영하고 있어요. 내가 여행하는 건 강릉인 줄 알았는데, 그냥 삶 자체가 여행이구나, 우리 모두 여행객이구나 하고, 냅다 내추럴 와인이나 드링킹 해버리게 되는 곳이에요. 입장하자마자 좌우로 동선을 나누어 기념품숍과 와인바를 배치한 공간구성도 아주 흥미로워요.

2. 볼드핸즈

볼드핸즈는 거친 손을 의미해요. '거친 손 끝에서 섬세하고도 대담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세상의 모든 서비스종사자 및 예술가와 노동자들의 노고와 존경을 담아 만든 브랜드'라고.

결국 감동적인 아웃풋을 만들어내는 것은 매일 해내는 것, 그러면서 거칠어지는 손과 섬세해지는 마음이겠죠. 바를 중심으로 하는 정성스런 서비스와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는 커피, 디저트에서 그들의 거친 손을 함께 존경하게 되는 용산의 카페&위스키바입니다.(진짜 너무 맛있어요.)

공간은 근처 땡땡거리의 철도에서 모티프를 따와서 곡선형 바를 만들었다고 해요. (인테리어는 더퍼스트펭귄의 작업!)

3. 캔들라이트 콘서트

fever에서 진행하는 캔들라이트 콘서트. 우리나라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 아시나요?(프로그램 링크). 크고 작은 규모로, 클래식부터 영화음악까지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어요.
저는 '엔니오 모리꼬네' 공연을 부모님 결혼기념일 기념으로 함께 다녀왔어요. 작은 공간이어서 연주자들의 숨쉬는 소리와 활을 움직이는 근육까지 느낄 수 있었는데,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연주자들의 몸이 그 아래에 흔들리는 촛불과 정말 잘 어울렸어요.
엔니오 모리꼬네는 '넬라 판타지' 등 오래된 이탈리아 영화의 OST를 많이 만든 작곡가인데요. 부모님의 신혼 초, 이 음악을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고 너무 좋아서 세 번이나 영화를 보러갔던 에피소드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왔어요. (촉촉한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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