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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2 준비 - 스폰서 및 사연 모집합니다!

일 💼

4. 런던에서 100만원 받고 헤어모델을?

내 모습에 웃음이 나와도, 괜찮아 딩딩딩딩딩🎵

2025.04.15 | 조회 1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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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의 프로필 이미지

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워홀출신 8년차 런더너의 이런저런 소소한 영국생활 이야기

안녕 구독자!! 잘 지냈어? 오늘은 시즌2 마지막 레터야🥲  너무 짧았지? 아이노우...사정상 이번엔 이렇게 마무리하게 됐어. 암쏘쏘리... 🙏 마지막이니만큼 끝까지 읽어주길 바라. 이번 알바가 최고였거든👍🏻 이번 시즌을 화려하게 장식할 피날레 알바는 바로~~~ 헤어모델! 아니 어떻게 헤어모델을 하게 됐냐구? ㅋㅋ잘 들어봐봐~

 

어째서 모델일을?

때는 또다시 올해 1월! 앞에서 말했듯 디자인취업이 안 되서 이런저런 알바에 지원해보던 시기였어. 한인 커뮤니티 '영국사랑' 뿐만 아니라 영국 구직사이트에서도 서비스직 알바를 지원했다고 했잖아. 거기에 'Starnow'라는 사이트까지도 이용했어. 이곳은 어떤 곳이냐~ '스타⭐️ 나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모델, 배우 구인광고를 올리는 사이트야. 여기서도 장벽은 있었어. 바로 돈을 내야 광고를 보고 지원할 수 있다는 점이야. 고민고민하다가 작년 10월에 6개월 이용료를 냈어. £34.39 한화로 약 6만 5천원! 뽕을 뽑으려면 적어도 일을 한 개는 구해야 했지. 당연히 모델일이니까 프로필에 내 사진도 여러장 올려야 했어. 그래도 지난 10년동안 간간이 찍었던 프로필 사진이나 아마추어 모델 사진이 몇 장 있었어. 근데 웬 모델? 무슨 말이냐고?


사실 나는 20대초에 모델에 푹 빠져 있었어. 늘 온스타일 채널에 나오는 모델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고, 모델 이수혁에 열렬히 빠져서 패션쇼를 보러 다니기도 했어. 그러다 어느덧 나도 모델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살살 피어올랐지. 하지만 나는 전문모델을 할 만큼 키가 크진 않거든. 167cm정도?(30대에 키가 좀 컸음🎉) 하지만 단 거를 좋아해서 배가 좀 나왔고, 엉덩이와 허벅지가 빵빵한 스타일이야. 얼굴과 상체는 마르고 목은 길고 얇아서 그냥 보면 전신이 마른 줄 알아. 한국에서 피팅모델을 수십번 지원해봤지만 제대로 붙은 적은 한 번도 없었어. 한국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 스키니체형만 피팅을 할 수 있으니까... 식욕 조절을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고 항상 디자인일이 우선이었으니 이 꿈은 서서히 접게 되었지.

근데 문득 이번에 영국에 와서는 오히려 모델일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야. 일을 안 하니 시간적으로 언제든 할 수 있고, 요즘 서구세계는 인종/몸매 다양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거든. 영국에서 쌍꺼풀 없는 동양인 겸 일반인체형 모델은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지. 

프로필에 올린 내 사진들은 그렇게 전문적이진 않았어. 심지어 2년 전 서울에서 셀프스튜디오에서 찍은 사진이 메인 사진이었어. 내 손 아래로 까만 리모컨 줄이 다 보였지🤣 이런 사진으로 작년 10월부터 스타나우에서 모델일에 계속 지원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어. 참고로 레스토랑 홍보용 모델, 기업 홍보용 모델 등 현실적으로 일반인 느낌이 나도 무방한 일자리 위주로 도전했어. 그리고 1월. 오랜만에 다시 스타나우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헤어모델을 구한다는 광고를 봤어.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헤어브랜드 '로레알'에서!!

< Project Description > Seeking four models for Hair Trend Event with colour transformation. The model will be required to do a hair colour transformation, which will be agreed upon during casting phase. - Required Media: Video Reel - Rate: £600 (est. 2 days of work) - Hair color transformation runs Jan. 30; main event presentation runs Feb. 9 at the L’Oréal Academy-Gateway Central 헤어 트렌드 이벤트에 참여할 염색 모델 4명 모집 모델은 캐스팅 과정에서 동의한 스타일로 머리 염색을 해야합니다. - 지원 조건: 비디오 - 페이: 약 112만원 (2일 근무) - 1월 30일 로레알 헤어아카데미에서 염색, 2월 9일 프레젠테이션

헐! 이틀 나가는데 £600나 준다고? 무료로 염색까지 시켜주는데 돈까지 주다니 완전 개꿀!!

첨부 이미지

귀찮음 맞서기

그런데... 여기서도 한 가지 장벽이 있었으니 그것은... '비디오'를 찍어서 보내야 한다는 것.  요즘 화장도 안 하고 옷도 잠옷밖에 입지 않는데...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어. 하지만, 다시 눈동자에 $를 밝히며 마음을 굳혔어. '그래, 해보자!' 파운데이션으로 피부톤만 정리하고 사진배경은 방문앞. 벽도 문도 하얗기 때문에 가장 최선이었어. 어차피 머리카락이 중요하니까 내 얼굴과 머리카락만 다각도로 보여주었지. 핸드폰으로 상반신만 나오게 하고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돌리고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머리상태를 보여주었지. 나의 어설픈 프로필 사진들 몇 장과 함께 이 영상을 첨부해서 지원했어. 

큰 맘 먹고 영상까지 찍어서 보냈지만 경쟁이 치열할 테니 연락은 안 오겠거니 생각했어. 그런데 이틀 뒤 답장이 왔어. 영상샘플을 보여주며 이렇게 다시 찍어서 보내달라고 하더라고. 샘플에서 예쁜 백인 모델은 머리카락을 자세히 보여주고 뒤로 가서 전신 모습을 좌우앞뒤로 보여주더라고. 흠~?  어쩌면... 진짜로 나도 될 수 있다는 건가? 이번엔 풀 메이크업을 하고, 몸매도 잘 보이라고 브라탑에 청바지를 입었어. 저번보다 더 열심히 편집까지 해서 보냈어. 그런데 일주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거야. 안 된 줄 알고 머리를 잘랐어. 원래 짧은 단발머리를 좋아하거든. 그런데... 통역알바를 뿌듯하게 마무리하고 집에 가는 길에 문자를 받았어.

"Hello Soo Soo😊 Apologies for the late reply it's been some crazy days and we received a lot of applications!

If you are still available for the dates I'll be pleased to put you forward 😊 do you have any questions for me?"

"안녕 수수! 답장이 늦어서 미안해. 요 며칠간 지원자가 많아서 미친듯이 바빴어! 
너가 여전히 해당 근무날짜에 시간이 된다면 너를 뽑으려고 해! 질문 있니?"

첨부 이미지

대박... 진짜??? 레알??? 깜짝 놀랐지 뭐야!!! 내 예상이 맞았나봐. 동양인이 희소하니까 내가 뽑힌 것 같아!! 회사 트레이닝용 헤어모델이라 일반인 몸매여도 가능했던 것 같고! 마지막으로 지금 머리가 짧아졌는데 괜찮은지 확인절차를 마치고 나서 난 진짜로. 로레알에 헤어모델을 하게 됐어🎉🎉🎉

 

알러지 테스트와 아니타

나는 로레알 헤어 아카데미에 총 세 번 갔는데 처음엔 염색약 알러지 테스트를 하러 갔어. 

로레알 헤어아카데미 로비
로레알 헤어아카데미 로비

로레알 헤어아카데미는 우리집에서 한 시간 걸리는 서쪽에 있었어. 건물이 투명한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서 멀리서부터 내부가 시원하게 다 보였어. 높은 천장, 푹신한 소파, 큼직한 식물들로 쾌적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어. 프론트에 내 이름과 온 목적을 말했더니 커피나 차를 마음껏 마시면서 기다리라고 했어. 커피를 마시며 앉아있었는데 잠시 후 땡땡이 원피스를 입은 마르고 예쁘장한 흑인 여자분이 왔어. 근데 말이 굉장히 빠르고 작게 말해서 뭐라는지 모르겠는 거야. 행동까지 빨라서 내가 대답할 겨를도 없이 스르륵 사라지더라고! 내가 그 분을 따라가야하는 건지, 여기서 기다려야하는 건지 어리둥절했어. 다행히 잠시후 다시 나타나서는 내게 알러지약을 팔에 발라줬어. 이 약을 바르고 45분동안 여기 있다가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냥 집에 가라고 했어. 그러고는 또 사사삭 번개처럼 사라졌음.

 

팔뚝에 묻힌 알러지테스트약 
팔뚝에 묻힌 알러지테스트약 

핸드폰 타이머로 45분을 맞추고 멀뚱멀뚱 앉아있었어. 근데 내 앞 소파에 앉아있던 여자애랑 어쩌다 말을 트게 된 거야~ 풍성한 곱슬머리에 갈색 피부를 가진 친구였어. 이름은 아니타. 얼굴이 작고 아주 이쁘게 생겼더라고. 혼혈같았어. 영국인인 것 같았고, 말투가 굉장히 나긋나긋하고 느려서 아까 그 여자와 달리 알아듣기 쉬웠어. 웃음레벨도 낮아서 내가 조금만 말해도 웃음을 터뜨려서 우리는 그새 편안한 사이가 되었지 뭐야. 그 친구도 알러지 테스트를 하러 왔고 알러지약을 바른지 한 40분이 지난 상태래. 아니타의 크림은 거의 다 마른 상태였어. 크림이 마른 자국 안쪽에 옅은 갈색 반점이 있었거든. 아니타는 테스트약을 바른 부분이 하필 자기 점이 있는 부분이라며, 알러지 반응으로 오해받을까봐 걱정된다고 베시시 웃었어. 괜찮을 거라고 다독여줬어. 아무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자기는 이만 가겠대. 밖에서 마침 비바람이 불기 시작한 터라 그녀는 가방에서 아주 작은 우산을 꺼냈어.

"아마 이 우산은 곧 뒤집어지겠지만... 이만 가볼게!"

아니타는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 우산을 폈고, 정말 펴자마자 강풍에 뒤집어졌어. 아니타는 뒤집어진 우산을 쓰고 특유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 내게 손을 흔들고 사라졌어. 

나하고 되게 잘 맞는 친구라는 생각이 들었어. 낯선 이에 대한 경계 없이 저렇게 잘 웃으며 편안하게 대화를 할 줄 아는 상대면 언제든 친구로서 환영이지! 우리가 같은 날 헤어모델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참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절로 미소가 났어. 곧 45분이 지났고, 알러지 반응은 0! 그새 비바람은 그쳤고, 나는 우산 뒤집어질 필요 없이 가볍게 집으로 향했어.

 

Day 1

3일 뒤 다시 헤어아카데미를 찾았어. 드디어 정식으로 일하는 첫째날! 이번엔 염색만 하러 온 거니까 별 부담이 없었어. 이미 어떤 스타일로 염색을 하는지는 알고 있었어. 일명 '피카부 스타일(Peekaboo)이라고 해서 어두운 머리인데 머리카락을 들춰보면 속에 탈색한 머리가 숨겨져 있는 스타일이었어. 그래서 피카부~ '까꿍' 이라고 불리나봐.

로비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말 크고 넓게 여러 방이 있었어. 하얀색 복도에는 '나 존나 멋져'라고 눈빛으로 외치는 헤어모델들이 포스터에 걸려있었어. 회의실, 화장실, 각종 업무공간을 지나 미용 공간으로 들어왔어. 통유리창을 통해 햇빛이 따사롭게 들어오고 있었어. 고급스러운 갈색 가죽 의자와 조명달린 거울이 놓여있는 널찍한 공간이었지. 

역시 미용쪽이다보니 직원들은 여초였지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굉장히 상냥한 게이남자였어. 30대초반에, 긴 머리를 반으로 묶고 코에는 피어싱을 하고 있었지. 따뜻하면서도 리더십이 있어보였어. 곧이어 내 담당 헤어디자이너가 나타났어. 그분은 40대후반-50대로 보이는 백인 여자였어. 만화영화에서 보는 팔다리는 얇은데 상하체가 발달한 타입의 여자였는데... 인상이 별로 좋아보이지 았았어. 눈빛이 뭔가 싸했고, 입술은 필러를 맞았는지 살짝 부풀어 있었어. 그나마 웃을 때는 '파하하~'하면서 시원하게 웃어서 인간미가 있어보였어. 그녀의 이름은 조이.

근데 조이는 치명적으로 말이 많은 사람이었어. 내 머리 탈색은 하지도 않고 장작 한 시간동안 내 머리를 계속 들췄다 내렸다 하면서 디렉터와 얘기만 나누는 거야. 원래 이렇게 오래 얘기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사실 찔리는 게 있었어. 바로 새치염색! 최근 몇년사이 흰머리가 많아져서 혼자 새치염색을 하곤 했거든. 염색한 부분은 갈색이었고, 새로 난 뿌리쪽은 다시 검은 머리와 새치가 섞여 있는 상태였어. 왠지 조이가 멘붕이 온 것 같더라고. 물론 내 오디션 영상으로 머리를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니 전문가눈에는 머리색이 얼룩덜룩했나봐. 염색을 언제 했냐고 물었고, 무슨 약으로 했냐고 물었어. 아무래도 탈색이다보니 강력한 새치염색약때문에 탈색하면 지저분하게 색이 나올까봐 고민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미안하다고 했거든. 그랬더니 조이 옆에 있던 그 상냥한 디렉터는 웃으며 말했어.

"아냐아냐. 이럴려고 우리는 헤어트레이닝을 하는 거야. 이런 사례도 새로운 실험인 거지!"

덕분에 긴장이 사르르 풀렸어🥹 난 내 머리가 생각보다 별로라며 쫓아낼까봐 걱정됐거든. 조이는 내 머리를 만지다가 다른 동료들이 오면 그 사람들과 허그하며 인사를 하고 스몰토크를 했어. 그러다보니 난 대체 언제 염색을 시작하는지 모르겠더라고. 한시간 반이 지나고 나서야 내 머리카락에는 은박지가 씌워지기 시작했어. 

갖고 온 책을 읽으며 지루함을 달래고 있었어. 어느덧 12시가 되었더라고. 보그 편집장으로 유명한 안나윈투어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나이 지긋하신 여자분이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뭐 먹고 싶냐고 묻기 시작했어. 방에는 15명 정도가 있었거든. 두세명이 나처럼 헤어모델이었고 나머지는 로레알 직원이었어. 익숙한 분위기가 느껴졌어. 몇년 전 러쉬에서 일할 때의 감정이 사아악 올라오더라고. 왜냐? 모두 영국 백인이었다~~ 😅 5년간 영국백인들만 있는 회사를 다니며 느낀 점은 그들은 낯선 사람에게 절대 말을 걸지 않는다는 거였어. 여기서도 당연히 나를 유령취급하겠다고 생각했어.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책에 집중하고 있었거든. 근데 그 안나윈투어분이 내게 와서 묻는 거야.

"점심 뭐 먹을래? 여기서 골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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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근래 한국일을 단기로 하면서 끼니를 안 챙겨주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여기서는 무료로 점심까지 챙겨준단 말이야? 돈도 많이 주면서? 내가 기대했던 영국백인에 대한 선입견이 사르르 녹았어. 너무 감사하더라고. 그분은 무슨 역할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위급같았거든. 그런데도 이렇게 직접 한명한명에게 메뉴를 물어보고, 나중에는 커피나 차 마시겠냐고 물어봐주기도 했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떠오르며 엄청난 존경심이 우러나왔어. 알고보면 정말 직책이 식사담당인 걸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나이 지긋하신 분이 그렇게 한국에서는 '인턴일'로 여겨지는 걸 직접 하신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했어. 

파스타가 배달되었고, 거기있던 모두가 잠시 일을 멈추고 여유롭게 점심시간을 가졌어. 우리나라 미용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점심시간...! 최근 가이드일로 점심, 저녁시간을 건너뛰었던 게 떠오르면서 '아 내가 이래서 영국에 왔지!'싶더라고. 워라밸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인간으로서 당연히 부려야 하는 시간. 제때 식사 챙겨먹고, 받을 돈 잘 받아서 일할 수 있는 환경🥹 다시 한번 명심했어. 꼭 영국회사에 취업해야지!

머리 탈색 과정
머리 탈색 과정

점심을 먹고 오후가 되었을 때 갑자기 지난번에 만났던 아니타가 등장했어! 알고보니 나와 함께 서는 모델 중 한 명이었던 거야!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어. 아니타와 함께 하면 안심이었어. 저렇게 대화하기 편한 영국인을 찾는 건 드물거든. 아니타의 헤어는 나와 달리 덜 파격적이더라. 지금은 검정색인데 약간 밝은 갈색으로 염색하는 거였어. 내 담당 조이의 또 다른 모델이었더라고. 근데 내 머리가 생각보다 오래 걸리게 되서 나 다음으로 오게 된 아니타와 겹치게 된 거였지. 조이는 아니타와 나를 왔다갔다하며 작업을 했어. 나는 특히 탈색이라 여러번 머리를 감고 트리트먼트를 발라야 했거든. 조이를 돕는 조수, 디렉터, 아까 안나윈투어분 등 여러명이 시간 나는 대로 내 머리를 도맡았어. 결국 머리숱까지 쳐내고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내 머리는 끝이 났어. 생각보다 오래 걸렸지만 일당이 £300니까 4시간이 걸렸든 7시간이 걸렸든 괜찮았어. 점심까지 줬으니까! 

내 머리를 보더니 조이는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So unique!'를 연신 외쳐댔어. 디렉터도 웃으면서 멋지다고 칭찬했어.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 멋있는지. 진짜 그냥 보기엔 앞머리 한 줄기만 탈색되어 있고 머리를 들춰야지 안쪽에 탈색한 노란 부분이 보였거든. 어쨌든 그들이 멋있다고 해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집으로 향했어. 

 

Day 2

염색한 날 집에 가기 전 어떤 직원이 내게 로레알 신제품을 선물로 건넸어. 붉은 통에 담긴 로레알 샴푸와 트리트먼트였어.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전까지 이 제품을 쓰며 머리를 관리해달라고 하더라고. 인플루언서들은 이렇게 협찬을 받겠지?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던데 난 이미 대머리일 거야.. 머리를 감을 때마다 웃음이 끊이질 않더라고😚

로레알 헤어모델을 연결해준 에이전트는 어떻게 프레젠테이션을 하는지 자세히 알려주지 않았었어. 의상에서도 별다른 지시사항이 없었어. 그냥 상의를 크림색, 소프트톤, 검정색 계열 옷으로 몇 개 가져오라는 정도? 그래서 어떤 스타일로 입어야할지 난감하더라고... 한국과 영국을 왔다갔다하다보니 현재 내게 남아있는 옷은 별로 없었어. 몸에 달라붙는 옷은 하나도 없고 벙벙한 옷밖에 없었고... 그래도 이것저것 챙겨갔어. 옅은 분홍색 니트, 까만 반팔 몇 장을 챙기고, 검정 슬랙스 바지를 입고 검은 양말에 닥터마틴 단화를 신고 갔어. 어차피 내 머리는 캐주얼한 스타일이니까 많이 여성스럽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거든. 프레젠테이션은 제발 별 거 아니기를 빌었어. 모델은 그냥 의자에 앉아있고 헤어디자이너가 옆에서 설명하는 방식이길 바라고 또 바랐지.

드디어 D-day! 둘째날엔 아침 9:45까지 도착해서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는 거였어. 12시쯤 관객으로 인플루언서들이 우르르 도착한다고 하더라고. 1시간동안 네 명의 모델을 보여주며 헤어 트렌드 네 가지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이었어. 그런데 이게 웬걸? 알고보니... 워킹을 해야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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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을 해 본 적도 없는데, 작은 키로 어색하게 걸어야한다는 사실에 갑자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어. 나머지 모델 세 명도 워킹을 해 본 적이 없더라고. 그 중 두 명은 심지어 나보다 키가 작았어. 모두 당황했지. 맨 뒷자리에 앉아있다가 순서가 되면 무대까지 걸어나가 머리를 앞모습 뒷모습 자연스럽게 보여주래. 그리고 다시 관객석 끝까지 나왔다가 무대로 갔다가를 반복하라는 거야. OH MY GOD😱 아니타를 포함해 우리 모두는 서로를 달래며 긴장을 풀었어. '괜찮아. 괜찮아. 잘 할 수 있을 거야.'

조이는 나보고 머리를 미리 감고 오라고 했으면서 나를 보더니 또 머리를 감겼어. 탈색이 많이 washed out됐다며 색을 강조하는 약을 바른 것 같았어. 헹구고 머리를 말리면서 본격적으로 내 머리를 하는데... 역시 기대했던 대로 촌스러웠어😅 나는 현재 내 5:5 가르마를 좋아하는데 내 머리를 일단 2:8로 만들었어. 안에 숨겨진 피카부~ 탙색머리를 보여주기 위해서...그리고는 손으로 내 머리를 슉슉 흔들더니 정전기로 부시시해진 것처럼 거친 모양으로 만들었어. 흠... 멋있는지 의아했지만 그냥 내비뒀어.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놀랍게도 동양인이었어. 이름은 바이올렛. 처음엔 한국인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중국인이더라고. 나 말고 유일한 아시안이라 보자마자 정이 가고 안도감도 들었어. 다른 인종에게 메이크업을 받으면 아시안을 강조한답시고 눈을 쫙 찍어놓을 것 같았거든. 나와 같은 종(?)이니까 아시안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이쁘게 해줄 것 같았어. 바이올렛은 붙임성도 좋고 친근했기 때문에 웃으며 맡겼지. 그런데 이게 웬걸! 메이크업이.... 최악인거야😱 바이올렛이 염색한 내 사진을 사전에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컨셉을 정하고 온 줄 알았거든. 근데 즉석에서 갑자기 좀 실험적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싶다는 거야. 아이라이너를 위로 올리지 않고 그냥 일자로 주우욱 그렸어. 아주 강렬하게... 내 얼굴엔 별다른 쉐딩(음영)도 없었고, 내 메이크업은 진짜 아이라인을 매직으로 장난스레 찍 그린 듯한 느낌이었어. 평평한 내 얼굴에 눈만 강조된 메이크업이었지... 정말.. 맘에 안 들었지만, 어차피 £600 주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아예 내려놓은 상태였어. 그냥 'I like it. Looks really unique!'라고 했지. 마치 조이가 지난번 내 머리보고 유니크하다고 한 것처럼... 

메이크업을 본 조이는 여전히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요상한 톤을 구사하며 '와우~ 쏘 유니크~!'를 또다시 반복했어. 어차피 나 여기서 에고따위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만~히 그냥 웃고 있었지. 

진짜 이랬음
진짜 이랬음

 

위에 이미지처럼.. 헤어, 메이크업 모두 내 스타일은 아니었어. 하지만 난 뭐다? 마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놔두자~~ 그냥 이 사진 어디 가서 공유만 안 하면 되겠다 싶었어ㅋㅋㅋ

 

나머지 세 모델은 다 전형적인 '예쁜' 스타일로 머리와 메이크업을 했더라고.. 두 명은 긴 머리를 웨이브에 발레아쥬를 줬고, 아니타는 원래 풍성한 곱슬머리에 한 톤 올린 갈색을 입힌 게 다였어. 나만 짧은 머리에 거친 락앤롤이라 은근 소외감이 들었어. 나도 좀 이쁜 거였으면 싶었는데... 근데 내가 갖고온 옷과 슬랙스 바지가 사실 락앤롤 머리에 잘 어울려서 어쩔 수 없더라. 나머지 모델은 달라붙는 스웨터에 스키니진을 입었지만 나는 엉킨 실마리가 번쩍 빛을 내는 프린트가 그려진 검정반팔에 검정 슬랙스, 검정 닥터마틴을 신었어. 조이는 내가 가져온 옷을 보여줬을 때 멍하니 쳐다보며 아무 말을 안 하더라고. 연분홍 니트, 검정색 박시한 티셔츠, 검정색 코스(COS) 카라티... "아, 별로 맘에 안 들어?"라고 묻자, "음.. 괜찮아. 검정 헤어가운을 입으면 될 거야."라고 하는 거야🤨 마지막으로 저 검정 프린트 반팔을 보여주니까 "오 아이 라이킷!"이라고 해서 다행히 헤어가운 안 걸치고 내 옷으로 쇼에 서게 되었어. 

 

드디어 12시. 직원들이 우리에게 쇼장으로 가자고 했어. 복도로 나와 죽 걸어가니 프레젠테이션 공간이 나왔어. 의자들이 한 100개정도 배치되어 있었고 앞에는 작은 무대가 있었어. 무대 옆에는 티비 스크린으로 우리 영상이 떠 있었어. '피카부 스타일, Before, After, 쓴 제품'등으로 한 페이지씩 헤어스타일에 대해 써있었어. 우리는 의자 맨 뒤쪽에 앉아있었어. 나는 다행히 세 번째로 나가는 순서였어. 드디어 관객들이 들어왔고 발표는 시작됐어. 조이와 다른 디자이너 한 명이 오늘의 주인공이었거든. 그 상냥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호스트였고 디자이너를 한 명씩 불러서 트렌드에 대해 얘기를 나눴어. 다른 디자이너가 먼저 나와서 얘기를 나눴고, 첫번째 모델이 앞쪽으로 걸어왔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능청스럽게 뒷모습을 보여주며 손으로 머리를 찰랑거렸어. 카메라감독은 다시 걸어서 관객쪽으로 걸어오라고 했고, 그녀는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걸어갔어. 이걸 몇 번을 반복하더라고. 이게 10분 뒤 내 미래라고 생각하니 심장이 쿵쾅쿵쾅 미친듯이 뛰었어. 

드디어 조이 차례가 왔고, 얼마 안 있어...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쪽으로 갔어. '에라 모르겠다!' 앞서 다른 모델들이 한 것처럼 나도 그냥 얼굴에 🙂스마일을 장착한 채 어색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내 숨겨진 피카부를 보여줬어. 

'배바지로 입었으니 내 엉덩이 빵빵한 거 다 보이겠지? 팬티자국 보이면 어떡하지?'

속으로는 별별 걱정이 올라왔어. 인플루언서들은 핸드폰을 들어올려 내 사진을 계속 찍었어. 역시 모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뻔뻔해야하는데 난 그 뻔뻔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달았지. 그래도 겉으로는 항시 미소 가면을 쓰고 있었어. 덜덜덜 한쪽 볼에 경련이 왔던 것도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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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식은 땀 줄줄 나는 어색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어. 이제 모든 압박은 끝났고 로비로 나가 점심을 먹었지! 인플루언서들끼리 네트워킹을 했고 우리 모델 넷은 테이블에 있는 하얀색 런치박스를 들고는 다시 미용공간으로 들어왔어. 기대에 찬 마음으로 하얀 상자를 열어봤는데 흠... 이게 웬걸? 깨작깨작용 음식이 전부였어. 올리브 몇 알, 당근, 과일, 호밀빵 몇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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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일도 끝났으니 푸짐하게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음식'이라고 하기엔 그저 한입거리만 나열해놓은 상자를 보고 우리 모두는 실망할 수밖에 없었어. 우린 다 먹지도 않고 남겼어. 이따 집에 가서 남편과 구워먹기로 한 삼겹살이 한층 더 먹고 싶어졌어. 

곧이어 우리는 추가 사진촬영을 했어. 아무래도 마지막으로 한껏 꾸민 모습이다보니, 포토그래퍼와 정식으로 촬영하기도 했고, 조이가 휴대용 조명까지 쏘아가며 자기 아이폰으로 아니타와 나를 아주 오래 찍기도 했어. 촬영이 끝나고 로비로 나오니 관객들은 모두 간 상태였어. 텅 빈 로비에 행사의 흔적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아니타는 신이 나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사진을 찍자고 했어. 서로 한두장 찍고 말 줄 알았는데 그 이후 자기 사진을 10장 넘게 찍어달라고 해서 놀랐어. 알고보니 아니타는 제대로 뽕뽑는 스타일이더라고😂 테이블에 놓여있던 로레알 펜도 스윽 가져가고, 음료수도 여러개 스윽 가져갔어. 물론 음료수는 손님들 먹으라고 배치해놓은 거긴 하니까... 그래서 나도 덩달아 다이어트 콜라 2개를 가져왔지ㅋㅋ 마지막에 퇴근할 때는 로레알 직원이 고맙다며 또 로레알제품을 한 보따리 줬어. 참 많은 걸 받은 하루였다🥹

고마워요 로레알
고마워요 로레알

집에 가기 전에 인맥을 쌓아놓으면 좋을 것 같아 관계자들과 인스타그램을 교환했어. 포토그래퍼는 자기 인스타를 팔로우하면 행사장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겠대. 바로 팔로우했지. 아니타는 우리 담당이었던 조이를 겨우 찾아내서 인스타그램을 교환했어. 나도 엉겁결에 교환했는데 자꾸 싸한 느낌이 들었어. 조이는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거든. 

며칠 뒤 인스타를 보는데 그 포토그래퍼와 조이 둘 다 나를 맞팔하지 않더라고. 포토그래퍼에게 쪽지를 보내서 사진 좀 보내달라고 했지만 묵묵부답이었어. 그러면서 인스타 스토리는 얼마나 자주 올리는지~! 조이 또한 마찬가지였어. 내 사진을 그렇게 찍어대더니 결국 자기 인스타에 올린 건 아니타 사진뿐이었어. 나중에 보니 아니타만 맞팔했더라고. 괘씸해서 결국 포토그래퍼와 조이 모두 언팔했어. 

 

결국 달콤한 걸 얻으려면

로레알 알바로 모든 영국백인이 새침하진 않다는 걸 알고 감동한 한편으로 조이같은 관상(bitch 관상)은 역시 피해야겠다고 다짐했어. 어쨌든 결론적으로 로레알 헤어모델 알바는 10점 만점에 9.8점을 주고 싶어! 조이의 싸한 태도와 페이를 60일 기다려야 했다는 점에서 0.2점이 깎였어. 2월 9일에 끝났는데 바로 며칠전(4월)에 £600를 받았거든😅 이 점만 빼면 사실 너무너무 좋은 알바였어. 보통 몇십만원 주고 하는 염색을 백만원 넘게 받고 한 것도 모자라, 로레알 제품도 받고, 점심도 얻어먹고, 좋은 사람들까지 많이 만났다 정말🥹 감사합니다 로레알!

이번에 단기알바시리즈를 쓰며 새삼 공통점을 발견했어. 일을 지원할 때 항상 하기 싫은 점이 있었다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지원했더니 잘 풀렸다는 거지. 이런 말 있잖아. 하고 싶은 걸 하려면 하기 싫은 것도 해야 한다고.. 그 말이 진짜 맞는 것 같아. 달콤한 걸 얻으려면 어쨌든 쓴 맛을 한 번 삼켜야 하는 것 같아. 나... 아직도 7개월째 구직 중이거든. 이런 관점에서 어마어마하게 달콤한 걸 얻으려고 쓴 맛을 이렇게 장기간 섭취하는 중이겠지?🤣 

 

에필로그

구독자(이)도 혹시 나처럼 잘 안 풀리는 상황이라면 우리... 희망을 놓지 말자. 힘든 게 있어도 잘 참고 꾸역꾸역 계속 해보자고! 이번 시즌은 정말 짧게 끝내서 미안하지만, 지금 말한 대로 계속 구직에 집중해야 할 것 같아ㅜㅜ 심지어 다음달에 결혼식도 한다ㅋㅋ 여러모로 여전히 안정된 시기가 아닌 것 같아서 잠시 펜을 놓아야겠어. 단기알바 시리즈 재밌게 읽었어? 너무 길지 않았나, 재미없지 않았나 등 고민이 많았어.(피드백은 언제든 환영이야!) 아무쪼록 나의 알바 후기가 유익했기를 바라며 이번 시즌 마감하도록 할게. 

 

P.S//

어쩌면 나.. 팟캐스트를 시작할 수도 있어. 언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글에서 알 수 있듯 조잘대는 거 정말 좋아하거든... 차라리 글보다 토크로 가면 더 길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팟캐스트도 생각중이야. 주변 친구를 한 명씩 불러서 얘기 나누는 콘텐츠일 것 같아. 나중에 진짜로 시작하게 되면 알려줄게 ㅎㅎㅎ

 

그럼 다들 건강히 잘 지내고 있어! 다음 이 시간까지 잠시만 안녕💖

 

2025년 4월 14일

수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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