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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국살이 8년차, 결국... 한식당으로?

영국에 살다살다 최후의 길에 들어서고 마는데

2025.04.08 | 조회 5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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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영국이 어땠냐면

워홀출신 8년차 런더너의 이런저런 소소한 영국생활 이야기

안녕 구독자! 잘 있었어? 지난 레터를 마감하기 무섭게 바로 다음 레터를 쓰는 중이야. 내가 이번에 한국에 다녀오거든! 다음주에 일정이 바빠 지금 비행기 안에서 쓰고 있어. 앞에 계신 분이 좌석을 뒤로 젖히지 않아서 감사해🥹 덕분에 편안하게 노트북을 펼치고 있거든. 비행기에서의 편지라니 왠지 낭만적으로 들리네... 과연 오늘 편지 내용이 낭만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 읽어봐☺️

 

때는 또 다시 1월 말... ㅎㅎㅎ 아 생각해보니 이번 시리즈에 말하는 알바 네 개 모두 1월에 2주간 일어난 일이야. 정말 역동적으로 살았다🤣 일단 가이드 알바를 하고 마켓에서 달력을 팔았잖아. 이렇게 하루짜리 일 말고 이번엔 정기적인 알바를 하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어. 그래픽 디자이너로 풀타임을 구하기 힘들다면 그래 좋아 이참에 잘 나가는 프리랜서가 되기로 다짐했거든.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내 실력이 정말 출중해야 할 것 같았어. 회사소속이면 실력이 엄청 뛰어나진 않더라도 매달 월급을 받잖아. 근데 프리랜서는 디자인에 차별화가 없으면 돋보이지 않아 돈줄이 끊기겠더라고.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에서 소라언니가 그랬었지. "진보한 디자인은 박수를 받지만, 진부한 디자인은 외면받습니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의 세계가 딱 그런 것 같았어. 근데 그러려면? 실력을 쌓을 때까지 시간이 걸릴테니 그때까지 고정수입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 집근처 카페에서 주 2회씩 알바를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근데 내가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으니 안 뽑아줄 것 같은 거야. 이력서에는 디자인 경력은 살리되,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고 소통을 잘 한다고는 써놨지만... 그래도 경쟁력은 땅 파고 들어간 마이너스같았어. 온라인으로 카페뿐만 아니라 각종 서비스직에 이력서를 넣고 동네 카페에 가서 직접 문의하기도 했어. 하지만... 깜깜무소식.

'오늘 하루 총 £90를 쓰셨습니다.' '1월 27일에 £49가 빠져나갈 예정입니다.' '2월 3일에 £230가 빠져나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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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발버둥 치는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무심한 핸드폰은 계속해서 지출 금액을 알려줬어.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는 하나씩~ 하나씩 쌓여만 갔지. 결국... 결국엔 또다시 그곳으로 갔어. 영.국.사.랑... 

(*영국사랑: 영국의 한인 커뮤니티 웹사이트)

 

영국 살며 가장 경계했던 것

2013년, 워킹 홀리데이로 영국에 처음 올 때 아무리 조급해도 한식당엔 가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했어. 그때도 영국사랑을 통해 한국 구매대행 알바를 하긴 했지만 다 단기알바였어. 정기적인 알바는 적어도 한국인 없는 일식당으로 갔었고. 내가 영국에 온 이유는 한국인이 아닌 다양한 나라 사람들을 만나서 한국에서 겪을 수 없는 경험을 하기 위해서였거든. 그래야 영어도 늘고 내 시야도 넓어질 테니까. 그런데 영국까지 와서 한식당에서 일하면 익숙한 한국인들과 익숙한 한국 근무환경으로 일을 하겠지. 그런 말 들어본 적 있어? 외국에 오래 산 한국인들이 오히려 더 폐쇄적이고 같은 한국인을 부려먹는다고. 씁쓸해서 일반화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히 이 말을 부정하진 못하겠어. 내가 겪어도 그랬거든. 갓 외국생활을 시작한 한국인이 어리버리한 점을 악용하는 경우가 많았어. '가족'적인 분위기를 앞세워 돈을 제때 주지 않거나, 최저시급 혹은 그 이하로 주면서 노동을 착취하더라고.  

안 그래도 나는 한국의 근무환경이 싫어서 대학 졸업하자마자 영국에 취업하러 온 건데, 돈 없다고 그토록 싫어하던 환경에 그대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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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전공 살려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꼭 취업하겠다!'는 각오로 배수진을 쳤어. 그 결과 시간은 좀 걸렸어도 8개월만에 인턴으로 영국에서 내 인생 첫 디자인 경력을 시작했어. 그 이후 총 7년동안 영국에서 잘 살았어. 

그런데 이번엔 상황이 좀 달라졌어. 워홀초기만 해도 부모님 두 분 다 맞벌이셔서 내가 취업할 때까지 생활비를 보내주실 수 있었거든. 근데 10년이 흐른 지금, 두 분은 다 퇴직하셨고, 난 한국토종 남편까지 영국에 데리고 왔지 뭐야? 남편은 정착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터라 2인분을 위해 내 눈동자, 콧구멍, 입에서는 항상 '돈. 돈. 돈'이 튀어나오게 되었어.

 

음, 근데 여기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런데 마침 영국사랑 구인광고란에 한식당 파트타임 알바를 구한다는 글이 올라온 거야. 보통 풀타임을 많이 구하는데 이곳은 평일 1회, 주말 1회, 4시간씩 일할 사람을 구한다고 했어. 심지어 그 식당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30분! 교통비도 안 들고, 주 2회 4시간씩이라... 호! 괜찮겠는데? 🤔

따지고 보면 영국에서 7년간 내가 원했던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영어도 많이 늘었어. 한식당에서 일하는 게 지금은 괜찮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어. 바로 문자를 보냈어. 

'안녕하세요. 걸어서 30분 거리에 사는 한국인입니다. 파트타임 아직도 구하나요?'

그 분도 급하신지 곧 연락이 오시더라고. 남자분이셨는데 굉장히 상냥하신 거야. 그분이 사장님이시더라고. 왠지 일하기 괜찮을 것 같았어. 다음날 직접 가서 면접을 봤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로 통과했어. 능글맞은 영주권자에, 거리가 가까운 게 강점이 된 것 같았어. 

기분이 묘했어. 지난 몇 달간 백곳은 넘게 영국 일자리에 지원했는데 결국 한 번에 되는 건 다 한국일이었어.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한국에서는 '영국 경력'을 보고 여러 곳에서 면접 제안이 들어왔었고, 내가 일하게 된 스타트업에서도 속전속결로 합격했었어. 한국은 '영국'을 참 높게 쳐주는 반면, 영국은 '한국'의 인재를 참~ 안 높게 쳐준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것이 국가 인지도의 차이인가? 영국엔 전세계에서 워낙 날고 기는 인재가 넘어오다 보니 한국도 그저 그 중 한 곳이라 그런 거겠지? 씁쓸하다 정말🍂 

뭐, 그리고 사실 한국사람이니까 한국에서 더 인정해주는 게 맞긴 하겠다. 비자 걱정 없지, 모국어지... 영국에선 내가 외국인이니까 비자, 영어 등 영국사람과 비교해서 시작점이 더 아래인 건 당연한 거겠지🥲

외국에 살다보니 한국과 외국, 최소 두 가지 관점이 생기는 게 복잡하면서도 재밌어 정말. 이게 내가 원하던... 넓어진 시야인 거겠지?😂 (넓어진 시야도 장단점이 있는 법이니 ㅎㅎ)

 

첫 출근

한국에서도 한식당(?)에서 알바해본 적은 없었던 터라 잔뜩 긴장한 마음으로 첫 출근을 했어. 근무시간은 오후 5:30분-10시까지 저녁타임이었어. 이 식당은 붐비는 시내가 아니라 주거동네에 있어서 당연히 손님이 많지 않을 줄 알았어. 또 밖에서 보면 그렇게 큰지 몰랐는데 안으로 들어오니 안쪽으로 꽤 넓더라고. 테이블은 고기 굽는 용과 아닌 용도로 나뉘어져 있었어. 생각보다 테이블이 많아서 놀랐어. 

문을 열고 들어가니 딱 봐도 앳되 보이는 여자애가 사수로 나를 맞이했어. 20대 초반 유학생이더라고. 여기서 일한지 벌써 2년이나 됐다고 해. 텃세 없이 하나하나 참 친절하게 알려줬어. 

고기 주문용 쟁반 세팅하는 법, 바구니에 쌈 담는 법, 손님 안내하는 법 등 많은 걸 알려줬어. 특히 고기 테이블은 숯불 관리하는 법, 연기 필터 입구 닦는 법 등 자잘하게 많은 걸 해야 하더라고. 게다가 메뉴엔 칵테일까지 있어서 칵테일 만드는 법까지 배워야 했어. 음료컵도 다 설거지해야 했고, 고기도 구워주고, 손님들의 고기판도 수시로 관리해줘야 하더라고. 생각보다 할 일이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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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은 까만 반팔티에 까만 앞치마.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런던 식당에서 알바하면 무조건 까만색으로 입는 게 흔하더라. 주방에는 사장님과 젊은 쉐프 한 분이랑 동남아계 남자분이 계셨어. 사장님이 소매를 걷고 흰 가운을 입은 걸 보고 놀랐어. 운영만 하시는 줄 알았는데 직접 요리까지 하시는 분이셨던 거야! 두꺼운 팔뚝을 보고 20년간 한식당을 운영해온 짬이 느껴졌지.

딸랑~! 종소리와 함께 첫 손님이 왔어. 평범해보이는 영국 백인 커플이었어. 마음 편히 그들이 주문한 삼겹살을 갖다줬어. 그 커플을 시작으로 손님이 줄줄이 들어오더라. 평일 저녁이라 안심했는데 이곳은 동네에 소문이 많이 나있나 보더라고. 테이블이 빈 적 없이 계속 돌았어😨 생각보다 바빠서 음식을 날랐다가 그릇을 치웠다가 허둥대며 돌아다녔어. 일 시작한지 한 한시간 쯤 지났을까. 주방에서 음식을 받아 손님들 쪽으로 향했을 때, 그 커플 손님 중 남자분이 테이블 아래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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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앳된 사수도 당황해서 그 분을 살피고 있었어. 혹시 음식 알레르기 반응이 일어난 걸까? 무슨 일이지? 출근한지 한 시간만에 기절한 손님을 보게 되어 진짜 놀랐어. 주방에 있던 사장님과 젊은 쉐프도 다 달려갔어. 그 분은 원래 뇌전증이 있던 분이셨던 것 같아. 응급차를 부르려는데 괜찮다며 밖에 나가서 쉬겠다고 하셨대. 그 분은 테이블에 먹던 음식을 남겨둔 채 밖에서 한참을 있다가 식당 앞에서 토를 두 번이나 하시고 떠나셨어. 

이게 무슨 일이야😱 안 좋은 징조를 나타내는 건 아니려나? 프로망상러로서 순식간에 불안이 차올랐지만 고개를 휘휘 저었어. '쓸데없는 생각 말고 정신 차리자!'  숨을 고르고서는 다시 집중했어. 배달용 포장가방에 스테이플을 찍고, 밥그릇에 밥을 담아 보관해놓고, 김치를 그릇에 담았어. 주방과 테이블 공간을 쉴 새 없이 오가며 네 시간을 보냈어. 핸드폰 한 번 볼 겨를 없이 그야말로 현재에 완전히 집중해서 일을 했지. 오랜만에 온 몸을 움직이며 일을 하니까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어.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 모니터만 쳐다보던 구직활동보다 몸을 쓰며 노동의 보람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일을 하니 명상하는 기분마저 들었지.

 

배고프면 화나는 사람인데...

하지만... 첫날부터 큰 장애물을 만났어. 식사를 제공한다던 이 곳은 일이 끝나고 저녁 9시 반-10시에 밥을 주시더라고!!!! 영어로 Hangry라는 말이 있어. hungry + angry, 즉 배고프면 화가 난다는 뜻이야. 난 그야말로 '100% hangry person'이거든. 앞서 가이드 알바에서 썼듯이 나는 제때 끼니를 먹지 않으면 굉장히 예민하고 피곤해지는 타입이야. 이제는 이런 나를 알아 내가 제어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간식이라도 먹거든. 근데 첫 출근에 뭐 어쩌겠어. 그냥 참았지. 

그날은 다행히 9시 반에 일을 마쳤어. 주방 근처 테이블에 앉으라고 하더니 까만 뚝배기에 지글지글 끓는 감자탕을 밥 한 공기와 함께 주시는 거야. 배고픈 상태에서 고된 노동 후 먹는 밥은... 정말 황홀했어. 사장님의 두꺼운 팔뚝은 짬에서 나오는 게 맞았어. 요리내공이 어마어마하더라고. 진짜, 너무 맛있었어. 다람쥐처럼 양볼에 음식을 가득 넣고 오물거리며 먹다보니 금세 그릇을 싹싹 비웠어. 

사장님이 물으셨어. '어때요? 할 만 해요?'

나는 솔직히... 일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일이 끝나고 나서야 밥을 준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 정말 진지하게 고민했어. 이건 내게 BIG DEAL이기에 그날 바로 물어봤어.

'근데 혹시 일하기 전에 밥을 먹으면 안 되나요?'

사장님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말했어.

'그럼 제가 수수님을 위해 따로 저녁타임 전에 미리 밥을 차려야 하는 건가요? 저녁타임 끝나고 다른 직원들을 위해 밥을 차려야 되니 두 번 밥을 차릴 수는 없어요.'

너무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해서 한 번 더 2연타 충격을 받았어. 몸 쓰는 사람인데... 일이 다 끝나야 밥을 먹는다고? 난 이제 건강을 챙기려고 노력하는 30대거든. 밤 10시에 저녁 먹고 집에 오면 얼마 안 되서 잘 텐데, 그럼 소화가 되겠어? 그 주에 두 번이나 더 갔거든. 저녁을 밤 10시에 한 번, 10시 30분에 한 번 먹었어. 밤새 배가 요동을 치더라. 소화시키느라. 다음날은 속이 더부룩했고. 

내게 더 큰 저항감을 안겨줬던 건 '가족'적인 분위기였어. 5시 반부터 10시까지 쉴 틈 없이 일하고 나서 같이 일한 모든 한국인 직원들과 사장님 다같이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었어. 나의 앳된 사수 유학생 여자분, 또 다른 어린 유학생 남자분이 나와 함께 일한 알바생들이었어. 모두 참 순하더라. 아직 사회물을 많이 안 먹어봐서 그런지 어른들 말씀 잘 듣는 애기들 같았어. 그래서일까. 그들은 이 시스템에 별 저항이 없었고 오히려 사장님이 하는 모든 말에 맞춰주는 분위기였어. 10시에 끝나자마자 칼퇴근하고 집에 가고 싶은데 난감하더라고. 밥은 무료에다가 졸라 맛있는데 늦게 먹고, 포장해서 먼저 간다고 하기엔 '개인주의'적이라고 비난받을 것 같았어. 유일하게 포장해서 퇴근하는 사람은 묘하게도 동남아계 주방 보조분이셨어. 

밥을 먹는 동안 나눈 대화에서도 저항감이 좀 올라왔어. 사장님은 영국에서 20년 넘게 사시며 한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는 건 확실했어. 근데 얘기를 듣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 해외에 오래 산 한국인들 중 딱 한국인끼리만 어울리고, 영어발음은 여전히 서툴고, 외국인은 멀리하는 유형이 있거든. 딱 그런 느낌이었어. 영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영국인에 적대감이 느껴지는 말을 많이 하시더라고.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여기 있다보면 영국에 반감이 더 커질 것 같았어.

'음... 나 진짜로 여기서 일해도 될까?'

아무리 내가 영국생활을 7년 했다고 해도, 내가 꿈꾸던 환경과 정반대인 곳으로 온 거잖아. 최저시급을 받으며, 내가 예전에 동료로 여겼을 법한 30대 한국인들이 회식을 하러 오는 이곳에서 나는 서빙을 하고 있네. 저녁은 주 2회 이상 한밤에 먹을 테고, 영국사회로부터 오히려 더 고립될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마지막으로 걸린 점은 쉬프트 근무제였어. 서비스직이라 일하는 날이 고정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어. 그런데 주 2회보다 더 일할 것 같은 싸한 느낌이 들더라고. 내가 딱 3회를 나갔는데 그 기간동안 벌써 세 번이나 대타로 나올 수 있냐는 연락을 받았어. 세 번 다 거절하긴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난감했어. 이렇게 거절하며 감정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데. 내가 생각했던 건 깔끔하게 주 2회였어. 첫 주는 트레이닝을 해야 하니 더 많이 나오라고 한 것도 좀 당황스러웠거든. 내가 이 일을 프리랜서일을 하며 병행할 수 있을지 확신이 안 생기더라고. 일주일마다 꽉 채워서 계획 짜는 걸 좋아하는 내게 이런 변수는 너무 스트레스더라고...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근무 이틀째, 근무 삼일째... 내 머릿속에서는 끝없는 갈등이 펼쳐지고 있었어.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다닐까 말까

사수를 포함해 모든 직원들이 내게 압박감 하나 주지 않고 상냥하게 일을 가르쳐주고 있었어. 그럴수록 내 마음속엔 오히려 압박감이 차올랐어. 내가 일찍 그만둬야 이들도 시간을 아끼고 오래 일할 사람을 가르칠 텐데... 기껏 다 배워놓고 한 달 뒤에 그만두면? 차라리 일주일 안에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냥 빨리 그만둔다고 하지 왜 이렇게 망설였냐고? 사실 이건 개인적 경험 때문이야. 나의 경솔한 행동이 싫었어. 내가 서비스직을 우습게 보는 것 같았거든. 내 서비스직 경력을 돌아보면 두 달을 넘긴 적이 없었어. 파리바게트 2개월, 샤브샤브집 2개월, 이태리 식당 2개월 그리고 영국에서 일식집 알바 1개월 반... 그 중 내게 죄책감 트라우마를 안겨줬던 건 이태리 식당집이었어. 내가 22살 때였어. 대학교 근처 이태리 식당에서 알바를 시작했어. 30대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었는데 사모님이 정말 착하셨어. 일을 시작하기 전 그분들과 오래 일하겠다고 약속했어. 근데 지금 기억은 안 나지만 어떤 이유로 내가 일한지 두 달만에 그만둔다고 한 거야. 그 부부도 식당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나의 행동에 크게 상처받고 실망하셨어. 남편분은 내게 분노해서 내가 일한 것보다 적게, 한참 뒤에 임금을 지불해줬어. 그 이후로 서비스직을 하더라도 쉽게 그만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어. 영국에 와서 그토록 바라던 디자인 인턴십을 시작하자마자 일식당은 금방 그만뒀지만... 이때 빼고는 돈이 급하다는 이유로 서비스직을 섣불리 시작하지 않았어. 얼마 안 되서 또 그만둘 것 같았거든. 근데 지금 또 그 패턴을 보이려고 하니까 나 자신에게도 실망스러운 거지.

 

이제는 성숙했다, 정면돌파!

하지만! 단호해지기로 결심했어. £400(70만원) 벌겠다고 내 건강 해치지 말고 차라리 100% 내 프리랜서일에 집중해봐야겠다고. 더 늦기 전에 그만두자! 사장님이 화내실까봐 너무 무서웠지만 정면돌파하기로 다짐했어. 내가 20대였다면 문자 하나 틱 보내고 그만뒀겠지만 30대가 되니까 마무리할 때는 무섭더라도 꼭 만나서 하는 게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3일차 나간 바로 다음날 오후 3시쯤 찾아갔어. 점심시간이 지났으니 좀 한가할 거 같았거든. 막상 갔더니 여전히 손님들이 있더라고. 역시 이 식당 인기가 많네. 어제 함께 일했던 알바생이 놀라며 나를 쳐다봤어. 사장님을 봬러 왔다고 했지.

사장님이 눈이 동그래진 채 주방에서 나오셨어. 일도 안 하는데 갑자기 찾아왔으니 눈치를 채셨겠지. 그만두겠다고 했어. 너무 민망해서 멋쩍게 웃었어. 사장님은 왜 그만두냐고 물었어.

'아... 제가 사무직에 익숙하다보니 몸 쓰는 게 너무 힘들어서요. 그만둘 거면 빨리 그만두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빨리 그만두려구요.'

사실 이것도 맞아. 진짜 너무너무너무 피곤했거든. 사장님은 눈을 꿈뻑거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어. 

'진짜 그 이유가 다에요? 다른 일 구한 건 아니구요?'

'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대신 제가 친구들을 많이 데려올게요!! 여기 자주 와서 먹고 갈게요!!!' 

연신 고개를 숙여 사과했어. 사장님은 헛웃음을 치시며 알겠다고 하고 서둘러 주방으로 돌아가셨어. 10분도 안 되서 대화는 끝났어. 정산 얘기는 커녕 기껏 가져온 앞치마와 반팔티는 반납할 틈도 없이 바쁘다며 사라지셨어. 사장님은 내가 그만두는 이유가 도무지 이해가 안 된 듯한 눈치셨어. 20년 넘게 식당에서 서서 일해온 사장으로서는 서빙일이 힘든 게 아니겠지. 말하기 애매한 여러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었으니 내가 너무 철없는 귀족으로 보였을 수도 있을 것 같아 😅 뭐 어쨌든, 며칠간 미친듯이 고민하던 일을 드디어 해결해서 속이 시원했어. 걱정했던 드라마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 천만 다행이었어.

 

훈훈한 마무리

그날 문자가 왔어. 앞치마 반납하라고. 결국 또 식당에 다시 가야했지만 반납하며 이 참에 다시 정산 얘기도 할 기회가 생겼지. 근데 정산 안 해준다고 할까봐 또 엄청 초조한거야. 다음날 하루종일 노심초사하다가 오후 5시쯤 다시 가게에 들렀어. 반팔티와 앞치마를 반납했지. 사장님은 다행히 이제는 온전히 내 의사를 받아들이신 것 같았어. 

"정산은 제가 곧 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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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진짜 이게 당연한 건데 엄청나게 걱정했잖아😭 너무 감사했어. 나는 계속해서 죄송하고, 여기 음식 너무 맛있다고, 손님으로 자주 오겠다고 말했지. 훈훈한 마음으로 가게문을 나섰어.

곧 해주겠다던 정산은... 몇 주가 지나서야 이루어졌어. 근데 여기서 반전. 통장을 확인해보니 예상금액보다 더 많이 들어온거야. 난 오히려 더 적게 줬을까봐 내심 걱정했거든. 

'돈 보냈습니다. 수고하셨구요. 늦게 지급하여 이자 보태드렸으니 맛난 커피 한 잔 하세요~'

이렇게 문자가 왔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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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당 = 악덕사장'이라는 고정관념에 절어있었는데 이런 반전을 겪을 줄이야! 뭉클해지더라. 하. 비록 한식당 알바는 3회만에 끝내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따뜻한 해피 엔드를 맞게 되서 정말정말 감사했어. 

다시 한 번 명심했어.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나이가 들면서 예전보다 사회성 레벨이 좀 높아졌거든.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섬세하게 배려해서 말하는 편이고, 사과와 감사 표현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노력해. 이렇게 하니까 관계가 망가지지 않더라고. 이번에도 피하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진심으로 사과하며 말씀드리니까 잘 받아주신 것 같아. 영국에 돌아가서 이 식당에 자주 갈 거야 ㅎㅎ 

 

구독자(이)도 이런 경험 있어? 지금 당장 돈 필요하니까 아무데나 들어갔지만, 이 길이 맞는 건지 갈팡질팡했던 경험... 사람이 조급해지면 이성을 잃기 쉽잖아. 이번 기회로 배웠어. 조급하다고 오래 할 것도 아닌 일을 벌이지 말자. 초조할수록 심호흡을 하고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고. 사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것 자체도 어려운 것 같아. 지금 당장 앞에 놓인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도 여전히 고민하는 중이야🤯 요즘 내 동지였던 영국 디자인취준러 친구들이 일을 구하는 걸 보고 다시 조급함이 밀려왔거든. 나만 뒤쳐지는 것 같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그래도 일단 쫓기는 마음을 놓고 다시 여유를 가져보려고! 내 타이밍은 따로 있는 거겠지. 내가 노력을 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니 나도 될 때 되겠다고 믿으려고.

오늘 얘기는 여기까지 할게. 혹시 경험을 공유하고 싶으면 언제든 댓글이나 메일 환영이야😉 그럼 다음주에 만나!

 

수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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