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과학기술] 자제력을 기르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마시멜로 이야기'에서 들려주지 않는 것

2021.06.04 | 조회 1.9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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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는 여우원숭이

매주 월요일, 따끈따끈한 최신 과학기술을 짧고 쉬운 글로 소개합니다.

자제력을 발휘해서 욕망을 참는 일은 아주 어른스럽고 성숙한 태도라고 흔히들 생각합니다. 게임하는 대신 책을 읽고, 햄버거 대신 샐러드를 먹고, 졸음을 이겨내고 공부를 하는, 뭐 이런 것들이죠. 성경마저도 자제력을 잃어서 선악과를 먹는 바람에 원죄를 얻은 이야기로 시작하지 않던가요?

이런 자제력 서사의 최고봉은 역시 그 유명한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실험의 얼개는 이렇습니다. 4살 전후의 아이에게 마시멜로나 프레첼 중 그 아이가 좋아하는 과자를 한 조각 줍니다. 그리고 나서 "아저씨가 잠깐 나갔다 올 건데, 그 동안 이 과자를 먹지 않고 기다리면 과자를 두 개 줄게"라고 이야기한 다음 실험자는 방을 나서는 거죠. 과자를 먹어 치워서 당장 즐거움을 누리는 대신, 자제력을 발휘해서 잠시 뒤 더 큰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지 보는 거예요.

1972년에 발표되었던 실험 자체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시멜로 실험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계기는 1990년 이후에 발표된 후속 연구였어요. 놀랍게도, 1972년에 자제력을 발휘해 꾹 참고 마시멜로 두 개를 따냈던 아이들이 이후에 살아가면서 더 큰 성취를 이룬 거예요. 시험도 잘 보고 대학도 잘 가고 체중 관리도 잘 하더라는 거죠. 어릴 때의 자제력만 보고 20년 동안의 성취를 짐작할 수 있다니, 대단한 발견이지요.

마시멜로 이야기의 교훈은 아주 분명합니다.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이 성공한다." 뒤이어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마시멜로 이야기를 언급하며, 아이들에게는 자제력을 키워줘야 하고 어른들도 자제력을 길러야 한다고 목청 높여 외쳤습니다. 자제력이야말로 성공적이고 행복한 삶의 열쇠라면서요.

하지만 정작 최신의 심리학 연구를 훑어보면 자제력의 미덕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심지어는 조금 기만적이라고까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의지를 쥐어짜서 자제력을 발휘하려고 하면 오히려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는 거죠. 몇 가지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자제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유혹을 어떻게 참아낼까?

정답은, "애초에 유혹을 느끼지 않는다"입니다.

무슨 소린가 싶으시죠? 2011년에 이런 실험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스마트폰을 한 개씩 나눠줍니다. 여기에는 아무 때나 랜덤하게 알림을 보내는 앱이 하나 깔려 있는데요, 이 앱의 알림이 울리면 참가자들은 '지금 기분이 어떠세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요? 어떤 욕구를 느끼고 계신가요? 잘 참았나요?' 같은 질문에 대답을 하게 됩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실험을 설계한 이유는, '지난 24시간 동안 자제력을 많이 발휘했나요?'라고 설문조사를 해 버리면 사람들은 기억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갑자기 핸드폰 알림이 울리고 즉각 대답하라고 하면 기억이 왜곡될 확률이 좀 낮아지겠죠. 이처럼 랜덤한 시간에 그 순간의 '경험'을 조사하는 방식의 실험을 '경험 샘플링(experience sampling)'이라고 합니다.

결과를 분석하던 연구진은 아주 이상한 경향성을 발견합니다. '나는 자제력이 강합니다' 같은 사전 설문에 '매우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은 정작 일상생활에서 유혹과 갈망을 일반인들보다 적게 느낀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 자제력이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욕망을 억누르는 의지력이 뛰어난 게 아니고, 알고 보면 자제력을 발휘할 상황 자체를 덜 맞닥뜨리는 사람이었던 겁니다.

2. 자제력을 많이 발휘한 사람은 성공할까?

정답은, "자제력을 많이 발휘할수록 성공할 확률이 낮아진다"입니다.

2017년에 캐나다 맥길 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된 실험이 있습니다. 경험 샘플링, 일기장 분석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서 대학생들이 얼마나 유혹을 느끼는지, 의지력을 발휘해서 유혹을 물리쳤는지, 그리고 목표한 성적을 받았는지 같은 것들을 확인한 실험이었지요.

이 실험에서도 아까와 비슷한 결과가 나옵니다. 애초부터 유혹을 적게 느끼고 덜 흔들리는 사람들은 자제력을 소비하지 않고도 자기관리가 잘 되며 학기 성적도 잘 받습니다. 반면 온갖 유혹에 맞닥뜨려서 자제력과 의지력을 크게 발휘하고 영웅적으로 그 유혹을 꺾어낸 사람들은, 정작 그러느라 체력이 소진돼 버려서 거짓말처럼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자제력은 마치 체력처럼, 소모되는 자원인 겁니다.

3.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은 어떻게 된 걸까?

의지력을 발휘해 봤자 얻을 이득이 하나도 없다면, 왜 마시멜로를 안 먹고 참았던 아이들이 20년 뒤에 더 성공했던 걸까요? 2018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마시멜로 실험에서 아이들의 성공을 예측한 주요 변인은 사실 자제력이 아니라 가정환경이었다고 합니다. 부잣집 아이들끼리만 비교하거나, 가난한 집 아이들끼리만 비교하면 자제력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이 확 줄어든다는 거예요.

자세한 분석 내용은 이렇습니다. (1) 부모가 모두 대학을 졸업한 경우, 마시멜로를 더 오래 기다린 아이들이라고 해서 성공한다는 경향을 발견할 수 없다. (2) 부모가 대학을 마치지 못한 경우에도 수입이 비슷한 집의 아이들끼리 비교할 경우 마시멜로 테스트의 결과와 성공 사이의 관계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까, 1972년의 마시멜로 테스트에서 자제력이 뛰어난 아이들이 더 성공했던 건 단순히 그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더 부유했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왜 부유한 집 아이들이 마시멜로 테스트를 더 잘 통과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연구진의 결론이 좀 슬픕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의 삶에서는 '믿을 만한 기대'라는 게 별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부모가 먹을 걸 사주겠다고 하고 나서 돈이 떨어지는 바람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거나, 애초에 냉장고가 텅 비어 있어서 '있을 때 먹어둬야 한다'는 경험을 너무 많이 한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탠포드 마시멜로 실험의 결론은 "아이들이 성공하게 만들려면 자제력을 길러줘야 한다"가 아니라, "주변 어른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아이들의 가정환경이 최소한의 수준을 만족할 수 있도록 극도의 빈곤을 물리쳐야 한다"로 수정되어야 할 겁니다.

4. 자제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한편으로는 우리가 자기계발과 성공의 관점에서 무엇을 바꿔야 할지 궁금하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강철 같은 의지로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고 공부를 더 하는 게 정말 의미가 없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을 토대로 결론을 내리면, 우리 뇌가 '자율주행 상태'로 움직일 수 있도록 환경과 습관을 깔아주어야 합니다. 좋은 행동을 방해하는 환경적 요소를 다 치우고, 나쁜 행동으로 치우치는 습관을 모두 없애고, 건강한 습관을 만들고 나면 억지로 의지와 자제력을 쥐어짜지 않아도 되니까요. 로이 바우마이스터가 저술한 <의지력의 재발견>에는 이런 대목이 있어요.

자제력이 강한 사람들은 비상 상황을 돌파하는 데 그 힘을 쓰지 않는다. 대신 효율적으로 공부하고 일하는 습관이나 일과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인다. …… 이 사람들은 의지력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게 아니고, 애초부터 위기를 만나지 않도록 준비한다. 프로젝트를 마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자동차는 주저앉기 전에 수리하러 가고, 무한리필 뷔페는 가지 않는다. 방어 대신 공격을 하는 것이다.

<그릿>의 저자로 유명한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가 2015년에 발표한 논문이 한 편 있습니다. <유혹에 저항하기 그 너머: 좋은 습관이 자제력과 성공적인 생활을 매개한다>는 제목인데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제력을 쥐어짜는 대신 습관에 많은 것을 맡기고 물 흐르듯 생활한다는 분석을 담고 있어요. 논문을 요약하는 초록(abstract)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We propose that one of the reasons individuals with better self-control use less effortful inhibition, yet make better progress on their goals is that they rely on beneficial habits.
우리는 자기관리가 잘 되는 사람들이 의식적으로 욕망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목표를 잘 달성하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습관 덕이라고 본다.

이 논문에서 더크워스는 여섯 가지 실험을 통해 좋은 습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학업성취가 높고 식이조절을 잘 한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훨씬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는 결과를 보고합니다. 워라밸 때문에 스트레스도 덜 받는다고 하네요. 불공평하기까지 하지요? 힘도 덜 들이면서 좋은 성과를 낸다니요.

 

*함께 읽기: [오늘의 과학기술] 힘든 일도 집중해서 해치우는 요령, 뇌과학에서 배웁니다

 

*참고 자료:

[1] Vox - The myth of self-control

[2] The Atlantic - Why Rich Kids Are So Good at the Marshmallow T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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