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러스 인터뷰

꿀스틱으로 매출 수억 원 만든 대표가 다시 직장인이 된 이유

직장인은 언제 창업을 결심하고, 창업가는 언제 취업을 결심할까

2024.10.11 | 조회 6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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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러스 다이어리

스텔러스 창업자|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인터뷰 한 눈에 보기]

  • 가구 영업사원에서 기획자, 브랜드 창업을 하기까지
  • 꿀빠는시간’ 제품 시행착오와 잘한 점, 아쉬운 점
  • 창업가에서 직장인으로 : 선택의 기준과 과정의 회고
  • 불안했던 취업과 창업 끝에 내가 알게 된 3가지 깨달음

 

스텔러스 인터뷰 4번째 이야기는 직장인에서 창업가로, 그리고 직장인으로 재취업을 선택한 혜미 님을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직장인이 퇴사해서 창업했다는 스토리는 익히 들어보셨겠지만, 창업자가 다시 직장인으로 취업한 이야기는 생소하실 듯합니다. 저 또한 우연히 초기 창업팀에 합류해 공동창업자로 일하다가 일을 쉬게 된 케이스였는데요. 나름대로 제 살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재취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부재하다’는 걸 여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단적인 예시로, 창업자로 일하다가 직장인으로 재취업하려면 ‘월급쟁이로서 연봉을 얼마 받아야 하는지’부터 난감합니다. 보통 벤처에서 일할 때는 이전 연봉을 깎고 지분을 받아 합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러다가 도중에 다시 직장인이 되기로 선택한다면 연봉테이블을 다시 세팅해야 합니다. 월급에 반영되지 않은, 수년간의 경험치를 일일이 환산해야 합니다. 

 

(강연 연사로도 활동하는 혜미님의 모습, 제공 : 이혜미)
(강연 연사로도 활동하는 혜미님의 모습, 제공 : 이혜미)

 

그럼에도 혜미 님은 직장인이 되기로 선택했습니다. 혜미 님은 가구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 꿀스틱 제품 ‘꿀빠는시간’을 만들어 창업을 했는데요. 이후 역설적으로 “다시 회사에 들어가 배우고 싶다”는 의사결정을 했습니다. 정성 들여 기획한 브랜드가 인정 받았지만, 열심히 회사를 키웠음에도 재취업이라는 결정을 내린 겁니다. 

저는 혜미 님이 취업-창업-재취업의 과정에서 고민하고 내린 선택의 순간들이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합니다. 120세까지 사는 시대에 누구나 창업을 고민해야 한다지만, 반대로 창업 그 이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쉬이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성공 스토리 사이에서 혜미 님의 스토리는 누구나 겪을 만한, 그래서 꼭 읽어봄 직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취업, 창업, 재취업과 그 다음 챕터까지 바라보는 혜미 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러분의 선택에도 실마리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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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영업사원에서 기획자, 브랜드 창업을 하기까지

 

Q. 안녕하세요.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이혜미입니다. 현재 창업 교육 기업 언더독스에서 비욘드에듀그룹 그룹장으로서 창업가들을 위한 교육과 서비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휴식을 전하는 브랜드 ‘꿀빠는시간’과 그릭요거트 매장 ‘요아시스’를 운영하는 회사 시속삼십킬로미터를 창업했습니다. 

 

Q. (각 브랜드에 대해 소개하기 전에) 마케팅 리드로도 일하시면서 따로 창업한 회사가 있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창업이 혜미 님의 커리어 첫 시작이셨을까요? 

아니요. 첫 직장은 한샘이었어요. 거기서 가구 영업을 하는 사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아버지가 건축가셨기 때문에 원래 가구에 관심이 있긴 했어요. 의외로 영업이 저에게 잘 맞았고요. 사람들을 설득해 가구를 판매하는 게 재밌었고, 실적도 좋았어요. 

 

Q. 첫 사회생활에서 맡은 역할이 잘 맞으셨네요! 그렇다면 이후 이직이나 창업 같이 다른 결정을 내리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저는 한샘에서 처음 선보이는 매트리스를 판매했어요. 그러면서 제가 제품을 판매하지 못 하는 고객의 유형이 있다는 걸 발견했어요. 제가 자사 제품의 스펙에 대해 조리있게 설명했음에도 “침대는 과학 아니냐”는 질문을 주시는 경우였어요. 

(저 질문을 종종 접하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권하는 제품 스펙을 고르는 게 더 합리적인 선택 같은데 고객이 마음을 여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어요. 그때 ‘브랜드가 도대체 뭐길래’라는 생각이 들었고,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진로에 대해 좀 더 고민하면서 브랜드에 대해 관심을 뒀어요. 브랜드 관련 서적을 계속 읽고, 관련 저자 강연회도 찾아다녔어요. 그러다가 한 저자 강연회에서 저자 명함을 받고, 그 분을 찾아가게 됐어요. 

 

Q. 굉장히 적극적인 액션이네요. 

궁금하니까 직접 가서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고 여겼던 것 같아요ㅎㅎ 감사하게도 저자분도 제가 직접 찾아왔다는 걸 좋게 봐주셨고,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셨어요. 그 분이 운영하는 회사는 브랜딩 컨설팅 회사였는데요. 정치인부터 기업인, 연예인까지 퍼스널 브랜드로 만들어주는 일을 하는 곳이었어요. 

 

(한샘 가구 영업 당시, 제공 : 이혜미)
(한샘 가구 영업 당시, 제공 : 이혜미)

 

Q. 브랜딩 실무는 처음 해보셨을 텐데 어떠셨나요?

그야말로 우당탕탕 일했어요😂 교육도 기획하고, 컨설팅 상담 자리에도 참여하고. 카드뉴스를 제작해 온라인에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는 등 다양한 스킬을 얻었어요. 

당시 인턴의 정규직 전환 조건이 ‘스스로 콘텐츠 100개 만들기’였어요. 저는 빙글이라는 소셜미디어에 카드뉴스를 만들어 일주일 중 6일간 매일 올리는 자체 챌린지(!)를 진행했어요. 월요일은 독서, 화요일은 영화, 수요일은 음악 등 하루에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주 6개 콘텐츠를 거의 매일 발행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좋은 반응을 얻어서 해당 채널에 팔로워 13만 명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콘텐츠가 되게 중요하구나’ ‘꾸준히 콘텐츠를 발행하면 계단식으로 성장하는구나’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Q. 신기하네요. 어떻게 매일 콘텐츠를 만들어 올리는 자체 챌린지를 생각해내셨을까요?

당시 카피라이터로 유명한 김민철 님의 강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결국 기획은 아이디어가 번뜩 떠오르는 게 아니라, 자잘한 물길을 계속 만들어 큰 물줄기가 됐을 때 아이디어가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셨거든요. 그렇기에 다양한 물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죠. 

거기에 착안해서 저 또한 단단한 기획력을 만들자는 의미로, 주 6개씩 서로 다른 콘텐츠를 발행하는 ‘식스펙’이라는 컨셉을 떠올렸던 겁니다.

 

Q. 공감도 가고, 귀여운 컨셉 같습니다😁 이후 어떤 선택을 하셨을까요?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고객사 담당자님이 창업을 하시면서 ‘같이 일해보자’고 제안해주셨어요. 화장품 회사를 창업하면서 전에 같이 협업한 적이 있던 제게 연락을 주셨던 것이었요. 덕분에 그 초기 기업에 실무자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품을 만들면서 빡세게 일하던 시절, 제공 : 이혜미)
(화장품을 만들면서 빡세게 일하던 시절, 제공 : 이혜미)

 

Q. 초기 기업에 초기에 합류해 일하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주니어 시절이면 더더욱.

아무래도 그렇죠. 다행히 업력과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갖춘 이사 님들 덕분에 회사가 잘 클 수 있었는데요. 실무를 진행시키는 인원이 적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는 (화장품 회사에서) 물성을 가진 제품이 만들어지는 A부터 Z까지 모두 익힐 수 있었어요. 브랜딩, 제조, 디자인, 유통 등 각 분야 전문가들과 직접 함께 일하면서 노하우를 압축해서 배웠답니다.  

다만 쉼 없이 달리다 보니 번아웃이 오고 말았어요. 당시 집은 인천, 회사는 삼성에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마저 녹록치 않았죠. 해가 떠있는 하늘을 본 기억이 거의 없을 정도로 일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퇴근길, 광역버스에서 내려서 본 하늘이 너무 생소하다고 느꼈어요.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처럼 갑자기 지금 제 현실을 자각하게 됐어요.

‘내가 지금 뭘 위해 이렇게 살고 있는 걸까?’

그날 하늘을 보면서 온갖 물음표가 한꺼번에 몰려드는, 와르르 무너질 듯한 경험을 했어요. 

 

Q.  저런… 그야말로 현타가 왔네요. 

반면 고향으로 귀촌을 하신 제 어머니는 제 2의 인생을 살고 계셨어요. 당시 어머니께서 갑자기 양봉을 시작하신다고 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갔더니, 엄마가 너무나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맞이하셨어요. 그러면서 본인이 어떤 일을 하시는지 쭉 이야기하시더라고요. 양봉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꿀이 얼마나 귀하고 이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그 순간만큼은 저희 엄마가 저보다 더 젊어보였어요. 저는 번아웃에 빠져서 아무 의지도, 의욕도 없이 일하고 있는데 엄마는 열정적으로 눈을 빛내며 일 얘기를 하셨으니까요. ‘(내 상황이) 무언가 잘못 굴러가고 있구나’ 직감했고, 저도 다시 열정을 느낄 만한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머님의 양봉 일을 돕기 시작한 혜미 님, 제공 : 이혜미)
(어머님의 양봉 일을 돕기 시작한 혜미 님, 제공 : 이혜미)

 

‘꿀 빠는 시간’ 제품 시행착오와 잘한 것, 아쉬운 점들

 

Q. 다시 열정을 느낄 만한 일이라… 이걸 어떻게 찾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당시에는 ‘삶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다’는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어요. 그 무렵 어머니가 양봉을 시작하셨던 거예요. (시기가 맞물려서) 휴식이라는 메시지를 ‘꿀’이라는 상품으로 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엄마의 꿀을 통해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헌데 엄마가 소속된 양봉 조합에서 손사래를 쳤어요. ‘꿀은 젊은 애들이 사먹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생각해보면 저도 제가 직접 꿀을 사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더라고요. 30년 이상 양봉을 해오신 분들 입장에선 더더욱 ‘귀한 꿀 괜히 줬다가 안 팔릴 수 있다’며 꿀을 제공해주시길 꺼려하셨어요. 

더군다나 제가 창업을 시작한 시기부터 엇나가 있었어요. 제가 11월에 시속삼십킬로미터의 사업자등록을 했어요. 꿀이 봄에 생산된다는 것조차 간과할 정도로 성급하게 스타트를 해버린 것이었죠. 결국 (젊은 고객층을 타깃으로 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에 더해) 겨울에 꿀을 구해야 한다는 이중고가 겹치고 말았답니다. 

 

Q.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네요. 어떻게 풀어내셨나요?

일단 ‘남아있는 꿀이라고 달라’고 한사코 부탁했어요. 제가 너무 아쉬워하니까 (감사하게도) “뭐라도 해보라”면서 꿀을 조금 받을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남은 꿀을 약간 공급받은 것이라 그 수량이 많지 않았어요. 저는 처음부터 꿀스틱 제품을 만들고 싶었는데 스틱 제품 제조에 필요한 최소 생산량에 못 미치는 용량이었죠. 

그래도 “젊은 애들도 꿀을 사먹는다”는 걸 꼭 증명해보고 싶었어요

당시만 해도 ‘천연 100%’ 같이 기능을 강조하는 꿀 상품이 대부분이었어요. 디자인이나 스토리, 경험을 중점에 두고 제품을 소개하는 경우가 드물었어요. 카피라이팅이나 스토리를 만드는 것만큼은 자신 있으니까 제 강점을 살려서 젊은 고객층의 눈에 띄는 꿀제품을 일단 시도해보자고 가설을 세웠어요. 

 

(출처 : 시속삼십킬로미터)
(출처 : 시속삼십킬로미터)

 

그래서 “개꿀잼”이라는 설 선물세트를 준비해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어요. 2018년 무술년이 ‘황금 개띠 해’라는 데 착안해 컨셉을 잡았어요. 강아지가 그려진 드로잉컵, 어머니가 직접 양봉해 얻은 아카시아 꿀, 직접 만든 얼그레이 수제잼으로 구성된 선물세트였어요. 

“다가오는 무술년 새해도 개꿀잼 가득하길 바란다”는 의미로 선보였는데, 모금액이 1600만원 가까이 모이면서 20~30대 고객들에게 매력적인 상품으로 인정받았어요. 

 

Q. ‘젊은 사람들은 꿀을 안 사먹는다’는 통념을 깨트리는 결과였네요. 

결국 젊은 고객들은 꿀 제품뿐 아니라 ‘스토리’에 반응하셨던 것 같아요. 

(다행히 가설이 검증되면서) 그 다음 해부터 양봉조합에서 꿀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새로운 시장에서 진짜 수요가 있다는 걸 검증했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 뿌듯했던 경험이었습니다. 

 

Q. 이후 선보이신 꿀스틱 제품 ‘꿀빠는시간’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기획, 제조, 생산, 판매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는 없었나요?

거의 모든 게 예상대로 안 됐어요🫠 

아무리 화장품 제조 프로세스를 알고 있더라도 꿀스틱을 제조하는 공장은 완전히 새로 찾아야 했어요. 당시 꿀스틱을 위탁생산(OEM) 하는 공장이 거의 없어서 고민하다가 정관장 홍삼 스틱 제품에 적혀있는 OEM 공장을 찾아보고 거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당당하게 “5000~8000개 꿀스틱을 제조하고 싶다”고 문의를 드렸더니 (제 전화를 받으신 공장 관계자분이) 허허허 웃으시면서 ‘최소 수량은 한 10만 개 이상이어야 한다’고 답변을 주셨어요. 화장품과 달리 스틱 제품의 최소 수량 단위는 훨씬 컸던 거예요. 

다행히 공장에서 다른 공장 연락처를 알려주셔서 거기에 또 전화해보고, 또 다른 연락처를 받아서 연락해보는 식으로 OEM 공장을 수소문했어요. 결국 한 공장에서 ‘원래는 안 되는데 일단 해보자’고 손을 내밀어주셨어요. (공장에서도 그때를 회상하면서 ‘안 되는 일인데 워낙 간절해 보여서 해줬다. 잠시 뭐에 씌웠던 것 같다ㅎㅎ’고 말씀해주셨답니다🥹)

 

(공장에 방문한 시속삼십킬로미터 창업 팀, 제공 : 이혜미)
(공장에 방문한 시속삼십킬로미터 창업 팀, 제공 : 이혜미)

 

Q. 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됐네요. 이후 꿀빠는시간 판매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꿀빠는시간의 고객 페르소나는 ‘카피라이터’라고 생각했어요. 제품 자체가 컨셉과 카피, 스토리에 특화해 있어서 제품의 이런 말맛에 공감하고 흥미로워 하는 초기 고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거든요. 

‘꿀빠는시간’도 네이밍부터 슬로건, 스토리까지 공들여 만들었어요. 휴식의 뉘앙스를 살린 “꿀빠는 시간”이라는 제품명에 더해 귀여운 캐릭터(이름은 꿀빤다)나 디자인을 통해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제품명에 아기자기함과 진중함을 혼합하는 데 신경썼습니다. “힘내지 말고 힘 빼”라는 슬로건을 쓰는 등 메시지 반전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어요. 

그렇다 보니 (제품의 컨셉이나 스토리가) 일반 대중에게 스며드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마케터나 카피라이터 같이 새로운 것에 빠르게 반응하고 그걸 추구하는 고객층에게 먼저 다가가보면 어떨까 짐작했어요. 당시 스타트업 모임에도 자주 나가고 소셜미디어도 열심히 썼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Q. 실제로 그 가설은 효과가 있었나요?

감사하게도 마케팅 비용 없이 와디즈 크라우드펀딩으로 2500만원 가량 달성했습니다. 기획 의도대로 스타트업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꿀빠는시간 제품을 많이 구매하고 주변에 알려주신 덕분에 입소문이 많이 났어요. 제품을 개발하는 과정과 고민, 이유와 히스토리를 네이버 블로그에 남겨둬서, 글을 읽어보신 분들이 펀딩에 참여하시는 경우도 적잖았습니다. 

 

(출처 : 와디즈)
(출처 : 와디즈)

 

Q. 너무 뿌듯하셨을 것 같아요. 반대로 이 여정에서 아쉬우셨던 점은 없었을까요?

지금 되돌아봤을 때 당시 저는 사업이 아니라 제품 만들기에 치중했어요. 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족할 때까지 제품에 쏟아야 한다고 생각했지, 경영자의 관점에서 시간을 써야 한다는 마인드셋이 부족했어요

예컨대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적으로 됐다면 이후 공격적으로 마케팅 액션을 해서 빠르게 사업을 키워야 했는데 저는 가만히 있었어요. 스마트스토어 하나만 연 채 다른 곳에 제품 입점을 안 했죠.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팔릴까?’라는 순수한 호기심(!)이 컸거든요. 아직 꿀스틱 생산이 안정적이지 않았을 뿐더러 ‘사업가’ 모드로 전환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다행히) 1년 뒤 새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때는 제품을 좀 더 고도화하고 다양한 유통 채널에 제품을 입점시켰어요. 매출도 올라가고 회사가 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하지만 여러모로 사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닥트리기도 했어요. 어머니께서 아프셔서 수술을 하셨고, 개인적으로도 힘든 가운데 수많은 카피 제품들에 대응해야 했어요. (어머니가 양봉 업을 그만두시니) 기존 양봉조합에서 꿀을 공수하기 어려워졌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꿀 생산처를 알아봤어요. 일련의 사건이 한꺼번에 터지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어요. 

 

Q. 어떤 걸 느끼셨나요?

내가 없으면 안 되는 사업을 하고 있구나.

 

Q. 그게 어떤 의미일까요?

제가 안 움직이면 무언가 진행되지 않았어요. 결국 브랜드를 만들었다면 그 브랜드가 잘 클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했는데 제가 그걸 놓쳤다는 걸 깨달았어요. (마치 자식이 부모로부터 독립하듯) 브랜드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과 확장 가능한 비즈니스를 구축해야 했는데 저는 ‘장사’를 하는 데 급급했다는 걸 느꼈어요. 

제가 힘든 상황에 처해있어서 ‘휴식’이라는 브랜드 메시지를 전하기 어려워졌다고 해서 브랜드가, 사업이 멈추면 안 되는데 당시 제가 만든 브랜드는 저를 벗어나서 생존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다음 단계가 안 보이고, 더 이상 잘 해낼 자신이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Q. 이대로는 브랜드도, 사업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하셨네요. 

(브랜드를 만들어 사업을 하려면) ‘우리다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고객을 위한 브랜드가 돼야 하고, 그럼으로써 브랜드가 자생하는 것. 그게 곧 ‘우리다움’ 아닐까요? ‘자기다움’만으로는 무언가 팔리는 마케팅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허나 당시 저는 그걸 몰랐어요. 제가 만든 브랜드가 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어요. 스스로 갈아넣으면서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알아챌 따름이었습니다. 

 

(제공 : 이혜미)
(제공 : 이혜미)

 

창업가에서 직장인으로 : 선택의 기준과 과정의 회고

 

Q. 더는 혼자 모든 걸 감당하는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시고서, 그 다음에는 어떤 선택을 하셨나요?

그 무렵부터 ‘회사에 다시 들어가서 배워야 한다’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회사에 들어갈 준비를 차근차근 했어요. 

 

Q. 창업에서 다시 취업이라, 쉽지 않은 선택 같습니다. 취업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다시 취업하기 위해 한 6개월간 준비했습니다. 회사에 다니지 않았던 기간이 길다 보니 직무, 연봉, 지원할 수 있는 채용 공고까지 모두 낯설었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2가지 기준을 잡았습니다

  1. “내가 안 했던 걸 해보고 싶다.”
    1. 스케일업이 되는, 사업 확정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주고 J커브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수 있는 회사에 다니고 싶었어요. 
  2. “누구나 쓸모있다는 메시지에 부합하는 기업에 다니고 싶다.”
    1. 개인적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쓸모있다’고 느끼길 바래요. 휴식도 마찬가지였어요. 결국 자존감과 메타인지를 바탕으로 자기 존재의 이유를 알며 일하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2. 그러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러한 기준에 맞춰 ‘멘탈 케어 비즈니스’를 해보고 싶다고 가닥을 잡았고, 재취업을 위해 IT 제품을 만드는 프로덕트 오너(PO) 부트캠프에 다녔어요. 낮에는 원래 제가 하던 사업을 하고, 밤에는 부트캠프에서 공부하고. 그렇게 IT 프로세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쌓고서 트로스트라는 디지털 헬스케어 앱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습니다. 

 

Q. 취업을 하시게 되면서 시속삼십킬로미터는 잠시 내려놓으셨던 걸까요?

감사하게도 개인사업자 겸업이 가능한 회사였어요. 그래서 브랜드를 접지 않고 유지하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다행이네요. 이후 직장생활은 어떠셨나요?

제조업에서 주로 일하다가 IT 프로덕트 분야로 오니 데이터를 더 많이 보게 됐어요. 새로운 비즈니스 관점을 얻을 수 있는 기회였죠. 또한 빠른 성장을 지향하는 스타트업 문화가 저와 잘 맞는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 침체로 인해 회사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아쉽게도 다른 길을 찾아야 했어요. 함께 일했던 동료가 ‘내가 이직하는 회사에 오라’고 제안해주셔서 거기로 이직할 수 있었어요. (지금 제가 다니고 있는) 언더독스로의 이직이었어요.

 

Q. 신기한 인연이네요. 

맞아요. 이직을 고민할 당시만 해도 저는 언더독스를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래서 어떤 회사인지 찾아봤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언더독스의 창업 교육을 한 번이라도 들었더라면 첫 창업을 했을 때 좀 더 감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아.’

그동안 내가 (창업자로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교육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일이라니. 의미있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했어요. 창업하고 나서 멘탈이 털렸던(?!) 제 지난 날들도 떠오르고. 그 과정을 거치면서 더더욱 ‘사업은 쉽게 보고 시작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는데, (창업 교육을 통해) 길라잡이이자 좋은 시작점을 만든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언더독스가 외부 투자 없이 스스로 성장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당장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이 많은 시점에 단단한 기반을 갖고 있는 회사에 다니고픈 마음도 컸어요. (다시 취업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세웠던 기준에 비춰봤을 때) 경험으로나 방향으로나 가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언더독스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언더독스 합류 후 팀의 리더가 되기까지, 제공 : 이혜미)
(언더독스 합류 후 팀의 리더가 되기까지, 제공 : 이혜미)

 

불안했던 취업과 창업 끝에 내가 알게 된 3가지 깨달음

 

Q. 새로운 회사에서 새출발을 해보시니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일단 리더가 이끄는 조직에 들어갔다는 점이 너무 좋았어요. 오랜 기간 프리랜서 같이 일하다 보니 ‘다른 리더들은 어떻게 하는지’ 배우고 싶었거든요. 조직에서 리더가 겪을 만한 상황들을 저도 이번 기회에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회사에 들어오면서) 개인적으로는 저에게 필요했던 경험을 아카이브하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해요.    

 

Q. 지금은 팀을 리드하는 입장인데, 회사 내에서 리더십을 경험하는 것도 색다르실 것 같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리더 자리를 맡게 되면서 제 팀이 6명, 8명, 12명으로 커가는 과정에서 참 감사했어요. 같이 성장한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우리’가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도 제 두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그걸 (월급을 받으며!) 경험할 수 있다고 봤어요. 

언더독스에 입사하고 1년이 지난 후 저만의 팀을 새롭게 구성할 기회가 생겼어요. 신사업이라서 저에게도, 회사에게도 도전이었죠. 목표를 높게 잡았는데, 이번년도 목표의 약 90%를 이미 달성했어요. 저 혼자 사업할 때는 상상도 못할 규모와 성장 속도를 팀으로 이뤄냈다는 게 지금 저에게 참 필요한 경험이 됐습니다. 

 

Q. 약간 덕업일치 같기도 하네요 ㅎㅎ

진짜로요. 여전히 마케팅에 대해 책도 읽고 강의도 찾아 듣는 편인데요. 교육 회사에 다니다 보니 전문가들과 교육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면서 덩달아 많이 배울 수 있어요. 그게 좋아요. 혼자 사업을 했다면 이렇게 밀접하게 협업하기 어려웠을 텐데, 회사라는 안전한 테두리 안에서 자율적으로 일하며 제가 지향하는 자아실현을 하는 즐거움이 있답니다🙂 

물론 이건 제가 예전부터 창업과 비즈니스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우당탕탕 사업했던 경험으로 인해 제 관점이 생기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지금 회사에서 마주하는 챌린지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거죠. 회사가 성장하는 방향성이 저와 일치하고, 저 또한 더 배우며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회사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듯합니다. 

 

(혜미 님의 언더독스 팀 사진, 제공 : 이혜미)
(혜미 님의 언더독스 팀 사진, 제공 : 이혜미)

 

Q. 앞으로 혜미 님의 계획도 들어보고 싶어요. 새롭게 창업하실 의향도 있으실까요?

당장 빠르게 창업을 하진 않을 듯해요. 일단 10년을 채운 꿀빠는시간 브랜드를 잘 정리하고서 다음 챕터를 떠올릴 것 같아요. 

다만 이번에는 너무 급하게 ‘내 꺼 해야지’ 하지 않고 스스로 경험을 더 쌓아보고 싶어요. 나중에 창업을 했을 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배우는 자세로 조급함을 덜어내려 합니다.

 

Q. 그렇다면 당분간은 직장인으로 일하시겠네요.

(창업과 재취업을 모두 경험하면서) 저에게 생긴 관점 변화 중 하나는, (1) ‘창업은 나이가 들어서도 할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는 시기는 정해져 있다’는 거예요. 언젠가 창업의 출발선에 서야 한다면 ‘지금 이 경험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직장 생활을 바라보게 됩니다. 

한때 부업이라도 해서 경제적 자유를 얻거나 사업을 위한 시드를 빨리 모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도 ‘차라리 아예 돈에 완전히 집중해볼까’ 고민해봤죠. 하지만 저는 빠르게 돈을 벌고 싶다기보다는 저 자신에게 투자를 하는 형태로 ‘제 업’을 만들어가는 데 의미를 느끼는 사람 같더라고요. 

(그러한 맥락에서) 지금은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 몰입하게 되는 일을 찾아가면서 그 과정에서 경험을 축적해가는 데 집중하려 해요. 결국 ‘사람들이 스스로 쓸모 있다고 느끼도록 돕는 일’을 찾는 여정 같습니다.

 

Q. 그래서 멘탈 케어 서비스에도 관심이 있으셨던 거죠. 어쩌면 꼭 창업이 아니라도 심리 상담을 통해서 의미 있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왜 ‘비즈니스’여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2)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그 가치를 언제 (가장 크게) 느끼는지, 그 카테고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타인에게 가치 있는 무언가를 제공해서 제가 돈을 벌었을 때 그 가치를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앞으로 ‘괜찮은 경영자’가 되고 싶어요. 사업을 통해 (제가 원하는) 가치를 실현해냈을 때 저 자신을 가장 많이 칭찬해줄 것 같고, 실제로 그래왔으니까요. 저 스스로 사업을 잘 해보고 싶다는 나름의 욕심이 있어요. 그걸 통해 제 가치를 실현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Q. 꼭 상담이나 교육 자체가 아니라 교육 ‘사업’을 통해 가치를 이루겠다는 뜻이네요. 

교육을 잘하는 사람과 교육 사업을 잘 하는 사람은 다를 수 있다고 봐요. 저는 후자를 지향하는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교육을 통해 기회를 얻고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데, 그 확장 가능성에 기여하고픈 마음이 있어요. 그러려면 교육 뿐 아니라 교육이 더 널리 이뤄질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데도 전문성을 갖고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출처 : 꿀빠는시간)
(출처 : 꿀빠는시간)

 

이는 마치 장사와 사업이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이해해볼 수 있어요. 보통 장사는 비범하고, 사업은 평범하다고들 하는데요. 장사는 비범한 한 사람이 모든 걸 뚝딱 해내는 방식이고, 사업은 그걸 다른 일반인도 할 수 있게끔 만드는 일과 같아요. 실력 있는 교육자는 전자에 해당하고, 교육 사업은 후자에 속하죠. 저는 그 후자를 지향하는 듯합니다. 

 

Q. 원조 식당과 프랜차이즈 사업의 차이 같네요. 

맞아요. 신당동 마복림 할머니 떡볶이집과 백종원표 프랜차이즈, 둘 중에서 저는 백종원의 길을 가고 싶어하는 겁니다😆

 

Q. 흥미롭네요. 갈림길에서 명확하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셨다는 점이 인상 깊습니다. 

결국 인생에 정답이 없잖아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왠지 정답이 있는데 내가 몰라서, 놓치고 있어서 잘못 가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컸는데요. 이제는 (3) ‘정답이 없다’는 데 나름의 확신이 생겼어요. 즉, ‘무엇을 선택해도 된다’는 뜻이죠. 

다만 (아무거나 선택하기보다는) 제가 옳다고 여기며 추구하는 방향에 믿음을 가지고 싶어요. 그러면서 요리조리 제 선택을 잘 살펴보면서 나아가려 해요. 

(그래서인지) 요즘 저는 따로 계획을 잘 세우지 않아요. 왜냐하면 언제나 제가 그 시점에 적절한 선택을 내려서 후회가 남지 않도록 열심히 할 수 있다는, 저 자신에 대한 신뢰가 차곡차곡 축적되고 있거든요. 

 

Q. 성실하게, 정직하게 시간을 쓰고 싶은 것이네요. 

제가 나아가는 방향에서 제가 맡은 일에 진심을 다해 멋진 성과를 만들고 싶어요. 그것이 쌓이면 분명 다음 선택을 내릴 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해요. 그것이야말로 지금의 혜미가 미래의 혜미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아닐까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매 순간 최선을 다해서 결과적으로 잘 헤쳐 나아가리라 믿습니다.

 

(좋은 팀과 함께 좋은 성과를 만들고 싶은 혜미님!)
(좋은 팀과 함께 좋은 성과를 만들고 싶은 혜미님!)

 

아웃트로

스텔러스 인터뷰로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사업이든 직업이든 자기만의 업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창‘업’은 단지 생존을 위한 직(職)을 갖는 걸 넘어 그 일을 통해 자신을 완성하려는 업(業)의 시작점입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들은 모두 보다 자기다운 선택을 하며 일을 통해 자신을 정의하고 만들어가는 창업인들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창업은 종종 ‘예술’의 영역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우연히 한국에서 알게 된 한 외국인 창업가가 있었습니다. 스페인에 있는 학교에서 창업학과를 전공한 학생이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전공은 ‘예술대학’의 분과로 포함돼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창업학과가 디자인 대학에 속하는 경우가 있던 게 떠올랐습니다. 신기해서 물어봤죠. 창업이 왜 예술대학으로 분류되는지. 답변은 간단했습니다. 

“창업은 문제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을 제시하는 거잖아요. 이런 창조적인 작업은 예술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예술은 무엇일까요?

예술을 하나의 정의로 좁히긴 어렵겠지만, ‘창업은 예술일 수 있다’는 이야기의 연장선상에서 저는 예술에 대해 이야기했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AI는 어느 정도 매력적인 화면을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본질적으로는 그게 다입니다. 예술의 가치는 비용이 얼마나 들었는지 얼마나 적은 노력이 필요한지가 아니라, 그 작품을 위해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위 문장에 빗대자면, 결국 예술은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무언가 표현하고 창조하고자 하는 활동입니다. 그렇다면 창업은 그걸 제품이나 서비스, 비즈니스의 형태로 출발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작업인 셈입니다. 거기에 많은 위기가 따를수록,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표출해 완성하고 앞서나가고자 한다면 예술에 근접한 ‘창’업이라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요인은 ‘가치’에 있습니다. 혜미 님이 브랜드의 가치를 눈여겨 봤고, 가치 있는 무언가 창조하기 위해 창업을 택했던 것처럼 인간은 의미 있는 리스크를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나름의 결론에 도달할 때 창‘업’의 한 챕터가 마무리됩니다. 

가치는 곧 의사결정의 기준입니다. 혜미 님은 ‘사람들에게 쉼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 ‘누구나 자기 쓸모를 발견하는 삶을 살기 바란다’는 가치관으로 창업이라는, 재취업이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 여러분은 리스크를 껴안는 나만의 가치를 갖고 있나요?
  • 위험을 무릅쓰고 (길을 만드는) 선택을 하고 계신가요?

스텔러스는 자기 이야기를 발견하고 써내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열려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의미를 꽉 붙잡고 살아가야 하는 (정신 없는) 시대에 자기다운 선택, 가치와 실행이 함께 하길 바랍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모인다면 그것이 “우리다움”을 만드리라 기대합니다.

앞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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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아마도 다음 글은 인터뷰가 아니라 수필이 될 듯합니다. 오랜만에 짧게라도 수필이 쓰고 싶어졌고, 인터뷰는 준비 기간을 두고 길게 봐야 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내년에는 좀 더 읽을 만한 글을 개인적으로나, 일적으로나 많이 써보고 싶어서 그렇게 시간을 써볼 예정입니다. (저에게는 나름 선택의 기로...!)

 

김지윤 스텔러스(Stellers)|Fou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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