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삼국이 모두 다른, 각양각색 녹차 🌿

2023.02.28 | 조회 4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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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데이

맛있는 차를 마시는 것은 생각만 해도 재밌잖아요 ᕕ( ᐛ )ᕗ

name%님, 안녕하세요! 이번 월요일도 잘 이겨내셨나요?

오늘만 잘 버티면 내일은 휴일이니 힘내보자구요! 💪

이번엔 6대 다류백차에 이어, 모두들 한 번쯤은 드셔보셨을 녹차를 소개해드릴게요. 구독자님은 어떤 녹차를 좋아하시나요? 구수한 현미 녹차? 상쾌한 모로칸 민트? 부드러운 말차 라떼? 수많은 녹차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부터, 함께 알아봅시다!

 

< 녹차의 기원, 중국 👨‍🦳 >

녹차의 역사는 사실상 중국차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차를 가장 처음 발견한 건 고대 황제 신농씨(神農氏)입니다. 농사의 신인 신농씨는 소의 머리, 사람의 몸, 그리고 투명한 배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당시의 사람들은 수렵생활을 했는데, 어떤 식물에 독이 있는지 구분하지 못하고 중독되는 일이 빈번했죠. 이를 가엾게 여긴 신농씨는 온갖 풀을 직접 맛보고, 투명한 뱃속을 들여다보며 어떤 식물이 어떤 독과 효능을 가지고 있는지 연구합니다.

<염제 신농씨>
<염제 신농씨>

하지만 하루에 수십가지 식물을 맛보다보니 중독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신농씨를 해독시켜준 것이 바로 차였습니다. 그가 끓이던 물에 우연히 찻잎 몇 장이 떨어졌는데, 이 찻물을 마셨더니 뱃속이 깨끗하게 청소되며 해독되었다고 해요. 이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전설이지만, 우리는 고대 중국에서는 차를 음료가 아닌 약으로 먼저 사용해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차가 음료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주대(周代, B.C. 1046~256)에서부터였습니다. 이후 당대(唐代, 618~960)에 이르러 찻잎을 쪄내면 쓴맛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발견되어, 본격적으로 음료로 사랑받기 시작했어요.

<송나라, 투차하는 모습>
<송나라, 투차하는 모습>

송대(宋代, 960~1279)에는 아예 가루차 개발됩니다. 앞서 백차 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루차에 끓인 물을 붓고, 차선으로 거품을 내는 격불 문화가 등장했어요. 송나라에 유학을 온 일본의 승려들이 당시의 가루차를 접하고, 일본으로 돌아와 맛차(抹茶) 방식을 전파시킨 것도 이 때입니다.

<고장모첨 채엽>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고장모첨 채엽>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지금과 같은 녹차가 등장한 건 (明代, 1368~1644)에 이르러서입니다. 지금까지는 쪄내고 긴압하여 차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솥에서 차를 덖어내는 초청(炒靑) 방식이 등장합니다. 위조, 그러니까 찻잎을 시들린 다음 초청, 솥에서 찻잎을 비벼가며 덖었더니 쓴맛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향미는 더욱 좋아진 겁니다. 이후 초청 녹차는 중국의 정통 녹차 제다법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각 지역별로 다양한 모양의 아름다운 녹차들을 생산해오는 중이죠.

 

 

< 쪄서 만들테야, 일본 💧 >

일본에 차가 처음 전파된 것8세기 경으로 추정합니다. 중국에 유학을 다녀온 승려가 귀국하면서 차를 전파했다는 설이 유력해요. 당시의 차는 중국에서 들여온 매우 고급 음료였기 때문에, 천황이나 귀족, 승려처럼 사회적 지위가 높은 계층의 문화였습니다. 🙏

이후 송대에 이르러 가루차 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며, 일본에는 맛차 방식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일본 차 산업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승려 에이사이(榮西)가 그 주인공입니다. 에이사이는 차에 대한 지식을 집대성해 책을 내고, 혼슈 교외 지역인 우지에서 차나무 씨앗을 심고 직접 차를 재배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널리 퍼져나간 맛차 문화는 그야말로 큰 인기를 누리며, 16세기 말 중국에서 산차 제조 방식이 유입되었음에도 여전히 가장 사랑받는 차문화로 남아있습니다.

<차노유>
<차노유>

그렇다면 특권층만의 문화였던 차를 대중화시킨 건 어떤 인물들이었을까요? 16세기의 선종 승려 센노리큐(千利休)는 선종 불교식 차 의식, 즉 '차노유'를 정립했습니다. 차문화는 차노유를 통해 다양한 계층으로 확산되었어요. 또, 1738년 차를 재배하던 나가타니 소엔(永谷 宗円)이 기존의 중국식 녹차와는 완전히 다른 센차를 개발하며, 일본에서 차 문화는 급속도로 대중화됩니다.

시작은 중국이었지만, 일본 녹차는 중국의 녹차와는 여러 방면에서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우선 차밭의 풍경이 다릅니다. 일본에서는 차나무를 햇빛에 노출시키는 일광 재배와, 햇빛을 가리는 차광 재배 두 방식으로 구분하여 재배합니다. 재배 방식에 따라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 차의 종류도 바뀌지요. 또, 솥에 덖는 초청 방식 대신 증기로 찌는 증청 방식으로 녹차를 생산합니다. 

 

 

<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의 기원 설화는,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이 고향인 인도 아유타국에서 차나무를 들여왔다는 설입니다. 영호남지역에 야생 토종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었다는 설도 있지요.

정설은 신라 흥덕왕 3년(828)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대렴이 차나무 씨앗을 들여와 지리산 남쪽에 심도록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하여 지리산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쌍계사 주변은 우리나라의 차시배지로 공식 지정되어 있어요.

<차시배지> 출처 : 하동세계차엑스포 공식 홈페이지
<차시배지> 출처 : 하동세계차엑스포 공식 홈페이지

동양의 차문화는 불교에 근간을 두고 있어, 국교가 불교였던 고려 시대(918~1392)에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고려 시대의 모든 국가 행사와 축제에는 차를 빼놓을 수 없었고, 이에 차와 관련한 업무를 보는 '다방'이라는 국가 기관이 별도로 존재했습니다. 자연스레 차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아름다운 도자기 다기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조선 시대(1392~1910)에 이르러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가 배척당하며, 차문화 역시 함께 쇠퇴합니다. 대신 차의 빈자리를 술이 대신하기 시작했어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러 차례의 국란을 겪으며 조선의 경제난이 극심해지자, 차는 아주 소수의 부유층만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 시대에는 더 이상 차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19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러 여러 인물들이 나타나 실용적인 차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힘썼기 때문이에요.

다산 정약용은 20년간의 강진 유배 생활 동안, 차를 즐기고 차 문화 부흥에 힘썼습니다. 다산이라는 호도 그의 유배지 인근에 있던 석름봉에 차나무가 많아, 다산이라 불린 것에서 유래된 것이지요. 정약용은 18명의 제자들과 함께 차나무를 직접 기르고 차를 만들며, 차와 관련된 책을 저술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18년, 당시 정약용이 만들어 마셨다는 떡차가 '다산정차'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어 지금까지도 직접 맛보고 체험해볼 수도 있습니다.

<표충사 초의선사 동상>
<표충사 초의선사 동상>

초의선사는 한국의 다성(茶星)으로 추앙받는 승려로, 우리나라의 다도를 복원하고 집대성한 인물입니다. 특히 그가 집필한 <동다송>은 한국의 다경으로 불릴 정도로 우리나라 차문화 역사에 중요한 저서에요. 초의선사 역시 직접 차를 만들어 마시기도 했는데, 이 차도 지금까지 전승되어 '초의차'라는 이름으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접어들며, 우리나라의 차문화는 일본 제국에 의해 말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한국의 여고생과 여성들은 모두 일본식 차 문화인 차노유를 배워야 했고, 일본 고유의 차 품종들이 한국에서 재배되었어요. 이 시기에 한국의 전통 차 문화는 대부분 말살당하고, 극히 일부만 사찰 등을 통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하여 현대에는 다시금 전통 차와 차문화를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960년대 이후 다원들이 재건되기 시작했고, 전통 차 문화 복원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 녹차의 종류 >

비산화차인 녹차는 찻잎을 따는 채엽(採葉), 찻잎을 시들려서 작업을 원활하게 해주는 위조(萎凋), 열을 가해 산화를 멈추는 살청(殺靑), 모양을 만들고 향미를 더하는 유념(揉捻), 수분을 제거하는 건조(乾燥) 과정을 거치면 완성입니다. 이 중 가장 포인트가 되는 과정이 바로, 산화효소를 비활성화시키는 살청입니다. 살청에도 여러가지 방법이 있는데, 솥에 덖어내는 초청 방식과 증기로 쪄내는 증청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고장모첨의 초청 과정>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고장모첨의 초청 과정>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한, 중, 일 세 나라는 각자가 추구하는 맛있는 녹차를 만들기 위해 적합한 품종을 키우고, 적합한 방식으로 녹차를 생산합니다. 중국신선하고 청량한 향미를 가진 녹차를 제일로 칩니다. 찻잎을 솥에 넣고 덖어내는 초청 방식으로 살청해서 대개 밤이나 곡물을 연상시키는 고소한 향미를 가지고 있고, 은은하고 부드러운 것이 많아요. 대표 주자로는 중국의 국민 녹차인 서호 용정이 있습니다. 🌰

<우지 센차> 출처 : 루피시아 공식 홈페이지
<우지 센차> 출처 : 루피시아 공식 홈페이지

일본 녹차의 꽃은 우마미(うま味), 즉 감칠맛입니다. 고급 일본 녹차는 이 강렬한 감칠맛이 느껴지도록 차나무가 햇빛을 보지 못하게 차광 재배하고, 증기로 쪄내는 증청 방식으로 살청해요. 이러한 제조 과정 때문에 대부분의 일본 녹차는 바늘 모양을 하고 있고, 아주 강렬한 감칠맛해조류가 떠오르는 향을 풍깁니다. 상대적으로 강한 향미를 가지고 있어, 우유나 각종 음료, 디저트에 활용하기에도 적합해요. 이런 우마미가 느껴보고 싶다면, 고급 교쿠로를 추천드립니다. 🧃

<하동 우전>
<하동 우전>

한국 녹차는 초청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에는 증청 방식으로 생산하는 녹차들도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증청 방식보다는 보다 짧게 쪄내고, 다시 솥에 덖어 건조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향미의 경우, 대개 한국인에 입맛에 맞게 구수~하면서도 부드러운 차가 많습니다. 😋

 

 

< 녹차, 맛있게 마시자! >

녹차는 종류가 다양하지만, 보통은 쓰고 떫은 맛을 줄이기 위해 70~80℃의 낮은 온도로 우려내는 것이 좋습니다. 일본 녹차를 우려내거나 말차를 격불할 때에는 더 낮은 온도의 물을 준비해도 좋아요.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출처 : 정산당 공식 홈페이지

중국 녹차나 한국 녹차를 우린다면, 다구를 고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특히 길쭉한 유리잔에 녹차를 우리면, 찻잎이 물을 머금고 점점 피어나는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죠. 이런 경우엔 크고 굵은 찻잎보다는 벽라춘이나 안길백차, 우전처럼 이른 시즌에 나오는 여린 차들을 추천드려요.

우리는 방법만큼이나, 보관도 중요합니다. 녹차는 오래 두고 마시는 차가 아니기 때문에, 생산일로부터 1년 이내, 늦어도 3년 안에는 모두 마시는 편이 좋아요. 상하지는 않지만 특유의 신선한 향미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잘 봉한 뒤 낮은 온도에서 보관하는 게 좋지만, 냉장고에서 보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추천드리지 않아요. 온도는 이상적이지만 다른 음식이 있다면, 쉽게 향을 흡수해버리거든요. 적당히 서늘하고 건조한 곳에 보관하고, 되도록이면 빨리 드시는 편이 좋습니다.

오늘의 녹차 이야기는 어떠셨나요? 다음주는 스펙트럼이 가장 넓은 다류, 청차 이야기를 가져오겠습니다.

그럼, 언제나 즐거운 차 생활 되세요 👏👏

 

 

 

*참고문헌

- 정승호_한국티소믈리에연구원, <티소믈리에 이해 3>

- 왕젠룽, <기초부터 배우는 중국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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