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어느 날, 퇴근 길이었습니다. 그날따라 하루 종일 만난 이들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대뜸 큰 소리로 화를 내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20대 공장 노동자, 시작부터 끝까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사연을 전하던 한 시골의 할머니, 기어코 제 등을 밀며 경제전문가 수준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때밀이 아저씨, 그 외도 많은 이들을 만났습니다.
듣는 일이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체력을 요구한다는 것을 느끼는 날이었습니다. 마음에 힘이 빠져 순간 휘청거렸습니다. 잠깐 공원 근처 벤치에 앉았습니다. 뭔가 채울 게 필요했습니다.
그때 한 노래를 들었습니다. '난 저기 숲이 돼볼게 / 너는 자그맣기만 한 언덕 위를 / 오르며 날 바라볼래 / 나의 작은 마음 한구석이어도 돼 /
구어체 가사로 나른하게 귓가에 울리는 그의 목소리 덕분에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힘들지만 '내가 하는 일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고 중얼거리면서. 누군가에게 쓸모가 되는 이 순간을 감사하면서. 조금은 느리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날의 노래, 싱어송라이터 최유리씨의 '숲'을 전합니다.
쓸모없는 것에 대하여
- 미니멀리스트의 쓸모 -
글 : 영글음
쓸모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갖다 붙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아 마땅하고 딱히 쓸모를 따질 필요도 없다. 쓸모란 얼마나 주관적인가. 철수에게 있던 누군가의 쓸모가 영희에겐 없을 수가 있다.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 쓰임이 있나 없나로 따질 수 없는, 아예 레벨이 다른 존재라는 거다.
하지만 물건에는 붙여본다. 이 역시 상대적인 것이라 나에게 쓸모 있는 물건이 쟤한테는 하등 가치가 없는 물건일 수 있다. 옛날엔 잘 썼지만 이제 필요가 없어진 것도 있다. 처음부터 쓸데없는 물건을 사들이는 실수를 범했을 수도 있다.
그럴 땐 정리를 해야 한다. 버리든 나누든 팔든 기부하든 정리를 하여 공간을 만들고 필요한 사람에게 가게끔 하는 것이 옳다. 나에게는 없던 쓸모를 돌리고 돌려 너의 쓸모로 만들어 내는 것은 멋진 일이다.
테이블과 장난감 등을 팔고, 옷을 몇 보따리 기부했다.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며 좋은 점 중 하나는 계속하여 물건의 쓸모를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리가 마냥 쉬운 건 아니다. 필요가 없어도 추억이 들었다거나 귀찮으면 계속 쟁이고 사는 게 편하다. 관성의 법칙은 생각보다 견고하다.
마음을 먹고 힘을 내어 물건을 정리해 나간다. 여러 정리 컨설턴트가 조언하길 물건을 버릴 때에도 의식을 치루라고 한다. 그것들에 감사인사를 하라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위해 애써줘서 고마웠다, 우리 집에 와서 수고했다, 다른 집에 가면 실컷 사랑받으렴 인사를 하며 이별을 한다.
다짐도 한다. 쓸데없는 물건은 사지 않겠다고. 원 플러스 원에 눈이 멀어 생각 없이 구매하지 않겠다고. 다른 이에게도 함부로 예쁜 쓰레기가 될 물건은 선물하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다.
일이나 인간관계의 쓸모를 생각한다. 나의 건강을 해치는 일은 그만두기로 한다. 나의 정신을 갉아먹는 관계는 정리하는 게 맞다. 이 또한 쉬운 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 역시 마음을 먹고 힘을 내어 정리해 나가려 한다.
심플하게 살고 싶다.
영글음 작가님은 "쓸모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갖다 붙이고 싶지 않다. 우리는 모두 사랑받아 마땅하고 딱히 쓸모를 따질 필요도 없다"면서 "사람은 그 자체로 소중한 것이지 쓰임이 있나 없나로 따질 수 없는, 아예 레벨이 다른 존재"라고 썼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작가님의 담백하고 친절한 목소리가 생생히 들려오는 기분이었어요. 혼자 읽기엔 아까워서 이번 레터에 공유했습니다.
오랜만에 뉴스레터로 인사드렸습니다. 그동안 매주 발행에서 격주로 찾아뵙게 돼 다음 글까지 조금은 긴 시간이 남은 것 같습니다. 내년 1월에야 다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물러섬없이 계속 현장에 있겠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싸랑을 담아, 춘프카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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