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잘 지내셨나요? 저는 몸도 마음도 바쁜 한 주를 보냈답니다. 주말 출근까지 하면서요. 이렇게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는 바쁘게 살아가는 30대 중반의 하루하루가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얼마 전에 직장 동료가 말하길 올해가 10주 밖에 안 남았다고 하더군요. 한 해가 두 달 남았다는 표현과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습니다. 올해에 발송하게 될 뉴스레터도 열 손가락으로 다 세어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남아있네요.
얼마 전에 브런치에서 이승희 작가님의 셀프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두 달 남은 한 해를 회고하며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기록해두셨더라고요. 저도 몇 년 전부터 한 해를 마감하기 전에 월 별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회고하여 SNS에 기록해두곤 했었는데 올해엔 뉴스레터를 통해 한 해를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1월의 키워드, #시작
1월, 뉴스레터를 시작했다. 작년부터 계획했던 일인데 수개월을 미뤄 결국 올해 1월에 첫 스타트를 끊었다. 잘하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유의미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마음이 시작을 더디게 만들었다.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다스렸다. 굳이, 꼭, 반드시, 잘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를 달랬다. 연습하듯 하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구독자들에게 따뜻한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 뉴스레터를 구독하는 한 친구는 나에게 주고 싶은 책이라며 책 한 권을 선물했다. 그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레터를 시작하고, 또 계속 써 나가는 일에 큰 의미 부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내가 할 수 있으니 하고, 또 쓸 수 있을 때까지 계속 써나가려 한다. 다른 것을 시작할 때도 이러한 마음으로 하고 싶다.
2월의 키워드, #집
작년 연말, 내 이름으로 된 첫 집이 생겼다. 인테리어에 큰 흥미와 재능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나의 첫 집이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이사 후에도 집 정리는 수개월 진행됐다. 휴일이면 대부분 집에 머무르며 집 구석구석을 살폈고, 시시때때로 집 정비를 위한 택배가 배송됐다. 혼수로 장만했던 몇몇 가구와 가전을 중고 마켓에 처분하고, 새 가전과 가구를 들여 새로운 기분을 냈다. 통장 잔고는 가벼워지고 할부는 무거워졌지만, 어쩐지 신이 났다. 주말에는 주변 지인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식재료를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식사 후 헤집어진 식기구를 정리하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지만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언젠가 당연하고 익숙해지겠지만, 집문서에 내 이름을 처음 올린 나는, 촌스럽게도 꽤 신이 났었다.
3월의 키워드, #클래식
올해엔 머리 털 나고 처음, 클래식 콘서트를 다녀왔다. 나에게 클래식은 가끔 마음의 안정을 필요로 하거나 차분한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오디오를 통해서 듣는 음악의 한 카테고리일 뿐이었다. 그래서 어느 날 남동생(가끔 레터에 등장하는 제2의 비케이레터 작가인, BW 맞다.)이 콘서트 티켓을 건네며 조카도 봐줄 테니 우리 부부에게 클래식 콘서트에 다녀오라고 했을 때도, 집안일과 육아에서 해방된 시간이 신났을 뿐, 클래식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콘서트가 시작되자마자 감정이 북받치며 눈물이 차올랐다. 눈으로 보고도, 귀로 듣고도 믿기 힘들 만큼 거짓말처럼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숫자 속에 살고 있었구나. 정확히는 매일매일 숫자와 싸우고 있었구나. 내 역량과 성과를 평가하는 회사에서의 숫자, 온라인 머니처럼 큰돈과 작은 돈이 들쭉날쭉하는 가정 경제의 숫자와 매일매일 씨름하듯 살고 있었다.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으나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울컥울컥 차올랐다. 참으려해도 자꾸만 목울대가 뜨겁게 두꺼워졌다. 내가 매일 숫자와 싸우는 동안 세상 한편에는 이렇게도 어마무시하게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이 존재했구나. 눈물 나도록 아름답고 존귀했다.
그 뒤로 8월에 임윤찬 피아노 리사이틀에 갔다. 사람의 손에서 이렇게 힘차고, 아름답고, 슬프고, 역동적이며 감동적인 선율이 탄생할 수 있다는 것에 거듭 감탄했다. 임윤찬의 말마따나 클래식은 새로운 우주다. 가히 새로운 세상이다.
4월의 키워드, #이직
기나긴 겨울을 지나 꽃봉오리가 움트길 시작하는 계절, 나는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했다. 장거리 출퇴근에 마침표를 찍고, 집 근처의 직장을 구해 출퇴근 시간을 물리적으로 줄여 일과 가정, 각각에 더 집중하고 싶어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 산업 군이 달라졌던 탓인지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재미와 흥미도 없었고 열심히, 잘 해야겠다는 의욕만 있었다. 입사한지 일주일 만에 회사 행사로 주말 출근을 했고, 회사에선 내내 긴장 상태 였다. 집에 오면 온 긴장이 풀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녹초가 됐다. 주 2일 재택, 3일 출근하던 전 직장에 다니다 주 5일 출근을 하게 된 것도 한몫하는 듯했다.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았다. 앞으로 계속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겉으로 드러나는 텃세는 없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기싸움은 분명 있었다. 전 직장 동료들의 따뜻한 애정과 평안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경솔했던 이직이었을까, 순간순간 후회하기도 했다.
긴장과 스트레스 탓이었는지 두통과 몸살을 번갈아가며 앓았다. 회사에서는 아파도 아픈 티를 크게 낼 수 없었다. 예민한 성정과 엄살을 타고난 나였지만, 아픈 것도 눈치가 보여 괜찮은 척, 씩씩한 척을 했다. 그래도 주말이면 가족들과 꽃을 보러 갔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고, 틈틈이 햇빛을 쐤다.
5월의 키워드, #짧은경력
4월 초, 이직 이후 쉽게 회사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회사 동료 중 몇몇은 내가 빨리 적응하는 것 같다고 입사한 지 아직 한 달밖에 되지 않았냐며 그보다 훨씬 더 오래 다닌 것 같다고 놀라곤 했는데 나는 영 정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업무는 업무대로 힘들고, 사람은 사람대로 힘들었다.
면접에서 나를 뽑은 상사 중 한 명은 나에게 가끔씩 "네가 경력이 짧아서"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맞다. 나는 경력이 많지 않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의 여름부터 일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빈칸이 꽤 길다. 그러나, 스스로 그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고 자부한다. 출판사 서포터즈, 공동 책 출간, 브런치 작가 등 성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나름 열심히 고군분투했다. 육아만으로도 벅찼던 삶 속에서 틈틈이 쌓아 올린 작지만 소중한 나의 성취들이었다.
지금의 회사도 이런 점들을 좋게 봐줬다. 그래서 이전 직장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한 달 넘게 나를 기다려줬다. 그러나 가끔씩 나의 상사는 면전에 대고 "네가 경력이 짧아서"라고 말했다. 면전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고 다녔다. "채ㅇㅇ은 경력이 짧아서 ~ 블라블라" 나는 크게 잘못한 게 없는데도 움츠러들곤 했다.
곱씹어 생각해봤다. 짧은 경력이 나의 아킬레스건인지.
그리고 마침내 생각의 결론을 내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다,라고.
아킬레스건인지 아닌지는 중요치 않다. 나의 현재와 미래, 성장과 역량 강화를 위해 중요한 것은 업무 진행과 결과에 관한 피드백이다. 업무에 관한 부족함 또는 성과는 내 태도와 의지, 그리고 역량에 따라서 앞으로 충분히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과거, 현재 시점에서 내가 가진 짧은 경력에 대한 지적과 피드백은 어쩔 도리가 없다. 지난 과거로 돌아가서 없는 경력을 만들어 올 수는 없지 않나.
하여, 내가 바꿀 수 없는 부분에 대한 지적은 무시하기로 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나쁘고 속상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계속 끙끙거리며 맘 졸일 수는 없다. 그 시간에 차라리 재미있는 예능이나 보며 엽기 떡볶이를 먹는 편이 낫다.
지난봄 특히 날씨가 가장 좋았던 5월, 무엇을 했나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니 스토리와 게시물이 별로 없다. 아마도 하루하루 버티고, 또 버티고, 또 버티느라 애썼던 것 같다.
덕분에 지금은 그때보다 조금 더 단단해졌다.
마치며
원래는 올 한 해를 전부 정리하여 한 레터에 담으려 했었습니다. 그런데 쓰다 보니 꽤 길어져 두 번의 레터로 나누어 보내려 합니다. 개인적인 회고록이지만, 저 또한 누군가의 삶을 곁눈질하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기에 저의 작지만 소중한 성취와 시련, 그리고 기쁨이 구독자님에게도 유의미하게 닿기를 바랍니다.
이번 상반기 회고록을 지나, 하반기 회고록도 기다려주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끝인사를 전할게요. 아, 댓글로 구독자님의 올 한 해 회고록을 나누어주셔도 무척이나 기쁠 것 같아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또 만나요! :-)
추우니까 옷 따뜻하게 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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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y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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