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오랜만입니다. 3주를 쉬어갔어요. 올해 1월 22일, 첫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이렇게 오래 쉬어갔던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뉴스레터 써야 할 휴일에 편안히 쉼을 가졌답니다. 구독자님은 그간 잘 지내셨나요?
지난 9월 마지막 레터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드니 여행을 다녀왔어요. 시드니에서 일주일간 머물렀는데 날씨도 좋고, 사람들도 친절하고, 음식도 맛있고, 무엇보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매일 봐도 매일 아름답고 멋지더라고요.
오페라하우스 근처에 호텔을 잡았는데, 정말 잘한 선택이었어요. 거의 매일 오페라하우스를 봤답니다. 봐도 봐도 질리지 않고 정말 아름답더군요. 오페라하우스를 건축하는데 16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해요. 긴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을 뛰어넘을 만큼 긴 시간 동안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도 이번 여행에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인데요, 호주 땅이 바다에 3번이나 담가졌었다고 합니다. 바다에 잠겼다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3번씩이나 반복하면서 호주에는 눈부시게 경이로운 자연 경관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해요. 십여 년 전 처음 호주 땅을 밟았을 때도, 이번 여행에 다시 호주를 찾게 되었을 때도 호주는 도시와 자연이 어우러진 정말 멋진 나라라고 느꼈어요.
혼자 보기 아까운 사진, 구독자님께도 공유해 봅니다. 위 사진은 오페라하우스에서 페리를 타고 왓슨스베이 가던 중 찍은 사진인데요,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파란 바다 위의 오페라하우스, 정말 멋지지 않나요? 볼 때마다 경이로웠어요.
그런데 이렇게 멋진 시드니의 풍경을 뒤로하고, 저는 여행 3일차부터 열이 났습니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쌓였던 피로가 장시간 비행 때문에 체력이 바닥이 났던 것인지, 시드니 날씨의 일교차 때문에 독한 감기가 걸렸던 건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3일 차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다행히 한국에서 가져온 약으로 뜨겁게 열이 오르는 몸을 달랬으나, 쉽게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더라고요. 급기야 4일차에는 열이 39.9도까지 올랐어요. 4일차에는 블루마운틴과 시드니주를 가려고 한국에서부터 투어를 예약해둔 상태였는데, 어쩔 수 없이 노쇼(No Show)를 하고 말았답니다.
남편과 아이는 투어에 참석해서 혼자 호텔 룸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깊은 잠과 얕은 잠을 반복했어요. 오후 서너시쯤 되어 조금 기운을 차려보니 39도에서 내려올 줄 모르던 고열은 38도 언저리까지 내려왔고, 몸 안에서 펼쳐진 바이러스와의 혈투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불과 침대커버가 잔뜩 젖어있더군요. 정말이지 큰 전쟁을 치르고 난 것처럼, 몸의 에너지가 증발해버린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와중에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라는 요상한 생각이 들더군요. 힘 없이 누워 창문 밖으로 펼쳐진 멋지고 웅장한 하버 브릿지를 바라보면서, 호주에 사는 사람도 아닌데 언제 이렇게 호주에서 아파보겠냐며, 피식 웃음이 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한 것 같지만, 정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는 투어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남편과 아이는 참석할 수 있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시드니에 일주일 간 머무르며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멋진 풍경도 많이 보고, 재밌고 행복했던 에피소드가 많았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아파서 하루 종일 호텔 룸에 있었던 게 나름 저에게는 큰 에피소드이고, 또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있더라고요. 없는 시간을 쪼개고, 큰돈을 들여 떠난 여행이었기에 온종일 호텔 룸에서 고열과 씨름하며 끙끙 앓았던 시간이 너무 아깝고 아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걸 내가 또 언제 이렇게 해보겠어'하며 피식, 한 번 웃고 나니 잊지 못할 추억의 순간이 되더라고요. 아마 몇 해가 지나 이번 여행을 다시 떠올린다해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아닐까 싶어요. :)
본디 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어요.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이내 좌절하고, 쉽게 불평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제가 점점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이런 내가 썩 마음에 들기도 합니다.
엊그제는 자주 옷을 사는 쇼핑몰에서 원래 시키던 사이즈로 팬츠를 시켰어요. 배송 온 팬츠를 입어봤는데 글쎄, 몸에 들어가긴 하지만 꽉 끼어서 잠깐 입어본 짧은 순간에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더라고요. 예전 같았으면 '내가 살이 쪘나?' 하고 체중계를 재보고, 맞던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며, 꼭 살을 빼서 (언젠가) 입어야 하지 하고는 맞지 않는 옷을 고이고이 옷장 속에 넣어 두었을 거예요. 안 맞는 옷에 (살을 빼서라도) 나를 맞춰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어요. '어라? 너무 꽉 끼네?', 그냥 하나 더 큰 사이즈로 교환해야겠다 하고는 바로 교환 접수를 해버렸어요. 살이 쪘나 안 쪘나 스스로 채찍질하며 잔뜩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았고, 맞지 않은 옷에 내 몸을 맞추려 필요 없는 오기를 부리지도 않았어요. 그저 단순하게, '내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겠다'라고 생각하니 내가 해야 할 일(액션 아이템=교환 접수)이 명확했고, 기분 나쁠 일도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었습니다.
한 해 한 해를 지나 보내며 조금씩 조금씩, 나를 더 알아가고, 받아들이고 있음을 느껴요. 이전처럼 맞지 않은 옷에 나를 맞추려 괜한 오기를 부리거나, 나에게 맞지 않은 옷이 정답인 양, 그래서 맞지 않는 나 자신이 오답인 듯 나를 미워하는 일도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럴 에너지가 있다면 이제는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으려고요.
나에게 주어진 삶도, '나에게 맞는 옷'을 찾듯이 살아보려 합니다.
주변에 훌륭한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자신이 가진 장/단점, 자신이 풍기는 이미지와 분위기가 어떤지 잘 아는, '스스로를 잘 아는 사람들'이더군요. 나에게 맞는 옷을 찾는 일이란,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일. 삶도 '나에게 맞는 옷'을 찾듯, 더욱 나 자신을 알아가며 살아야겠노라 다짐해 봅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레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또 다시 열심히 찾아뵐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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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ster
좋은 내용 잘 읽고 갑니다. 앞으로의 BK letter를 응원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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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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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y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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