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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에 다녀왔습니다.

8,400km를 건너 든 생각

2023.11.06 | 조회 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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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케이레터

Life, Book, AI

 안녕하세요! BK의 남동생 BW이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지난번 레터가 7월 10일이었으니, 뜨거운 여름이 가고 차가운 바람을 느끼는 늦가을에서야 다시 비케이레터에 등장했네요😊  

 

 어느새 10월도 끝나고, 2023년도 단 두 달만이 남았어요. 지난 10달을 돌아보니, 아쉬웠던 시간, 좋았던 시간 등 여러 시간들이 머릿속에 떠오릅니다. 그중에서도 지난 추석에 다녀온 아이슬란드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저는 매년 하나의 여행을 계획합니다. 지난 레터에서도 썼지만,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팬데믹이 일어나기 전, 매년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팬데믹 후에는 2022년엔 카타르, 2023년엔 아이슬란드에 다녀왔어요. 꽤나 캐리어끈이 길다고 생각하는데도, 여행은 갈 때마다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도 많은 걸 느끼고 왔어요. 이번 레터에서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며 느낀 점을 구독자님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자연은 신이 만든 책이다.

 뉴턴을 비롯한 많은 물리학자들은 자연이라는 책을 쓴 존재가 있고, 그 존재는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자연이라는 책에 숨겨진 비밀을 찾는 것이 물리학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자연이라는 책의 비밀을 탐구하는 것이 물리학자의 역할이라면 여행자의 역할은 자연이라는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것이 아닐까. 나는 아이슬란드 여행을 통해 자연이란 책 몇 페이지를 넘긴 셈이다. 

피아쓰라르글리우푸르 (Fjaðrárgljúfur)
피아쓰라르글리우푸르 (Fjaðrárgljúfur)

 이곳은 내가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피아쓰라르글리우푸르 (Fjaðrárgljúfur)이다.(여행을 같이 간 친구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이곳은 우리 말로 하면 협곡인데, 말도 안 되는 풍경을 자랑한다. 협곡이 생긴 것은 약 1만 년 전이지만, 이곳의 기반암은 약 200만 년 전에 생성되었다고 한다. 200만 년 전이라니 가늠도 안 되는 숫자다.

 내가 이곳이 좋았던 이유는 모든 것이 조화로웠기 때문이다. 물과 바람에 수없이 침식되어 굽디 굽은 굴곡을 만들어내는 협곡의 수많은 선, 면이 조화로웠고, 그 배경을 칠하는 차분하고 듬직한 녹색과 암석의 색깔이 푸른 유수의 색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360도 고개를 한 바퀴 돌려도 눈에 걸리는 것이 없는 이 자연스러움. 아! 자연스럽다는 말이 여기서 나온 거구나?

 빌딩 숲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내게 목캔디 200개를 먹어도 느낄 수 없는 시원함을 몸소 선사해준 이 곳을 평생 기억하기로 했다

스비나펠스요쿨 (Svínafellsjökull)
스비나펠스요쿨 (Svínafellsjökull)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스비나펠스요쿨(Svínafellsjökull). (스비나펠은 산 이름이고, 요쿨은 아이슬란드어로 빙하다.) 이곳은 인터스텔라 촬영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흔히 아이슬란드 여행을 다른 나라가 아닌 다른 행성을 여행하고 오는 것 같다고 하는 반응이 많은데, 아마 이곳이 그런 반응을 만들어낸 곳이 아닐까. 인터스텔라의 배경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빙하는 천천히 움직이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뜻하며, 지구 육지 표면의 10%를 덮고 있다고 한다. 지구 육지 표면의 10%라면 꽤 적지 않은 면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상상도 못 한 탈지구적 풍경을 보고 있으니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마 이런 풍경은 인류의 10%도 못 보고 죽지 않을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관에 압도감과 경이로움을 느낀 것은 물론이고, 이곳을 다녀오며 느낀 두 가지가 있다.

1. 지구온난화 있구나. 정말

 빙하에 닿을 수 있는 빙하의 하류 부근에서 많은 빙하가 녹아 내려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아이슬란드 과학저널 요쿨에 따르면 2019년 아이슬란드 빙하 면적이 20년 전보다 750㎢감소했다고 한다. 이 면적은 서울 면적의 1.25배 수준이다.

 한국에서 이상기후로 갑작스러운 무더위를 느낄 때면, 짜증만 났지 지구 온난화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많이 없다. 그런데 이 장엄하고 아름다운 빙하가 사라져 간다는 생각을 하니 지구 온난화가 큰 문제로 성큼 다가왔다. (아름다운 것을 놓치지 않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인가 보다.)

 2030년대에는 북극 빙하가 완전 소멸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있는 것을 보면,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ESG는 허울뿐인 그린워싱(Green Washing)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손에게 이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작은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내 행동이 조금이나마 바뀌지 않을까?

2. 대자연 속에서 빛난 인간의 따스함

 최근에,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풀코스 마라톤에 성공하는 스토리가 화제가 됐다. 그중에서도 한 장면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는데, 바로 시각장애인 분께서 마라톤을 뛰시는 장면이었다. 나에게는 도전에 임하시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도 대단하지만, 그분과 함께 뛰어주는 봉사자가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이 스비나펠스요쿨이 보이는 빙하까지 가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15분 이상 꽤나 걸어 들어가야 한다. 포장도 되어 있지 않고, 자갈이 많은 불편한 길이어서 그냥 걷기에도 다소 피로한 길인데, 누군가를 등에 업고 가는 사람을 보았다. 등에 업힌 사람은 딱 보기에도 몸이 불편한 사람이었고, 이곳이 링로드(Ring-road : 아이슬란드를 반지모양으로 한 바퀴 도는 여행 코스)의 중간임을 고려한다면 아이슬란드 여행을 저렇게 업고, 업히며 다녔음이 틀림없었다.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위해 등을 내어주고, 또 그에게 기댈 수 있는 관계가 이렇게도 아름다운 거구나.


인생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 속에서도 춤을 추는 것이다. 

사고 날 뻔했던 위험한 도로
사고 날 뻔했던 위험한 도로

 링로드의 남부 투어를 마치고, 아이슬란드의 북동부를 지날 때쯤이었을까. 고도가 높은 산을 지나며 기온이 갑작스레 낮아졌고, 눈으로 덮인 도로를 마주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눈 덮인 도로는 경험이 몇 있으니 조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왕복 2차선의 도로. 조금 더 안전하게 가고자 운전대를 잡은 친구가 중앙선 쪽으로 차를 이동시키려는 순간, Slip이 일어났다. 말 그대로 미끄러졌다. 기존에 다른 차들이 운행한 노선을 벗어나자 눈 덮인 노면에서 미끄러지고 만 것이다. 타이어의 방향은 말을 듣지 않았고, 분명 오른쪽 노선을 가고 있던 차는 제멋대로 왼쪽 도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당시 조수석에 앉아있던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꺼낼 수 없는 지경이었지만, 다행히 뒤에 있던 친구들의 침착한 조언으로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엑셀을 밟아 핸들을 양껏 틀어 방향을 돌릴 수 있었다. 정확히는, 이런 과정을 두세 번을 겪어 도로의 양쪽 끝을 왔다 갔다 한 끝에 다시 안정적인 노선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글로 표현하니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전달되지 않지만, 도로 밖을 넘었다면 자칫하면 차가 굴러 떨어져 전복될 수 있는 정말 위험한 상황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한다. 위험한 상황이 정리된 후, 잔뜩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조수석에 탄 나는 명상 음악을 틀었다.(지금 생각해도 내가 쫌 웃기다 명상음악이라니 ㅋㅋ)

 놀란 가슴이 진정되고 나니,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와 이 여행은 도저히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겠다.'였고,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일부러 위험한 상황을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치 않게 발생한 상황이 오히려 이 여행에 특별함을 부여해준 것 같았다. 아이슬란드의 눈 덮인 도로에서 생사를 오간 20대 남자 5명의 이야기라니. 무모함과 위험함. 그리고, '낭만'이란 두 글자로 그 모든 것을 설명하기에 안성맞춤 같았다. 

 인생을 살면서도 내가 원하지 않는 순간, 미끄러지는 일은 슬프게도 일어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을 유쾌하고 받아들이고,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이 그리 겁먹을만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아이슬란드 마지막 밤, 드디어 모습을 보여준 오로라.
아이슬란드 마지막 밤, 드디어 모습을 보여준 오로라.

 오로라다. 결국 봤다. 공대생으로서 오로라의 발생 원리에 대해 간략하게라도 설명을 하고 넘어가야겠다. 태양에서 나오는 태양풍은 지구의 자기장 덕분에 대부분 지구 자기권 밖으로 흩어진다. 그러나, 그중 일부의 대전 입자들이 밴 앨런대에 붙잡혀 극지방에 모이게 되는데, 그 입자들이 지구의 상층 대기와 충돌하면서 방전되어 빛이 발생하는 현상이 바로 오로라다. 좀 더 쉽게 말해, 지구의 자기장(방어막)이 태양풍과 부딪히며 빛을 내는 것이다. 자기장이 '내가 지구를 지키고 있어요~~'라고 생색내는 것이 오로라인 셈이다. 

 오로라는 크게 2가지 조건이 중요한데, 1. 지구 자기장의 영향도(KP지수) 2. 날씨(구름)이다. 극지방에 가까운 아이슬란드이기에 KP지수는 보통 좋다. 관건은 날씨였다. 우리는 추석에 아이슬란드를 방문했기에 섭씨 0~10도 정도로 비교적 따뜻했고, 매일같이 구름이 끼어 있었다. 8박 중에 하루 빼고 계속 비가 왔으니, 오로라는 기대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여행 말미에 다다를수록 오로라를 못 보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기 시작했고, 비교적 구름이 없는 편인 레이캬비크에서의 마지막 날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마지막 날, 우리의 바람처럼 구름 없이 맑은 날씨였고, 여행 막바지의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변 빛이 없어 오로라를 관측하기에 좋은 위치를 찾아갔다. 추운 날씨에 오들오들 떠는 몸을 위스키로 데우며 기다린 지 한 시간쯤 되었을까. 목 통증을 느낀 나에게 초록색 구름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얘들아. 이거 오로라 아냐?" 하고 카메라를 켰다. (눈으로 보는 것보다 카메라로 찍는 것이 더 명확히 보인다.) "맞네!! 오로라다!!!"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눈 속에 담은 지 얼마 채 되지도 않아 오로라는 모습을 감추었다. 그리고 한 친구는 말했다. "우리 오로라 보긴 본 거지?"

 기대했던 만큼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화려하지도 않았고, 오로라 댄싱(오로라가 춤추듯 보이는 현상)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내가 본 오로라를 최고의 오로라로 기억하기로 했다. 화려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본 유일무이한 오로라였기에 그 자체로 이미 내겐 최고니까. 그렇게 내가 오로라를 봤던 순간을 다시 돌이켜보니,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웠다. 아직도 지구가 선물해 준 그 초록빛 오로라를 기억한다.


 식상한 말이지만, 인생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맞는 말 같다.

 예상치 못한 위험에 처해도, 웃으며 넘길 수 있고,

 기대보다 못한 성과에도, 박수 치며 만족할 수 있는,

 순간 순간에 좌절하지 않고, 그 상황을 즐기고 나를 인정해주려 하는 것. 

 삶에서 한 발짝 벗어나 떠나온 여행에서, 삶을 한 발짝 더 들여다볼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았다.


p.s: 레터에 사진을 많이 추가하지 않았지만, 아이슬란드는 빙하, 오로라 외에도 폭포, 간헐천, 고래 투어 등 정말 볼거리가 다양한 곳입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할 곳은 아니지만, 미리미리 장기 프로젝트로 계획한다면 충분히 다녀올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행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있으시다면, 댓글 혹은 저희 누나를 통해 연락주시면 아는 선에서 공유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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