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구독자님:) 2주간 잘 지내셨나요? 생각보다 2주가 금세 지났어요. 지난주에는 제 동생이 정성껏 레터를 써서 보내드렸는데요, 모두 잘 받으셨나요? 제가 레터를 한 주 쉬어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번에 대신 레터를 써보겠다고 하더라고요. 평소에 종종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해왔었거든요. 이번 기회에(?) 본인의 사심을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
저에게도 참 좋았어요. 저는 구독자님께 (제가 전해드릴 수 없는) ✨20대✨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드릴 수 있었고, 또 저도 동생이 생각하는 일과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여러 의미로 상부상조했죠! 앞으로도 가끔씩 이런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
(지난 레터를 1,700명이 넘는 분들이 읽어주셨어요.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아래 링크를 기입해둡니다. 20대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또 좋았던 점이 있어요:) 동생이 저를 인정해주더라고요(ㅋㅋㅋ) 앞선 레터에서 동생이 말한 것처럼, 이 친구와 저는 6살 차이가 나는데요. 사실 이 나이 차이가 어렸을 적이나 큰 차이를 느낄 법하지, 둘 다 성인이 되고 친구처럼 지내다 보니 크게 서로의 나이를 인식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동생이 "누나, 벌써 서른 중반이야?" 놀라며 묻곤 합니다.
아무튼, 저보다 아는 것도 이것저것 경험한 것도 많은 이 친구가 때로는 오빠 같고, 서로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때는 친구 같고, 때때로 챙겨줘야 할 때는 동생 같기도 하고 그런데요. 막역한 사이여서 서로에게 가감 없는 피드백을 전할 때가 상당히 많아요. 그래서 제가 레터를 써도, '이런 부분을 이렇게 저렇게 해봐라.'라며 잘 했다고 무조건적인 칭찬을 하기보단, 냉철한 피드백을 줄 때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레터를 써보더니 저에게 '리스펙!' 한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읽는 입장이었을 때는 쉬워 보였는데, 쓰는 입장이 되어보니 마음처럼 쉽게 후루룩~! 써지지 않았나봅니다.
세상의 이치가 대부분 이러한 것 같아요. 회사에서도 일을 할 때면, 남이 해놓은 일에 피드백을 주는 것은 비교적 쉬워요. 이건 이렇게 고치고, 저건 저렇게 고치면 더 좋겠다 하면서 해당 업무에 대하여 더 많이 아는 척하기 쉽죠. 그러나, 제로베이스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매우 어려워요. 어려운 만큼 중요한 일이라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도 제로베이스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계신 여러분 모두 파이팅 입니다. (저 포함이요😭)
나는, 엄마니까.
5월은 가정의 달! 레터가 발행되는 오늘은 5월 8일! 바로 어버이날입니다. 그리고 3일 전에는 바로 어린이날이었죠.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이는 어느새 훌쩍 자라 한 어린이의 엄마가 되고 어린 시절의 나처럼 어린이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한 아이의 어린이날을 축하해 주게 되었어요. 그리고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꾹꾹 눌러썼던 편지 대신 진심을 담은 현금 봉투를 준비하는 어른이 되었고요. :)
본래 어버이날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는 글을 쓰기 마련인데, 조금은 색다른 글을 써볼까 합니다. 물론 제가 생각하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만, 30년 넘게 딸자식으로 살았고 6년 넘게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저의 어버이 (중간 점검) 회고록이라 생각해주세요.
엄마, 어버이가 되기 전과 후에 대하여 말하자면 모든 것을 낱낱이 말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었어요. 그중에 가장 큰 차이점은 아마도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생긴 것'일 겁니다. 사실 나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가 생긴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정말이지 이상하지 않나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있다는 건, 내 하나뿐인 목숨도 바칠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내 목숨이 세 개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니고 단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게 다른 존재를 위해서 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칠 수 있을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정말 말이 안 되는 말이죠.
그런데 가능하겠더라고요. 내 아이에게 만큼은요.
아이가 네 살에서 다섯 살이 될 때 즈음, 저는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의미 없다고 느껴졌고,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았어요.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울음이 시도 때도 없이 터졌고, 밤엔 심장이 두근거려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지난날의 선택을 후회하며 매일매일 자책하고 좌절하느라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어요. 새로운 사람은 커녕 아는 사람도 만나기 싫었고, 밥도 먹기 싫었어요.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었고, 스스로 이 삶을 끝낸다해도 후회가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나의 미래가, 나의 내일이 하나도 기대되지 않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 하여도 아쉬울게 없었어요.
그런데,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면, 우리 딸아이였어요. 아이에겐 여전히 제가 너무나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아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던 제가 없는 힘을 끌어다 유일하게 하려고 했던 것은 모두 아이에 관한 것이었어요.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아이의 먹는 것과 입는 것 등. 물론 건강한 엄마와 비교하면 한참은 부족한 수준이었지만, 그 당시 제 상태를 고려하면 바닥난 에너지를 끌어다 쓰는 행동이었어요.
당시엔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이번 생은 망했으니 여기서 그만하자'라는 마음이 가득 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딸아이에게 저는 여전히 필요한 존재였기에 그만할 수 없었어요. 이번 생이 망했다 할지라도, 어떻게든 버텨서, 살아내고, 또 기왕이면 조금 더 잘 살아내서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한, 필요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겠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겨내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장기적으로 약을 먹으며 치료받아야 한다고 했었지만, 처방받아온 약을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어요. 대신 햇빛을 보고, 달리기를 하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일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쓰러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야만 했어요. 나는 엄마니까.
나는 좌절하고, 쓰러지고, 사라져도 괜찮다고 여겼으나, 저렇게 예쁘고 착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엄마는 건강하게 굳건히 살아서 아이를 지켜내야만 한다고 생각했어요.
엄마로서의 삶이 매우 고단하고 힘들고 버겁다고 느꼈었는데, 엄마이기 때문에 나를 버리지 않고 살려낼 수 있었어요. 나보다 더 소중한 존재를 위해 저는 기꺼이 저를 지켜냈어요.
이전에 읽었던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라는 책에서 만난 프롤로그의 일부를 구독자님께도 전하고 싶어요. 다소 긴 글이긴 하지만 끝까지 함께 읽어주셨으면 해요.
조심, 손으로 새를 쥐는 마음에 대하여,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내게 말했다. 제발 손아귀에 힘을 주라고, 이제부터는 결코 그 무엇도 함부로 놓쳐선 안 된다고. 아이를 꽉 쥘 순 없다. 조심스럽게, 손으로 새를 쥐듯이, 놓치지 않을 만큼만.
(...)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는 (아이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새처럼 다뤄야 한다. 새를 손으로 쥐는 일은, 내 손으로 새를 보호하는 일이면서, 내 손으로부터 새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내 삶을 지켜야 하고 나로부터도 내 삶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결국 아이의 삶을 보호하는 일이다. 아이를 보호할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므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아이에게 가해자가 되고 말 것이다.
이제 네 이야기를 너에게 할게. 그러니까 네가 태어났을 때 내가 나를 무섭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는 이야기. 조심하라고, 네가 나를 필요하다 느끼는 마지막날까지 나는 살아 있어야 한다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내가 필요하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나에 대한 네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어떻게 불리건 그게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누군가의 자식으로 45년을 살았고 누군가의 아버지로 아홉 달을 살았을 뿐이지만, 그 아홉 달 만에 둘의 차이를 깨달았다. 너로 인해 그것을 알게 됐으니, 그것으로 네가 나를 위해 할 일은 끝났다.
사랑은 내가 할 테니 너는 나를 사용하렴. 나에게는 아버지가 없었지. 그래서 내 어머니는 두 사람 몫을 하느라 죽지도 못했어. 너의 할머니처럼, 나는 조심할 것이다. 아침저녁으로 각오할 것이다. 빗방울조차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죽지 않을게. 죽어도 죽지 않을게.
<인생의 역사> 프롤로그 중에서,
아이에게
엄마는 엄마 스스로가 마음에 안 들 때가 참 많은 사람이었어. 남들과 비교해서 외모도 재능도 부족하기만 한 것 같아 스스로를 미워하고 자주 불만을 내뱉곤 했어. 그런데 내가 널 만나고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아. 너에게 좋은 엄마가 되고 싶거든.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꽤 많이 고민해 봤는데,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더라.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에게 가장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더라고. 그래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 되어보고자 말이야.
네 덕분에 엄마는 스스로를 더욱 사랑할 줄 알게 되었어. 너에게 물려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이 엄마에게 있는지 찬찬히 살펴보니, 생각보다 엄마는 잘하는 것도 많고, 좋은 점도 꽤 많은 사람이더라. 너를 만나기 이전처럼, 못난 내 모습을 미워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좋은 것들을 잘 갈고닦아 너에게도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어. 가끔 엄마는 내가 너를 키우는 게 아니라 네가 나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해. 바로 이런 순간에 말이야. 고마워, 엄마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줘서.
어디선가 딸은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는 말을 들었어. 그만큼 엄마가 딸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겠지. 너는 나의 어떤 뒷모습을 보며 자라고 있을까? 제법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어.
부모님께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내가, 우리가,
여전히 당신들에게 자신의 존재보다 더 소중하고 귀하다면,
아프지 마세요. 우리 곁에 오래오래 든든히 있어주세요.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세상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어도 끝까지 버텨주세요.
젊은 날이 그립고, 주름이 가득한 모습을 매일 거울 속에서 마주한다 하더라도,
매일매일 스스로를 어여쁘게 여겨주세요.
지난날이 후회로 가득하다 하여도, 오늘만큼은 새롭게 힘을 내어 주세요.
그 힘으로 내일도 거뜬히 잘 살아내주세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내가 여전히 당신의 존재보다 귀하고 소중하다면,
기꺼이 나를 위해 잘 살아주세요.
나는, 우리는 여전히 당신이 필요합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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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y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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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케이레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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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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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케이레터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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