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과 냄새, 소리로 기억하는 폭력

몸 안에 기억이 산다

2026.03.18 | 조회 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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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미국에 한번 가볼래?" 1997.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두어 달 지났을 때였다. 엄마가 뜻밖의 제안을 했다. 엄마 교회와 연결된 LA 어느 교회에서 여름방학 기간에 영어 프로그램이 열린단다. 거절할 이유가 있나? 순식간에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 될 참이었다.

비자 신청으로 서울에 가느라 학교 결석을 했다. 내가 뭔가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교회 사람 십여 명과 한 봉고차에 탔다. 마산에서 다섯 시간 달려 미 대사관에 도착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점심이었다.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길게 늘어선 줄과 격자무늬로 높게 쳐진 쇠 담장이 눈에 들어왔다. 안으로 들어갔다. 노르스름한 벽을 따라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듯한 텁텁한 공기가 코를 찔렀다.

"미국에는 왜 가려고 하나요?" 대사관 직원이 물었다. "LA 여행하려구요." 공부하러 간다고 대답하면 안 된다고 일찌감치 교육받은 터였다. "어디서 묵는데요?" 의외로 간단한 질문들이었다. 별 탈 없이 답변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승인. 비자 인터뷰가 끝난 일행이 다시 모였다. 양쪽 볼이 벌겋게 달아오른 대학생 형 얼굴이 눈에 띄었다. 인솔자가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를 위로하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에이 XX."

그해 7, 내가 탄 비행기가 LA에 도착했다. 설렘과 두근거림도 잠시. 무슨 일이 생겼는가? 나를 비롯해 교회 일행 몇 명은 입국장으로 이동할 수 없었다. 대기실 같은 곳으로 인도받았다. 외국인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용했다. 누군가 일어서려 했는가? 한 보안 요원이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로 느닷없이 소리쳤다. "씻 다운! 씻 다운! 씻씻씻!!!" 순간 묵직한 침묵과 긴장이 공간을 에워쌌다. 꿈틀대던 내 엉덩이마저도 숨죽였다.

이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이상 공항에서의 기억이 없다.

*

2012331. 몽골에서 NGO봉사단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던 날이었다. 일 년을 마칠 때마다 재계약했는데, 최장으로 계약할 수 있는 삼 년을 보냈다. 의미 있는 날이었을 텐데, 그날 기억도 사라졌다. 내가 울란바토르 공항에 어떻게 이동했는지, 한국에 도착해선 누가 배웅을 나왔었는지. , 몇 분간의 기억이 있다.

나는 울란바토르 공항 보안검색대 대기 줄에 서 있었다. 이 부분이 분명히 기억나진 않지만, 검색대에 짐을 올려놓으려던 참이었던 것 같다. 어디선가 곤봉을 찬 군복 입은 남성이 나타났다. 잔뜩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내게 소리쳤다. "당신, 절로 좀 가!" 움직임이 거칠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 있어 보였다. 검색대 근방에 있는 빈 방을 가리켰다. 왜였을까? 묻진 않았다. 걸음을 옮겼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있었다. 하얗게 벽칠 된 방. 텅 비어 있었다. 그와 나만 남았다. 육군 훈련소 조교 같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옷 벗어!" 상의를 탈의했다. 바지도 벗으라 했다. 귀를 의심했다. 묻진 않았다. 하의 속옷만 남았다. 내게 앞으로 두 손을 올리라 했다. 두 무릎도 스쿼드 자세로 굽히라 했다. 그가 다가왔다. 팬티 한쪽을 당기더니 안을 살폈다. "됐어!“

이날 있었던 모든 일을 잊고 있었다. 수년이 지나도록. 어느 날 보안검색대 장면이 불현듯 머릿속에 나타났다. 하얀 방 안에 어정쩡하게 무릎을 굽힌 채 서 있는 내 오른쪽 다리가 또렷하게 그려졌다. 밝은 조명에 반사된 허벅지 앞이 유독 희고 매끄러웠고 수치스러웠다. 그리고 찾아온 건, 몽골 보안 요원에 대한 분노가 아닌, 나에 대한 실망이었다. 왜 그때 아무런 질문도 저항도 하지 않았나.

*

20251021. 미국 이민세관단속국 아이스(ICE) 요원들이 뉴욕 차이나타운을 급습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한 장면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영상 속에서 요원들은 여럿이 달려들어 한 동양인 남성을 눕히고 제압한다. 그의 연인인 듯 보이는 이가 온 힘 다해 달려든다. 요원들에게 막혀 튕겨 나온다. 다음 장면에서 그 남자는 요원들에 둘러싸여 차도 한가운데에서 연행되고 있다. 남자의 양팔은 뒤로 꺾인 채 수갑이 채였다. 그의 양옆과 뒤에서 요원들이 그를 둘러싸 움켜 잡은 채 걸어간다. 남자는 위태로워 보인다. 몸이 90도에 가깝게 앞으로 구부정한 채 지그재그로 걷는다. 카메라가 뒷부분을 비춘다. 오른쪽에 선 요원이 남자의 꺾인 팔 겨드랑이 사이로 팔뚝을 집어넣어 목덜미를 잡은 게 보인다. 요원의 팔뚝이 올라가면 남자의 팔은 뒤로 더 꺾일 거라서 몸이 구부러진 것이었다. 지그재그의 불안정한 걸음. 일그러진 몸. 질끈 깜은 눈과 이라 외치는 듯한 표정. 행인들의 눈이 멈춘다. 핸드폰 카메라들이 초점을 맞춘다. 비명과 무시, 고통과 냉소, 분노와 인내, 놀람과 수용이 뒤죽박죽 차도 위를 뒹군다.

*

몸 안에 기억이 산다. 마흔 중반이 된 지금도 보안검색대를 지날 때 몸이 생각을 앞서 움직인다. 재빠르게 벨트를 푼다. 외투를 벗는다. 호주머니에 있는 잔가지들을 꺼내 검색대 위에 올려놓는다. 훈련소에 막 입소한 훈련병의 몸과 같다. 몸이 뻣뻣하고 근육은 긴장한다. 몇 분의 시간, 탐지 장치들이 전신을 지나가고 짐을 찾을 때 비로소 근육이 이완한다. 올라오는 열기를 느끼고 땀 냄새를 맡는다.

생각지 못한 때에 기억은 고통스럽게 재생된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의 일이 수년이 지나서야 갑자기 머릿속에 출현했던 것처럼 말이다. 기억은 경험을 재현시킬 뿐이지만, 기억이 반복되는 동안 새로운 사실이 인지된다. 나이가 서른이 넘은 시점이었다는 사실, 몽골을 떠나는 마지막 날이었다는 사실, 내가 남자라는 사실. 일어난 사건에 익숙한 관념, 다른 이들의 시선과 기대치가 뒤엉켜 사건을 해석한다. 당시의 당혹스러움이 이제는 판단의 옷을 입고 가슴으로 몸으로 다시 경험된다. 눈을 감는다. 입술을 깨문다.

뉴욕 차이나타운에서 잡혀갔던 동양인 남성에게는 어떤가. 그 몸은 그가 넘어지던 아스팔트에 닿던 피부의 감각, 제압될 때 무력해진 근육의 감각을 잊을까. 카메라는 오직 보이는 것만 담을 수 있을 뿐이다. 급습을 겪은 이들이 사건 이후에 몸안에 각인될 기억을, 그 몸의 반응을 담아낼 수 없다. 아이스 요원들에게 부모가 잡혀가는 모습을 본 아이들, 잡혀간 아이들이 있다. 그 기억은 아이의 몸을 어떻게 성장시킬까. 아이가 겪을 불안은 청년이 되어서도 쉽게 사라질까. 십 년, 이십 년이 지나도 그 몸들이 고통스러운 기억을 계속 길어 올린다면, 그 짐은 오롯이 그 일을 당한 사람들만이 져야 할 몫일까.

얼마 전 기사를 천천히 읽으면서 추모 기도를 올린 적이 있다. 작년에 미국 이민 구금 시설에서 죽음을 맞이한 서른 두분의 이름과 사진, 생애가 적힌 기사였다. 미국 시민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 삶이 가볍게 여겨지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도 통제되고 갇히며 추방되는 많은 사람이 있다. 이들이 감당할 기억의 무게를 상상해 본다. 경계선에 갇힌 사람들, 그 경험을 안고 사는 이들과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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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태욱

2014년 봄, 피스모모를 만나면서 평화교육에 매력을 느꼈다. 2018년 캐나다로 건너가 메노나이트 대학에서 평화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위니펙에 있는 난민지원기관에서 청소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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