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투표를 했던 열 아홉 살 이후, 여러 번의 선거를 치렀습니다. 투표권이라는 게 선물 같았던 처음의 마음과 달리, 그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은 선거철만 되면 세상에 ‘팽 당하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선거운동 차량이 골목골목을 다니는 때가 되면, 일상에 존재하는 혐오와 차별이 후보들의 마이크를 타고 증폭되는 것 같으니까요. 성소수자 문제를 소모적이라고 모독하거나, 징병제도에 관한 비판적 성찰은 삭제한 채 여성을 징집대상으로 소환하는 말들이 뉴스와 인터넷 공간을 채웁니다. 그들이 대변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범위에는 좀처럼 내가 속하지는 않아서 세상으로부터 왕따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해요.
평화운동에 발을 들인 후 제도권 정치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줄어들었습니다. 방위력을 명목으로 군사비를 늘리고 K-방산을 호명하며 무기수출에 열을 올리는 정책에는 진보, 보수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어느 정당이 여당이 되든, 군비축소를 말하는 국회의원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제 삶과 활동의 맥락 속에서 제도권 정치에 냉소하게 되는 순간들이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작년 말, 피스모모에서 마련한 간담회에서 국제부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어느 기자 한 분이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꽤 많은 정치인들이 국내정치적 어려움을 타개하는 수단으로 전쟁위기 또는 전쟁 그 자체를 이용하곤 한다는 관찰을 나눠주셨어요. 내부 지지 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외부의 적을 만드는 일은 통치자에 대한 지지를 빠르게 회복하게 하니까요. 기성정치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기성정치를 내버려두면 안된다는 그의 당부가 저에게는 일침으로 다가왔습니다.
2024년 3월, 더슬래시의 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입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 시스템으로서의 민주주의를 기성정치에 중심을 두어 살핍니다. 제도권 정치의 안과 밖에서 활동하는 세 분 필진의 이야기는 제도권 정치를 구성하고, 감시하고, 작동하게 하는 것은 결국 시민이라는 것을 강조하는데요. 복합적인 위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제도권 정치에 대한 책임은 무엇일지 묵직한 질문을 하게 합니다.
이태영님은 새만금, 가덕도로 상징되는 개발주의와 정치의 유착을 짚습니다. 그는 개발사업이 한국 사회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의사결정과정의 민주성을 훼손하고,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켜 왔다는 사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증명되었음에도 여전히 선거철의 ‘인기메뉴’가 되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데요. 개발에 대한 사회적 욕망이 정치권에 영향력을 부여하는 오랜 관성을 멈추려면 어떤 질문들이 필요한지 성찰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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