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던 회사에서 쫓겨나 약 4개월간 무직 상태였던 적이 있습니다. 원래도 맘에 안들던 회사, 쫓겨난 김에 실업급여 받으며 마음껏 쉬자고 마음먹었지만, 웬걸, 정신을 차려보니 그 어느 때 보다도 바쁘게 지내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낮에는 제가 회원으로 있는 단체의 회의와 시위에 참여하고, 밤에는 개인 블로그에 글을 썼어요. 아무것도 안하는 시간이 버티기 힘들때면 발레학원에 가고 자전거를 탔습니다. 소진이 심했던 시기였지만, 쉬지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대체 왜 이러는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가야할 학교도, 회사도 없는 채 살아보는 일이 처음이었어요. 소속이 없다는 건 세상에 내 자리가 없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함을, 그 존재의 자리를 차지해도 마땅한 자격이 있음을 계속해서 증명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발견했습니다. 나의 ‘자격 없음’이 탄로나 버린다면 좁디 좁은 오피스텔방에 영원히 혼자 갇혀버리고 말까봐 공포에 떨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계속해서 자격을 묻습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신체적 조건을 가졌는지, 연봉이 얼마인지, 심지어는 가치관과 신념, 성격 까지도 ‘자격조건’이 되는 사회입니다. 각종 시험점수와 다니는 학교와 회사의 이름이 그 자격조건의 증명이 되지요. 그 증명이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때, 쉬지 않고 움직이며 번아웃과 고립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던 제 자신을 떠올려봅니다.
7월의 더슬래시 주제는 ‘그 '자격 없음'을 거부합니다’입니다. 한나, 홍주리, 박은미 세 명의 필진들은 은둔의 당사자였거나 ‘은둔형 외톨이’의 가족, 친구, 동료였던, 혹은 둘 다 였던 경험을 꺼냅니다. 이들의 이야기 속 은둔의 계기는 다양합니다. 무업, 학교폭력, 번아웃, 장시간 노동, 우울 등이 은둔으로 이끌었다고 말하는데요.구조적인 문제를 자신의 탓으로 여기게 되는 것,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여기게 되는 것이 은둔과 고립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경로라고 말합니다.
끊임없이 경쟁하며 쓸모를 증명해야만 살아남는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단순히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것만이 고립이 아닐 것입니다. 증명해내기에 실패하면 이 세계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나 이외의 사람들을 경쟁자의 자리에 위치시키며, 연결감을 끊어내버리지요. 모든 결과를 개인의 ‘노오-력’ 탓으로만 돌리는 능력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이미 심각한 고립과 단절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나님은 약 9개월 동안 은둔/고립의 상태와 회복을 경험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면접과 선발에서 탈락하는 경험이 누적되며 자기 돌봄을 포기하게 되었다는 회고가 아픕니다. 도움을 요청할 힘 마저도 남아있지 않았던 시기부터, 집 밖으로 서서히 나와 훌라를 추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되찾게 되기까지의 경로를 기쁘게 따라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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