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차례로 반환이 이루어져 올해 초 기준으로 총 66곳이 반환되었다. 작년 말에는 용산 미군기지 일부가 반환되면서,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미군기지들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진즉 반환되어 16년간 방치되었던 춘천 캠프페이지에 다시 쏟아지게 된 관심은 조금 달랐다. 잘 정화하여 반환했다는 캠프페이지 터에서 오염된 기름통이 수십 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오염물질을 확인하기 위해 땅을 파 보니, 미군이 주둔했을 당시 활주로로 사용했던 아스콘층도 지표 아래 그대로 남아있었다.
캠프페이지는 왜 오염된 채 반환되었을까? 캠프페이지를 돌려받았다는 ‘시민’은 왜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반환된 기지에서 ‘시민’은 어떤 자리에 있을까? ‘시민’에게 돌려주었다는 미군 기지의 주인은 과연 ‘시민’일까? 캠프 페이지는 과연 반환된 것이 맞을까? 반환받았다는 ‘시민’은 대체 누구일까?
여타 미군기지와 마찬가지로 캠프페이지는 한국전쟁이라는 군사적 충돌을 통해 생겨난 결과물이다. 반세기 넘게 존재해 온 캠프페이지는 군사력을 중심으로 하는 국가 안보의 상징물이었다. 국가가 외부의 위협 요인으로부터 국민을 지킨다는 안보 패러다임 속에서, 시민은 국가의 보호를 받는 피보호자가 된다. 또한 캠프페이지는 미국이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겠다는 약속 아래 형성된 미군기지다. 이때, 한국은 미국의 보호를 받는 피보호자가 된다. 캠프페이지는 시민을 하위에 두고 국가와 글로벌 패권이 수직적으로 관계하는 다층적이고 위계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위계 속에서 하층으로써의 시민/한국은 보호자인 국가/미국에 이견을 제기할 수 없도록 제도적, 문화적으로 강요받는다. ‘시민’들에게 캠프페이지의 담벼락은 당연한 것이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일이었다.
평화학자 마리 두건(Maire Dugan)이 고안한 중첩 모델(Nested Model of Conflict)에 안보 패러다임을 더해 보면, 미시적 차원과 거시적 차원 행위자들의 관계가 한층 뚜렷이 나타난다. 여러 개의 동심원으로 표현되는 ‘중첩 모델’은 사실 각 원들이 위계적인 관계를 갖게끔 설계되지는 않았으나, ‘캠프페이지의 토양 오염 부실 정화’라는 이슈를 놓고 수직적으로 형성된 시민과 지역사회, 국가, 국제적 구조를 살펴보는 데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1. 시민과 지역사회 차원: 권한의 부재
춘천의 시민사회는 기지 반환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998년부터 반환이 완료된 2005년까지 연대체 형성을 반복하며 캠프페이지 반환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최근에는 대책위원회를 형성하여 오염 부실 정화 이슈에도 활발히 대응했다. 춘천시도 시민사회와 협업하여 부실 정화에 대한 시민 토론회를 공동 개최하는 등의 노력을 이어왔다. 그러나 오염 부실 정화가 밝혀진 직후인 2020년 6월에 강원일보가 진행한 좌담회에서 관련 전문가들은 부실 정화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뽑는다. ○환경오염 조사가 부실했고, ○오염 지역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으며, ○정화 과정에 신뢰할 만한 전문가와 단체가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이를 정리해 보면, 시민사회를 비롯한 지역사회는 환경 정화 작업 전반에 대한 정보와 접근성이 부족했고, 다시 말하면 ‘이슈에 개입할 만한 권한’이 없었다. 춘천 시민들의 접근권이 제한되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환경오염 조사는 국방부와 환경부의 권한이었고, 정화 작업의 주체도 국방부였기 때문에, 지자체가 상관할 수 있는 영역은 극히 제한되었다. 이때, 시민사회는 이슈의 주변부를 돌며 저항의 목소리를 모으는 역할로만 허용되었다.
2. 국가 차원: 책임 분산과 불투명성
반환된 미군기지 정화 작업은 국방부 산하의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이 맡는다. 2006년에 설립된 이 사업단은 단장의 임기가 짧기로 유명하다. 10조 원대의 거대한 국책사업의 총책임자가 1~2년, 짧게는 6개월마다 바뀌는 현상은 사업의 일관성을 저해하고, 책임을 분산시킨다. 더불어 복잡한 오염 정화 과정이 책임의 주체를 더 흐릿하게 만든다. 국방부에 따르면 캠프페이지 오염조사는 환경부(환경공단 수탁), 정화 작업은 국방부(농어촌공사 수탁), 검증은 자연환경연구소와 울산과학대가 맡았다(2009.08~2011.12). 미군 기지가 반환되면 국방부가 관리하고, 정화 작업이 끝나면 민간 사업자에 매각한다. 만약, 캠프페이지처럼 오염 부실 정화 문제가 뒤늦게 제기된다면, 누가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가 문제가 된다.
여기다가 반환 과정 전반의 불투명성이 더해졌다. 연합토지관리계획에 의한 1차 시기 반환기지 23개 중 하나였던 캠프페이지는 외교부의 졸속 반환 협상과 국방부의 불투명한 정화 사업으로 2007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청문회까지 열렸다. 또한 녹색연합에 따르면, 캠프페이지의 환경오염 조사 및 정화 작업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뉴스타파의 보도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여전히 "국익을 훼손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미군기지 위해성 평가 보고서 내용을 일체 공개하지 않고 있다.
3. 국제 차원: 미국 중심의 안보 패권
국가 차원의 책임 분산과 불투명성 문제는 국제 차원의 안보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한반도는 북한이라는 불안 요소에서 비롯된 미국의 안보 권력에 크게 종속되어있다. 더욱이 2011년에는 주한 미군이 미 육군 태평양 사령부에 통합되면서, 주한 미군의 역할이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고 지역 내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군기지는 반환 전까지 치외법권 지역이며, 주둔 중에도 안보 기밀의 수준 또한 매우 높다. 이에 따라 캠프페이지를 비롯한 주한미군 기지 내에서 어떤 유해 물질이 취급되고 어떻게 처리됐는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 미군의 범죄로 한국 여론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주둔에 필요한 세부 규정을 담은 조약인 SOFA(주한 미군 지위 협정)가 체결되었다. SOFA는 1967년에 최초 체결된 이후 지금까지 1991년과 2001년, 두 차례 개정되었지만, "미군 시설을 반환할 때 미군이 원상회복이나 보상 의무를 지지 않는다(4조)"라는 조항은 독소조항으로 남아있다. 사실상 미군의 오염 정화 책임에 법적 면죄부를 주는 격이다. SOFA는 한미 간 권력 불균형의 토대 위에 세워졌고, 그 불균형한 권력 위계는 여전히 매우 공고하다.
이대훈 피스모모 평화/교육 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국가보안법이나 국가 안보 기구, 국방 성역화 등을 통해 보호자/피보호자라는 이분법이 문화로 정착된” 국가에서 안보 패권에 도전하는 행위는 색출의 대상이 되고, 가혹한 징계가 가능해진다. 특히 안보 피라미드의 상위에 위치한 미국을 대상으로는 이러한 이분법이 더욱 강화되었다. 기지 반환 운동을 초기부터 이끌었던 춘천시민연대가 `헬기 소음 문제`나 `캠프페이지 무상 양도 운동`처럼 안보 문제를 비껴가는 운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국가 안보 논리 때문이다. `미군기지 철수`가 아닌 `캠프페이지 반환과 이전`을 선택하고, ‘캠프페이지 무상 양도 운동`으로 캠프페이지 매입비용을 춘천시가 분담하지 않도록 하자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군기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는 친북으로 몰릴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시민을 안보의 주체로 상정하지 않는 국가의 패권적 안보 독점과 힘의 우위에 따라 설정된 군사적 대결 중심의 기존 안보 패러다임 속에서 캠프페이지는 춘천 시민들에게 반환되었지만, 춘천 시민 중 누구도 반환받은 적 없는 땅이 된 것이다.
미군기지들이 반환되고 있다. 아니, 반환되고 있지만 반환되고 있지 않다. 서울 용산 기지는 물론, 인천의 캠프 마켓과 의정부 캠프 시어즈 등 한반도 곳곳에 위치한 미군 기지들의 반환 과정은 그다지 매끄럽지 않다. 고질적인 오염 문제도 막대한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기지를 품었던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던 시민들이 기지가 있던 땅의 미래에 대해 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춘천 시민들은 캠프페이지를 생태 중심의 시민 공원으로 만들자는 목소리를 여러 차례 낸 바 있다. 춘천시는 그간 춘천 시민들의 논의와 다른 시안을 내놓는 등 갈등을 빚다가, 2020년에 이르러 캠프페이지 부지 활용에 대한 청사진을 확정했다. 그러나 이 역시, 새롭게 드러난 토양 오염으로 무기한 연기되었다. 최근에는 허영 국회의원이 강원도청사를 캠프페이지 부지에 신축 이전하자고 제안한 사실이 알려졌다. 과연 이러한 제안들 속에 시민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을까?
시민들의 목소리가 어디에 있는지 묻는 이 질문은 다른 질문들로 확장될 수 있다. 캠프페이지는 왜 거기 있어야 했고, 왜 높은 담벼락에 가려져야 했으며, 왜 허락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는지. 미군은 애초에 왜 반세기가 넘도록 한반도에 주둔해야 했으며, 그들이 우리를 지킨다는 명분은 무엇인지, 군사력 증강과 군비경쟁이 우리의 안전을 위한 최선의 선택지인지. 또, 그러한 행위는 누구로부터 누구를 안전하게 하는지. 적의 실체는 무엇이며, 우리는 그 존재를 두려워해야 하는 상황인지, 그리고 그 적은 정말 존재하는지.
이렇게 질문들이 축적되다 보면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이 단단한 ‘구조’로 존재했던 안보 프레임을 흔들 만큼 강력해질 때 안보의 진정한 주체들이 가시화된다. 장벽에 가로막혀 접근하지 못하던 안보의 성역에 자유롭게 드나들고, 근원을 알 수 없는 공포를 해체하며, 시민/국가/글로벌 패권의 수직적 위계 구조를 무효화시키는 주체들의 출현과, 서로가 서로의 안전을 보장하는 주체적인 시민들의 존재가 그 땅을 채우는 것이다. 그때에서야 비로소 캠프페이지는 시민에게 반환될 수 있을 것이다.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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