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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페이지에 핵이 있었다는 소문 / 가연

2025.03.18 | 조회 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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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춘천에는 오래도록 떠도는 소문이 있다. 반환된 미군기지에 핵무기가 있었고, 방사능 누출 사고도 있었다는 것. 춘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새롭지 않은 이야기다. 

 

춘천두 마찬가지예요. 지금 거기서 오염된 물질이 나왔다고 얘길 하는데, 그건 누구나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일이고, 제가 책을 뒤져보니까 여기에 71년돈가, 72년돈가 사고가 있었다고 해요. 핵물질이 소동이 나서 여기서 25키론가 거기에 묻었다.고 하는데 제가 그걸 찾아다닐 수는 없고, 반경 25km 이내면 거의 광판리 이쪽, 요정도 부근에 묻었을 거라 추정하는데, 그런 일들이 많았구요.

- 박정모,한국전쟁과 춘천, 춘천문화원, 277p

 

핵무기 배치에 대한 것은 심증만 있었지 물증은 없었다. 그러다가 캠프페이지 반환을 앞둔 2005년, 캠프페이지에 핵탄두가 배치되었다는 기록이 공개되었다. 당시 최성(전 고양시장) 국회의원이 미국 정보공개 청구 자료를 인용해 캠프페이지가 핵무기 기지였음을 국회에서 처음으로 밝혔다. 캠프페이지 로고가 붙은 〈한국무기지원단(WSD)-한국 핵작전 표준절차〉라는 미국 기밀 문서가 공개되면서 핵무기 기지로 확인되었다. 더불어 1999년에 <원자력과학자 회보〉(Bulletin of Atomic Scientists)가 밝힌 자료에 따르면, 캠프페이지에 배치되었던 핵탄두 미사일의 일종인 ‘어니스트 존 미사일’은 1958년 1월에 처음 한반도에 배치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국가안보명령 64’에 따라 핵무기 철수가 완료된 1991년 11월까지 한반도에는 핵탄두 미사일이 많게는 700여 발, 적게는 100여 발이 배치되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2011년에는 1972년부터 그다음 해까지 캠프페이지에서 복무했던 미군 댈러스 스넬이 캠프페이지에서 방사능 누출 사고가 있었다고 증언했다.

 

1972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중략) 20~30여 명이 미사일을 등지고 빙 둘러쌌다. 나중에 미사일 탄두에 무슨 문제가 생겨서 헬기가 수송하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략) [핵탄두는] 춘천시 남쪽 15마일(약 24㎞)쯤 떨어진 어딘가에 폐기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모른다. 나도 그날 궁금해서 여러 번 상관에게 물어보았으나 어떤 대답도 듣지 못했다.  

- 댈러스 스넬, 시사인, 2011년 6월 22일

 

당시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댈러스 스넬은 2002년부터 원인을 알 수 없는 백혈병으로 투병 중이다. 해당 병에 대한 가족력이 없는 그는 캠프페이지에서 방사능과 고엽제 등 맹독성 물질에 노출되었던 것을 발병의 원인으로 꼽는다. 댈러스 스넬은 한국 주둔 당시 캠프페이지 군 차고지 옆 공터에 이름 모를 드럼통을 묻는 작업을 했다.

 

운전병으로 일하면서 제초제와 방충제를 부대 안 곳곳에 직접 손으로 뿌리곤 했는데, 가끔은 알 수 없는 드럼통을 부대 안 공터에 파묻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드럼통 바닥과 위에 있는 뚜껑을 제거하고 땅에 묻으면 마치 큰 구멍처럼 된다. 그 구멍에 돌을 반쯤 채우고 알 수 없는 물질을 쏟아 부었다. 그러면 구멍이 마치 하수구 같은 역할을 하면서 알 수 없는 물질들이 땅속 깊이 스며들었다. ‘취급주의’ 표시가 뚜렷한 고엽제(Agent Orange), 제초제 같은 약품들이었다.

- 댈러스 스넬, 시사인, 2011년 6월 22일

 

캠프페이지에 핵무기 사고가 있었는지, 핵폐기물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고엽제와 제초제는 어디에 묻혀 있는지는 여전히 미궁 속에 갇혀 있다. 고엽제의 경우, 반환 당시 환경오염 조사에서 빠져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방사능 오염의 경우, 핵물질이 누출되었다는 소문에 근거하여 환경조사에 ‘방사능 오염 조사’가 포함되었지만, 그 수치가 기준보다 낮게 나와 지표면과 대기 침토양에서 방사능 오염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마무리되었다. 핵물질에 대한 증언이 있었던 2011년 당시, 시민사회는 국방부에 2005년의 환경조사의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핵무기 사고에 대한 재조사도 요청했다. 그러나 캠프페이지를 둘러싼 오염 문제와 은폐는 지금까지 반복되고 있다. 2020년 10월에 캠프페이지에서 발견된 30여 개의 폐유 드럼통은 반환 전 환경조사를 통해 오염이 되지 않았다고 확인된 지역에서 발견되었고, 지금까지 핵물질 누출에 대한 주한미군이나 국방부의 해명은 없다.

반환된 그리고 아직 반환되지 않은 미군기지에 관해서도 ‘은폐’는 계속되고 있다. 2015년에는 오산 기지에 살아있는 ‘탄저균’이 밀반입되어 군인과 시민이 독극물에 노출된 사고가 있었다. 2016년에는 부산 8부두 미군 전용 시설에서 세균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사실이 밝혀졌다. 2020년 10월에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국회의원은 미군이 2017년부터 2019년 1월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독극물을 부산 8부두, 군산 미군기지, 오산 미군기지, 평택 미군기지 등에 반입한 사실을 폭로했다. 이에 대해 미군은 독극물 반입과 해당 시설들이 생화학무기 실험용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확인할 만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또한 2017년에 ‘용산기지 온전히 되찾기 주민모임'과 ‘녹색연합'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15년 사이 용산 미군기지 안에서 총 84건의 기름유출사고가 있었지만, 한 번도 우리 정부나 서울시에 먼저 통보한 적이 없다.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국제단체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DEA, International Institute for Democracy and Electoral Assistance)의 보고서에 따르면 안보 불안의 주요 요소는 배제, 그리고 권력과 자원에 대한 접근 부족이다. 주한미군의 생태는 이러한 안보 불안의 요소를 적극 취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기지의 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질문할 수 없는 국가 안보 체제에 힘입어 배제를 넘어선 은폐와 폐쇄를 일상화한다. 안보라는 이유로 ’접근 금지’된 미군기지에서 비밀리에 핵무기가 배치되고, 생화학무기 실험을 위해 독극물을 반입하는 등의 불법 행위가 반복되고 있다.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반세기 넘게 주둔하고 있는 주한미군은 오히려 한반도의 ‘안보 불안’을 증식시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남과 북으로 나뉜 한반도에서 안보 불안은 ‘적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게 연결되고, 적의 공격에 대한 공포는 국가 안보 체제를 그리고 미군 기지의 존재를 지탱한다. 여기에 더해 미군기지는 SOFA 조항을 통해 미군기지 내 활동에 대한 은폐를 구조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기지의 수는 몇이나 될까. 반환대상 미군기지는 총 82곳이지만, 전체 미군기지의 현황은 비공개로 부쳐진다. 이 밖에도 안보상의 문제, 국가 사무라는 이유로 ‘비공개’ 처리되는 주한미군에 관련 문제는 수없이 많다. 주한미군은 ‘비공개’ 활동을 통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그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체 언제까지 그 ‘비공개’ 활동을 소문으로만 접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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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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