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캠프페이지

캠프페이지에 대해 이야기할 권리 / 가연

2025.03.18 | 조회 26 |
0
|
더슬래시의 프로필 이미지

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혹시 학교에서 캠프페이지에 대해 배운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9살 춘천 시민에게 대뜸 질문을 던졌다.

“아뇨! 캠프페이지가 뭐에요? 캠프하는데에요?”

해맑게 돌아온 대답. 캠프페이지에 조성되어있는 ‘꿈자람 어린이공원’에 간 적이 있고, 춘천역도 몇 번 가봤지만, 캠프페이지는 집과 거리가 멀어서 제대로 가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단다. 이 어린 동료 시민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 그가 캠프페이지를 ‘춘천역 건너편에 있는 공사장 같은 곳’으로 기억해도 괜찮을까.

춘천 소재 초등학교 교사 10명에게 캠프페이지를 학교에서 가르친 적이 있는지 물었다. 10명 중 9명은 전혀 없다고 했고, 한 교사만이 사회교과 연계과정으로 다룬 적이 있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학생들은 캠프페이지가 어딘지 잘 모른다고 덧붙였다.

“반환된 후 비어 있는 땅 캠프페이지에 토양오염이 심각하다고 보도된 시점이었어요. 4학년 사회 교과 수업 중 지역화 단원의 환경 오염 과정에서 언급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학교가 춘천시내에서 좀 벗어난 곳이라 아이들은 캠프페이지가 어딘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도 관련 지역 이야기를 해주면 집중을 더 잘해서, 종종 지역 이야기를 교과에 포함시키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춘천시 초등교사)

캠프페이지 이슈를 부지 오염 문제에 국한해서 다룬 이유를 물었더니 ‘관련 지식과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미군기지가 주둔하게 된 이유에 관한 사전지식과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에요. 아이들이 관심있는 주제로 이끌어야 하는데, 대다수가 미군기지가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어서, 설명하려면 한참 걸리죠. 시간을 들여 설명하고자 해도 한국전쟁부터 다루어야 하는데, 배경지식이 많이 부족해요.”

국가주도 교육과정에 따라 수업을 운영해야 하고,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에서 교사들이 평화와 안보에 관련된 주제, 특히 주한미군이나 지역의 반환된 미군기지처럼 쉽지 않은 주제를 교실에서 다루기는 어렵다. 물론 학교 및 교사의 재량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교육법이 개편되고 있으나 아직은 교사가 안전함을 느끼며 주제의 다양성을 채택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그 뿐 아니라 교사의 재량권이 확대된다고 하더라도, 안보와 관련된 주제는 교사들이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교사들 역시 그 주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배움은 반드시 학교 건물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주된 배움 활동이 일어나는 학교에서 어린 동료 시민들이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스며들어 있는 주한미군 기지를 여러 각도에서 성찰할 기회가 주어져야하지 않을까.  

사실 주한미군의 존재와 기지 주변의 이야기를 제대로 배우고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은 어린 동료 시민이나 교사만이 아니다. 주한미군 기지라는 공간은 전통적인 안보관 아래에서 철저하게 폐쇄되고 성역화되어왔다. 기지는 높은 담벼락을 두고 주변 지역과 분리되었고, 지역 주민들은 이러한 ‘분리’를 오랜 시간 학습하며 자랐다. 여기에 더해 국가 혹은 군대는 강력한 무기와 힘으로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주체라는 강력한 내러티브가 형성되었다. 따라서 안보의 주체가 아닌 시민은 안보의 영역에 궁금증을 제기할 필요도, 제기할 수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미군기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자유롭게 공유되지도, 구성되지도 못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군사기지, 특히 주한미군과 관련된 이야기는 국가가 주도하는 단편적인 서사로만 남았다. 

춘천 캠프페이지도 그러한 맥락에서 전혀 다르지 않다. 춘천에는 기지를 둘러싼 지배적인 내러티브가 존재하는데, 역설적이게도 ‘기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음’이 주된 서사로 정착된 듯 보인다. <춘천, 기지촌(정충실, 한국학연구 제68집)>과 <한국전쟁과 춘천(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을 보면, 기지촌 여성과 주민들의 관계, 기지촌 주변에 형성되어있던 상권을 통해 ‘한때 호황을 누렸던’ 주민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춘천시의 도시발전계획에 따라 ‘교육도시’ 춘천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았던 캠프페이지와 주변의 서사는 애써 외면된 과정 또한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춘천시 지도에서 캠프페이지 부지는 없는 것처럼 거짓으로 도로가 그려지기도 했고, 기지촌은 모두 철거되었고, 기지 주변은 개발계획에서 빗겨간 채 춘천시에서 가장 노후한 구역으로 남아있다.

이렇듯 춘천의 미군기지는 오랜 시간을 거쳐 감히 우리가 ‘이야기하지 못하는 공간’이 되었다. 시민들은 캠프페이지 이야기의 주변에 맴돌았다. 기지가 반환된 이후에도, 그래서 잠시 개방되어 시민 공원으로의 전환을 이야기할 때도, 정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오염물질이 대거 발견될 때도, 그리고 강원도청사 신축 이전으로 때아닌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때도 시민들의 목소리는 이야기의 주변부에 머물고 말았다.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은 ‘이야기할 권리’를 놓치게 되고, 공간에 미치는 힘 또한 상실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야기하지 못해서 잃어버린 ‘힘’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피스모모는 ‘P.E.A.C.E. 페다고지’ 즉, “참여적 participatory, 대화-상호작용 exchange, 문화예술적 artistic-cultural, 비판-창조적 creative-critical, 낯설게하기-거리두기 estranging의 페다고지”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성찰하는 배움과정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배움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은 개인과 공동체에 내재되어 있는 ‘변화를 위한 힘’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대화와 이야기하기(스토리텔링)를 통해 “말할 권리를 상실한 사람들이 비판적 의식의 형성을 통해 자기들의 말할 권리를 찾게 되고” 이를 인정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를 맺게 된다(이대훈, 모두가 모두에게 배우는 P.E.A.C.E. 페다고지 평화교육, 피스모모).

여기에 더해 ‘스토리가 담고 있는 가치와 정서, 그것을 직접 실천하고 실행하게 하는 직접적인 경험 측면을 더욱 중요하게 다루는’ 스토리두잉은 ‘남의 이야기를 나의 이야기’로 만든다. 스토리두잉은 장소를 스토리와 밀접하게 연관시키며 스토리 주체가 스토리를 수행하게 함으로써, 적극적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된다(윤주, 스토리텔링에서 스토리두잉으로, 살림). 이러한 의미에서 “캠프페이지를 토론 수업의 주제로 삼아 사회 문제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는 춘천 봉의초 교사의 답변은 의미가 크다. 기존에 존재하는 배움공간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던 이야기를 시도하는 것 자체로 새로운 서사가 형성될 가능성이 활짝 열리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캠프페이지라는 공간을 깊고 느리게 성찰하고, 지배적인 서사에 다른 흐름을 더할 수 있는 대안적인 서사를 창조해나가는 과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 이대훈 피스모모 평화/교육 연구소 소장은 평화구축 과정에서의 서사적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단순한 이야기에 머물지 말고, 이야기들의 복합체 즉 서사적 복잡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야기들의 복합체’에서 평화를 위한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들이 펼쳐나오기 때문이다.

캠프페이지에 도청사를 새로 짓는다는 결정은 새로운 도지사의 의지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여전히 춘천 내에서는 시민의 공간인 캠프페이지를 경제적인 가치가 높은 공간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목소리만 크게 회자되고 있다. 피스모모와 더슬래시가 지난 3월말에 진행했던 설문 캠프페이지는 모두의 것?’에 따르면, 캠프페이지를 시민들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공원, 캠프페이지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했으면 하는 목소리가 춘천 내에 뚜렷하게 존재한다. 캠프페이지에 시민들의 이야기가 덧입혀지고, 캠프페이지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권리를 찾게 되는 과정은, 서로 배움의 과정을 통해 공간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데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삶의 조각을 나누고 있는 동료 시민들과 ‘내가 경험한 캠프페이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안보의 공간은 폐쇄적이어야 해”라는 서사에 맞서는 다양한 서사의 흐름이 형성되지 않을까.

 

첨부 이미지

/김가연

피스모모에서 평화와 저널리즘의 교차점을 모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갈등전환, 평화저널리즘, 소통을 키워드로 저널리즘을 통한 평화세우기의 비전을 키우는 중이다.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더슬래시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다른 뉴스레터

© 2025 더슬래시

평화와 커먼즈의 렌즈로 세상을 봅니다.

뉴스레터 문의journal@theslash.online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 서초구 강남대로53길 8, 8층 11-7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