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록원은 한국전쟁 중 한국군과 유엔군 전사자를 약 77만명, 북한군 전사자 약 60만명, 중공군 약 97만명, 민간인 사망자 약 99만명으로 기록하고 있다. 합산하면 한국전쟁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는 333만명에 달한다. 집계되지 않은 죽음까지 헤아리면 더 많은 이들이 한국전쟁으로 목숨을 잃었다. 강원도 춘천시 평화로, 15년 전에는 미군기지 였던 곳의 이름은 캠프페이지(Camp Page)다. 이 미군기지의 이름은 1950년 12월 10일, 한국전쟁 중 전사한 존 U.D. 페이지 미 육군 중령의 이름이다. 의정부의 '캠프레드클라우드', 대구의 '캠프워커'와 같은 다른 주한 미군 기지들의 이름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군인들의 이름을 땄다. 한반도 곳곳은 미국의 세계 패권 지도를 완성하기 위해 이름을 내어주고, 미국 땅이 되어 반세기를 살았다. 전쟁에서 죽음을 맞고 전쟁을 준비하는 기지의 이름으로 남은 그 사람의 삶을 생각하며 이름조차 남지 않은 수 많은 존재들을 애도한다.
춘천역 앞, 소양동과 근화동에 위치한 반환된 미군기지 캠프페이지는 약 21만 3천평으로 축구장 106개와 맘먹는 광활한 땅이다. 왜 하필이면 춘천에 미군기지를 세웠을까? 춘천은 미국과 소련이 대립하던 냉전시대에 미국의 동아시아 제국 설립을 위한 전략적 요지이자 중동부전선을 담당하는 최전방 보루였다. 소련과 최대한 가까운 곳에 미국의 군사력을 집중시키는 ‘전진 전략’에 따른 결정이었다. 또한 춘천은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충돌했던 '춘천전투'의 격전지이도 하다. 춘천전투 이후 북이 점령했던 서울을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복하고, 그 다음 해인 1951년 3월부터 미8군은 군수품을 공급하는 비행장 활주로를 근화동 일원에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제4미사일사령부와 주한 미군 군사 고문단 등이 춘천에 주둔하기 시작했고, 1958년에는 캠프페이지가 들어섰다. 미국이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한반도를 수호해준다는 목적이었다. 냉전시대에 드리워진 미국의 안보우산 아래 춘천 캠프페이지의 시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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